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은숙] <2005년 7월 5일 인권하루소식 제2845호>
인권이 서구에서 기원했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그리고 그 서구사회에서 종교적 자유의 획득이 모든 정신적 자유의 선구적 역할을 짊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서구 중세 봉건 사회 속의 종교란 어떤 것이었나. 오늘날 국가가 수행하는 것으로 판단되는 기능을 거의 다 담당했고, 요람에서 무덤까지 인간의 모든 활동을 에스코트 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영원절대의 진리체계가 설교될 뿐 아니라 그것을 바탕으로 한 교회권력이 강대한 질서 속에서 그에 대한 도전을 한다는 것은 지옥의 불을 감내하지 않으면 안 될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도전을 하지 않고서는 어떠한 내면의 자유도, 양심의 자유도 얘기될 수 없었을 것이다.
'종교적 관용'이란 어떤 의견, 신앙 또는 종교적 행위는 교회 또는 국가에 의해 승인되고, 다른 것은 용인도 승인도 되지 않는 국가정책을 말한다. 관용은 특정 종파에게만 주어지거나, 설령 관용되었다 할지라도 특정 종파의 사람은 공직이나 특정 직업을 가질 수 없도록 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종교적 관용은 종교적 자유와는 분명 다른 것이었다. 관용할 수 있는 권력은 또한 관용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에, 그것은 인권이라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 대표적 예가 오늘 읽어볼 영국의 관용법이다. 명예혁명 이후 제정된 여러 법률 가운데 하나인 '관용법'은 영국 국교회를 따르지 않은 신교도들에게 일정정도의 신앙의 자유를 보장하겠다는 목적으로 제정된 법률이다. 하지만 가톨릭에 대한 엄중한 저지는 분명하고, 신교도인 비국교도에 대한 관용이란 것도 형벌을 줄여준 것이 고작이지, 선서를 강요하는 등 그 많은 속박은 자유와는 거리가 멀다. 국가는 비국교도를 개종시킬 의도는 버렸으니 알아서 조용히 처신하라는 메시지이다. 하지만 국왕이 신봉하는 교의를 정치적으로 실현하려는 의도를 버렸다는 것만으로도 이전 시대와는 획을 긋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종교적 관용은 박해가 성공할 전망은 없고 불안과 혼란만을 조장한다고 봤을 때 권력측이 감수하는 타협에 지나지 않았다. 따라서 종교개혁과 종교적 관용을 거쳐 종교적 자유로 고양되기까지는 여러 가지 사고방식과 원칙이 뿌리부터 바뀌지 않으면 안되었다.
종교적 자유에 발동을 건 것은 사회전체에 스며들어 있는 종교의식이 영리활동에 끼치는 방해에 대한 도전이었다. 새로이 전개된 경제활동은 내세를 위한 준비로서 현세를 바라보는 도덕률, 현세적인 부의 획득이나 부를 위한 부의 추구를 가로막는 신성한 제재와 인습을 돌파해야 했다. 천국의 이익이 아닌 지상의 이익을 확보하려는 자들은 그런 이유로 체제화된 종교적 지배에 저항했다. 불가침의 절대적 교리를 논의의 도마에 올림으로써 합리주의적 사고를 자극했고, 사람들의 생활에 대한 전통의 지배권을 이완시켰다. 그에 따른 중간 결과는 교회를 대신하여 세속의 지배자가 인민이 신봉해야 할 종교를 결정하고 이단의 교리는 국가권력으로 탄압하는 것이었다. 하나의 권위가 다른 권위에 의해 대체되는 것이었다.
이제 요구되는 것은 그러한 국가에 대한 새로운 사고방식과 원칙이었다. 이단을 근절하는 일이 국가의 의무라고 여겨지던 국민교회의 시대를 지나 국교분리의 요구가 달성돼서야 개인의 종교적 자유로 도약할 토대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 '사람의 영혼의 구제 문제는 국가의 권한이 아니며, 국가의 임무는 사람들의 사회적 이익을 확보하고 유지하는 데 있다. 정신생활에 중추부분인 종교에 대해서는 국가권력이 관여할 수 없는 내면적 자유가 있으니, 정부의 기능인 형벌의 부과라는 외면적인 힘으로써는 사람들의 내면적 확신을 없애거나 생기게 하는 일을 할 수 없다'는 논리에서였다.
그러나 이러한 종교적 관용론도 무신론자에게나 이교도에게는 해당되는 것이 아니었다. 종교가 이제 국가적 사항이 아니라 개인의 사사로운 일이라고 인식되었다 해도 종교적 편집이나 종교적 대립이 지양되는 것은 아니고 그런 일들이 사사로운 일로 방임되는 것이었다. 종교적 자유가 인정됨으로써 인간은 비종교화된 국가를 매개로 마음대로 종교적으로 행동할 수 있게 된다. 이기심과 자유경쟁이 판치는 사회에서 생활의 안정을 확보한 사람들에게는 종교가 자기와 신사이의 사사로운 일이 되었을지 모르나,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공공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도구로서 종교가 이용된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극우 보수 종교가 국가권력을 창출하고 조종하는 일을 우리는 지금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사회가 앞장서서 '종교의 자유'를 세계를 향해 서슴없이 설교하는 것도 자주 본다. 참된 종교의 자유는 대립의 지양이지, 대립의 방임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그것이 발생하고 전개되는 과정에서는 부분적이고 한정되고 모순된 것이었지만, 자유의 속성 자체가 그것을 억누르는 체제를 부단히 변혁하지 않고서는 존재할 수 없다는 점을 또한 생각한다. 종교의 자유로부터 고양된 인간 내면의 자유, 정신의 자유는 변혁을 위한 행동에 필수적이었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관용법(The Toleration Act, 1689) 영국 국교회의 반대자들인 신교도 백성들에게 일정한 법률의 형벌을 면제하기 위한 법 |
[류은숙] <2005년 7월 5일 인권하루소식 제284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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