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오름 제 423 호 [기사입력] 2015년 01월 22일 17:46:04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두 명의 쌍용차 해고 노동자가 굴뚝에 오른 지 40일이 넘었다. 스타케미컬 노동자의 굴뚝 생활은 무려 240일이 넘었다. 다행히 쌍용차에선 교섭이 시작된다는 소식이 들려 가슴을 쓸어내린다. 하지만 또 다른 굴뚝들이 도처에 있다. 연일 터지는 노동자에 대한 모욕과 멸시의 사건들, 추락하고 깔리고 폭발하는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 실업의 우울과 불안, 다가올 실업의 공포가 도처의 굴뚝들이다.

이전에도 노동자들은 송전탑이며 광고탑이며, 극한 곳으로 수시로 올라갔다. 어느 날 한 친구가 말했다. “이전엔 지나가면서 송전탑을 의식한 일이 없어. 근데 지금은 사람이 살고 있는 것 같아 올려다보게 돼.” 그렇다. 사람이 둥지 틀 수 없는 곳으로 사람이 내몰리고 있다. 날이 궂거나 바람이 불면 가슴이 답답하고 조마조마하다. 영어의 ‘염려, 고통, 분노’는 모두 같은 어원을 갖는데 그게 협심증의 어원이란 말이 실감난다.

가슴이 죄이는 듯 하는 것은 송전탑이나 굴뚝같은 극단적인 곳을 볼 때만이 아니다. 예외가 아닌 일상이 문제다. ‘수퍼갑질’이 아니곤 문제시조차 되지 않는 일상 속의 존엄성 유린은 자각증세가 없는 만성질병 같다. 특히 일상적으로 노동하는 사람을 멸시하는 일이 어느 때부턴가 공공연한 일이 되었다. 경제사회적 양극화가 정당한 자존감과 자부심 대신에 비뚤어진 우월감과 열등감을 경합시킨다.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존중하고 존중받는 것인데, ‘존중? 그건 어디서 파는 거에요? 얼마에 살 수 있어요?’ 식의 엉뚱한 접근이 퍼져있다.

현대 인권의 초석은 ‘인간 존엄성’이다. 초석이란 타협 불가능한 원칙이란 의미다. 인간 존엄성은 개인의 업적이나 성취에 따른 것이 아니다. 이 존엄성은 단지 ‘인간임’으로 해서 누구나 갖는 것이다. 이 존엄성은 인간의 ‘평등성’에 기반한 것으로 자연적‧세습적인 위계와 귀족주의‧엘리트주의 이데올로기라 할 것을 일체 거부한다. 모든 인간의 존엄한 가치는 비교하여 따지거나 경쟁으로 획득하는 상대적 가치가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의 고유한 절대적 가치이다. 인권의 핵심 가치인 ‘자유, 평등, 우애(연대)’는 이런 인간 존엄성에서 도출한 것이다. 자유란 ‘소비의 자유’가 아니라 위계적 제도가 양산해 낸 ‘사회적 차별에 저항하는 정신’을 말하고, 우애(연대)는 공동체적 삶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는 사회적 관계의 질을 말한다. 평등은 이런 자유와 연대를 위한 전제 조건이다.

‘인간 존엄성’을 ‘존중’한다는 것의 의미는 인간 사회의 제반 활동에서 인간 존엄성을 척도로 삼는 것이다. 가령 인간을 한낱 자원이나 교체 가능한 부품처럼 다룰 때 그것을 거부하고 저항하는 것이 ‘존중’하는 것이다. 인간 존엄성의 원칙은 국제인권법과 헌법 등 법질서 전체에 적용될 뿐 아니라 인간이 만들고 행하는 제도나 정책 등 모든 것에 해당한다. 이러한 ‘인간 존엄성’을 정초한 대표 문서로 흔히 ‘세계인권선언’을 꼽는다. 물론 맞는 말이다. 그런데 세계인권선언(1948)보다 한 발 앞선 존엄성의 전령이 있었다. 국제노동기구(ILO)의 목적을 담은 필라델피아 선언(1944)이다.

ILO는 일찍이 1919년의 창립 헌장에서 “항구적인 평화는 사회적 정의의 기초 위에서만 가능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인류는 그런 정의를 추구하는데 실패했고 또 한 번의 세계대전으로 치달았다. 인간을 사물처럼 취급하고 경제성장의 수단으로만 대하는 질서가 계속되는 한 전쟁은 언제나 일어난다는 것이 “경험적으로 완전히 증명되었다”. ILO는 전후의 삶과 국제질서를 이끌어 갈 원칙을 재확인해야 했다. 그 재다짐의 내용은 인간 존엄성을 모든 것의 정초원리로 삼는다는 것이었다. 그것의 실현은 시장의 횡포를 사회 정의에 무릎 꿇도록 만드는 제반 조치들을 취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재확인‧재천명한 원칙을 담은 것이 ‘ILO의 목적에 관한 필라델피아 선언’이다. 필라델피아에 모여 만들었기에 그 도시의 이름을 딴 것이지만, 그 도시의 이름이 ‘우애’를 뜻한다는 것은 우연치고는 반가운 것이다. 우리가 형제애와 자매애, 즉 우애의 정신으로 서로를 대하는 것이 모든 것의 출발점이란 것을 이름 자체가 깨우쳐주기 때문이다.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
필라델피아 선언의 으뜸 원칙이다. 인간을 존엄하게 대한다는 게 한마디로 뭐겠는가? 사람을 사물 취급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노동자를 ‘인력’이 아니라 ‘인간’으로, 노동력의 거래를 다른 물건처럼 ‘사고 파는’ 문제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관계’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노동자는 ‘인력’으로서 ‘경제적 보상’만 받으면 되는 존재가 아니라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존중’받아야 하는 인간이다.

물질적 존중은 그때그때 일한 만큼의 대가가 아니라 인간다운 생활의 안정과 지속을 위한 생활의 보장으로 실현돼야 한다. 정신적 존중은 구성원으로서의 자존감, 소속감, 연대감을 가질 수 있는 환경의 보장이다. 자신의 일에서 통제력과 재량을 발휘할 수 있고, 동료와 안정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고, 노동자 개인과 조직의 목소리와 행동으로 더 넓은 사회와의 연대감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물건과 달리 인간은 말을 하고 저항한다. 노동자의 물질적‧정신적 권리의 충족은 결과적으로 ‘그냥 주어지면’ 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의 참여 속에서 추구할 권리이다. 단순한 혜택과 권리로서의 보장은 다르다. 권리로서 향유하기 위해선 노동자의 개인적 및 집단적 자유가 중요한다. 따라서 “표현의 자유와 결사의 자유는 … 필수불가결한 조건”이다. 필라델피아 선언은 이런 내용들을 ‘사회 정의’의 구체적 내용으로 규정했다. 이런 사회정의의 추구가 목적이라면 경제는 그것의 실현을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이 선언을 유념한다면, 목적과 수단의 뒤집힘을 지적하고 경계하는 것이 실천과제이다.

오늘도 우리는 도처에서 벌어지는 노동자의 저항과 고난을 본다. 우리의 눈은 목적과 수단의 전도에 착시현상을 일으켜선 안된다. 사회정의를 굴뚝 삼아야 한다. 시장 우위의 폭력성과 인간 존엄성 유린의 연기를 빼내야 한다. 그 연기에 눈물콧물 쏟고 있는 노동자들의 말에 귀 기울여야 한다. ‘왜 극한투쟁을 하느냐? 그것밖에 방법이 없느냐?’는 말은 안 듣겠다는 말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무릎 꿇려야 할 것은 사람이 아니라 폭력적인 구조이다.

마틴 루터 킹 목사도 ‘왜 말로 하지 않고 극한투쟁을 하냐’는 공격을 자주 받았다. 킹 목사는“협상이야말로 우리의 행동이 원하는 궁극 목표”라고 답했다. “비폭력 직접행동은 위기와 긴장감을 조장시켜, 협상을 거부하는 사회를 곤경에 빠뜨리고 더 이상 협상에 응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데 그 의의가 있다. 즉 사회의 쟁점들을 본격적으로 부각시켜 더 이상 흐지부지 되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 바로 우리 직접행동의 추구하는 바이다”

6년여가 되어서야 가능해진 쌍용차의 노사 협상이 자랑스러우면서도 서럽다. 숱한 노동자들의 직접행동이 만든 결과여서 기쁘지만, 노동자는 ‘말’에 낄 수 없는 존재, 대화와 협상의 주체로 여기지 않는 사회의 잔인함에 입은 상처들 때문이다. 더 많은 노동자들의 말이 말로서 존중돼야 하며 정책과 조치들의 잣대가 돼야 한다. 오늘도 숱한 노동자들이 온 몸으로 말을 걸고 있다. 나는 처분가능한 대상이 아니라 인간이라고, 나의 노동은 상품이 아니라 당신과의 관계라고 말이다.

국제노동기구의 목적에 관한 필라델피아 선언(ILO Declaration of Philadelpia, Declaration concerning the aims and purposes of ILO, 1944)

국제노동기구(ILO, 아래 ILO) 총회는 필라델피아의 제 26차 회기에서, 1944년 5월 10일, ILO의 목적에 관한 이 선언과 회원국의 정책 기조가 되어야 할 원칙들을 채택한다.

I
총회는 ILO가 근거하고 있는 기본 원칙들, 특히 다음 원칙들을 재천명한다.

a)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
b) 표현의 자유와 결사의 자유는 부단한 진보의 필수불가결한 조건이다.
c) 일부의 빈곤은 전체의 번영을 위태롭게 한다.
d) 결핍과의 투쟁은 각국에서 불굴의 의지로, 그리고 노동자 대표와 고용주 대표가 정부 대표와 동등한 지위에서 공동선의 증진을 위한 자유로운 토론과 민주적인 결정에 참여하는 지속적이고도 협조적인 국제적 노력으로 수행돼야 한다.

II
총회는, 항구적 평화는 사회 정의에 기초해서만 가능하다는 ILO헌장속의 선언의 정당성이 경험적으로 완전히 증명되었다고 확신하며, 다음을 확언한다.

a) 모든 인간은 인종, 종교 또는 성별과 상관없이 자유와 존엄, 경제적 안전 속에서 그리고 평등한 기회 속에서 자신의 물질적 복지와 정신적 발전 둘 다를 추구할 권리를 갖는다.
b) 이를 가능케 할 조건의 실현은 모든 국내 및 국제 정책의 핵심 목적이 돼야만 한다.
c) 모든 국내 및 국제적 정책과 조치들, 특히 경제‧금융 영역에서의 그것들은 이런 관점에서 판단돼야만 하며, 이 근본 목적을 달성하는데 방해가 아니라 도움이 되는지의 여부에 따라서만 채택돼야 한다.
d) 이 근본 목적의 견지에서 모든 국제적인 경제‧금융 정책과 조치들을 검토하고 심의하는 것은 ILO의 책무이다.
e) ILO는 임무를 수행함에 있어, 관련된 경제‧금융 요소 일체를 고려한 후 적절하다고 판단하는 모든 규정들을 결정과 권고 속에 포함시킬 수 있다.

III
총회는 다음 사항들을 실현하기 위한 프로그램이 전 세계의 국가들에서 촉진되도록 하는 것이 ILO의 엄숙한 의무임을 인정한다.

a) 완전 고용과 생활수준의 향상
b) 노동자들이 최대한의 기술과 조예를 발휘하고 공동선에 최대한 기여할 수 있는 만족을 가질 수 있는 일자리에 고용되도록 할 것
c) 이 목적의 성취를 모든 관련자들에 대한 적절한 보장을 통해 달성하기 위하여, 고용과 거주를 위한 이주를 포함하여, 직업 훈련과 노동자의 이동을 원조하기 위한 시설들의 제공
d) 임금과 소득, 노동시간과 기타의 노동조건과 관련하여, 모두가 진보의 과실을 정당하게 공유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모든 고용 노동자와 그런 보호를 필요로 하는 모든 이에게 최저 생활 임금을 보장하는 정책
e) 단체교섭권의 실질적인 인정, 생산 효율성의 지속적인 향상에서의 관리자와 노동자의 협동, 그리고 사회적 및 정치적 조치들의 마련과 적용에서의 노사협력
f) 사회적 보호와 충분한 의료를 필요로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기본 소득을 제공하기 위한 사회보장 조치들의 확대
g) 모든 직업에서 노동자의 삶과 건강을 위한 적절한 보호
h) 아동복지와 모성 보호의 제공
i) 적절한 영양, 주거, 여가와 문화 시설의 제공
j) 교육과 직업 기회의 평등성 보장

(IV, V 생략)

인권오름 제 423 호 [기사입력] 2015년 01월 22일 17:46:04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인권오름 제 43 호  [기사입력] 2007년 02월 28일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물가는 뛰고 벌이는 신통치 않거나 아예 없다. 이럴 때 절실한 것이 사회보장에 대한 권리일텐데, ‘그림의 떡’으로 여겨지거나 먹어도 배고픔이 가시지 않는다면 그것이 권리일 수 있을까? 사회보장에 대한 권리를 우리 사회는 많이 갈구하는 듯하면서도 그만큼의 관심과 애정을 기울이고 있는지는 의심스럽다.

오늘 읽어볼 인권문헌은 사회보장에 대한 2001년 국제노동기구(ILO)의 결의안이다. 문서의 제목은 ‘사회보장: 새로운 합의’라고 되어있다.

국제인권준칙 중에서 대표적으로 세계인권선언 22조는 “모든 사람은 사회의 일원으로서” 사회보장에 대한 권리를 갖는다고 했고, 25조에서는 사회보장의 여러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이를 이어받은 유엔경제·사회·문화적 권리규약 9조는 “모든 사람이 사회보험을 포함한 사회보장에 대한 권리”를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대표적인 이 문서들에는 사회보장에 대한 정의가 없고 사회보장의 구체적 내용은 몇 가지 예시에 머물러 있다.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가 사회보장의 구체적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 중의 하나는 국제노동기구(ILO)의 사회보장 관련 원칙들을 보는 것이다. 여러 국제 전문기구들 가운데서도 국제노동기구는 1919년 창설 이래로 사회보장을 그 핵심 수임사항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1944년 필라델피아 선언을 통해 국제노동기구는 적절한 수준의 사회적 보호를 제공할 필요성을 천명했고, 사회보장에 대한 일련의 조약과 권고들(2006년 현재까지 31개 조약과 23개 권고)을 발전시켰다.

유엔경제·사회·문화적 권리규약을 담당하는 유엔사회권위원회는 사회보장권의 구체적 내용을 국제노동기구 관련 규정에서 찾고 있다. 그런데 국제노동기구의 사회보장 규정은 일반적으로 고용과 연관된 사회보장이다. 즉, 노동자의 소득과 상황에 기반한 것으로 필수적인 사회서비스에 대한 보편적 권리 또는 적절한 자원이 없는 사람 누구나가 ‘필요’에 기반하여 사회적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권리보다는 좁은 의미이다. 물론 필라델피아 선언이나 국제노동기구의 사회보장 관련 결의안에서는 “사회보장을 필요로 하는 모든 사람에게 기본소득과 포괄적인 의료보호를 제공할 것”을 거듭 원칙으로 선언하고 있기는 하지만, 주안점은 고용과 연관된 사회보장이다. 국제노동기구의 사회보장 관련 기준을 볼 때는 이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국제노동기구보다 광의의 개념의 사회보장을 규정하고 있는 유럽사회헌장에 따른 국가의 의무는 사회보장 제도를 설립하고 유지할 의무(12조 1항)이다. 유럽사회권위원회에 따르면 사회보장체제에 상당한 격차가 있거나 급여수준이 낮다면 12조 1항에 따른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것이 된다. 즉 사회보장제도가 실질적으로 존재한다고 볼 수 있으려면 적어도 최소한의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는 뜻이다.

유엔 또는 국제노동기구의 회원국들은 국제노동기구 헌장과 세계인권선언, 그리고 여타의 국제인권조약을 수용함으로써 일정 수준의 사회보장을 자국의 모든 시민에게 제공할 의무를 갖는다. 그렇지만 이런 국제기준들은 회원국이 추구해야 할 실제적인 보장의 수준이나 우선순위에 대해서는 별로 말하는 바가 없기 때문에 회원국들에 재량의 여지를 남기고 있다.

오늘 읽어볼 국제노동기구의 사회보장에 대한 결의안에서도 마찬가지로 회원국들에 재량의 여지를 남긴 속에서 다음과 같은 사회보장에 관한 지도원칙들을 제시하고 있다.

- 적용범위는 보편적이어야 하고, 급부(benefits)는 충분해야 한다.
- 국가는 급부가 제때 정당한 권리로서 제공될 것을 보증하고 충실한 거버넌스 구조를 보 장해야 할 궁극적이고 일반적인 책임을 진다.
- 사회보장은 사회적 연대에 기초하여 조직돼야 한다. 특히 남성과 여성간의 연대, 다양한 세대 간의 연대, 취업자와 실직자 간의 연대, 부자와 빈민 간의 연대에 기초해야 한다.
- 사회보장 체제는 지속가능해야 한다.
- 일국 및 국제적 수준 모두에서 법의 지배가 보편화돼야 한다.

‘사회보장에 대한 권리’의 의미

사회보장에 대한 ‘권리’라고 할 때 그것은 이전 시대의 구빈이나 자선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구빈 차원의 사회부조에서는 수급자의 권리를 부인하고, 베풀어준다는 은혜성과 그에 따른 굴욕적 조건을 달았다면 권리로서의 사회보장은 다르다. 개인의 잘잘못이 아니라 이 체제 속에서는 ‘어쩔 수 없는’(세계인권선언 22조에서의 표현은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의”) 생활 곤궁이나 불능 상태를 전제로 사회보장의 권리가 인권으로 구체화된 것이다.

이 권리는 개인의 기본적 인권이기 때문에 수급자의 기여에 의존하지 않고 전적으로 국가의 공적 부담에 의해 이뤄지는 게 그 성질상 당연하다. 그리고 권리이기 때문에 구빈의 차원을 벗어나 법적 권리로 인정하는 단계로 발전한 것이고, 사회는 자기 내부에서 발생하는 위험으로부터 구성원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회보장에 대한 권리는 ‘인간 존엄성’과 ‘인간의 자유’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기에, 시혜를 이유로 여타 인권에 대한 국가 개입을 마음대로 강화하게 한다든가, 자유와 교환하자는 식으로 여겨져선 안된다. 사회보장에 대한 권리를 이행하기 위해 국가가 적극적으로 활동할 의무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정의의 원칙에 부합돼야 하며, 국가의 적극적 활동이 여타의 기본권 침해를 합리화할 근거는 될 수 없다. 사회보장의 이행에서 충분히 예상 가능한 국가 개입의 강화가 여타 인권의 침해로 연결되지 않도록 하는 방패막이는 표현의 자유, 결사의 자유 등 기본적 자유의 강화이다.

인간은 서로 의존하며 살아간다. 인간은 서로 연대해야 한다. ‘사회권’에서 ‘사회적’(social)의 어원인 ‘socialis’는 ‘결연’했다는 뜻으로 사회 속의 모든 시민이 이익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사회적 연대라 할 때 ‘연대’의 어원인 ‘in solidum’은 채무자의 연대책임을 말하는 것으로 ‘전체로부터 부분을 분리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채무자 각자가 전체로서 빚에 대한 책임을 진다는 것이 훗날 공동체 관계, 상호의존과 부조, 구제와 지원이라는 개념을 표현하게 됐다.

인간은 사회 속에 존재하므로, 인간의 상호의존성과 연대는 인간의 동의에 선행하며 인간의 의사에 우선하는 자연적 사실이다. 인간이 이러한 인간의 결사로부터 물질적으로도 도의적으로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사실’로서의 연대라 말할 수 있다.

이로부터 생각할 수 있는 점은,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사회에 대해서 채무자라는 것이다. 각자의 능력과 활동의 자유로운 발전은 동시대의 다른 인간들의 능력 및 활동의 협력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현실의 발전단계는 과거 인간의 능력과 활동의 축적된 노력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따라서 인간이 사회에 대해 지는 채무로부터 ‘의무’로서의 연대 개념을 도출할 수 있다. 그러나 자본이나 교육을 통해 과거의 정신적, 물질적 유산을 향유하면서 사회에 주는 것보다 더 많이 받는 사람이 있는 한편 상속재산도 교육도 자본도 없어서 더 적게 받는 사람들이 있다. 따라서 사회적 ‘정의’가 요구되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연대와 정의를 권리로 표현한 것이 ‘사회보장에 대한 권리’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사회적 연대를 이해하는 방식을 둘러싸고 상부상조의 미덕을 강조하는 해석에서부터 국가의 의무를 강조하는 것까지 다양한 입장들 사이의 충돌이 존재하고 있다. 단단하면서도 따뜻한 사회보장은 우리 사회가 어떤 가치를 우선적으로 선택하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류은숙] <2007년 02월 28일 인권오름 제43호>

사회보장: 새로운 합의(ILO. Social Security: A New consensus, 2001)

2. 사회보장은 노동자와 그 가족, 전체 사회의 복지에 매우 중요하다. 사회보장은 기본적 인권이며 사회평화와 사회적 통합을 보장하도록 도움으로써 사회적 결집을 이루는 기본적인 수단이다. 사회보장은 정부 사회정책의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며, 빈곤을 예방하고 경감하기 위한 중요한 수단이다. 사회보장은 국민적 연대와 공정한 부담 공유를 통해 인간존엄성과 평등, 사회정의에 기여할 수 있다. 사회보장은 또한 정치적 통합, 권한 강화, 민주주의 발전에 중요하다.

3. 적절하게 운영되는 사회보장은 건강보호, 소득 안전, 사회적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생산성을 강화한다. 사회보장은 성장하는 경제와 능동적인 노동시장정책과 함께 지속가능한 사회경제적 발전의 도구이다. 주목해야 할 점은 사회보장이 기업에게 비용인 동시에 사람에 대한 투자이며 지원이라는 것이다. 지구화와 구조조정정책으로 인해 사회보장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욱 필수적인 것이 되었다.

4. 사회보장에 유일하게 옳은 모델이란 건 없다. 사회보장은 시간이 감에 따라 성장하고 변화 발전한다. 사회보장에는 사회부조, 보편적 계획, 사회보험, 공적 및 사적 설계가 있다. 각 사회는 소득안전과 건강보호에 대한 접근을 어떻게 해야 가장 잘 보장할 수 있는지를 결정해야 한다. 이들 선택에는 각 사회의 사회문화적 가치, 역사, 제도, 경제 발전의 수준이 반영된다. 국가는 사회보장의 촉진, 증진, 적용범위의 확대에 있어 우선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모든 사회보장 체계는 일정한 기본적 원칙을 따라야 한다. 특히 급부는 안전하고 비차별적이어야 한다. 사회보장계획은 건전하고 투명한 방식으로 운영돼야 한다. 사회보장제도에 대한 대중의 신뢰가 그 성취를 가늠하는 주요인이다. 신뢰가 존재하기 위해선 충실한 거버넌스가 필수적이다.

5. 정책의 최고 우선순위는 기존 제도가 포괄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사회보장을 적용하는 것이다. 많은 국가들에서 사회보장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은 소규모 사업장 고용인, 자영업자, 이주 노동자, 비공식부문 경제활동 종사자(상당수가 여성)이다. … 특정 집단의 욕구는 다르며 일부 집단의 기여 능력은 매우 낮다. 사회보장의 적용범위를 확대할 때 이런 차이점이 고려되어야 한다. … 적용범위를 확대하려는 정책과 계획은 통합적인 국가 사회보장 전략 속에서 취해져야 한다.

6. 비공식 경제가 던지는 근본적인 도전은 어떻게 공식 경제에 통합하느냐이다. 이는 형평과 사회적 연대의 문제이다. 정책은 비공식 경제에서 이동하도록 장려해야 한다. 전체 사회 또한 비공식 경제의 취약 집단에 대한 지원에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7. 노동연령의 사람들에게 소득을 보장하는 최상의 방법은 존엄성 있는 일자리(decent work)이다. 실업자에 대한 현금 급여의 제공은 일자리를 구하는데 필요한 훈련과 재훈련 및 기타의 지원과 밀접하게 조응해야 한다. 장차 경제 성장에서는 노동력의 교육과 기술이 더욱더 중요해질 것이다. 적절한 생활 기술, 읽고 쓰고 셈하는 능력을 성취하고 인격 성장과 노동력 진입이 용이할 수 있도록 모든 아동이 교육을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생애 전반에 걸친 교육이 오늘날 경제에서의 고용능력을 유지하는데 필수적이다. 실업 급여는 의존성을 심화하거나 고용 장벽이 되지 않도록 설계돼야 한다.

8. 사회보장은 ‘성평등’의 원칙에 기반하고 이를 증진해야 한다. 이것의 의미는 똑같은 또는 유사한 상황에서 남성과 여성을 평등하게 처우해야 한다는 의미만은 아니다. 여성에게 평등한 결과를 보장하기 위한 조치들도 포함하는 것이다. 사회는 여성에게 대가를 지불하지 않은 돌봄노동으로부터 큰 혜택을 취하고 있다. 특히 아동, 부모, 허약한 가족 성원에 대한 여성의 돌봄이 그러하다. 여성들은 자신들의 노동 연한 동안에 이런 돌봄의 기여를 했다는 이유로 인생의 후반기에 체제적인 불이익을 당하지 않아야 한다.

9. 여성의 노동력 참여가 크게 늘어났고 남녀의 역할 변화도 그러하다. 따라서 남성을 생계책임자로 상정한 원래의 사회보장체계는 많은 사회들의 욕구에 더욱더 부응하고 있지 못하다. 사회보장과 사회서비스는 남녀평등에 근거하여 계획돼야 한다.

10. 많은 사회들에서 남녀 간의 지속적인 소득불평등이 여성의 사회보장에 대한 권리에 영향을 끼친다. 지속적인 임금차별 철폐 노력, (제도가 없는 곳에서는) 최저임금제 도입을 고려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부모 중 어느 한 편이 자녀 양육을 하는 경우에 아동양육에 대한 사회보장급부는 돌보는 사람이 이용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11. 고령화 현상에 당면하여 생산적 고용율을 높일 수 있는 조치들을 취해야 한다.…

12. …HIV/AIDS 확산으로 인한 폐해적 결과가 크다. 긴급하게 대응할 것이 요구된다.

13. … 법정 연금 제도는 적절한 급부 수준을 보장하고 국민적 연대감을 보장해야 한다. 기타 보충적 제도들에 대한 지원은 저소득층 또는 중간소득층을 겨냥해야 한다.

14. 지속가능하고 재정적으로 실행가능한 연금 체계가 장기간 보장돼야 한다.…

인권오름 제 43 호  [기사입력] 2007년 02월 28일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