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은숙] <2005년 6월 14일 인권하루소식 제2831호>
국제인권기준이라는 것에는 반드시 '반차별' 조항이 있다. 세계인권선언의 반차별 조항(제2조)을 '교육'이라는 측면에서 구체화한 것이 이 협약이고, 이 협약은 유엔 경제·사회·문화적권리규약(제 13조)을 비롯한 주요인권조약에 자리 잡은 교육권 조항의 모태가 됐다.
현대의 인권기준이라는 것이 1·2차 세계 대전의 폭탄비와 피바다 속에서 인류가 얻은 뼈아픈 결과라는 것을 이 협약에서도 마찬가지로 확인할 수 있다.
"전쟁은 인간의 마음 속에서 비롯되는 것이므로 평화수호의 방벽도 인간의 마음 속에서부터 구축돼야 한다"는 유네스코의 창립정신을 따라, 교육을 통한 인류의 연대, 인권과 평화의 실현을 목표한 것이 이 협약이다.
그러나 입으로 '차별 철폐'를 외친다 하여, 정말로 '센' 법률로 제정됐다 하여 차별이 해소되는 게 아니라는 걸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국가는 공적생활에 있어 사람의 재산이나 학력, 기타의 차이에 구애되지 말고, 국민을 모두 주권에 대한 평등한 참가자라고 인정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귀에 닳도록 들어왔다. 그러나 그렇게 함으로써 차별은 줄어들거나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냥 내팽겨 쳐지는 것이 현실이다.
이기심과 자유경쟁이 판치는 시장에서의 사적차별은 제멋대로 운동하며 차별의 곡선을 갈지자로 그린다. 국가의 법률 혹은 국제기준에 따른 차별이 '반차별 조항'에 의해 철폐되어감에 따라, 즉 '공적 평등'이 진행함에 따라 사적차별도 진행되며 제멋대로 활개 칠 수 있게 된다. 이럴 경우 공식적 평등과는 반비례로 각종 이유에 따른 증오와 반감, 차별이 고조되어 가는 것이 현실이다. 예를 들어 인종차별을 법에서 금지했다 하여 사적 사업장에서의 그에 대한 반감이나 차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각종 법률이나 규제 속에 등장하는 반차별 조항이나 원칙은 현실에서의 차별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주는 반비례적 온도계라 할 수 있다. 헌법의 평등 사항은 현실에서의 불평등에 무력하기 짝이 없기 때문에 인권의 주인들은 더욱더 적극적인 국가의 노력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 협약이 보여주는 바도 이런 맥락에 있다. 세계대전이라는 참화 이전에 교육의 의미란 것이 지식을 다음 세대로 전달하고 가르치는 것에 머물렀다면, 전후 교육의 의미란 '권한 강화'이다. 교육에 대한 권리란 수동적으로 특정된 내용을 주입받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권한강화요, 창조의 과정이다. 왜냐? 알 수 있어야, 글을 읽고 쓸 수 있어야 교육의 권리에 다가설 수 있고, 그것 말고도 다른 권리에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육의 불평등을 용납하지 않는 대표적인 원칙은 첫째, 모든 사람이 차별 없이 모든 교육기관과 프로그램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교육은 안전한 물리적 조건하에서 이뤄져야 한다, 셋째, 교육은 모든 사람이 (경제적 및 기타의 이유을 불문하고) 감당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교육의 권리가 중요한 이유는 그 자체가 인권이란 의미 뿐 아니라 그것 없이는 다른 권리를 위해 나서거나 옹호하기 힘든 권리 자체의 모태로서의 의미가 있다. 이런 이유로 이 협약이 말하는 주요한 원칙은 교육에 대한 '접근성'이며, 이는 모든 사람이 어떠한 이유로도 차별받지 않으며, 물리적으로 가능한 속에서 경제적으로 제반 교육환경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협약은 1960년 12월 14일 유네스코(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 UNESCO) 총회에서 채택되었고, 62년 5월 22일에 발효되었다. 2004년 12월 31일 현재 가입국 수는 91개국이고, 남북한 모두 가입하지 않았다.
최근 한나라당 전여옥 대변인의 '학력 콤플렉스'니 '대학 나온 대통령'이라는 발언으로 온 언론매체가 떠들썩했다. 무릇 정치권이란 '립서비스', 즉 말로나마 인권을 옹호해야 하고, 그런 약속에 대해 속으면서도 내심 기대하게 되는게 우리들이다.
전 씨의 발언은 실제적이고 적극적인 노력은커녕 '규정'으로나마 금지돼 있는 반차별의 원칙을 옹호해야 할 립서비스마저도 거부한다는 점에서 심각하지 않을 수 없다. 립서비스조차 안하겠다면 그 노골적인 반감과 차별의 행동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그래서 사립학교법의 개정이나 교육상의 반차별을 시정하기 위한 조치들에 사사건건 제동을 걸고 나오는 것이 '언행일치'인가 보다. 교육의 목적은 "인간존엄성에 대한 존중", 즉 "인권에 대한 존중"이라고 국제기준들은 하나같이 말하고 있다. 전 씨를 비롯한 소위 '학력 콤플렉스'가 없는 분들이 알맹이가 빠진 교육을 받은 것이 틀림없으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교육상의 차별금지 협약 국제연합 교육과학문화기구 총회는 1960년 11월 14일부터 12월 15일까지 파리에서 열린 제 11차 회기에서, |
[류은숙] <2005년 6월 14일 인권하루소식 제283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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