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은숙] <2005년 6월 14일 인권하루소식 제2831호> 

 

국제인권기준이라는 것에는 반드시 '반차별' 조항이 있다. 세계인권선언의 반차별 조항(제2조)을 '교육'이라는 측면에서 구체화한 것이 이 협약이고, 이 협약은 유엔 경제·사회·문화적권리규약(제 13조)을 비롯한 주요인권조약에 자리 잡은 교육권 조항의 모태가 됐다.

현대의 인권기준이라는 것이 1·2차 세계 대전의 폭탄비와 피바다 속에서 인류가 얻은 뼈아픈 결과라는 것을 이 협약에서도 마찬가지로 확인할 수 있다.

"전쟁은 인간의 마음 속에서 비롯되는 것이므로 평화수호의 방벽도 인간의 마음 속에서부터 구축돼야 한다"는 유네스코의 창립정신을 따라, 교육을 통한 인류의 연대, 인권과 평화의 실현을 목표한 것이 이 협약이다.

그러나 입으로 '차별 철폐'를 외친다 하여, 정말로 '센' 법률로 제정됐다 하여 차별이 해소되는 게 아니라는 걸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국가는 공적생활에 있어 사람의 재산이나 학력, 기타의 차이에 구애되지 말고, 국민을 모두 주권에 대한 평등한 참가자라고 인정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귀에 닳도록 들어왔다. 그러나 그렇게 함으로써 차별은 줄어들거나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냥 내팽겨 쳐지는 것이 현실이다.

이기심과 자유경쟁이 판치는 시장에서의 사적차별은 제멋대로 운동하며 차별의 곡선을 갈지자로 그린다. 국가의 법률 혹은 국제기준에 따른 차별이 '반차별 조항'에 의해 철폐되어감에 따라, 즉 '공적 평등'이 진행함에 따라 사적차별도 진행되며 제멋대로 활개 칠 수 있게 된다. 이럴 경우 공식적 평등과는 반비례로 각종 이유에 따른 증오와 반감, 차별이 고조되어 가는 것이 현실이다. 예를 들어 인종차별을 법에서 금지했다 하여 사적 사업장에서의 그에 대한 반감이나 차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각종 법률이나 규제 속에 등장하는 반차별 조항이나 원칙은 현실에서의 차별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주는 반비례적 온도계라 할 수 있다. 헌법의 평등 사항은 현실에서의 불평등에 무력하기 짝이 없기 때문에 인권의 주인들은 더욱더 적극적인 국가의 노력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 협약이 보여주는 바도 이런 맥락에 있다. 세계대전이라는 참화 이전에 교육의 의미란 것이 지식을 다음 세대로 전달하고 가르치는 것에 머물렀다면, 전후 교육의 의미란 '권한 강화'이다. 교육에 대한 권리란 수동적으로 특정된 내용을 주입받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권한강화요, 창조의 과정이다. 왜냐? 알 수 있어야, 글을 읽고 쓸 수 있어야 교육의 권리에 다가설 수 있고, 그것 말고도 다른 권리에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육의 불평등을 용납하지 않는 대표적인 원칙은 첫째, 모든 사람이 차별 없이 모든 교육기관과 프로그램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교육은 안전한 물리적 조건하에서 이뤄져야 한다, 셋째, 교육은 모든 사람이 (경제적 및 기타의 이유을 불문하고) 감당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교육의 권리가 중요한 이유는 그 자체가 인권이란 의미 뿐 아니라 그것 없이는 다른 권리를 위해 나서거나 옹호하기 힘든 권리 자체의 모태로서의 의미가 있다. 이런 이유로 이 협약이 말하는 주요한 원칙은 교육에 대한 '접근성'이며, 이는 모든 사람이 어떠한 이유로도 차별받지 않으며, 물리적으로 가능한 속에서 경제적으로 제반 교육환경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협약은 1960년 12월 14일 유네스코(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 UNESCO) 총회에서 채택되었고, 62년 5월 22일에 발효되었다. 2004년 12월 31일 현재 가입국 수는 91개국이고, 남북한 모두 가입하지 않았다.

최근 한나라당 전여옥 대변인의 '학력 콤플렉스'니 '대학 나온 대통령'이라는 발언으로 온 언론매체가 떠들썩했다. 무릇 정치권이란 '립서비스', 즉 말로나마 인권을 옹호해야 하고, 그런 약속에 대해 속으면서도 내심 기대하게 되는게 우리들이다.

전 씨의 발언은 실제적이고 적극적인 노력은커녕 '규정'으로나마 금지돼 있는 반차별의 원칙을 옹호해야 할 립서비스마저도 거부한다는 점에서 심각하지 않을 수 없다. 립서비스조차 안하겠다면 그 노골적인 반감과 차별의 행동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그래서 사립학교법의 개정이나 교육상의 반차별을 시정하기 위한 조치들에 사사건건 제동을 걸고 나오는 것이 '언행일치'인가 보다. 교육의 목적은 "인간존엄성에 대한 존중", 즉 "인권에 대한 존중"이라고 국제기준들은 하나같이 말하고 있다. 전 씨를 비롯한 소위 '학력 콤플렉스'가 없는 분들이 알맹이가 빠진 교육을 받은 것이 틀림없으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교육상의 차별금지 협약

국제연합 교육과학문화기구 총회는 1960년 11월 14일부터 12월 15일까지 파리에서 열린 제 11차 회기에서,
세계인권선언이 비차별의 원칙을 주장하고 또한 모든 인간은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선언하였음을 상기하고,
교육상의 차별이 그 선언에 천명된 권리의 침해임을 고려하고,
헌장의 규정에 따라 국제연합 교육과학문화기구는 인권에 대한 범세계적인 존중과 균등한 교육기회의 조장을 도모하기 위하여 국가간의 협력을 조직할 목적을 갖고 있음을 고려하며,
이에 국제연합 교육과학문화기구는 각국 교육제도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가운데 교육상의 모든 차별을 금지함은 물론 교육에 있어 모든 사람들의 기회와 처우의 균등을 촉진할 의무가 있음을 인정하고,
교육상 차별의 여러 측면에 관한 제안을 이 회기 의제 17.1.4항으로 상정받았고,
제10차 회기에서 이 문제는 회원국에 대한 권고뿐만 아니라 국제협약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결정하여,
1960년 12월 14일 이 협약을 채택한다.

제1조 1. 이 협약의 목적상, "차별"이라 함은 인종, 피부색, 성, 언어, 종교, 정치적 또는 기타의 의견, 민족적 또는 사회적 출신, 경제적 조건 또는 출생에 기하여, 교육상의 처우균등을 무효화시키거나 손상시키는 목적이나 효과를 가진 모든 구별, 배제, 제한 또는 특혜를 포함하며, 특히 다음을 포함한다.
(a) 어떠한 사람 또는 집단에 대하여 일정 유형이나 단계의 교육에 관한 접근을 배제시키는 것.
(b) 어떠한 사람 또는 집단을 저급한 수준의 교육에만 한정시키는 것.
(c) 이 협약 제2조의 규정에 따를 것을 조건으로, 사람들 또는 사람집단에 대하여 별도의 교육 제도를 수립하거나 유지하는 것.
(d) 어떠한 사람 또는 집단에 대하여 인간의 존엄과 양립할 수 없는 조건을 부과하는 것.
2. 이 협약의 목적상, "교육"이라 함은 모든 유형과 단계의 교육을 가리키며, 교육에 대한 접근, 교육의 수준과 질, 그리고 주어진 교육 여건을 포함한다.
제2조 다음과 같은 상황은 그 국가 내에서 허용된다면 협약 제1조의 의미상의 차별에 해당한다고 간주되지 아니한다.
(a) 학생의 성별에 따라 분리된 교육 제도 또는 기관을 설치하거나 유지하는 것. 단 동등한 교육기회를 제공하고, 동일한 기준의 자격을 갖춘 교사진을 제공하며, 같은 수준의 교육시설과 장비, 그리고 같거나 동등한 교육과정을 이수할 기회를 제공하여야 한다.
(b) 종교상 또는 언어상의 이유에 따라 학생의 부모나 후견인의 희망과 합치되는 교육을 제공하는 분리된 교육제도 또는 기관을 설치하거나 유지하는 것. 단 그러한 제도에 참여하거나 그러한 기관에 출석하는 것은 선택에 의하여야 하며, 제공되는 교육이 특히 동일한 단계의 교육을 위하여 담당기관이 작성하거나 승인한 기준에 부합되어야 한다.
(c) 사립 교육기관을 설치하거나 유지하는 것. 단 그 기관의 목적이 특정 집단의 배제를 확실히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공공기관이 제공하는 것에 추가되는 교육시설을 제공하는 것이어야 하며, 그 기관이 위와 같은 목적에 따라 운영되고, 제공되는 교육이 특히 동일한 단계의 교육을 위하여 담당기관이 작성하거나 승인한 기준에 부합되어야 한다.
제3조 이 협약에서 의미하는 차별을 불식시키거나 방지하기 위하여 당사국은 다음을 약속한다.
(a) 교육상의 차별과 관련된 모든 법률조항 및 행정지침을 폐지하고, 관련된 모든 행정관행을 중단한다.
(b) 필요한 경우에는 입법을 통하여 학생이 교육기관에 입학할 때 차별이 없을 것을 보장한다.
(c) 학비, 장학금, 기타 다른 형태의 학생에 대한 지원, 외국유학을 위하여 필요한 허가나 편의제공에 있어서 능력이나 필요에 기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공공기관에 의한 국민들간의 어떠한 다른 처우도 허용하지 아니한다.
(d) 공공당국이 교육기관에 부여하는 지원의 형태에 있어서, 학생들이 특정집단에 속한다는 이유만을 근거로 한 제한이나 특혜를 허용하지 아니한다.
(e) 자국 내 외국인 거주자에게 자국민에게 제공되는 것과 동일한 교육 기회를 제공한다.
제4조 협약 당사국은 상황과 국가 관행에 적합한 방법으로 교육문제에 있어서 동등한 기회와 처우를 증진시킬 수 있는 국가정책을 수립, 발전, 적용할 것을 약속하며, 특히 다음을 약속한다.
(a) 초등교육을 무상, 의무교육으로 한다. 다양한 형태의 중등교육이 모두에게 일반적으로 이용가능하고 접근 가능하도록 한다. 고등교육은 개인 능력에 기하여 모두에게 동등하게 접근 가능하도록 한다. 법률에 규정된 학교출석 의무를 모두가 준수하도록 보장한다.
(b) 같은 단계의 모든 공교육 기관에서의 교육수준이 동등하도록 보장하며, 제공되는 교육의 질과 관련된 여건들 또한 동등하도록 보장한다.
(c) 초등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들과 초등교육과정을 마치지 못한 사람들의 교육, 그리고 개인 능력에 따른 그들의 계속교육을 적절한 방법에 의하여 장려하고 강화한다.
(d) 교직에 대한 훈련을 차별 없이 제공한다.
제5조 1. 이 협약 당사국은 다음에 동의한다.
(a) 교육은 인간성의 원숙한 발달과 인권 및 기본적 자유에 대한 존중의 강화를 지향하여야 한다. 교육은 모든 국가, 인종적 또는 종교적 집단 사이의 이해, 관용 및 친선을 증진시켜야 하며, 평화유지를 위한 국제연합의 활동을 지원하여야 한다.
(b) 부모 또는 해당되는 경우 후견인의 다음과 같은 자유를 존중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첫째, 공공당국이 운영하지 않는 기관을 자녀의 교육기관으로 선택할 자유. 단 이는 담당기관이 작성하거나 승인한 기본적 교육기준에 부합되어야 한다. 둘째, 그 국가 내에서 법률의 적용을 위하여 따르는 절차에 합치되는 방식으로 자신의 신념에 따라 아동의 종교 및 도덕 교육을 확보할 자유. 어떠한 사람이나 사람집단도 자신의 신념과 일치하지 않는 종교교육을 받도록 강요받지 아니한다.
(c) 소수민족의 구성원에게 학교의 운영과 함께 각국의 교육정책에 따라 자신들의 언어를 사용하거나 가르치는 것을 포함하여 스스로의 교육활동을 수행할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단 다음을 조건으로 한다.
(i) 이 권리는 소수민족 구성원이 공동체 전체의 문화와 언어를 이해하고 그 활동에 참여하는 것을 방해하거나, 국가 주권을 침해하는 방식으로 행사되어서는 아니된다.
(ii) 교육의 기준이 담당기관이 작성하거나 승인한 일반적 기준보다 낮아서는 아니된다.
(iii) 그러한 학교에 참가하는 것은 선택에 의하여야 한다.
2. 협약 당사국들은 이 조 제1항에 선언된 원칙의 적용을 보장하기 위하여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을 약속한다.
(6-19조 생략)

 

[류은숙] <2005년 6월 14일 인권하루소식 제2831호> 

작성일자 : 2007. 3. 9

글쓴이 : 류은숙(인권연구소'창' 연구활동가)

 

지금까지 세계인권선언의 탄생 배경과 한계, 재산권 등 논쟁조항에 대해 살펴보았다. 마지막으로 차별조항을 둘러싼 논쟁과 식민지, 여성의 문제와 관련된 선언의 미진한 부분을 살펴보고자 한다.

차별은 안돼

유엔헌장은 인권에 대해 다루면서 ‘인종, 성별, 언어 또는 종교’에 기반한 차별을 금지하고 있다. 이에 비해 세계인권선언 2조는 ‘인종, 피부색, 성별, 언어, 종교, 정치적 및 기타의 견해, 민족적 또는 사회적 출신, 재산, 출생 또는 기타의 지위’라는 긴 목록에 걸쳐 차별을 금지한다. 또한 ‘법 앞에 평등’을 규정한 7조에서는 ‘어떠한 차별도 없이 법의 평등한 보호를 받을 권리’를 확인하고 있다. 나아가 ‘세계인권선언을 위반하는 어떠한 차별’에 대하여도 ‘어떠한 차별의 선동’에 대하여도 반대한다고 밝히고 있다.

너무나 당연하게 보이는 차별금지 조항을 둘러싼 견해의 차이는 무엇이었을까? 한마디로 말하면 ‘그만하면 됐다’와 ‘불충분하다. 더 세게 강조해야 한다’는 입장의 대립이었다. 강경입장은 소련을 필두로 한 공산권 국가들이었고, 소극적 입장은 영·미 쪽 자본주의 국가들이었다. 이 대립은 감정대립으로 치닫기도 했다.

소련 대표는 미국의 흑인차별, 남아공의 소수민인 인도인 차별, 여성에 대한 불평등한 처우를 예로 들며 세계인권선언이 차별 행위를 범죄로 규정하고 국가법에 따라 처벌할 수 있는 것으로 선언하길 바랐다. 이에 대한 반론은 개인의 권리를 주로 위협하는 것이 국가인데 국가 수중에 너무 많은 권력을 주려한다는 문제제기였다. 이에 대해 소련은 차별행위를 금지하려는 조항을 채택하지 않는다면 흑인에게 린치(폭력적인 사적 제재)를 가하는 관행이 계속된다는 걸 의미한다고 응수했다. 바로 이때는 미국에서 흑인의 시민권 지위에 관한 대통령 위원회가 설립되어 흑인에게 가해지는 각종 폭력에 대한 우려를 표현한 직후인지라 미국의 심기를 건드리는 것이 아닐 수 없었다.

미국 대표인 엘리너 루즈벨트는 차별문제에 대한 강조를 회피하려 했다. 모든 ‘구별’이 나쁘거나 해로운 것은 아니라면서 ‘자의적’인 차별만 금지하자고 제안했다. 나아가 ‘차별’이란 단어보다는 ‘구별’이란 단어를 쓸 것을 주장했다.

자의적인 차별만 금지하자는 제안에 대해서 소련은 자의적인 차별만이 문제가 아니라 합법적으로 이뤄지는 일반적인 차별이 문제라며, 소위 자의적인 차별만을 비난하는 것은 법에 근거한 차별을 봐주고 정당화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다른 국가의 대표들도 차별에는 악의적인 구별의 의미가 있기 때문에 ‘자의적’이란 표현이 필요없다면서 소련의 의견을 지지했다. 결국 ‘자의적’ 이라는 표현은 삭제됐다. 또한 ‘차별’이란 단어가 아닌 ‘구별’이란 단어를 쓰는 것은 거기에 담긴 내용이 아예 바뀌는 걸 의미한다는 이유로 ‘차별’이란 단어가 유지됐다.

차별에 대한 언급을 줄이려는 또다른 제안은 2조의 차별금지규정과 7조의 ‘법 앞에 평등’을 합치자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소련은 명료한 차별금지 조항이 따로 있어야 하고 따라서 두개의 조항이 필요하다고 방어에 나섰다. 그런 주장을 하면서 예로 든 것은 미국의 흑인차별에 덧붙여 영국이 식민지들에서 자행하는 엄청난 차별에 관한 것이었다. 또한 미국과 영국이 정치 영역에서 여성의 평등한 권리를 이행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 않다고 비판했다. 영국 의회의 640명 의원 중에 여성은 단지 24명이며, 미국 하원에서는 겨우 9명이라고 비판했다. 또 유럽과 아메리카의 30여 개국에서 여성들이 투표권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런 소련의 비판에 대해 표적 공격을 한다는 비난이 있었고, 그렇게 말하는 소련은 왜 이동의 자유와 특정 집단의 사람들에게 망명의 권리를 제한하는 차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느냐는 맞대응이 있었다.

어찌됐건 차별 조항의 강화를 이끌어낸 데는 소련의 완강함이 공헌을 했다는 평이 일반적이다. 특히 인정되는 것은 식민지에 대한 언급을 완강히 주장하고 관철시켰다는 점이다.

식민지를 어찌할까

2조 차별금지 조항의 후반부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삽입돼 있다.

“나아가 개인이 속한 나라나 영역이 독립국이든 신탁통치 지역이든, 비자치 지역이든 또는 그 밖의 다른 주권상의 제한을 받고 있는 지역이든, 그 나라나 영역의 정치적, 사법적, 국제적 지위를 근거로 차별이 행하여져서는 안된다”

이 부분이 말하는 것은 사람이 어디에 살건 어떤 종류의 정치체제 하에 있건 차별받아선 안된다는 것이다.

연재를 시작할 때 말했지만, 인류의 절반 이상이 식민지에 살고 있던 때 그리고 식민체제에 지각변동이 막 일어나기 시작한 때에 선언은 탄생했다. 선언의 제정 논의는 1946년에 봄에 시작됐는데 1년 반이 지나 1947년 겨울이 될 때까지 식민지 문제는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식민지 종주국들은 문제를 제기할 생각이 전혀 없었고 당연히 행동도 없었다. 제국주의와 반제국주의 진영의 대립이 있을 수밖에 없었고, 후자는 식민지 민족들은 더 이상 옛날 방식으로 살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선언을 식민지에 사는 사람들에게도 적용해야 하는가의 문제로 충돌이 이어졌다. 비자치 지역과 식민지에서 자국 정부에 대한 선거를 치르게 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식민지 종주국들은 서구의 민주주의 절차는 그런 지역의 전통과 문화에 적합하지 않으며 자신들은 그런 문제에 간섭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모든 사람”은 “자국의 통치에 참여할 권리를 갖는다”는 선언의 규정에서 “모든 사람”에 식민지 사람들이 포함되느냐를 놓고 이어진 충돌 끝에 채택된 표현은 직접적인 ‘식민지’라는 표현이 아니라 위에서 본 2조 후반부에 담긴 에두른 표현이었다.

‘식민지’라는 분명한 표현이 아니라 2조의 후반부에 은밀히 감춰진 것에는 식민지 종주국들의 반발 말고도 또다른 이유도 있다. 사실상 식민지가 있어서는 안되는 것인데 식민지인에 대한 차별이 없어야 한다는 별도의 조항을 두는 것은 식민체제를 옹호하는 것과 같은 태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가?  

차별금지가 선언의 일반원칙이란 건 반복적으로 확인됐지만 그것이 식민지 영토들에 적용된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있을 수 있는 오해를 피하기 위해 식민지가 차별받아서는 안된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는 점이 강조됐다. “인류의 양심은 식민지 민족들에 대한 억압이 용인할 수 없는 것임을 알게 됐다”는 인식이 용납한 것은 이 수준이었다. 또한 공산권의 당시 지도자였던 유고의 티토와 소련의 스탈린의 결별로 식민지 관련 조항을 둘러싼 공산권의 연대는 깨졌고 서로의 안을 불충분하다고 지적하게 됐다. 결과적으로 표현을 희석하고 축소하려는 식민종주국의 노력이 성공하는 것을 돕게 됐다.

여성의 권리

유엔경제사회이사회는 유엔헌장의 남녀평등원칙에 근거하여 ‘여성지위에 관한 소위원회(여성소위)’를 구성하고 권고와 보고서를 인권위원회에 제출하도록 했다. 그런데 기구의 중복이 문제가 됐다. 여성소위의 의장은 여성은 타 위원회의 속도에 의존하고 싶지 않다고 했고 경제사회이사회는 이를 용인했다. 그래서 여성소위는 인권위원회를 통하지 않고 경제사회이사회에 직접 보고하게 됐다.

정작 선언을 기초하는 인권위원회가 여성의 권리를 토의하게 되자 의장인 엘리너 루즈벨트는 두 기구 간에 중복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여성의 지위 문제를 다른 용어로 바꿔서 논의할 수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소련 대표는 “국제권리장전을 논의하게 됐을 때 인권위원회는 인권 영역 내에서 모든 문제를 다룰 권한이 있다”며 ‘여성의 지위’ 문제를 논의에서 삭제하는데 반대했다.

인권위원회는 여성소위와 접촉을 유지할 길을 적극적으로 찾지 않았고 두 위원회는 따로 흘러갈 위험에 처하게 됐다. 그 결과 경제사회이사회는 특별 결의안을 채택해서 여성의 권리 문제가 고려될 때는 여성소위를 초대하여 투표 없이 참여하도록 할 것을 인권위원회에 요청하게 됐다. 인권위원회는 이에 따랐다.

선언의 대부분의 초안 문구는 “모든 사람”(all men)으로 시작됐다. 이에 대해 여성소위는 역사적으로 “모든”이란 말이 여성을 포함한 것은 아니었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에 따르면 ‘프랑스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은 엄숙하게 자유를 규정했지만 여성의 권리를 전혀 언급하지 않았고 여성을 포함하지도 않았으며, 세상은 그렇게 흘러왔다. 따라서 선언에서 남성을 지칭하는 단어가 사용될 때는 차별 없이 여성에게 적용되는 것으로 간주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선언 대부분의 조항은 그 시작이 “모든 사람”(all men)으로 시작되고 여기서의 사람(men)은 남성을 지칭해왔기에 많은 대표자들이 불만스러워했다. 역사적인 남성의 여성에 대한 지배를 반영한다고 하면서 보다 분명하게 모든 사람을 포함하는 표현으로 바꿀 것을 희망했다. 호주 대표는 이 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고 했다. 남성인류(mankind)와 여성인류(womankind)가 아닌 인류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엘리너 루즈벨트는 관습적으로 인류(mankind)는 남성과 여성을 차별 없이 의미하는 것 아니냐고 무마하려 했다.

여성소위는 남성의 뜻이 다분한 ‘men’이 아닌 성차별적 요소를 배제한 ‘human beings’라는 표현을 ‘모든 사람’에 대한 영어 표현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영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번역하기 곤란하다든가 이미 여성을 포함하는 것으로 의미를 갖게 된 단어를 굳이 바꿀 필요가 있느냐는 태도에 채택되지 않았다. “인류가족의 모든 구성원”, “모든 인민, 남성과 여성” 등의 제안 등이 오간 끝에 “모든 사람”(all human beings)이 채택됐다. 1조 이외의 모든 조항에서는 “모든 사람”(everyone)으로 표현된다.

그러나 성차별적 단어가 선언에는 남아있다. 선언을 통틀어 남성을 지칭하는 표현은 1조의 “형제애의 정신으로”(in a spirit of brotherhood)와 23조와 25조의 “(남성 노동자)자신과 가족”(himself and his family)이 있다. 23조와 25조의 문제는 남성의 소득으로 살아가야 하는 가족 구성원으로 여성을 바라보는 것으로 대표적인 성별분업의 성차별적 사고의 예이다. 당시 주요 국가들의 헌법과 심지어 노동조합이 제출한 초고에서도 노동자와 그의 가족은 남성노동자와 그가 부양해야할 ‘그’의 가족으로 표현돼 있었다. 선언은 이들 표현 그대로를 반영했고, 여성소위는 그것을 방관했다. 이러한 간과는 선언을 기초한 당시 사람들의 진정한 태도를 반영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결혼과 무관하게” 평등한 시민권을 누릴 권리 부분은 누락됐다. ‘민법상 결혼은 선택의 자유, 아내의 존엄성, 일부일처, 결혼 해소에 대한 동등한 권리, 동등한 양육권, 자신의 국적을 유지할 권리, 계약을 맺을 권리, 재산을 가질 권리를 포함해야 한다’는 것이 여성소위의 제안이었고 유급출산휴가, 교육에 대한 여성의 평등한 접근 등의 사회적 권고들도 있었다. 선언에서 결혼과 가정에 대한 조항 16조에는 이 중 일부만이 반영돼 있다.

결혼과 관련하여 주로 논쟁이 된 것은 여성의 권리라기보다는 타종교를 가진 사람과의 결혼이나 이혼에 관한 종교적 신념에 관한 것이었다. 타종교와의 결혼을 허용하지 않거나 종교적 이유로 이혼을 허용하지 않는 많은 나라들이 있었다. 해소될 수 없는 이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선언에 찬성표를 던진 배경은 이렇다. 종교와 국가는 분리된다는 원칙에 입각하여 인권 문제가 논의돼야 하고, 이혼이 법적으로 허용되는 국가들에서 관련 입법이 대개 여성에게 불리하다는 점이 지적됐고 그런 여성의 불리함으로부터 여성을 보호하기 위하여 결혼의 성립이나 해소 시에 여/남의 동등한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결론이었다. 이혼을 독자적인 권리로 인정한다는 것이 아니라 차별금지의 원칙에서 접근한 것이 선언기초자들의 의도였다.

16조에서는 “인종, 국적 또는 종교에 따른 어떠한 제한도 받지 않고”란 차별금지 규정이 한 번 더 반복되는데 이에 대해 타 종교와의 결혼을 허용하지 않는 국가들의 반대가 심했지만 이 역시 이혼 문제와 마찬가지의 이유로 묵인됐다. 타종교와의 결혼 금지, 이혼 금지를 종교적 신념으로 가진 이슬람 또는 기독교나 결론적으로 선언에 찬성한 것은 인권문제가 종교적 근거로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했기 때문이었다.

그밖에도 참정권, 노동권 등에서 여성의 권리를 특화하자는 주장은 모두 일반적인 표현으로 수렴됐다.

참정권에 대해 말하자면, 선언이 채택된 1948년 당시 아직도 많은 국가의 헌법들은 모든 사람들의 동등한 참정권을 인정하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여성권리 옹호자들은 정치적 미성숙을 이유로 참정권이 보류된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참정권 앞에 ‘동등한’이란 말을 넣기 원했고, ‘재산, 거주지, 사회적 출신, 종교, 인종, 정치적 신념’ 등에 따른 차별 없이 공무에 취임할 권리를 요구하기도 했지만 ‘보통, 평등, 직접, 정기적, 자유로운, 공정한 비밀’ 선거란 일반적 표현으로 정리됐다. 노동권에 대해서도 남성과 동등한 혜택 속에 일해야 하고 동일 노동에 대한 동일 임금원칙에 대해서도 ‘모든 사람’ 대신에 여성을 특화시킨 표현을 써야 한다는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반대 이유는 두 가지 입장이었다. ‘모든 사람’에 여성이 포함되는 걸 따로 쓸 필요가 없다는 것이 하나이고, 현실이 그렇지 않으니 특화시켜야 한다는 주장에 대한 또다른 반대 의견은 여성을 특화시키는 표현을 반복하는 것은 단지 여성의 지위를 약화시킬 뿐이고, 여성에 대한 차별이 많은 영역에 걸쳐 있는데 특정 영역을 언급하는 것도 불리하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아예 여성에 대한 특수한 언급을 하지 않음으로써 선언의 모든 사람에 여성이 포함된다는 것으로 이해돼야 한다는 의견이 강했다. 결과적으로 선언은 앞서 지적한 부분(1조, 23조, 25조)의 표현을 빼고는 모두 ‘모든 사람’, ‘어떤 누구도’, ‘어떤 경우에도’, ‘모든’ 등의 표현으로 이뤄져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 세계인권선언에는 담지 못한 요소, 고의로 빼먹은 요소, 머뭇거리고 주저한 흔적들이 많다. 또한 이게 옳은지 저게 옳은지 모를 물음들도 많이 남아있다. 그렇다고 해서 ‘선언은 선언일 뿐’이라거나 ‘별 쓸데없다’란 말은 결코 할 수 없다.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쪽은 선언에 담긴 권리들이 아쉽지 않거나 의무를 회피하고 싶은 쪽일 것이다. 아쉽고 누락된 선까지 찾아 그리며 점선의 권리를 실선의 권리로 만들고자 하는 쪽에 선다면 선언을 보는 눈은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글쓴이 : 류은숙(인권연구소'창' 연구활동가)

인권오름 제 419 호 [기사입력] 2014년 12월 12일 0:28:00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나는 한 해의 끝자락에 태어난 겨울 아이다. 생일이 누구에게나 언제나 좋은 기억일 수는 없다. 어릴 적 행상 나간 엄마의 귀가를 기다리며, ‘혹시나’ 하며 저녁을 굶었다. 엄마도 춥고 고달프겠지만 오늘은 내 생일이니 ‘혹시나’ 특별한 걸 사들고 올지 모른다는 기대에서였다. 하지만 엄마는 꽁꽁 언 채로만 돌아왔다. ‘밥 먹었냐’는 말에 실망을 감추려 아무 말 없이 남은 찬밥을 끓였다. 나이 들어선, 내가 엄마에게 ‘밖에서 밥이나 먹자’고 전화를 걸곤 한다. 그럼 엄마는 ‘뭣 하러 추운데 나오라하냐’며 뭉갠다. 실랑이 끝에 ‘알았어, 알았다구. 됐어!’ 볼멘소리로 전화를 끊곤 한다. 며칠 후에야 ‘내가 가만 생각해보니 그 날이 네 생일이었더라’며 전화가 오는 게 연례행사다.

‘세계 인권의 날’은 12월 10일이다. ‘세계인권선언’의 제정일인 이 날을 전 인류가 ‘인권의 날’로 기념한다. 말하자면, 인권의 ‘생일’이다. 인권운동을 하는 나에겐 제 2의 생일 같기도 하다. 하지만 해마다 이 날은 온갖 인권 피해의 설움이 넘치거나 잊히고 외면 받는 날 같다. 66세를 맞는 2014년 인권의 날은 더욱 그랬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 차별이 일상인 장애인, 정리해고 되고 단식이며 고공농성으로 내몰린 노동자 등이 생일 촛불 대신 이 거리 저 거리에서 제 몸을 태우고 있다. 국경 너머에서 들려온 CIA 고문 보고서는 글자만으로도 흉기다. 이스라엘의 살인이나 숱한 난민과 아동의 인권 재난 …, 여기서 다 열거하지 못한 이유로 잊혀질 인간의 고통은 없다. 게다가 기막힌 일이 ‘서울시민인권헌장’을 둘러싸고 벌어졌다. 밥 달라 했더니 주걱으로 뺨 때리는 것도 아니고, 인권헌장 대신 차별 선동과 혐오 폭력이 달려들었다. 헌장의 일반원칙인 차별금지조항에서 ‘성적지향 및 성별정체성’을 언급했다는 이유로 혐오세력이 폭력의 난장을 벌였다. 그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할 서울시는 도리어 헌장 제정과 선포를 포기했고 박원순 서울시장은 ‘동성애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말로 상처에 소금까지 뿌렸다.

내 생일 같은 올해 ‘인권의 날’은 지독하고도 길었다. 오전에는 세월호 참사와 관련하여 ‘ 존엄과 안전에 관한 4.16 인권선언’ 추진대회가 있었다. 제안에 나선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연신 ‘미안하다’고 했다. ‘너무 늦게 인권에 관심을 가져 죄송하다’거나 ‘권리를 권리로서 행사하지 않은 우리의 잘못’이라고 했다. 가해자와 책임져야 할 세력은 꼬리를 자르고 뒤꽁무니 빼는데, 피해자가 ‘미안하다’고 하니 뭔가 뒤집혀도 한참 뒤집힌 일이었다. 피해자들이 먼저 나서서 ‘함께 인간의 존엄을 지키자’고 하니 민망함과 죄스러움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오후에는 서울시청의 무지개 농성장에 갔다. 시청에는 ‘서울시민 인권헌장 제정 시민위원회’에 참여했던 시민들이 자기 주머니를 털어 인쇄한 ‘서울시민 인권헌장’과 헌장 제정 축하 무지개떡이 있었다. 인권의 날에 예정된 대로 시민들은 스스로 헌장을 선포하고 축하했던 것이다. 버티던 시장은 결국 농성단과의 면담을 받아들였다. 잘못에 대해 사과하긴 했지만, 뜨뜻미지근하고 두루뭉술했다.

겨울비까지 내리는 심난한 생일이었지만 주인공인 ‘세계인권선언’을 아니 볼 수 없다. ‘세계인권선언’의 제 1조는 모든 인권의 초석으로서 인간 존엄성에 대한 존중을, 제 2조는 모든 인권을 꿰는 일반원칙으로 차별금지를 규정하고 있다. ‘존엄성에 대한 존중’이란 가치를 걷어차면 언제든지 세월호 참사 같은 일이 벌어질 수 있고, ‘차별은 안 된다’는 기본원칙을 무시하면 굴비 엮듯 모든 인권이 침해된다는 말이다.

‘세계인권선언’에 담긴 인권에 대한 신념과 실천의 약속을 더 단단히 만든 것이 ‘시민‧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과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이란 양대 국제인권규약이다. 이 셋을 묶어 ‘국제인권장전’이라 특별히 부른다. 이 장전을 주춧돌 삼아 더 촘촘하고 단단한 국제인권조약들이 만들어졌고 앞으로도 탄생할 것이다. 양대 규약을 담당하는 위원회의 역할 중 하나는 ‘일반논평’을 만드는 것이다. ‘일반논평’은 규약에 담긴 권리들을 구체적으로 풀이하는 주석이다.

양대 규약에는 공통으로 제 2조에 차별금지 조항이 들어 있고, 각 규약의 해당 위원회는 차별금지 조항의 의미를 해설하는 일반논평을 내놓았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차별금지사유의 변화와 추가이다. 예를 들어, 세계인권선언에 열거된 차별금지사유에는 ‘장애’가 빠져있다. 전후 당시의 장애에 대한 인식수준은 인권은커녕 복지도 아닌 후생사업과 원조의 수준이었다. 오늘날 대표적인 차별금지사유에 당연히 ‘장애’가 명시된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고 인정하지 않는다고 해서 문제가 아닌 게 아닌 것이다.

선언 제정 당시에 ‘차별금지사유를 상세히 담은 목록이 필요하다’는 주장과 ‘법 앞에 평등이란 조항으로 충분하다’는 주장이 맞섰다. 결론은 차별금지사유를 명시한 포괄적인 차별금지조항의 채택이었다. ‘차별은 평화와 안전을 위협하는 국제적 정치 행위로 간주돼야 한다’, ‘차별행위를 구체적으로 금지하는 조항이 채택되지 않으면 미국에서의 흑인 린치 등의 관행이 계속될 것이다’, ‘차별행위는 범죄를 구성하며 국가법으로 처벌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등의 의견이 더 힘을 얻었다.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으면 차별금지사유를 제멋대로 해석하고 정당화할 위험성이 있기 때문에 열거하는 방식을 택한 것이고, 미처 보지 못하거나 부각되지 못한 문제를 생각해서 “기타의 신분 등에 의한”이란 표현을 덧붙였다. ‘등’이란 표현에는 여기에 열거되지 않았더라도 차별금지기준으로 고려될 수 있는 것들이 있다는 뜻이지, 가시적이고 심각한 차별의 원인을 외면하는데 써먹으라는 말은 결코 아니다. ‘차별에 반대하지만 동성애는 안된다’는 말은 문을 걸어 잠그고 나갈 테면 나가보란 말과 같고, ‘동성애를 열거하지 않고 그냥 차별금지면 다 된 거 아니냐’는 말은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차별과 혐오에 고통 받는 이들에게 ‘눈에 띄지도 말고 문제 삼지도 말라’고 협박하는 것과 같다.

양대 규약의 차별금지조항에 대한 일반논평을 살펴보자. 1989년의 ‘시민‧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위원회’의 일반논평에 열거된 차별금지사유와 달리 2009년의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위원회’ 일반논평에선 “기타의 신분”에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이 포함돼 있다. 해당 위원회는 “차별의 성격은 맥락에 따라 변화하며 시간에 따라 진화한다. … 일반적으로 추가적인 차별금지사유로 인정되는 것은 주변화로 계속 고통받아온 취약한 사회적 집단의 경험을 반영할 때이다.”라고 설명한다. 이 논평에서는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 말고도 ‘장애, 나이, 국적, 혼인과 가족 상태, 건강 상태, 거주 장소, 경제적 및 사회적 상황’을 “기타의 신분 등”에 추가될 차별금지사유로 설명하고 있다. 하나같이 오늘날 한국사회가 직면한 차별 문제와 뗄 수 없는 것들이다.

약간 벗어난 얘기지만, 세계적으로 나이에 대한 차별, 특히 노인의 인권에 특화된 국제인권조약을 만들려는 움직임이 있다. 한국 사회의 노인들에게선 노인 인권에 관한 것과는 결이 다른 움직임이 주목되는 일이 잦다. 서울시민 인권헌장을 둘러싼 혐오 폭력에서 상대적으로 많은 노인들을 보았다. 무지개 농성장에는 상대적으로 많은 젊은이들이 있다. 노인인권의 존중과 보호와 실현을 위해 함께 모이는 광경을 상상해본다. 함께 촛불도 켜고 떡도 썰면서 말이다. 그게 인권의 힘이다.

서울시청에서의 무지개 농성이 잠시 후 정리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농성 정리는 또다른 실천의 시작일 것이다.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세력은 단지 성소수자만을 공격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권의 가치를 바닥에 팽개치며 다른 사회적 약자를 공격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주민, 장애인, 빈곤층 …. 우리는 이렇게 확대되는 인간 존엄성에 대한 모욕을 방치할 수 없다.”는 우리의 싸움은 계속될 것이다. 우리는 우리에 모두를 초대한다. 인권의 초대에서 주인과 손님은 따로 없다. 인권의 날이 생일잔치다운 잔치를 할 날을 함께 만들어보자.

시민‧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위원회 일반논평 18(1989)

1. 차별금지는 법 앞에서의 평등 및 어떠한 차별도 없는 법의 평등한 보호와 더불어 인권 보호에 관한 기본적이고 일반적인 원칙을 구성한다. 따라서 이 규약의 … 당사국은 자국의 영토와 관할권 하에 있는 모든 개인에 대하여 … 어떠한 종류의 차별도 없이 이 규약에서 인정되는 권리들을 존중하고 보장할 의무를 가진다. …

2. … 더 나아가, 제 20조 2항은 당사국에게 차별에 대한 선동을 구성하는 민족적‧인종적 또는 종교적 혐오의 고취를 법률로서 금지할 의무를 부과한다.

10. 또한 본 위원회는 당사국들이 평등의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 동 규약에 의해 금지된 차별을 야기하거나 영속시키는 상황을 줄이거나 철폐하기 위해 때로는 적극적인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음을 지적하고자 한다. 예를 들어 일부 특정 인구의 일반적인 상황이 인권의 향유를 침해하거나 방해하는 경우, 당사국은 그런 상황을 시정하기 위한 구체적인 조치를 취해야만 한다. 그러한 조치로는, 당해 특정 인구에 대해 구체적인 사안에 있어 그 외의 나머지 인구와 비교하여 특정 기간 동안 우대조치를 부여하는 것을 들 수 있다. 실질적인 차별을 바로잡기 위해 그런 조치가 필요한 경우, 이는 동 규약에서 보장하는 정당한 차이의 인정에 해당한다.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위원회 일반논평 20(2009)

1. 차별로 인해 매우 많은 세계 인구가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아래 사회권)를 실현하기 어렵다. 경제성장은, 그 자체로는 지속가능한 발전으로 이어지지 않았고, 개인과 집단들은 사회경제적 불평등에 계속 직면하고 있으며, 이것은 때론 견고한 역사적 및 현대적 형태의 차별로 인한 것이다.

7. 본 규약에서 차별금지는 즉각적인 효력이 있고 규약 전체를 관통하는 의무이다. 제2조 2항은 규약에 담긴 사회권의 행사에서 차별금지를 보장할 것을 당사국에 요구하며, 이 조항은 이들 권리와 연관해서만 적용될 수 있다. 차별은 직‧간접적으로 차별금지 사유에 근거하여 이뤄지며, 규약 상 권리에 대한 평등한 인정‧향유‧행사를 무효화하거나 훼손하는 의도 또는 효과가 있는, 모든 종류의 구별‧배제‧제한‧선호 및 기타 차등적 처우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또한 차별은 차별 선동과 괴롭힘을 포함한다.

8. 당사국은 규약의 권리들이 어떠한 종류의 차별도 없이 행사될 수 있도록 “보장”하기 위해 차별을 형식적으로나 실질적으로나 철폐해야만 한다.

(a) 형식적 차별: 형식적 차별 철폐를 위해서는 국가의 헌법, 법률, 정책 문서가 차별금지사유에 근거한 차별을 하지 않도록 보장해야 한다. 예를 들어, 혼인 상태를 이유로 여성에 대한 동등한 사회보장급여를 법에서 거부해서는 안된다.

(b) 실질적 차별: 단순히 형식적 차별만을 다뤄서는, 제 2조 2항이 구상하고 정의한 실질적 평등을 보장할 수 없다. 규약 상 권리의 효과적 향유 여부는 어떤 개인이 차별금지사유에 해당하는 집단의 구성원인지에 따라 흔히 영향 받는다. 실제로 차별을 철폐하려면, 유사한 상황의 개인들에 대한 형식적 처우를 단순 비교할 것이 아니라 역사적 또는 지속적 편견으로 고통 받는 개인들의 집단에 충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따라서 당사국은 실질적 또는 사실상의 차별을 발생‧존속시키는 조건과 태도를 예방하고 줄이고 제거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즉각 취해야만 한다. 예를 들어 적절한 주거, 물, 위생에 대한 모든 사람의 평등한 접근을 보장하는 것은 여성과 여아, 비공식 주거지와 농촌 지역 거주자에 대한 차별 극복을 도울 수 있다.

구조적 차별
12. 어떤 집단에 대한 차별은 만연하고 끈질기며 사회적 행동과 조직에 뿌리 깊으나, 흔히 문제시되지 않거나 간접적인 차별과 결부됐다는 것을 위원회는 통상적으로 확인했다. 이런 구조적 차별은 공적 및 사적 영역에서 법적 규범, 정책, 관행이나 지배적인 문화적 태도가 한 집단에는 상대적 불이익을 다른 집단에는 특권을 야기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차별금지사유
27. 차별의 성격은 맥락에 따라 변화하며 시간에 따라 진화한다. 따라서 합리적이고 객관적으로 정당화할 수 없으며 제2조 2항에서 명백하게 인정된 사유에 비견할만한 기타 형태의 차등적 대우들을 포착하기 위해서는 “기타의 신분”이라는 차별금지사유에 대한 유연한 접근이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추가적인 차별금지사유로 인정되는 것은 주변화로 계속 고통받아온 취약한 사회적 집단의 경험을 반영할 때이다. …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
32. 제2조 2항에서 인정된 “기타의 신분”은 성적 지향을 포함한다. 당사국은 예를 들어 유족연금에 대한 권리 등 규약 상 권리 실현에 개인의 성적 지향이 장벽이 되지 않도록 보장해야만 한다. 또한 성별 정체성도 차별 금지 사유의 하나로 인정된다. 예를 들어 트랜스젠더, 트센스섹슈얼, 인터섹스는 학교와 직장에서의 괴롭힘 등 심각한 인권 침해를 흔히 겪는다.

경제적‧사회적 상황
35. 개인과 집단은 특정한 경제적 또는 사회적 집단이나 계층에 속한다는 이유로 자의적으로 처우돼선 안된다. 가난하거나 홈리스일 때, 개인의 사회경제적 상황은 광범위한 차별, 낙인, 부정적 고정관념으로 귀결될 수 있고, 이것은 공공장소에 대한 접근의 거부 또는 불평등한 접근, 타인과 동등한 질의 교육과 건강 보호에 대한 접근의 거부 또는 불평등한 접근을 초래할 수 있다.

국내적 이행
36. 차별적 행위를 삼가는 것 뿐 아니라, 당사국은 규약 상 권리 행사에서의 차별철폐를 보장하기 위하여 구체적이고 의도적이며 목표가 분명한 조치들을 취해야만 한다. 하나 또는 그 이상의 차별금지사유로 구별될 수 있는 개인과 집단은 그런 조치를 선택하는 의사결정과정에 참여할 권리를 보장받아야만 한다. 당사국은 선택된 조치들이 실제로 효과적인지를 정기적으로 평가해야만 한다.

입법
37. 제2조 2항을 준수하는 것에서, 차별을 다루는 법률의 채택은 필수불가결하다. 따라서 사회권 분야에서 차별을 금지하는 구체적 입법 조치를 취할 것을 당사국에 독려한다. 그런 법률은 형식적 및 실질적 차별 철폐를 목적으로 하며, 공사 부문의 행위자들에게 의무를 부여하며, 앞서 논의한 차별금지 사유를 포괄하는 것이어야 한다. 기타 법률들도 형식적으로나 실질적으로나 규약 상 권리의 행사와 향유와 관련하여 차별하거나 차별을 초래하지 않도록, 필요하다면, 정기적으로 재고돼야 하며 개정돼야 한다.

구조적 차별의 철폐
39. 당사국은 실재하는 구조적 차별과 분리를 철폐하기 위한 적극적인 조치를 취해야만 한다. 그런 차별을 다루기 위해서는, 대개, 임시적인 특별 조치를 포함하여 다양한 범위의 법률, 정책, 프로그램을 포함하는 포괄적인 접근이 요구된다. 당사국은 구조적 차별을 겪는 개인과 집단과 관련된 태도와 행위를 변화시키도록 공적 및 사적 행위자를 독려하는 인센티브 사용을 고려하거나 준수하지 않을 경우 그들을 처벌해야만 한다. 구조적 차별에 대한 인식 향상을 위한 공적 지도력과 프로그램, 차별 선동에 대한 엄격한 조치의 채택은 종종 필요하다. 구조적 차별을 철폐하기 위해 전통적으로 방임된 집단에 더 많은 자원을 쏟는 것이 자주 요구된다. 특정 집단에 대한 끈질긴 혐오를 고려할 때, 공직자와 기타 실무자들이 법과 정책을 이행하도록 보장하는 특별한 관심이 요구된다.

인권오름 제 419 호 [기사입력] 2014년 12월 12일 0:28:00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작성일자 : 2008. 4. 24

글쓴이 : 류은숙(인권연구소'창' 연구활동가)

 

세계인권선언 제2조

모든 사람은 인종, 피부색, 성, 언어, 종교, 정치적 또는 그 밖의 견해, 민족적 또는 사회적 출신, 재산, 출생, 기타의 지위 등에 따른 어떠한 종류의 구별도 없이, 이 선언에 제시된 모든 권리와 자유를 누릴 자격이 있다.
나아가 개인이 속한 나라나 영역이 독립국이든 신탁통치지역이든, 비자치지역이든 또는 그 밖의 다른 주권상의 제한을 받고 있는 지역이든, 그 나라나 영역의 정치적, 사법적, 국제적 지위를 근거로 차별이 행하여져서는 안 된다.

인권의 사랑니, ‘차별’

‘차별’은 인권을 존중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싫어하는 말이고 바꾸고 싶은 현실이다. 그런데 차별을 잘 들여다보면 오히려 ‘인권 때문에 차별이 있는 게 아닌가’라는 엉뚱한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인권은 ‘모든 사람’의 자유와 평등을 말한다. ‘모든 사람’이기에 그 어떤 이유로든 어떤 사람을 제외하거나 배제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세상사를 내 뜻대로 하고 싶어 하는 지배자 쪽에서 보면,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끼리 똘똘 뭉쳐서 항의하거나 저항하는 게 싫고 두렵다. 이걸 어떻게 갈라놓을까 궁리해보니 서로를 싫어하고 깔보게 만드는 것만큼 손쉬운 방법이 없다. ‘모든’ 사람의 ‘자유’와 ‘평등’을 보장하는 체제라고 큰소리쳤지만 누군가를 억압하고 착취할 필요성이 있다. 그럼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럴듯한 구실을 만들어서 사람들로 하여금 어떤 사람 또는 그 사람이 속한 집단을 무서워하고 싫어하고 꺼림직 하게 만들면 된다. 그래서 아무 죄도 없는 ‘차이’들 중에 특정한 것을 골라내서 어떤 것은 특별대우하고 어떤 것은 찬밥취급을 하는 것이 ‘차별’이다.

‘차별’은 움직이는 것

차별의 심각성을 잘 알기에 인권기준 또는 인권규범이라 하는 건 죄다 차별을 금지하는 조항을 앞머리에 달고 있다. 세계인권선언 제2조는 그 원조 격에 해당하는 것이다.

선언 제2조에서 열거된 차별 금지 목록을 보면 오늘날 중요하게 취급되는 것 중에 빠진 것이 많다. 대표적으로 ‘장애’가 빠져있다. 당시 장애를 인권문제로 바라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후 수많은 장애인들에 대한 후생사업과 원조에 관심이 있었을 뿐이고, 그 후에는 사회복지의 관점에서 접근이 시도되다가 70년대에 가서야 인권의 접근(예를 들어, 75년 장애인권리선언)이 시작된다. ‘장애’처럼 선언 제정 당시에는 인권문제로 보지 않은 영역이 많았던 것이다.

잠시 한국의 국가인권위법을 들여다보자. 제정 시 진정대상이 되는 차별사유를 ‘성별, 종교, 장애, 나이, 사회적 신분, 출신지역, 출신국가, 출신민족, 용모 등 신체조건, 혼인여부, 임신 또는 출산, 가족상황, 인종, 피부색,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형의 효력이 실효된 전과, 성적 지향, 병력(病歷)’ 18가지로 명시했다. 이후 개정을 통해 ‘학력’을 추가하고 열거된 목록에 ‘등’을 부가했다. 여기에 열거되지 않았더라도 차별금지기준으로 고려될 수 있는 것들이 있다는 뜻이다. 국가인권위법은 국제인권기준과 국내인권운동의 요구를 수용한 것으로 세계인권선언 이후 변화·발전된 차별에 대한 인식을 볼 수 있다.

차별 조항이 필요한가

선언을 만들면서 차별 조항을 적극 제기하고 지켜낸 것은 당시 소련을 필두로 한 사회주의권 국가였다. 미소냉전 속에서 소련은 미국의 인종주의와 서구열강의 식민주의를 비난했다. 반면 서구측은 수용소와 정치적 의견에 대한 탄압 등을 들며 소련을 공격했다.

이런 배경 속에서 차별 조항에 대해 크게 두 개 입장이 대립했다. 하나는 포괄적인 차별을 다룬 일반조항이 필요하며, 차별금지사유를 상세히 담은 목록이 필요하다는 주장이었다. 다른 한편은 선언의 다른 조항에서 ‘법 앞에 평등’을 다루고 있으니 그것으로 충분하며, 유엔헌장에 열거된 차별금지사유(인종, 성, 언어, 종교)말고 다른 것을 고려할 필요도 없다는 입장이었다.

차별 조항을 원하는 쪽에서는 ‘차별은 평화와 안전을 위협하는 국제적 정치 행위로 간주돼야 한다.’, ‘유엔의 임무 중 하나는 차별철폐여야 한다.’, ‘차별행위를 금지하는 조항이 채택되지 않는다면 미국에서의 흑인 린치 등의 관행이 계속될 것이다.’, ‘차별행위는 범죄를 구성하며 국가법으로 처벌할 수 있는 것이라고 선언이 규정해야 한다.’ 등 강도 높은 의견들을 이어갔다. 그 결과 ‘법 앞의 평등’(선언 제7조) 조항과 별도로 차별을 금지하는 일반원칙인 제2조가 만들어지게 됐다.

구별 또는 차별? 자의적 차별?

‘구별’이냐 ‘차별’이냐는 단어를 둘러싼 논쟁이 있었다. ‘구별’과 ‘차별’을 같은 내용의 단어로 본 입장에서는 모든 구별이나 차별이 해롭거나 부당한 것은 아니며 유용하고 칭찬할 만한 것도 있으니, 그중에서 ‘자의적’인 것만을 금지하자고 했다.

반면 ‘구별’과 ‘차별’은 그 내용이 다른 단어이기에 ‘차별’이란 단어를 반드시 써야 한다는 입장은 이런 논리였다. ‘차별’이라는 단어에는 이미 경멸적인 의미가 담겨있다. 인간을 해롭게 하는 차별은 특별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지원하기 위한 구별과는 아주 다르다. ‘차별’을 ‘구별’로 대체하는 것은 내용 자체를 바꾸는 것이기에 받아들일 수 없다.

또한 ‘자의적’이란 단어를 쓰게 되면 소위 ‘비자의적’인 차별, 예를 들어 법에 근거한 차별(미국의 흑인법처럼)을 용서하고 정당화할 위험성이 있다. 차별이란 단어가 해로운 구별을 의미하고 있기에 ‘자의적’이란 수식이 없어도 된다.

토론의 결과 ‘차별’이란 단어를 쓰고 ‘자의적’은 빼기로 했다.

식민지 인민의 문제

원래는 식민지 인민의 문제를 별도의 차별조항으로 다루자는 제안으로 논의가 시작됐으나 제안자인 유고와 그를 지지하던 사회주의권이 티토와 스탈린의 관계 청산으로 인해 삐걱거리자 막판까지 이 제안을 밀어붙이지는 못했다. 소련은 식민지 모국이 관할 하의 비자치지역에 대해 가지는 책임을 언급한 유엔 헌장을 인용하며, 비자치지역과 식민지에서의 선거를 압박했다. 식민 권력들은 당연히 식민지 문제를 제기하길 원치 않았고, 양 진영 간에 설전이 이어졌다.

소련도 식민열강 쪽도 아닌 대표들이 식민지 인민에 대한 분명한 언급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들은 “인류의 양심은 식민지 인민들에 대한 억압이 관용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데까지 진보했다.”라며, 일반적인 차별을 반대하는 표현으로 충분하다는 의견에 대해서 “하지만 그것이 언제나 식민지 영토에 적용됐던 건 아니었다.”라고 대응했다. 또한 “전문에 담긴 막연한 한 두 줄로는 충분치 않다. 이 조항에 반대하는 대표들은 식민지체제 아래 사는 사람들의 분노와 절망의 감정을 전혀 알지 못한다.”라고 지적했다.

결과적으로 식민지를 특화한 별도의 조항은 채택되지 않았다. 또한 너무 센 언어를 사용하지 말고 좀 막연하고 일반적인 용어가 좋다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그래서 식민지를 간접적으로 언급하는 문구가 제2조 두 번째 문단에 첨부된다.

인종·피부색·민족적 출신·언어

선언에 언급된 ‘인종, 피부색, 민족적 출신, 언어’는 일종의 세트이다. 즉 인종적·문화적·언어적 소수집단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인종과 피부색에 대한 차별 금지는 이미 결론이 내려진 문제였다. 인종은 유엔헌장의 몇 개 안되는 차별목록 중에 맨 앞에 있다. 선언의 대부분 조항이 히틀러의 인종주의 정책에 대한 직접대응이었고 연합국이 전후에 한 첫 번째 일은 히틀러의 인종주의적 법적 구조를 해체하는 것이었다. 45년 포츠담 회담에서 천명된 네 번째 정치원칙은 “모든 나치의 법률-히틀러 체제에 기초하거나 인종, 신념 또는 정치적 의견에 기반을 둔 차별은 철폐돼야 한다.”라는 것이었다. 추축국 간의 평화 조약 또한 모든 인종주의적 법률과 차별관행의 철폐에 대한 규정을 포함했다. 따라서 선언이 ‘인종’과 ‘피부색’에 따른 차별금지를 하지 않는 게 이상한 것이었다.

인종만이 아니라 ‘피부색’이 들어간 이유는 인종에 대한 어떤 과학적인 정의도 없기에 인종이란 단어를 더욱 자세히 하기 위함이었다. 피부색은 가장 명백하고 가장 흔히 사용되는 신체적 특성의 하나로 인종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며, ‘언어’, ‘민족적 출신’도 그런 이유에서 포함됐다.

제2조의 ‘민족적 출신’은 한 정부 아래 다양한 민족 출신의 사람들이 함께 사는 국가들이 있다는 이해 속에서 인종적·민족적·문화적 소수집단을 보호하려는 취지로 포함됐다. 유엔 인권위원회는 여기서 말하는 ‘민족적 출신’이 한 국가의 시민으로서의 의미가 아니라 ‘민족적 특질’이라는 의미로 해석돼야 한다는 주석을 붙였다.

소수집단의 ‘언어에 대한 권리’와 긴밀한 문제는 교육권(소수자 집단이 자신들의 학교를 설립하고 자신들이 선택한 언어로 교육받을 권리)과 종교와 법정에서의 언어권 등이다.

정치적 또는 기타의 의견

‘정치적 의견’을 언급하는 것은 당시로서는 다소 의외였다. 당시 대부분의 헌법은 ‘정치적 신념’을 헌법 조항의 비차별 조항에 열거하지 않고 있었다.

‘정치적’을 넣자는 의견은 이렇다. 정치는 인간의 근본적인 활동 중 하나이다. 차별과 처형의 위험 없이 정치적 신념을 자유롭게 보유할 수 있다고 말하는 데는 어떤 해도 없다. 또한 정치적 소수자가 중요해지고 있다. 그것은 더 이상 왕이나 귀족집단에 의한 억압의 문제가 아니다. 모든 강력한 국가들은 사상의 반대 집단을 억누르고 있다. 종교적 신념에 대한 조항에서 보장되는 보호가 정치적 의견으로 확대돼야 한다. 사라져가는 경향이 있는 전통적 종교적 소수자보다 정치적 소수자가 더욱 미래에 보호를 필요로 할 것이다. ‘정치적’을 빼고 그냥 ‘의견’으로 하자는 입장에 대한 반론은 ‘명백하게 보장되지 않는 자유는 언제나 부정될 위험성이 있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사회주의권의 반대의견이 셌다. ‘인종적 또는 민족적 증오를 옹호하거나 그로부터 추동된 행위를 옹호하는 정치적 의견은 관용될 수 없다. 나치와 파시스트 집단도 정치적 의견의 자유 같은 목록에 기대서 공공생활에 동등하게 참여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항목을 제거하는 것이 안전하다’는 이유였다.

결론은 “정치적 또는 그 밖의 견해”로 내려졌고, 이는 정치적 의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동시에 여타의 의견에도 적용될 수 있다.

재산, 출생, 기타의 지위

‘재산 지위’에 대해서는 논평이 없었다. ‘기타의 지위’에 다 포함되니 재산을 빼자는 의견(미국, 영국 대표) 정도가 있었다. ‘빈민이나 부자나 똑같은 권리를 갖는다는 게 중요하니까 넣자’고 결론이 났다.

‘출생’을 넣은 이유는 대부분의 나라에서 봉건적 특권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일부 잔여물이 있어서 언급하자는 것이었다. 물려받은 법적, 사회적, 경제적 차이에 기초한 차별금지를 말한다. 즉 상속받은 특권은 없어야 한다는 취지다.

여성의 권리

원래 선언의 대부분의 기초문서는 “모든 사람(all men)”으로 시작됐다. 이에 대해 여성소위는 역사적으로 “모든”이란 말이 여성을 포함한 것은 아니었다는 점을 지적했다. 많은 대표자들도 “모든 사람(all men)”에서의 ‘사람(men)’이 남성을 지칭해왔다는 이유로 불만스러워했다. 이 표현은 역사적인 남성의 여성에 대한 지배를 반영한다고 하면서 더욱 분명하게 모든 사람을 포함하는 표현으로 바꿀 것을 희망했다.

여성소위는 남성의 뜻이 다분한 ‘men’이 아니라 성차별적 요소를 배제한 ‘human beings’라는 표현을 ‘모든 사람’에 대한 영어 표현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영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번역하기 곤란하다든가 이미 여성을 포함하는 것으로 의미를 갖게 된 단어를 굳이 바꿀 필요가 있느냐는 태도 때문에 채택되지 않았다. 선언 제1조 이외의 모든 조항에서는 “모든 사람(everyone)”으로 표현되고 제1조에서만 “모든 사람(all human beings)”이 사용됐다. 선언에 여전히 남아있는 성차별적 단어와 권리 규정에 대해서는 해당조항에서 자세히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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