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오름 제 19 호 [기사입력] 2006년 08월 29일 13:53:52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활동가)
‘정치 1번지’ 또는 ‘복지 1등구’라 자임하는 서울 한복판 종로구청 앞에서 40일이 되도록 중증 장애인들이 길에서 먹고 자며 타전을 보내고 있다. 자신들을 볼모로 사욕을 채운 시설장에 대한 감독의 책임을 물으며 재발방지를 위한 근본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이 타전에 대한 응답은 담당 공무원들의 사과가 아니라 폭력이요, 인권침해에 대한 진상규명과 보상이 아니라 꼬리를 무는 인권침해다. ‘바다 이야기’로 넘실거리는 언론의 관심은 바닥이고, 장애인에 대한 폭력에 대응하는 경찰은 팔짱만 끼고 있다.(이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성람재단 비리척결과 사회복지사업법 전면개정을 위한 공동투쟁단’ 관련 기사를 찾아보길 바란다)
문득 장애인의 인권을 명확히 말해주는 근거를 찾아 들이내밀고 싶었다. 그러나 장애인의 인권을 속 시원하게 두루두루 말해주는 기준을 찾기는 힘들었다. ‘공사 중’이라는 팻말을 발견했다고나 할까. 국내에서도 국외에서도 여전히 제정 ‘노력’ 중이다.
장애인의 권리선언(1975), 국제 장애인의 해(1981), 장애인에 관한 국제 행동 프로그램(1982) 등이 있어왔지만 장애인의 인권을 다룬 국제조약은 현재 없다. 물론 유엔의 수많은 국제인권조약들은 ‘모든 사람’의 권리를 얘기하고 있지만 ‘장애인’은 여러 가지 이유로 그 ‘모든 사람’이 누려야 할 권리에서 배제돼왔다. 이에 ‘간접적’으로 장애인과 관계된 인권 기준 말고 장애 문제에 구체적으로 집중한 법적으로 구속력 있는 국제조약을 만들자는 요구가 거세졌다. 그런 기준이 있어야 국가들이 자기가 해야 할 의무가 무엇인지를 똑똑히 알게 할 수 있고, 장애인에 대해 툭하면 ‘좋은 뜻’으로 ‘배려’하고 ‘보살피고’ ‘헤아린다’는 투로 나오는 사회적 태도와 대응들을 바로 잡을 수 있다는 의미에서다. 그 결과 유엔총회는 2001년 12월 결의안을 통과시켜 장애인권조약을 검토할 특별위원회를 설치하도록 했고, 현재 장애인권조약을 만드는 중이다. 국내에서도 차별금지법 제정 등을 위한 발걸음이 계속되고 있다.
오늘 읽어볼 ‘장애인의 기회의 평등에 관한 표준 규범’은 독립적인 장애인권조약을 만드는 데 밑그림 같은 것이다. 22개항의 규범은 장애인의 삶의 모든 측면을 고려하며 ‘유엔장애인권 10년’ 동안 발전된 인권의 관점을 반영하고 있다.
이 규범에서 먼저 주목해야 할 부분은 ‘장애’에 대한 정의이다. 여기서는 장애인이 신체적 혹은 정신적으로 입은 ‘손상’이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이유로 장애인의 사회참여와 권리이행을 가로막는 사회 환경이 문제라고 한다. 장애인과 그 환경과의 관계의 기능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면 고치고 개선해야 할 부분도 이 관계 속에 있다. 장애인의 참여를 가로막으려고 사회가 만들어낸 장애물을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장애는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문제이지, 한 개인의 속성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장애의 정의에는 오랜 세월에 걸친 인식의 변화와 발전이 담겨있다.
유엔에서 장애에 대한 관점은 전후 후생사업의 관점에서 지원과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집중하는 것으로부터 점차 탈시설화와 장애인의 사회통합을 추구하는 사회복지의 관점으로, 장애인의 동등한 권리와 장애인의 참여를 강조하는 인권의 관점으로 옮겨왔다.
인권의 관점으로 옮겨온 후의 내용들을 예로 들면 ‘1975년 장애인 권리선언’은 장애인이 타인과 똑같은 시민·정치적 권리를 가지며, 또한 경제적 권리, 사회보장에 대한 권리, 고용에 대한 권리, 가족과 함께 살 권리, 사회적이고 창조적인 활동에 참여할 권리, 모든 착취와 학대나 모욕적인 행동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를 말하고 있다. 1989년의 유엔가이드라인에서는 “장애인은 정부에 의존하는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의 운명의 주체로 인정돼야 한다. 장애인에 대한 교육은 정규 학교 체제 내에서 이뤄져야 하며, 장애인 교육에는 독립적인 사회화와 독립생활을 준비하기 위한 자조 기술을 포함해야 한다”고 하고, 1993년 비엔나 세계인권대회는 “의도적이건 의도하지 않았던 간에 장애인에 대한 그 어떠한 차별도 본질적으로 인권침해”라고 한다. 이런 생각들에 기반하여 ‘장애인의 기회의 평등에 관한 표준 규범’은 국가들의 정책수립과 취해야 할 행동의 지침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기준보다도 중요한 것은 장애인 당사자의 다음과 같은 생각을 지지하고 함께 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우리는 장애를 가진 모든 사람이 함께 일하고 함께 전진하길 원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독립입니다. 우리의 철학은 동등한 생활을 누리고, 동등한 기회와 참여를 생활의 모든 측면에서 다른 사람들처럼 누리는 겁니다. 우리 스스로의 선택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더 이상 수동적인 참여자나 서비스를 받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길 바랍니다. 우리는 능동적인 조직가여야 합니다”(홍콩 재활 동맹) [류은숙] <2006년 08월 29일 인권오름 제19호>
‘장애인의 기회의 평등에 관한 표준 규범’ 도입 |
인권오름 제 19 호 [기사입력] 2006년 08월 29일 13:53:52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