작성일자 : 2011. 3. 11

작성자 : 유해정(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중증 장애인으로 6시간만 살아보라

3년 전 여름이었다. 장애인 단체에서 일하는 활동가를 만나기로 했는데 약속 시간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았다. 땡볕 아래에서 한 시간 넘게 기다렸건만 결국 바람을 맞았다. 다음 날, 그와 연락이 닿았다. 병원에 입원했단다. 집에서 휠체어를 타다가 넘어져서 네 시간이나 휠체어에 깔려 있었다고 한다. 괜찮으냐고 묻자, 일전에는 넘어져서 밤새 그러고 있었던 적도 있었으니 이번엔 그나마 양호한 편이라고 말했다. 중증 뇌성마비 장애인으로, 하체를 전혀 움직이지 못하고 상체도 거의 쓰지 못하는 그가 휠체어에 깔려 사투를 벌였을 생각을 하니 몸서리가 쳐졌다. 집으로 들어가는 건 어떠냐고 말하고 싶었다. 이런 속마음을 아는지 그가 먼저 입을 뗐다. “혼자 살려면 감수해야죠. 집엔 안 알리려고요.”

독립과 자유를 향한 열망에 장애라는 구분은 무의미하다. “나랑 같이 죽어야 할 텐데…”라는 부모의 넋두리를 듣고 사는 중증 장애인일수록 독립에 대한 열망이 더욱 간절하다. 그런 사람에게 안전을 이유로 가족과 함께 살라고 할 순 없다. 그렇다고 시설을 추천할 수도 없다. 시설의 비리와 인권침해는 이제 뉴스조차 되지 못한다. 만에 하나 좋은 시설이 있다 한들, 평생을 시설의 일과표대로, 주어진 식단대로 따르며, 사적인 생활을 통제받으며 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방법은 중증 장애인에 대한 활동보조 서비스를 강화하는 거다. 장애인 활동보조 서비스는 중증 장애인의 일상생활 및 사회생활을 지원하는 것인데 정부 예산으로 운영된다.

그런데 정부의 의지와 예산이 부족해서 이 서비스는 매번 비판을 받는다. 혼자 생활하는 1급 중증 장애인이 정부 지원을 받는 활동보조 서비스는 한 달에 180시간, 하루 평균 6시간이다(지방자치단체가 추가 지원을 하기도 한다). 이 시간 내에 씻고, 삼시 세끼 밥 먹고, 화장실 드나들고, 필요한 일을 해야 한다. 비장애인 중심으로 설계된 세상에서 장애인들은 일상을 보내고 외출을 하고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쓴다. 하지만 하루에 6시간 이상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자기부담금 4만원 이외에 추가 비용을 내야 한다.

장애인 33만명 중 30만명, 활동보조 서비스 못 받아

노동시장에 거의 진입하지 못하는 중증 장애인에게는 매달 4만원도 큰돈이다. 그러다보니 열성적인 가족들이 있지 않은 한 사회생활은 불가능하다. 대다수 중증 장애인이 학교 가기를 포기하고 텔레비전을 벗 삼아 지내는 건 그 때문이다. 친구를 만나기 위해, 극장에 한번 가기 위해 며칠 동안 한 끼씩 굶어가며 시간을 비축한다. 밖에서 아는 얼굴이라도 만나면 화장실을, 식사를, 이동을 부탁하기 바쁘다. 미안함이, 부끄러움이 없어서가 아니라 단지 ‘살아가기’ 위해서다.

그런데도 책상에 앉아 활자로만 이들의 삶을 엿보는 국회와 정부는 서비스 이용 문턱을 더욱더 높였다. 지난해 정부가 발의해 한나라당이 날치기한 장애인활동지원법은 장애인이 활동보조 서비스를 이용하는 데 내는 돈을 4만원에서 8만원으로 100% 인상했다. 그리고 같이 사는 가구원의 소득에 따라 매달 최대 21만원까지 자기부담료를 내게끔 했다.

‘공짜 복지병’을 얘기하기 전에 중증 장애인으로 한번만 살아보심이 어떨까? 24시간인 하루를 6시간만 살아보시라. 활동보조 서비스가 필요한 장애인 33만명 중에서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나머지 30만으로 살아보시라. 매달 부담금을 21만원씩 내야 하는 중증 장애인의 가족으로 살아보시라. 중증 장애인에게 필요한 만큼 활동보조 서비스를 제공하는 건 정부가 선심을 베푸는 게 아니다. 그들의 것이어야 할 삶을, 그 삶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다.

<시사인 2011. 3. 17 / 유해정>

[정리/류은숙] <2006년 10월31일 인권오름 제27호>

경기도청이 자리한 수원역 근처의 언덕배기에서는 50여 일이 넘도록 중증장애인들이 활동보조인 서비스 제도화를 요구하며 길거리 농성을 하고 있다. 도청의 묵살과 무응답이 이어지는 나날 중 큰 슬픔이 찾아왔다. 이들은 지난 주 금요일(10월 25일), 함께 하던 동료인 정정수 씨의 장례를 치러야 했다. 뇌수막염을 앓던 중증장애인 정정수 씨는 독립생활의 꿈을 키우고 있던 중 사망했다. 동료들은 오랜 농성참여로 인한 과로사라고 여긴다. 고인과 함께 활동했고 중증장애인 독립생활의 꿈을 현실화하려는 장경수 소장을 만나봤다.

활동보조인 제도화를 위한 투쟁

저희는 중증장애인 활동보조인 제도화를 위한 투쟁을 하고 있습니다. 경기도에 시설도 많고 중증장애인, 재가장애인 많이 있습니다. 그분들이 지금까지 진짜 사는 것 같지 않은 모습으로 살아오셨잖아요. 진짜 손 하나도 제대로 못 움직이는 장애인이 많은데, 예를 들면 누워서 주무실 때도 활동보조가 필요한 분이 계세요. 욕창 걸리신 분이 계시기 때문에 잘 때 몸을 움직여 줘야만 잠을 조금이라도 청할 수 있거든요. 그런 분들이 많이 계신데, 지금은 유료이거나 생활도우미 정도가 있어요. 일정하게 정한 시간에 하루에 약 두 세 시간, 일주일에 한두 번 많아야 두세 번, 복지관 같은 곳에서 파견해주는 도우미는 진정한 활동보조라고 할 수가 없어요. 그분들이 하시는 것은 반찬 만들어놓거나 빨래, 방청소에 국한돼 있고, 그건 시혜 쪽이나 자원봉사에 가깝기 때문에 장애인들이 내게 필요한 것, 내가 꼭 하고 싶은 것을 얘기 못하는 부분이 많아요. 일방적으로 봉사자 입장에서 해주고 장애인은 받는 쪽이거든요.

진정한 활동보조인을 어떻게 얘기해야 하나? 정말 중증장애인도 같은 사람인데 하나의 인격체로 태어난 것이고, 거기도 욕구들도 있고, 같은 사람이니 지역사회에서 살고 싶고 직업생활이라든가 나가서 활동하고 싶거든요. 정말 중증장애인들은 집안에만 있어야 하거든요. 아니면 그 온갖 인권유린 당하는 그런 시설에 갈 수밖에 없는 조건에 처해있어요. 지금은 부모나 가족이 책임지는 세상이 현실이거든요. 식구들이 챙길 수 없는 상황이 왔을 때 장애인 본인이 시설을 원하겠습니까? 어쩔 수없이 갈 수밖에 없는 현실이에요. 그래서 인간처럼 살 수 없고, 집에서 가족이 보호한다 하더라도 인간적인 삶을 살 수 없는 거거든요. 활동보조인이 보편적인 권리로 인정돼서 누구나 충분히 원하는 데로 이용할 수 있게 되면, 중증장애인들도 서비스가 제대로 되면 밖에 나가 움직이고 최소한의 사람다운 인생을 살아갈 수 있고, 독립생활도 가능하고 그런 의미에서 활동보조인 제도가 중요하고 이뤄져야 한다고 봐요.

제도화를 이루고 시행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오늘로 54일째 노숙농성을 하고 있어요. 서울이나 인천, 광주, 울산 같은 데서는 전부다 조례를 제정하고 활동보조가 시급히 필요한 중증장애인에게 제공하겠다고 약속을 해놓은 상태인데 유독 경기도는…….

농성하면서 도지사가 면담을 딱 한 번 했는데 전혀 활동보조가 무엇인지 개념조차 모르고 있는 상태거든요. 도지사 당선 전에 질의서 보내고 했을 때 답변서에는 전형적인 말들, 실시하겠다고 얘기했어요. 그랬는데 지난 번 면담 얘기를 들어보면 “그런 거는 상황에 따라 변화될 수 있는 것”이라고 해요.

농성하는 동안 별별 일이 있었죠. 도지사 면담이 자정, 밤 12시에 이뤄졌는데 그 다음날 아침 전경들에게 끌려나왔어요. 저는 휠체어가 뒤로 넘어갔어요. 머리가 너무 아파서 응급실로 실려 가기도 했고……. 여성장애인들은 무자비하게 들려서 휠체어와 몸이 분리돼 따로 따로 들려나왔어요. 이거 굉장히 위험한 일이거든요. 중증장애인들은 함부로 몸을 꺾는다거나 하면 치명적일 수 있거든요. 그렇게 무자비하게…면담한 바로 다음날, 그것도 밥 먹는 중에…….

점거도 하고 농성도 하고 거리 선전전도 하고 집회도 했어요.…근데 아이러니한 게 비장애인만 연행해가요. 뭐, 장애인들이 힘든 건 알아서 그런지…왜 비장애인만 연행해 가는지. 정작 하는 주체는 장애인들인데, 이 일은 비장애인들이 장애인을 선동해서 하는 게 아니잖아요? 저희들이 주체가 돼서 제도화를 위해 투쟁하고 있는 것이고 비장애인들이 저희들을 위해서 아무래도 활동보조가 필요하니까 저희 뜻에 동조를 하셔서 참여를 하시는 건데, 그렇게 보지 않고 전혀 다르게 보고 있어요. 중증장애인들이 이끌려서 하는 것이라고 보는 그런 시각이 참 문제라고 생각해요.

고인이 된 정정수 씨 이야기

고인이 된 정정수 씨가 자주 하던 말이 있어요. “인생이 뭐 있겠냐? 아무것도 없다!” 자주 그런 얘기를 많이 했어요. “백 년도 못 사는 게 인간인데 아귀다툼 할 것 없이 서로 사랑하면서 평화롭게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을 자주 했죠. 많이 활동을 하고 싶어 했어요. 집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시던 분이었거든요. 그분이 뇌수막염이 있어서 몸을 약간 움직이기는 했지만 수동휠체어를 탄다고 하면 밀기조차 힘든 그런 장애인이었는데, 수원중증장애인 독립생활센터에서 같이 활동하고 경기장애인차별쳘폐연대에서 같이 활동하고……. 그 의지가 굉장히 강하시고 독립생활이라는 것, 활동보조라는 것, 그걸 굉장히 이루고 싶어 한 분이예요. 활동 전에는 집에서 오래 보내셨는데 장애인도 주체적으로 활동보조가 제공되고 기본 인프라·시스템이 갖춰진다면 본인을 포함해서 세상에 나가서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 계셨고 의지가 강하고 누구보다도 그러셨던 분이예요.

군대까지 다녀오셨고, 제대할 무렵에 그렇게 돼서 15-16년을 장애생활로 지낸 거죠. 비장애인의 삶과 장애인의 삶을 둘 다 살았어요. 비장애인으로 왕성하게 살아가던 분이 어느 날 갑자기 병이 와서 장애인이 된 후에 16년이라는 세월을 사람같이 살아보지 못한 세월이었던 거죠. 사회에 나가 활동도 하고 싶고 전에도 그런 맘이 있었는데 사회가 그게 아니잖아요? 휠체어 타고 나와 가지고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고……. 포기하고 계셨는데 어떤 계기로 인해서 중증장애인도 나와서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지금 있는 것 같은 독립생활센터 같은데서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싶어한 분이예요.

그 계기란 게, 제가 먼저 만났어요. 제가 먼저 장애운동 쪽에 돌아다녔거든요. 서울집회에도 참가하고…중증장애인들이 목소리를 내야 사회가 변화된다고 저는 생각하거든요. 지금 복지라는 게 모두 경증장애인 위주로 되어 있는 게 안타깝고 저는 뇌성마비 1급인데, 재가장애인, 중증장애인들이 나와서 사회를 변화시키는 일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제가 센터 준비를 해오던 과정에서 정정수 씨를 만났고 같이 해오게 됐어요.

저 개인적으로 안타까운 게 저하고 정정수 씨하고 나이가 한 살 차이밖에 안났고 제일 먼저 만났고……. 중증장애인들이 대화할 수 있는 상대가 부족하잖아요. 친구 만나기도 어렵고…속으로만 앓고 있었고, 살아가면서 속에 담아뒀던 얘기를 많이 나눴어요.…저희 센터로 보면 부소장이셨는데…앞으로 어느 정도 잘 되는 모습도 보셔야 했고 일단 자기 뜻을 펼치려고 계획을 하고 있던 와중에 돌아가셔서 안타깝죠. 다른 동료 분들도 마찬가지고…….

장애인의 권리를 위해 장애인이 나서야

일반적인 생각이 도와주면 되지, 장애인들이 스스로 독립생활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은 잘 안하죠. 지금까지는 그렇게 생각을 하고 살아올 수밖에 없었다고 봐요. 몸에 장애를 입게 되면 당연히 외부하고는 단절된 생활을 할 수밖에 없던 거고, 가족들이나 이런 분들도 일단 비장애에 가까운 생활을 하기 어렵다고 생각을 하시는 거고…활동보조인이 제도화되면 달라질 생각일 텐데, 일단 없던 시대였기 때문에 가족들도 본인도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죠.

제 생각엔 정말 장애인들도 이제는 의식이 변화돼야 하지 않나 라고 생각해요. 장애인도 일단은 인간이잖아요. 기본적 권리를 갖고 태어난 거고 자기 권리잖아요. 보편적으로 모든 목숨이 있는 사람이라면 중증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여성이든 외국인노동자든 모두 인간이면 권리를 가지고 태어난 이상 정당하게 주장할 수 있는 거고, 권리를 되찾기 위해서 이제는 자기 마음과 얘기를 할 수 있는 자신감을 좀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권리를 찾아서 권리를 행사하고 그동안 빼앗기고 행사하지 못했던 권리를 이제는 좀 찾는 노력들을 해서 사회에서 비장애인들과 어울려서 살 수 있는 그런 희망들을 갖고 그런 인식들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내가 살아온 이야기

저도 이 일한 지는 사실은 얼마 안돼요. 저는 돌 때 아팠어요. 35-6년 전이니까 병원에 가도 병원에서 몰랐죠. 지금 같으면 치료 같은 거 했을텐데. 그때만 해도 아무것도 몰라서 병원에서 정확한 병명을 모르고 감기약을 주고 그런 상태에서 몸이 연체동물처럼 늘어졌다고 해요. 며칠은 그런 상태로 있더니 며칠은 나무토막처럼 딱딱해지고 업지 못할 정도로…저도 집 바깥에 처음 나온 게 26-7살 때였어요. 그 전까지는 집에만 있었어요. 나가고 싶은 맘이야 많았죠. 학교는 전혀…유치원에도 못 가봤어요. 동네 친구들이나 형제들 배우던 책을 혼자 보고 해서 글자 아는 정도…26-7살에 검정고시 학원에라도 갈까 노력했는데 집을 한 바퀴 도는데 반나절이 걸릴 정도였어요. 학원 찾아 다녔는데 없더라구요. 전부다 2-3층이라 갈 수 있는 데 한 군데도 없고…제때 배우고 그럴 수 있어야 하는데…그래서 활동보조 못지않게 교육권도 중요하죠.

26-7살에 나왔다는 게 사회생활을 했다는 뜻이 아니에요. ‘나왔다’는 의미는 겨우 집 주위 한 바퀴 돌 정도를 말하는 거예요. 그 생활을 서른 살 될 때까지 유지했어요. 저는 그 이후에 장애가 급속도로 나아진 경우예요. 예전에는 침도 흐르고 목도 돌아가고 했는데 나이를 먹으면서 조금 나아져서 혼자 스쿠터 정도는 겨우겨우 탈 수 있는 정도가 됐어요. 다른 분들은 대단하다고도 표현하시는데 제가 장애가진 몸이지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강해서 조르고 졸라서 오토바이 하나 마련해서 연구를 하다가 장사를 택했어요.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게 장사밖에 없더라구요. 취직도 안되고. 장사를 오래했어요. 10년 가까이 카세트 테이프를 팔았어요.

그러다가 제가 장애인이면서도 장애인을 몰랐던 것, 장애인 세상을 몰랐던 걸 깨달았죠. 관심을 가졌어야 했는데……. 내가 사는 것만 고민했던 것, 지금도 안타깝게 생각해요. 좀더 알았더라면 참여를 했을텐데……. 지금 장애인들이 지하철 보면 엘리베이터 있고 경사로도 있잖아요. 그런 것들이 당연히 된 게 아니거든요. 선배 장애인분들의 투쟁을 통해 제도화된 거고, 그런 과정들이 있었는데 저는 참여를 못했는데 엘리베이터와 경사로를 이용하고 있잖아요. 그래서 저도 동참하는 게 옳은 것이라는 그런 생각이 든 거죠. 그래서 제가 인터넷 보고 찾고 해서 서울에 집회 간 것이 계기가 되어서 지금까지 이어온 거죠.

1년여 년 전부터 독립생활투쟁에 전면으로 나서고 있어요. 앞으로 계획은 지금 우리나라에 일본의 자립생활이념이랄까 이런 게 도입돼서 센터도 생기고 운동들도 생겼는데 일본을 따라가지 않고 우리의 독자적인 방식, 옳은 방식으로 저희 센터를 이끌어가는 거예요. 오래 유지되고 제대로 서려면 사회의 변화에 첫째 주안점을 두고 진행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하기 위해서 노력할 거예요.

<편집자주> [외침]은 한국사회의 인권현장, 바로 그곳에 있었고 지금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가공 없이 그대로 담는 기획이다. 지식인이나 활동가 등은 글쓰기 등을 통해 자기 얘기를 남기지만 인권현장에서 그 원인과 결과를 고스란히 삶으로 받아내는 사람들은 그렇지 못할 때가 많다. ‘외침’은 그 사람들의 목소리를 있는 그대로 기록하려 한다.

 

[정리/류은숙] <2006년 10월31일 인권오름 제27호>

인권오름 제 19 호 [기사입력] 2006년 08월 29일 13:53:52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활동가)

‘정치 1번지’ 또는 ‘복지 1등구’라 자임하는 서울 한복판 종로구청 앞에서 40일이 되도록 중증 장애인들이 길에서 먹고 자며 타전을 보내고 있다. 자신들을 볼모로 사욕을 채운 시설장에 대한 감독의 책임을 물으며 재발방지를 위한 근본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이 타전에 대한 응답은 담당 공무원들의 사과가 아니라 폭력이요, 인권침해에 대한 진상규명과 보상이 아니라 꼬리를 무는 인권침해다. ‘바다 이야기’로 넘실거리는 언론의 관심은 바닥이고, 장애인에 대한 폭력에 대응하는 경찰은 팔짱만 끼고 있다.(이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성람재단 비리척결과 사회복지사업법 전면개정을 위한 공동투쟁단’ 관련 기사를 찾아보길 바란다)

문득 장애인의 인권을 명확히 말해주는 근거를 찾아 들이내밀고 싶었다. 그러나 장애인의 인권을 속 시원하게 두루두루 말해주는 기준을 찾기는 힘들었다. ‘공사 중’이라는 팻말을 발견했다고나 할까. 국내에서도 국외에서도 여전히 제정 ‘노력’ 중이다.

장애인의 권리선언(1975), 국제 장애인의 해(1981), 장애인에 관한 국제 행동 프로그램(1982) 등이 있어왔지만 장애인의 인권을 다룬 국제조약은 현재 없다. 물론 유엔의 수많은 국제인권조약들은 ‘모든 사람’의 권리를 얘기하고 있지만 ‘장애인’은 여러 가지 이유로 그 ‘모든 사람’이 누려야 할 권리에서 배제돼왔다. 이에 ‘간접적’으로 장애인과 관계된 인권 기준 말고 장애 문제에 구체적으로 집중한 법적으로 구속력 있는 국제조약을 만들자는 요구가 거세졌다. 그런 기준이 있어야 국가들이 자기가 해야 할 의무가 무엇인지를 똑똑히 알게 할 수 있고, 장애인에 대해 툭하면 ‘좋은 뜻’으로 ‘배려’하고 ‘보살피고’ ‘헤아린다’는 투로 나오는 사회적 태도와 대응들을 바로 잡을 수 있다는 의미에서다. 그 결과 유엔총회는 2001년 12월 결의안을 통과시켜 장애인권조약을 검토할 특별위원회를 설치하도록 했고, 현재 장애인권조약을 만드는 중이다. 국내에서도 차별금지법 제정 등을 위한 발걸음이 계속되고 있다.

오늘 읽어볼 ‘장애인의 기회의 평등에 관한 표준 규범’은 독립적인 장애인권조약을 만드는 데 밑그림 같은 것이다. 22개항의 규범은 장애인의 삶의 모든 측면을 고려하며 ‘유엔장애인권 10년’ 동안 발전된 인권의 관점을 반영하고 있다.

이 규범에서 먼저 주목해야 할 부분은 ‘장애’에 대한 정의이다. 여기서는 장애인이 신체적 혹은 정신적으로 입은 ‘손상’이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이유로 장애인의 사회참여와 권리이행을 가로막는 사회 환경이 문제라고 한다. 장애인과 그 환경과의 관계의 기능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면 고치고 개선해야 할 부분도 이 관계 속에 있다. 장애인의 참여를 가로막으려고 사회가 만들어낸 장애물을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장애는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문제이지, 한 개인의 속성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장애의 정의에는 오랜 세월에 걸친 인식의 변화와 발전이 담겨있다.

유엔에서 장애에 대한 관점은 전후 후생사업의 관점에서 지원과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집중하는 것으로부터 점차 탈시설화와 장애인의 사회통합을 추구하는 사회복지의 관점으로, 장애인의 동등한 권리와 장애인의 참여를 강조하는 인권의 관점으로 옮겨왔다.

인권의 관점으로 옮겨온 후의 내용들을 예로 들면 ‘1975년 장애인 권리선언’은 장애인이 타인과 똑같은 시민·정치적 권리를 가지며, 또한 경제적 권리, 사회보장에 대한 권리, 고용에 대한 권리, 가족과 함께 살 권리, 사회적이고 창조적인 활동에 참여할 권리, 모든 착취와 학대나 모욕적인 행동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를 말하고 있다. 1989년의 유엔가이드라인에서는 “장애인은 정부에 의존하는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의 운명의 주체로 인정돼야 한다. 장애인에 대한 교육은 정규 학교 체제 내에서 이뤄져야 하며, 장애인 교육에는 독립적인 사회화와 독립생활을 준비하기 위한 자조 기술을 포함해야 한다”고 하고, 1993년 비엔나 세계인권대회는 “의도적이건 의도하지 않았던 간에 장애인에 대한 그 어떠한 차별도 본질적으로 인권침해”라고 한다. 이런 생각들에 기반하여 ‘장애인의 기회의 평등에 관한 표준 규범’은 국가들의 정책수립과 취해야 할 행동의 지침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기준보다도 중요한 것은 장애인 당사자의 다음과 같은 생각을 지지하고 함께 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우리는 장애를 가진 모든 사람이 함께 일하고 함께 전진하길 원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독립입니다. 우리의 철학은 동등한 생활을 누리고, 동등한 기회와 참여를 생활의 모든 측면에서 다른 사람들처럼 누리는 겁니다. 우리 스스로의 선택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더 이상 수동적인 참여자나 서비스를 받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길 바랍니다. 우리는 능동적인 조직가여야 합니다”(홍콩 재활 동맹) [류은숙] <2006년 08월 29일 인권오름 제19호>

‘장애인의 기회의 평등에 관한 표준 규범’

도입

배경과 현재의 요구

세계 모든 곳, 모든 사회의 모든 수준에는 장애인들이 있다. 세상에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수는 많으며 늘어나고 있다.

장애의 원인과 결과는 세계 곳곳마다 다르다. 이 차이는 다양한 사회경제적 환경과 국가가 자국 시민의 복지를 위해 제공하는 것의 차이의 결과이다.

현재의 장애 정책은 지난 200여 년 간의 발전의 결과이다. 그것은 여러 방식으로 다양한 시대의 일반적 생활 조건과 사회경제 정책을 반영한다. 그러나 장애 분야에 있어서는 장애인의 생활조건에 영향을 미친 많은 특수한 조건들이 또한 존재한다. 무지, 방임, 미신과 공포는 장애의 역사 내내 장애인을 고립시키고 장애인의 발전을 지체시킨 사회적 요인들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장애 정책은 시설에서의 기초적인 보호로부터 장애 아동에 대한 교육과 성인기에 장애인이 된 사람들의 재활로 발전해왔다. 교육과 재활을 통해, 장애인은 장애정책의 진전 속에서 보다 능동적인 추진세력이 됐다. 장애인과 그 가족 및 옹호자들의 조직이 결성됐고, 이 조직들은 장애인의 더 나은 상황을 옹호했다. 2차 대전 이후 통합과 정상화(normalization)의 개념이 도입됐고, 이것은 장애인의 능력에 대한 인식의 향상을 반영했다.

1960년대 말 무렵, 몇 개 국가들의 장애인 조직들은 새로운 장애의 개념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 새로운 개념은 장애를 가진 개인들이 경험하는 제한, 장애인들이 경험하는 환경의 디자인과 구조, 그리고 일반 국민의 태도간의 밀접한 관계를 지적했다. 이와 동시에 개발도상국들의 장애 문제가 더욱더 부각됐다. 이들 국가들 중에서는 장애인구의 비율이 매우 높은 것으로 추정됐고, 그들 대부분이 극빈자였다.

장애인의 기회의 평등에 관한 표준 규범의 목적과 내용

…이 규범이 강제력은 없지만, 상당수 국가들이 국제법의 규범을 존중할 의도를 갖고 적용한다면 국제관습법이 될 수 있다. 이 규범은 국가가 장애인의 기회의 평등을 위해 취해야 할 강력한 도덕적·정치적 의무를 포함한다. …이 규범의 목적은 장애를 가진 소녀, 소년, 여성과 남성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다른 사람들과 동등한 권리와 의무를 행사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다. 세계의 모든 사회들에는 장애인이 권리와 자유를 행사하지 못하도록 하고 사회활동에 완전히 참여하는 것을 어렵게 하는 장애물들이 여전하다. 그런 장애물들을 제거하기 위해 적절한 행동을 취하는 것은 정부들의 책임이다.…여성, 아동, 노인, 빈민, 이주노동자, 이중의 또는 복합 장애를 가진 사람들, 선주민, 인종적 소수자와 같은 집단에 대한 특별한 관심이 요구된다.…

장애 정책의 기본 개념

장애(disability)와 핸디캡(handicap)

‘장애’라는 용어는 세계 어느 나라의 어느 국민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상당수의 다양한 기능적 제약을 요약한다. 사람들은 신체적, 지적 또는 정서적 손상, 건강상태나 정신적 질병으로 인해 장애를 가질 수 있다. 이러한 손상, 건강상태 또는 질병은 영구적이거나 일시적일 수 있다.

‘핸디캡’이란 용어는 타인과 평등한 수준에서 사회생활에 참여할 기회를 상실하거나 제한받는 걸 의미한다. 이것은 장애인과 그 환경간의 부닥침을 설명하는 것이다. 이 용어의 목적은 환경과 사회의 많은 조직화된 활동 속의 결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예를 들어 장애인이 평등한 조건으로 참여하지 못하도록 하는 정보, 통신, 교육이 있다.

…“장애”와 “핸디캡”이란 용어는 흔히 불확실하고 혼란스럽게 사용됐고, 정책 수립과 정치 행위에 대한 지침으로서 빈약했다. 용어는 의학진단과 의료적인 접근을 반영했지, 그 환경을 이루는 사회의 결함과 부족을 무시했다. …현재의 용어는 개인의 요구(예를 들어 재활과 기술 원조)와 사회의 부족(참여를 가로막는 다양한 장애물) 둘 다를 다뤄야할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다.


예방

“예방”의 의미는 신체적, 지적, 심리적 또는 감각적 손상의 발생을 방지(1차 예방) 또는 영구적인 기능 제한이나 장애를 야기하는 손상을 방지(2차 예방)하는 목적을 둔 행동이다. 예방에는 다양한 유형의 행동이 포함되는데, 예를 들어 기초 건강 보호, 산전·산후 보호, 영양교육, 전염성 질병에 대한 면역 캠페인, 풍토병 통제조치, 안전 규제, 다양한 환경에서의 사고 예방을 위한 프로그램이 있고, 여기에는 직업 장애와 직업병을 예방하기 위한 작업장 개조, 환경오염 또는 무력 분쟁에서 발생하는 장애 예방이 포함된다.

재활

“재활”이란 용어는 장애인이 자신의 최적의 신체적·감각적·지적·심리적·사회적 기능 수준에 도달하고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데 목적을 둔 과정을 말한다. 따라서 장애인에게 더 높은 수준의 독립성을 향해 생활을 바꿀 수 있는 도구를 제공하는 것이다. 재활은 기능을 제공하거나 회복하기 위한 조치, 또는 기능의 상실·부재·제약을 보상하기 위한 조치를 포함할 수 있다. 재활과정은 초기의 의료적 치료를 포함하지 않는다. 재활은 보다 기본적이고 일반적인 재활로부터 목적 지향적인 활동(예를 들어 직업재활)까지를 포함하는 넓은 범주의 조치와 활동들이다.

기회의 평등

“기회의 평등”이라는 용어는 다양한 사회 시스템과 환경(서비스, 활동, 정보, 문서 등)을 모든 사람(특히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게 만드는 과정을 의미한다.

평등한 권리의 원칙은 각각의 모든 사람의 요구가 마찬가지로 중요하다는 의미이며, 그러한 요구가 사회계획의 기초가 돼야 하며, 모든 개인이 평등한 참여의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보장하기 위한 방식으로 모든 자원이 사용돼야 한다는 의미이다.

장애인은 사회의 구성원이며 자신들의 지역 사회 속에서 살아갈 권리를 갖는다. 장애인은 보통의(ordinary) 교육·보건·고용·사회서비스의 구조 속에서 장애인이 필요로 하는 지원을 받아야 한다. …

(후략; 이하 규범 1부터 22까지는 다음과 같은 양식으로 되어 있다)
Ⅰ. 평등한 참여를 위한 전제조건
규범 1. 인식향상
이용가능한 프로그램과 서비스에 대한 정보를 장애인이 접근가능한 형식으로 제공
장애인이 동등한 권리와 의무를 가진 시민임을 전달하는 정보의 생산과 유포
대중매체에서 장애인을 긍정적인 방식으로 그리며, 이에 대해 장애인 조직과의 협의
장애인의 완전한 참여와 평등의 원칙을 반영하는 대중교육 프로그램
장애인 당사자와 그 가족, 조직의 참여
모든 활동에서 장애 문제를 포함하는 기업 활동 장려
장애인이 자신의 권리와 잠재성에 대한 인식 수준을 향상시킬 수 있는 프로그램
모든 아동 교육 프로그램, 교사 훈련과정, 전문가 양성과정에 장애 인식 향상을 포함

인권오름 제 19 호 [기사입력] 2006년 08월 29일 13:53:52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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