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자 : 2008. 12. 22

글쓴이 : 류은숙(인권연구소'창' 연구활동가)

세계인권선언 제25조

1. 모든 사람은 식량, 의복, 주택, 의료, 필수적인 사회서비스를 포함하여 자신과 가족의 건강과 안녕에 적절한 생활수준을 누릴 권리를 가지며, 실업, 질병, 장애, 배우자와의 사별, 노령, 그 밖의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의 다른 생계결핍의 경우 사회보장을 누릴 권리를 가진다.
2. 모자는 특별한 보살핌과 도움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모든 어린이는 부모의 혼인여부에 관계없이 동등한 사회적 보호를 향유한다.

‘적절한 생활수준’이란 언뜻 보기에 알 듯 말 듯 한 기준이다. 사법부나 정책입안자들은 ‘적절한 생활수준’의 개념을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정의하기 어려우니 권리로 보기 힘들다는 말부터 꺼내려 든다. 하지만 부모의 눈에는 자녀에게 적절한 먹을 것이 어떤 것인지가 구체적으로 떠오를 것이다. 마찬가지로 병치레를 해보거나 병원을 이용해본 사람에게는 적절한 의료가, 학교를 다녀본 사람에겐 적절한 교육이, 지하주거와 전세난과 셋방살이를 겪어본 사람에겐 적절한 주거가 무엇인지가 구체적으로 다가올 것이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생의 중요한 단계마다 인간다운 삶을 위해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이 있다. 가능한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으려면, 수치심이나 불합리한 장벽 없이 사람들과 어울려 살 수 있으려면, 구걸·성매매·강제노동이나 채무노동 같은 방법에 의존하지 않고 삶의 기본적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으려면 인간생활에 갖춰야 할 근본적인 ‘무엇’이 있다. 이 ‘무엇’은 물질적인 재화와 서비스만이 아니라 인간의 감정과 정신활동에 관련된 것을 포함한다. 이 ‘무엇’을 국제인권법에서는 ‘적절한 생활수준을 누릴 권리’로 표현했다. 세계인권선언 25조는 “식량, 의복, 주택, 의료, 필수적인 사회서비스를 포함하여 자신과 가족의 건강과 안녕에 적합한”이고, 유엔경제·사회·문화적 권리협약 11조에서는 “식량, 의복 및 주택을 포함하여 적절한”이다. 아동권리협약에서는 “아동의 신체적·지적·정신적·도덕적 및 사회적 발달에 적합한 생활수준”이라 했다.

적절성의 의미

‘적절성’을 양적인 지표로 나타낸 예는 많다. ‘하루 몇 칼로리의 영양소가 어린이와 성인에게 요구된다’, ‘1인당 몇 평의 주거공간이 있어야 한다’, ‘기본적인 생활을 위해 얼마 이상의 소득이 있어야 한다’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이런 양적지표에는 담기지 못하는 것이 많다. 어떤 사람들이 특히 취약하고 차별받고 있는지, 문화적으로 환경적으로 적절한 의식주는 무엇인지, 권리 당사자의 참여가 보장되고 있는지 등을 다루기는 어렵다. 하루 1달러 미만의 소득으로 살아가는 인구가 세계인구의 20%에 달한다는 식의 통계는 빈곤이 광범위하다는 것을 말해줄 뿐 왜 그 사람들이 가난하게 되었는지, 그 사람들의 존엄한 삶에 필수적인 무엇이 결핍되어 있는지를 말해주지 않는다. 그래서 국제사회에서는 양적지표만이 아니라 적절한 생활수준의 질적인 측면을 구체화할 필요성이 제기됐다. 그 결과 주거, 식량, 물에 대한 권리 등 각각에 대하여 ‘적절성’에 대한 상세한 개념 정의가 많이 진전됐다. 이들을 종합해보면 ‘적절한 생활수준에 대한 권리’에서 ‘적절성’의 의미는 ‘경제적·물리적·정보적 접근성, 지속가능성, 차별금지, 안정성, 가용성, 문화적 수용성, 국가의 책임성’ 등이다.

적절성의 대표적 요소는 감당할 만한 비용으로 필수적인 생활요소에 접근 가능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령 주거는 생활의 중요한 부분이고 비용도 꽤 많이 차지한다. 그러나 사람은 주거만으로는 살 수 없다. 밥도 먹어야 하고 옷도 낡으면 새로 사 입어야 하며 아프면 치료를 받아야 하고 아이들은 기본적인 교육을 받아야 한다. 집에 너무 많은 돈을 쓰게 되면 다른 곳에 꼭 써야 할 돈을 쓰지 못하게 되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다. 따라서 주거비용은 개인의 기본적 욕구가 위협당하지 않을 수 있는 수준이어야 한다. 식비, 의료비, 교육비도 마찬가지다. 아랫돌 빼서 윗돌 막고 윗돌 빼서 아랫돌 막는 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중 어느 하나에 관련된 비용이 다른 기본적 필수품의 획득 및 충족을 위협하거나 제한하지 않을 정도의 수준이어야 한다.

비용이 경제적 측면의 접근성을 얘기하는 거라면, 다른 차원의 접근성도 고려해야 한다. 누구나 고용기회, 의료, 교육 등 필수적인 서비스와 편의시설 등에 접근 가능한 곳에서 살 수 있어야 한다. 차별 없는 접근성도 중요하다. 독립생활을 하는 장애인들은 하나같이 집구하는 것의 어려움을 얘기한다. 비용도 문제고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의 경우 편의시설 접근성도 문제지만 집주인들이 장애인이라고 하면 임대를 거절한다는 것이다. 장애인이 혼자 살다가 무슨 문제가 생기면 책임질 수 없다거나 편의시설을 집에 갖추기 위해 약간의 개량을 하는 것조차 꺼려하기 때문이란다. 물리적 접근성 뿐 아니라 차별 없는 접근성은 적절성이 갖춰야 할 대표적 요소이다.

지속가능성이 담보되어야 적절성에 부합

적절성은 당장의 편리만을 생각해선 안 된다. 여기서 나온 개념이 ‘지속가능성’이다. 가령 식량권에서 지속가능성을 생각해보자. 현 세대 만이 아니라 미래 세대에게도 식량권은 중요하다. 당장의 먹을거리를 증산하기 위하여 화학비료를 남발하고, 자유무역과 단일품종, 유전자조작식품 등에 의존하는 체제는 식량권의 지속가능성과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 세계의 농민들이 들고 나온 개념이 ‘식량주권’이다. ‘식량주권’이란 먹을 것에 대한 권리와 먹을 것을 생산할 권리 둘 다를 포함하는 것이다. 먹을 것에 대한 권리, 즉 식량권이 기본적 인권이라면, 그 식량을 어떻게 얼마만큼 생산하느냐는 정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하고, 식량 생산을 위한 자원을 스스로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그를 통해 문화적 다양성과 환경을 보존하며 초국적 기업농의 유전자 조작 식품과 단일품종, 종자약탈 등의 횡포로부터 벗어나자는 것이다.

적절성의 또 다른 요소는 안정성 또는 안전성이다. 가령 주거권의 경우에 집달리라는 것이 있다. 빚을 못 갚거나 한 사람을 살던 곳에서 내모는 일을 집행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새벽에 들이닥쳐서 잠에 취한 사람을 엉겁결에 내쫓거나 사람이 일 나가서 없을 때 집을 때려 부수기도 한다. 어떤 조건에서건 갑자기 쫓겨나거나 철거되거나, 그 집에 살 수 없도록 강한 협박과 폭력에 시달리는 경우가 있어서는 안 된다. 갑작스럽게 거주공간을 빼앗기거나 퇴거의 위협을 받는 경우 국가는 피해자들을 보호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

식량권의 경우에는 안전성이라 하면 일단 해로운 물질이 없어야 하는 게 당연하다. 식량이 불순물 및 불량한 환경위생이나 여러 단계의 공급과정 중의 부적절한 취급으로 인하여 오염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식량안보 및 일련의 보호조치를 취해야 한다. 뻔히 위험한 줄 알면서 무역보복 등을 이유로 특정식품의 소비를 강제하는 일 같은 건 있어선 안 된다. 당장의 해로운 물질 뿐 아니라 장기적인 식품 안정성도 고려해야 한다. 앞서 말한 지속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으면 적절한 식량권을 보장받기 어렵다.

가용성은 충분한 양으로 확보해 이용 가능해야 한다는 것이다. 건강권의 경우에는 보건의료자원뿐 아니라 안전한 식수, 적절한 위생시설, 작업시간 사이에 적절한 휴식시간의 보장, 쾌적하게 쉴 수 있는 주거환경 등 건강결정요인이 가용성에 다 포함된다. 주거권의 경우에는 주거 공간이 생활을 할 만한 것이어야 한다. 그러려면 생활에 필요한 필수 시설이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 집에는 안전하게 마실 물과, 요리와 난방, 조명을 위한 에너지가 있어야 한다. 또 위생을 유지하기 위한 욕실과 세탁 시설, 쓰레기와 하수를 처리할 수 있는 시설, 소방시설 등 비상서비스에 대한 접근성도 있어야 한다.

온 세상 사람들이 적절한 생활수준에 대한 권리를 누려야 하지만 똑같은 것을 먹고 입고 똑같은 집에서 잔다는 의미는 아니다. 두루미와 여우 이야기가 있다. 서로를 식사에 초대하는데 여우는 넓적한 접시에 음식을 내놓는다. 두루미의 긴 부리로는 접시에 담긴 음식을 먹을 수가 없었다. 반대로 두루미가 여우를 초대했을 때는 긴 호리병에 음식을 담아 내놓는다. 두루미는 부리로 음식을 먹을 수 있었지만 여우는 주둥이를 호리병에 넣을 수가 없어 먹을 수가 없었다. 문화적 수용성은 이런 것이다.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문화의 사람에게 삼겹살을 주면서 먹으라고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생활에 필수적인 요소의 문화적 적절성과 다양성의 보존도 적절성의 중요 요소다. 가령 ‘아파트 숲’은 서울 등 대다수 도시의 당연한 풍경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주거형태에 있어 다양성이 이처럼 무섭게 소멸되어가고 있는 마당에, 그나마 남은 미개발 구역조차 언제 개발논리에 의해 쓰러질지 모를 일이다. ‘한양주택’ 같은 예쁜 마을이 그린벨트 해제와 뉴타운사업계획으로 무차별 개발된 것이 대표적 침해사례라 할 수 있다.

국가의 책임성과 의무

‘적절한 생활수준에 대한 권리’가 의미를 가지려면 국가가 각 권리의 구성요소를 입법적으로 인정하고 정책으로 드러내는 일련의 조치들을 취해야 한다. 국제사회는 이런 국가의 의무를 측정하고 평가하기 위해 ‘최소한의 핵심의무’와 ‘존중·보호·실현의 의무’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최소핵심의무는 국가의 가용자원의 양 혹은 다른 어떤 요소와 어려움에 상관없이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의무이다. 여기에는 필수적인 식량, 기초의료, 기본적인 주거와 초등교육 등이 해당한다. 가령 물에 대한 권리의 경우에는 어떤 경우에도 물 공급을 끊어버려서는 안된다는 것, 주거권의 경우에는 강제철거로부터의 보호 등이 최소핵심의무의 예이다.

가령 단전단수의 문제를 생각해볼 수 있다. 돈을 못낸다고 해서 전기와 수도를 끊어버린다. 그래서 한겨울에 난방도 못하고 촛불을 켜고 살다가 화재를 당했다는 뉴스가 심심찮게 있고, 세수와 세탁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버린다. 끊어버리는 것 말고 분명 다른 조치를 취할 수 있는 방법이 한국의 경제수준에서 과연 불가능한 것이고 자원이 그정도로 부족한 것일까. 독일에서 몇 년을 난민으로 산 친구가 있다. 난민으로서 받는 최저생계비와 간단한 아르바이트로 근근이 살아가던 그 친구에게는 어린 딸이 있었다. 어른은 그럭저럭 겨울 추위를 버텨냈지만, 어린 아기는 계속 감기에 시달렸다. 부부는 아기 때문에 어쩔 수없이 전기스토브를 켰다. 전기비가 생활수준에 비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나왔다. 당국에 설명을 했다. 우리 소득 수준은 이렇지만 아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그러자 당국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인 걸 이해하고 전기요금을 감면해줬다.

한국과 독일보다 경제사정이 열악한 국가들의 상황에서는 어떨까. 이런 국가들의 최소핵심의무에는 이런 사례가 있다. 모든 아동은 무국적을 방지하고 사회속의 신분을 획득할 수 있도록 출생과 동시에 이름과 국적을 가질 권리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출생신고가 돼야 한다. 그런데 행정망이 발달하지 않은 가난한 국가들은 이런 등록의 의무를 방치한다. 가령 당장에 동네마다 동사무소 같은 걸 만들 돈이 없으니까 어쩔 수 없다는 식이다. 사회적으로 어떤 신분도 없는 존재인 이들 아동은 인신매매의 표적이 되거나 착취적인 노동에 시달리거나 교육에 접근할 수 없는 등의 인권침해 위험성이 크다. 이에 대해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최소핵심의무를 위반했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방법으로 제시한 것은 이렇다. 당장의 자원의 부족 때문에 이름과 국적을 가질 아동의 기본적인 권리를 침해해서는 안된다. 당장 동사무소를 지을 돈은 없을지라도 지금의 경제형편에서라도 트럭 몇 대는 갖출 수 있지 않은가. 자력으로 안되면 국제사회의 원조를 받을 수도 있다. 트럭에 이동사무소를 설치하여 방방곡곡을 돌면서 아동의 신분등록을 받으면 인신매매나 아동노동 등 이차적인 아동에 대한 인권침해를 막을 수 있다고 했다. 최소핵심의무란 건 이런 것이다.

국가에 지워진 인권의 존중·보호·실현의 의무

적절한 생활수준에 대한 국가의 의무를 더 구체화한 기준이 존중·보호·실현의 의무다. 존중의 의무란 국가가 직접 인권을 침해해서는 안되고 인권을 누리는 데 방해요소를 만들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가령 비정규직의 확대를 꾀하는 법을 만들고 통과시키는 일은 노동권과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침해하며 고의적으로 인권을 후퇴시키는 조치에 해당한다. 보호의 의무란 국가가 인권을 존중할 뿐 아니라 제3자(가령 기업)에 의해서도 인권침해가 일어나지 않도록 할 의무이다. 가령 가정에서 벌어지는 아동학대에 대해서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 일, 고리대금업자가 폭력과 위협을 행사하도록 내버려 두는 일, 기업이 산업안전조치를 취하지 않거나 노동자를 함부로 해고하게 내버려 두는 일 등은 보호의 의무위반에 해당한다. 실현의 의무란 국가가 인권의 충분한 실현과 향상을 위한 목표를 설정해야 하고, 그것의 실현을 위해 합리적으로 계획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법률·행정·예산·사법조치가 모두 포함된다. 그리고 그 성취의 결과에 대해서도 따져봐야 한다. 의무가 이행되지 않았을 때에는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경우인지를 국가가 증명할 책임도 있다. 예를 들어 태풍 때문에 교육기관이 일시적으로 문을 닫았다면 국가의 통제를 벗어난 경우인 반면, 적절한 대책 없이 가장 취약한 사람들에 대한 의료보호체계를 축소했다면 의무 이행의 의지가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주거권을 사례로 존중·보호·실현의 의무를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강제퇴거와 철거는 존중의 의무 위반

방글라데시의 한 도시에서는 사전 예고 없이 비공식 거주민들이 쫓겨났고, 그들의 집은 불도저로 철거됐다. 이에 대해 인권단체와 주민들이 소송을 제기했다. 대법원은 비공식 거주민들은 불운과 자연재해의 피해자이며 고용기회·식량·주거가 빈곤한 농촌지역에서 이주한 사람들이라는 점을 인정했다. 또한 빈민지역 거주자들이 국가 경제에 상당히 기여했음을 인정했다. 이에 다음과 같이 명령했다.
“정부는 빈민지역 거주민들의 재정착을 위한 정책 지침을 개발해야 한다.
철거는 대안적 주거를 찾을 수 있는 사람의 능력에 따라서 그런 능력이 갖춰진 단계에서 허용되도록 해야 한다.
철거 전에 합리적인 시간이 주어져야 한다.
안전상의 이유로 철로변과 도로변의 빈민촌이 정화돼야 한다할지라도, 거주민들은 정책지침에 따라 다른 곳에 재정착할 수 있어야 한다.”

적절한 주거권에 대한 존중의 의무는 국가와 그 기관이 단독으로나 제3자와 결합하여, 주거·서비스·관련된 물질과 자원에 대한 권리를 침해하거나 접근을 가로막는 여하한 관행, 정책, 법적 조치를 수행하거나 지원 또는 관용하는 일을 삼가는 것이다. 평등하고 비차별적인 원칙에 기반하는 주거권에 대한 존중의 의무는 국가가 불리한 상황에서 살아가는 집단을 특별히 고려하여 그들에게 정당한 우선순위를 두는 것을 포함한다. 이같은 존중의 의무에서 가장 분명한 침해에 해당하는 사례는 강제 퇴거와 철거이다.

보호; 인권침해를 방지할 국가의 의무

아프리카 인간과 인민의 권리 위원회(the African Commission on Human and Peoples' Rights)는 오고니족(나이지리아의 소수민족)의 땅에서 다국적 석유회사와 나이지리아 국영기업이 석유채취와 관련하여 저지른 각종 인권침해에 대한 인권단체의 제소에 대해 다음과 같이 결정했다.
“석유채취 활동을 모니터하지 않았고, 의사결정에 지역사회를 참여시키지 않음으로 인해 착취(외국의 경제 착취를 포함하여)로부터 거주민을 보호할 국가의 의무를 위반했다. 또한 부와 천연 자원의 박탈로부터 보호할 의무를 위반했고, 석유착취에 대해 지역민에게 물질적 혜택을 제공하지 않은 것 또한 침해이다. 주거권과 강제철거로부터 보호받을 권리가 주거파괴와 주민에 대한 괴롭힘으로 침해됐다. 이에 위원회는 오고니족에 대한 공격을 중단할 것, 책임자를 조사하고 기소할 것, 피해자에 대한 보상을 제공할 것, 장차 환경영향평가 및 사회적 영향 평가를 분비할 것, 건강과 환경적 위험에 대한 정보를 제공할 것을 나이지리아 정부에 명령한다.”

적절한 주거권에 대한 보호의 의무는 국가 자신, 개인들, 사적인 주체, 여타의 비국가 행위자들에 의해 저질러지는 주거권 침해를 국가와 그 기관이 방지하는 것이다. 주거권 침해에 대해서는 조사가 이뤄져야 하고, 침해자들을 기소하고, 법적 및 기타의 구제가 피해자들에게 제공돼야 한다.

실현; '제공'과 '촉진'의 의무

남아공 헌법재판소는 국가의 주거권 실현의무에 대해 이런 결정을 내린바 있다.
“국가는 입법적 및 기타의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 입법 조치 그 자체만으로는 헌법의 준수라 할 수 없다. 단순한 입법만으론 충분치 않다. 국가는 의도된 결과를 성취하기 위해 행동할 의무가 있고, 행정부는 적절하고 잘 짜여진 정책과 프로그램으로 당연히 입법조치를 지원해야 한다. 이런 정책과 프로그램은 개념으로나 이행으로나 합리적이어야 한다. 프로그램의 형성은 국가의 의무 실현의 첫단계일 뿐이다. 프로그램은 합리적으로 이행돼야 한다.
일련의 조치들이 합리적인가를 판단하는데 있어서, 사회적·경제적·역사적 맥락에서 주거문제를 고려하고, 프로그램 이행에 책임을 지는 기관의 능력을 고려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프로그램은 균형 있고 유연한 것이어야 하며, 주거 위기와 단기 및 중장기적 기간의 필요에 유념하여 적합한 제공을 해야 한다. 사회의 상당 계층을 배제하는 프로그램은 합리적이라 할 수 없다. 조건은 정적인 채로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기에 프로그램은 지속적인 검토를 필요로 한다.”

실현의 의무는 ‘제공’의 의무와 ‘촉진’의 의무로 생각할 수 있다. 어떤 개인이나 집단이 그들이 통제할 수 없는 이유로 인해 자신들이 가진 수단으로는 적절한 주거권을 향유할 수 없을 때에 정부는 주거권을 직접적으로 제공할 의무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현재의 주거정책과 프로그램에서 주거취약계층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또한 국가는 적절한 주거권을 보장하기 위한 자원과 수단에 대한 접근과 이용을 강화하기 위하여 사전 대책을 강구하여 의도적인 활동을 기울여야 한다.

인권에 기반을 둔 접근이란?

어렸을 즉 읽은 얘기다. 한 백인 중산층 소녀가 빈민가에 사는 친구 집에 놀러갔다. 자기가 사는 곳과는 너무 다른 환경에 소녀는 충격을 받았다. 그 집은 거의 동물우리같은 수준이었고 친구의 아픈 엄마는 치료도 못받고 침대에 누워만 있었다. 소녀는 제 딴에 최선을 다해 생각해낸 것이 “사회보장 급여를 받을 수 있도록 제가 부모님께 말씀드려 신청해 볼게요”였다. 그런데 그 말을 들은 친구의 엄마는 눈물을 흘리며 반대했다. “싫어요. 우리 형편이 어렵기는 하지만 그런 걸 받아야 할 만큼 비참하지는 않아요.”였다.
난 이해가 안됐다. 사회보장 급여를 받는 게 왜 싫다는 거지? 그런데 곧 그 심정을 이해하게 됐다. 온갖 낙인을 감수하면서 쥐꼬리만한 도움을 받느니 자존감을 지키고 싶다는 심정 말이다. 내가 6학년 때의 일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학교에서는 불우이웃돕기 성금이라는 명목으로 돈을 걷는다. 보통은 그렇게 걷은 돈을 양로원 등에 보내곤 했는데 그 해에는 우리 반에서 제일 형편이 어려운 아이를 남녀 한명씩 골라 성금을 처리한다고 했다. 제일 형편이 어려운 친구는 반 아이들이 추천했다. 모두가 있는 교실에서 ‘쟤요, 쟤요’라고 지목하는 식으로 하는 추천이었다. 여학생 중에 추천된 건 나였다. 그래서 반 아이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불려나가 공책과 연필, 뭐 그런 것들을 ‘친구들의 마음의 선물’이란 말과 함께 담임선생님께 받았다. 그런데 하나도 고맙지가 않았다. 그날 이후 하교길에 같이 다니던 친구들이 나를 멀리했다. 나도 같이 가는데 달갑지 않고 혼자인 게 맘 편했다. 난 가난하니까 구제받아야 할 아이로 완전히 찍힌 거였다.

적절한 생활수준에 대한 권리는 물질만으로 채워지는 것이 아니다. 공책 몇 권을 주는 것이 아니라 차별과 배제를 느끼지 않고 학교에 다닐 수 있는 환경이 초등학교 6학년 여자아이에게 요구되는 것이었다. 자선이 아닌 권리라는 데 핵심이 있다. 권리의 핵심은 존엄성을 해치지 않고 존엄성을 발전시킬 기본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다. 그것들이 발휘되지 못한다면 도대체가 인간의 삶이라고 할 수 없을 그런 최소한의 기본적 역량의 발휘는 무조건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권리이다. 이걸 목록으로 표현한 것이 적절한 생활수준에 대한 권리이다.
적절한 생활수준에 들어가는 목록은 역사적으로 변해왔다. 옛날에 ‘빵과 자유를 달라’ 했을 때는 정말 빵만을 생각했다면, 주거, 의료, 교육 식으로 적절한 생활의 요소는 강화되어 왔을 것이다. 오늘날에는 물에 대한 권리, 공공운송, 문화적 시설 등이 떠오르고 있다. 문제는 이런 것들을 어떤 방식으로 해결하느냐이다. 한국 같은 곳에서는 자력구제의 성격이 강하다. 따라서 노동자들이 임금인상 투쟁을 할 때 그걸 그냥 ‘임금’으로만 봐서는 안된다. 사회적으로 적절한 생활수준의 권리를 뒷받침해주는 것이 부족하기에 노동자들은 ‘임금’으로 적절한 생활수준을 해결봐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임금으로 적절성을 해결 보는 것은 대다수 노동자에게 어림없는 일일뿐더러 사회보장의 의미도 퇴색된다.

사회보장에 대한 시각과 그걸 보장하는 방법은 사회에 따라 아주 다르다. 어떤 사회에서는 자력으로 생존에 실패한 사람들이 구차하게 받아야 하는 것으로 여겨지고, 어떤 사회에서는 그 사회에 거주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보편적으로 누릴 수 있는 공기 같은 것이다. 적절한 생활수준을 어떻게 확보하느냐에 따라 그 사회의 인권수준이 드러난다. 되는 사람은 임금을 통해 해결하고 노동에서 밀려난 사람들을 잔여적으로 처리하는 방식이냐, 사회적 연대의 정신에서 필수적인 것을 같이 해결하느냐는 그 철학과 접근 방식이 아주 다를 수밖에 없다.

‘인권에 기반한 접근’이란 이런 문제의식에서 나온 개념이다. 기존의 경제발전구조에 덤으로 사회적 지출을 덧붙인다는 의미가 아니다. 발전계획 자체에 인권을 중심요소로 앉히는 것을 의미한다. 경제발전이 중요하지 않은 게 아니라 적극적인 경제·사회·정치정책이 있지 않으면 권리는 결코 보장되지 않는다. 발전의 핵심 목적은 가장 소외되고 취약한 사회구성원의 역량강화이다. 결과만이 아니라 과정을 강조한다. 인권을 발전에 추가요소로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발전정책의 발판으로 여기는 것이다.

인민이 권력과 역량을 가져야

핵심은 자선에 반대하고 인민이 권력과 역량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설문조사식의 형식적 참여가 아니라 능동적이고 자유롭고 의미있는 참여가 가능해야 한다. 의미있는 참여란 결정과정에 참여하고 그 결정의 결과에 같이 책임을 진다는 것이다. 가령 거주지에서 밀려나 이주비 보조를 받는 수준이 아니라 부동산정책과 개발계획에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인권영향평가가 모든 발전계획, 정책, 예산, 프로그램에 적용될 것을 요구해야 하고, 경제지표만이 아니라 불평등지표, 빈곤지표, 성평등관련지표 등이 측정과 평가항목이 돼야 한다. 적절한 생활수준에 대한 권리는 사회적으로 생산된 잉여의 재화를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니라 부족한 재화라도 그것을 정의롭게 분배하는 차원과 관련된 문제이다. 그리고 기본권의 실현은 평등하게 권리를 가진 사람들의 자율성을 활성화하는 것과 병행되는 과정이다.

적절한 생활수준에 대한 권리에 대한 흔한 오해 중의 하나는 복지예산을 늘리면 된다는 것이다. 물론 절대적인 투입의 양을 늘리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인간의 존엄성과 자율성을 고려하지 않을 때는 복지반대론자들이 걸핏하면 입에 올리는 ‘거지근성이다, 밑빠진 독에 물붓기다’식의 문제만 눈에 띄게 될 것이다. 인권에 기반한 접근은 ‘단지 더 많은 재화와 서비스를 얻으면 된다, 단순히 사회보장, 교육, 의료에 들어가는 지출을 늘리면 된다’는 식의 해결방식을 넘어설 것을 요구한다. 지출만 늘린다고 되는 문제가 아니라 그 권리의 당사자가 얼마나 참여하여 진정한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지, 스스로의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발전활동이 자동적으로 인권존중을 증진시키지 않고, 단지 건강, 교육 등의 지출로 인해 증진되지 않는다. 인권에 기반을 두지 않는 경제발전정책은 힘들게 생산한 부가 편중·낭비되고, 특정집단이 오히려 차별받는 것으로 잘못 수행될 수 있다. 불평등은 지구적 아파르트헤이트(인종분리차별정책)라 불린다. 국내에서도 불평등의 심화는 ‘신인종분리정책’이라 볼 수 있다.

이런 기준에 비추어 빈곤을 다시 생각해보자. 얼마 전까지도 해도 빈곤은 최소한의 재화와 서비스를 구매하기에 불충분한 소득으로 정의됐다. 오늘날에는 존엄하게 살 수 있는 기본적 역량(capabilities)의 결여로 이해된다. 빈곤은 굶주림, 빈약한 교육, 차별, 취약성, 사회적 배제와 같은 특성을 갖고 있다. 세계인권선언 등의 시각으로 볼 때 빈곤은 적절한 생활수준에 대한 권리 뿐 아니라 여타의 인권을 누리는 데 필수적인 자원, 능력, 선택, 안전 및 권력을 지속적이거나 만성적으로 박탈당한 인간 상황으로 정의될 수 있다. 따라서 단순히 소득만 늘리거나 소비할 수 있는 재화와 서비스의 양만 늘리는 방식의 접근이 아니라 비차별과 평등 원칙의 강화, 빈민 당사자의 참여, 국가책임성의 구체화 같은 것이 고려돼야 한다

작성일자 : 2008. 12. 22

글쓴이 : 류은숙(인권연구소'창' 연구활동가)

세계인권선언 제22조

모든 사람은 사회의 일원으로서 사회보장제도에 관한 권리를 가지며, 국가적 노력과 국제적 협력을 통하여 그리고 각국의 조직과 자원에 따라 자신의 존엄성과 인격의 자유로운 발전을 위하여 불가결한 경제적, 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의 실현에 관한 권리를 가진다.

사람의 삶은 불안의 연속이다. 소득이 끊긴다는 것은 전기와 수도 등 기초적인 필수물의 공급중단, 학업 중단, 주거 불안, 건강 불안 뿐 아니라 사람과의 관계도 끊어놓는다. 가족관계를 포함하여 많은 사회적 관계들이 거센 파도에 따라 출렁거리게 된다. 지금의 경제위기 속에서도 그렇지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들이 몇 번씩의 큰 고비를 넘어야 했을 것이다. 살던 집이 넘어가고 모든 저축과 보험을 해약해야 하고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살아야 하는 고비 말이다. 그런데 이런 문제들을 외면하는 것이 인권이라 할 수 있을까?

해체해야 할 인권의 범주

인권은 이런 저런 이름과 범주로 나뉜다. 어떤 식으로 나누는지부터 알아보고 그 문제점을 생각해보자. 흔한 구분은 자유권과 사회권식으로 나누는 이분법이다.
먼저 자유권은 권력에 대항하여 발전한 고전적 인권으로서 주로 국가의 불법적이고 부당한 행위로부터 개인을 보호하기 위한 권리이다. 자유권은 다시 시민적 권리와 정치적 권리로 구분된다. 시민적 권리는 국가권력이나 타인의 간섭으로부터 침해돼서는 안 되는 개인의 삶의 특정 부문을 보호하기 위한 권리이다. 신체적 보전에 대한 권리, 자유와 안전에 대한 권리, 정당한 절차와 법의 보호를 받을 권리 등이 포함된다. 이런 시민적 권리가 가만히 앉아서 보장될 수는 없다. 권력이라는 건 잠시만 틈을 줘도 인권보장이라는 제 본분을 망각하고 오만한 것이 되기 쉽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민적 권리가 보장되려면 사회 구성원들이 쉴 틈 없이 국가권력을 적극적으로 감시하고 비판해야만 하고, 주권을 행사하는데 참여해야만 한다. 이런 것에 관계된 표현의 자유, 집회결사의 자유 등을 정치적 권리라 한다. 시민적 권리는 정치적 권리와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본 세계인권선언 21조까지의 권리가 자유권 또는 시민‧정치적 권리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다음으로 사회권은 인간의 기본적 생존을 보장하고 분배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국가의 적극적인 노력을 요구하는 권리이다. 경제적 불평등이 지배하는 사회 현실을 외면한 채 시민‧정치적 권리만을 인권이라 했을 때 그 폐해는 컸다. 인권이란 일부 가진 자만이 누리는 권리에 지나지 않았다. 인권의 역사에서 참정권은 재산에 따라 엄격히 제한됐고, 표현의 자유는 시장거리와 선술집에서 논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의사당 안의 의원들과 지식인들의 전유물이었다. 인신의 자유는 절차를 따지고 현란한 변호를 펼칠 수 있는 소수에게는 의미 있을지 모르나, 배고파서 빵을 훔친 이에게는 딴 나라 얘기였다. 사회권은 이런 식의 인권에 대한 비판과 반성에서 발전했다. 모든 사람은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인간다운 생활을 누릴 권리를 가지며 국가와 사회는 그 권리의 실현을 위한 생활여건과 자원을 제공할 의무를 가지는 것이다. 사회권을 다시 세분화하면 경제‧사회‧문화적 권리라 할 수 있다.
우리는 대개가 일을 해서 살아간다. 즉 누군가에게 일과 서비스를 제공한 대가로 생활을 이어간다. 그런데 그렇게 해야 하는 일이 무지막지한 조건에서 강요돼서는 안 된다. 무슨 일을 할 것인가 직업을 선택할 자유가 있어야 하고, 정당하고 유리한 보수를 받을 수 있어야 하고, 노동시간은 합리적으로 제한돼야 하고 휴가도 있어야 한다. 이런 권리들을 고용주가 자연스럽게 인정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일하는 사람들은 노동조합을 만들고 행동하고 고용주에게 다짐을 받아둘 권리가 있다. 이런 권리들을 경제적 권리라 한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일을 해서 생계를 도모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에 경제적 권리만으론 충분치 않다. 우리 모두가 원하지는 않지만 아플 때가 있고 선천적 후천적 장애를 가질 수도 있고 일자리를 잃거나 나이 들게 된다. 자기 의지로 어쩔 수 없는 이런 상황에서도 우리는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권리가 있다. 왜냐하면 사회의 구성원이기 때문에 인간사회의 일원으로서 사회에 대해 부양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 이것을 사회적 권리라 한다. 건강권, 주거권, 식량권, 사회보장에 대한 권리, 교육권 등이 여기에 속한다. 지금까지 말한 경제사회적 권리를 우리는 특정 공동체 속에서 누린다.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우리는 그 문화생활에 자유롭게 참여하고 예술을 감상하며 그 진보의 혜택을 같이 나눌 권리가 있다. 이것을 문화적 권리라 한다.

인권의 불가분성․상호의존성

뉴딜정책으로 유명한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은 “결핍으로부터의 자유”와 “공포로부터의 자유”라는 간결한 말로 인권을 표현했다. 이 둘 중 어느 하나만으로 된 인권은 가능하지도 않거니와 온전한 인권일 수가 없다. 정치적 독재는 경제적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그 역도 마찬가지다. 불평등한 체제에 대한 불만을 억압하기 위해 자유는 억압될 수밖에 없다. 배고프고 몸 누일 곳 없고 일자리 없는 사람이 자유를 누린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런 인권의 성격을 인권의 ‘불가분성’ 또는 ‘상호의존성’이라 한다. ‘자유 없이 평등 없고, 평등 없이 자유 없다’는 말, ‘평등할수록 더 자유롭다’는 말, ‘자유 없는 평등은 노예의 평등’이라는 말이 다 이런 인권의 성격에서 나온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인권의 성격은 자주 무시돼왔다. 인권을 나눠서 편을 가르고, 한편은 인권으로 치고 다른 한편은 인권이 아니라 사람들이 그냥 바라는 것, 욕망하는 것쯤으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이 고질적인 인권의 이분법이다. 어떻게 편 가르기를 하는가 하면 인권의 한편을 ‘자유권’(시민․정치적 권리), 다른 한편을 ‘사회권’(경제․사회․문화적 권리)이라는 범주로 나누는 것이다.

이분 씨와 총체 씨; 누가 진짜 인권인가

자유권과 사회권, 인권을 이 둘로 나누고 자유권은 진정한 인권인데 사회권은 인권으로 보기 어렵다는 주장은 오랫동안 인권을 괴롭혀왔다. 어떤 이유 때문에 나누기를 고집하거나 또는 총체적인 접근을 주장하는지 생각해보자. 두 입장을 편의상 이분 씨와 총체 씨로 구분하고 얘기를 들어보자.

이분 씨: 사회권이라 말하는 권리들의 내용은 인간의 열망 또는 기대일 수는 있어도 권리의 자격을 가질 수는 없다. 사회권에 해당하는 내용들은 사회정책에 의해 그 수위가 결정되고 점차 달성돼야 할 사회적 목표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것을 권리라고 말해서는 곤란하다. 그렇게 되면 국가권력으로부터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약속된 진짜 인권에 물 타기를 하기 때문에 오히려 인권에 위험하다.

총체 씨: 먼저 인권의 가치를 생각해보자. 인권이란 건 존엄한 인간을 가능하게 만드는 권리다. 무직, 배고픔, 질병, 무주택, 문맹, 빈곤에 시달리는 인간이 존엄성을 존중받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사회권은 인간 존엄성에 필수적인 것들에 관한 것이다. 이런 필수적인 것들이 없는 인간은 이분 씨가 ‘진짜’ 권리라고 가정하는 다른 어떤 권리도 충분히 누릴 수가 없다. 인간의 존엄성은 고문과 검열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경제적 한계상황에서도 침해된다. 이런 의미에서 사회권은 단지 ‘인간의 열망’이나 ‘기대’가 아니라 기본적인 권리다. 너무나 기본적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나머지 인류에게 할 수 있는 최소한의 합당한 요구이다. 필수적이고 기본적인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사람, 가령 굶거나 아픈 사람에게 ‘치료받고 싶어요? 밥 먹고 싶어요? 그런데 당신이 치료받고 싶고 밥 먹고 싶은 것은 인권으로 인정받을 현실적 전망이 없어요.’라고 하는 것은 심한 모욕이다.

이분 씨: 불평등한 것이 현실의 삶인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현실에서 보장 가능한 평등은 법 앞의 권리의 평등이요, 기회의 평등일 뿐이다. 노동이 불가능하거나 이런 저런 이유로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을 자선이나 기타 구제를 통해 도와줄 수는 있지만 그것을 권리라고 하는 것은 곤란하다. 빈곤은 안타까운 일이기는 하지만 누가 누구의 자유를 침해한 결과는 아니다. 그런데 국가가 사회권을 보장한다는 명목으로 개인의 삶에 간섭하는 것, 재분배를 실현하겠다고 시장의 자율에 간섭하는 것은 자유를 억압할 뿐이다. 사회권을 실현하려면 국가가 재정을 제공해야만 하고 그 결과 국가기구의 비대화를 가져온다. 이것은 자유에 위험스럽기 짝이 없다.

총체 씨: 사회권 보장을 위해 국가가 재분배다 뭐다 해서 나서는 것이 자유의 침해라고 하는 주장은 자유에 대한 단단한 오해이다. 시장의 자유를 염두에 두고 이런 소릴 하는 것 같은데, ‘통제와 규율 없는 순수한 시장이란 건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적절한 규율이 있기에 시장이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은 경제학자가 아니어도 아는 상식이다. 시장의 자유라는 것은 인간의 생존을 위해 요구되는 것이지 시장을 위해 인간이 존재하는 건 아니다. 인간이 살기 위해 무역을 하는 것이지 무역을 위해서 우리가 사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인권의 주인공은 인간의 자유이지 시장의 자유가 아니다. 인간의 자기존중은 자기 신체와 정신에 대한 자유 없이는 불가능하다. 자유는 인간다운 생활을 위한 기본재이다. 그런데 이 자유의 향유자가 생존 불가능하다면 자유는 비현실적이 된다. 자유가 현실화되려면 그것을 위한 사회적 조건이 필요하고, 의식주와 아플 때 치료 등 그 조건을 규정한 것이 사회권의 내용이다. 자유를 누리는 것을 현실적으로 가능케 하는 생존의 기본재를 사회에서 분배받는 것 자체가 자유의 중요한 부분이다. 따라서 사회권은 자유보장에 반대되는 것이 아니라 자유의 보장이다.

이분 씨: 사회권에는 자원, 즉 돈이 많이 든다. 자유를 보장하는 일에는 국가가 간섭을 자제하는 것 말고는 특별히 돈 들일이 없으니까 즉각 보장할 수 있다. 하지만 사회권 보장에는 경제적 자원과 국가의 적극적 조치가 필요한데, 이것은 쓸 수 있는 자원의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노력하여 점차 좋아지도록 하겠다고는 할 수 있지만 즉각적으로 보장할 의무를 지는 권리일 수는 없다. 모자라는 자원 때로는 없는 자원에 대해 권리를 주장할 수는 없다.

이분 씨와 총체 씨; 사법심사가능성의 문제

총체 씨: 이분 씨가 자유권이다 사회권이다 구분하는 권리가 그런 식으로 똑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가령 노동권은 자유권이면서 사회권이다. 개별 노동자가 자기 권리를 위해 자유의사로 뭉칠 권리가 노동권의 자유권적 속성인데 왜 툭하면 정부가 개입하여 결사를 방해하는가. 교육권은 어떤가. 교육권에는 교육비, 학교시설, 교사고용 등도 중요하지만 교육의 내용을 정부 입맛대로 좌지우지해서는 안 되는 정신적 자유의 의미도 크다.
자유가 국가의 불간섭만으로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이분 씨가 중요시하는 자유가 보호되려면 국가가 보다 강하고 공격적인 주체들로부터 이분 씨를 보호해줘야 한다. 가령 생명권을 생각해보자. 국가가 나서서 이분 씨에게 해코지를 해서도 안 되겠지만 제3자의 폭력과 학대로부터 이분 씨를 보호해줘야 한다. 건강에 유해하거나 위험한 상품의 거래와 판매로부터도 보호해줘야 한다. 마찬가지로 보편적인 건강보험제도 같은 것으로 기본적인 의료접근권을 보장해줘야 한다. 어디까지가 자유에 대한 간섭이고 어디까지가 자유에 대한 보호인가? 이분 씨는 그렇게 명확하게 선을 그을 수 있는가?
없는 자원, 모자라는 자원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없다는 말도 모순 된다. 사회권이 더 많은 자원을 필요로 한다는 건 사실일지 모르나 자원이 들지 않는 권리란 없다. 안전권을 위한 경찰력의 유지가 맨손으로 되는 것도 아니고, 공정한 재판권을 위한 사법공무원도 돈 주지 않고 쓰는 것이 아니다. 사회권에만 돈이 드는 것이 아니라 모든 권리에는 돈이 든다. 반대로 큰 자원을 들이지 않고도 당장 실현할 수 있는 사회권의 항목도 있다. 가령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참가할 권리를 보장할 의무는 자원과 상관없이 즉각 효력을 가져야 할 권리이다.

이분 씨: 진짜 인권은 자유권의 내용처럼 재판을 통해 청구하고 구제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사회권이란 인권은 모호하여 재판의 심사대상으로 삼기 어렵다. 사회권에 해당하는 내용은 입법과 행정부의 정책결정 권한에 속하는 문제이므로 사법부가 이를 대신할 수는 없다. 사회권은 어떤 정책의 불가피한 영향이나 개인의 행운과 불운, 개인의 선택에 따른 결과 등 재판으로 따질 수 없는 성격의 내용을 담고 있다.

총체 씨: 사법심사가능성과 불가능성은 고정된 것이 아니고, 불가능성이 사회권의 특성인 것도 아니다. 모호함은 사회권의 특성인 것이 아니라 일부 정교화된 권리와의 정도 차이일 뿐이다. 자유권 중에서도 모든 권리가 정교화된 것이 아니라 법리는 계속 형성되고 있다. 인권은 어떤 권리를 꿈꾸고, 그것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명문화하고, 실현하는 과정을 밟아왔다. 오늘날 명백한 것으로 보이는 재판구제 사안도 그것이 시작될 때는 청구가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진 구체적 사건과 도전에서 시작됐다. 사회권의 사법심사가능성도 권리 내용에 따라 편차가 있고 국내외적으로 일정정도 현실이 된 내용도 많다. 따라서 자유권은 재판 가능하고 사회권은 그렇지 않다는 이분법은 시대착오적이다. 이에 대해 유엔 사회권위원회는 “경제․사회적 권리가 법원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으로 엄격하게 분류․채택하는 것은 자의적인 것이고, 두 종류의 인권이 나뉠 수 없고 상호의존한다는 원칙에 위배”될뿐더러 그렇게 하는 것은 “사회에서 가장 약하고 소외된 집단의 권리를 보호하는 법원의 권한을 현저히 축소시킬 것”이라 했다.
또한 현실에서 오히려 문제 삼아야 할 것은 사법심사가능성이 아니라 사법제도 자체의 불평등성이다. 그렇기 때문에 권리에 대한 판단과 구제를 사법심사에 의한 것으로 제한하여 생각하는 것은 인권에 위험하다. 가령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범죄형량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헌법에 보장된 노동권에 대해서는 박하게 해석하고 기업주의 재산권 위주로 유리한 판결을 해주는 것, 재산권에 대한 사회적 제약을 솜방망이처럼 다루는 것도 ‘유전무죄 무전유죄’이다.
권리에 대한 구제를 재판에 의한 것으로 한정하는 것과 인권회복수단으로서 사법적 구제절차를 강조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권리에 대한 구제는 사법절차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다각도로 모색돼야 한다. 가령 재산권이란 건 그 내용이 법률로 정해지는 것이기 때문에 사회권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토지’ 같은 재산의 내용과 한계를 정하는 것은 중요하다. 재판가능성 만이 아니라 어떤 법률을 만드느냐, 어떤 권리를 우위에 두는 사회적 합의를 만드느냐를 같이 고려해야 한다. 예를 들어 주거권의 보장을 위해서는 법원명령이 없는 강제퇴거의 금지나 이에 따른 구제조치 뿐 아니라 주거현황에 대한 실태조가, 최저주거기준이나 주거기본법 등의 마련, 주거권에 대한 인식 향상과 교육 등 다각도의 노력이 요구된다.

이분 씨: 권리라 할 때는 법적으로 그 권리를 보호하고 보장하고 실현할 의무 주체가 있어야 한다. 의무 주체가 이를 충족시키지 못했을 때 인권침해라 한다. 하지만 사회권의 경우에는 의무주체가 모호하다. 뿐만 아니라 사회권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사회 다양한 부문의 자발적인 원조, 동의와 협력이 절실한 데 거기다 대고 인권침해라고 지적하는 것은 찬물을 끼얹는 것이고 적절치 않다.

총체 씨: 가난이 불가피하다고 말하는 것과 가난은 인권침해라고 말하는 것은 아주 다르다. 흔히 사람들은 누군가가 고문당하거나 표현의 자유를 침해당했다면 무의식적으로 국가의 책임을 묻는다. 그러나 사람들이 굶주리거나 도시빈민이 살던 곳에서 내쫓길 때 세상은 누군가의 책임을 묻지 않는다. 이름 없는 경제개발의 힘 또는 나라님도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가난의 불가피성을 탓한다. 더 심하게는 그런 암울한 운명을 자초한 것은 피해자들 자신의 탓이라고 한다. 대부분 자유의 박탈에 대해서는 끔찍하게 여기면서 식량, 의료보호, 살 곳 같은 삶의 기본적인 필요가 (예방할 수 있음에도) 박탈당함으로 인한 인간의 고통이나 죽음에 대해서는 상당한 관용을 보인다. 사회권을 인권으로 규정하고 그 침해를 인권침해로 규정하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불쌍하고 가련한 사람이 아니라 마땅히 받을 것을 받지 못한 권리 주체로 바라보는 것은 크게 다르며, 마땅히 누려야 할 것이 방임되고 침해됐다고 봐야 진짜 문제에 접근할 수 있다.

물론 인권침해를 규정하는 일이 간단하지는 않다. 침해라는 용어를 신중하게 사용할 필요도 있다. 모든 안 좋고 불쾌한 상황에 죄다 인권침해라는 꼬리표를 붙이는 것은 침해라는 용어의 심각함을 훼손하게 될 것이다. 침해라는 용어는 그에 상응하는 의무와의 관계 속에서 가려서 사용돼야 한다. 많은 국가들과 국제사회는 사회권에 대한 국가 및 주요행위자들의 의무를 분석하기 위한 방법을 개발해왔다. 가령 유엔사회권위원회는 국가가 해선 안 되는 일을 하는 것(작위),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것(부작위)을 사회권에 따른 의무 위반으로 본다. 가령 작위의 의무 위반은 이미 향유하고 있는 권리를 고의적으로 철회하거나 후퇴시키는 행위, 보호적 법률을 개악하고 특정 집단을 향한 차별을 강화하는 행위, 사회권에 해로운 정책 강요 등이 있다. 부작위의 예로는 사회권과 관련된 지표를 만들지 않고 모니터도 안하는 것, 즉각적 성격을 갖는 의무(법률상의 차별 제거 등)를 불이행 하는 것, 정당한 안전조치를 취하지 않고 규정된 법적 의무를 따르지 않는 것 등이 있다.

경직화된 범주를 깨는 일의 중요성

흔히 사회권에 따른 국가의 의무라 하면 국가가 직접 나서서 자원을 제공하는 것만을 떠올린다. 물론 그런 국가의 직접 지원이 필요하기도 하다. 직접 제공하는 것 말고는 생활의 필수적인 필요를 충족시킬 권리가 실현될 다른 가능성이 존재하지 않을 때가 있다. 노인이나 장애인처럼 사회경제적으로 불리하게 된 사람들, 위기나 재난, 갑작스런 실업 상태 등이 그렇다. 하지만 국가의 의무는 직접 제공자로서의 의무에만 있는 게 아니다. 국가는 일차적으로 개인들이 자신의 역량을 발휘해 개인적으로나 타인과 결사하여 생존을 추구할 방법을 보장해야 한다. 가령 토지 이용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 사람들에게 토지의 보호는 직접 다른 재화와 서비스를 제공하는 의무보다 훨씬 중요하다. 토지는 오직 경작하는 농부만이 소유할 수 있도록 한다거나 무분별한 개발과 투기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하는 의무가 파산한 농부에게 생계보조금을 주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 노동자의 집단적 결사와 행동권을 보장하는 것은 부당 해고된 노동자에게 쌀 한말을 주는 것보다 중요하다.

또한 국가는 직접 제공자로서가 아니라 보호자로서의 의무를 진다. 이것은 자유권에 있어서 보호자로서의 국가의 역할과 기능적으로 유사하다.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보다 강하고 공격적인 주체들로부터 개인의 행동의 자유와 자원의 이용을 보호하는 것이다. 보다 강력한 경제적 이해로부터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생존재의 보호, 무역과 계약 관계에서 각종 비윤리적인 위협으로부터의 보호, 유해하거나 위험한 상품의 거래와 투매로부터의 보호 등이 요구된다. 이런 경우에는 사법심사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사회권은 자원이 필요하고 자유권은 자원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주장은 직접 제공자로서 국가가 나서는 단계에만 초점을 두고 다른 의무들을 고려치 않는 과도한 단순화이다.

인권의 상호의존성은 권리개념을 설명하고 분석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개념이 아니라 인간을 위한 개념이다. 인간의 존엄성은 잘못된 이분법의 구속을 받기보다는 무엇보다 중요한 목적이자 근본가치인 인권존중이라는 견지에서 추구돼야 한다. 잘못된 이분법은 인권을 형식적인 것으로 몰아갈 수 있다. 어떤 권리가 어떤 범주와 법률에 속하느냐가 아니라 인권의 기초인 인간애에 일관된 관심을 가져야 한다. 경직된 범주화를 깨뜨리는 것 자체도 중요한 인권투쟁이다. 효과적인 인권보장이란 불리하고 취약한 집단의 구성원에 특히 유념하여, 권리를 진정으로 모든 사람의 것으로 만들기에 뭐가 필요한가를 총체적으로 해석해서 나오는 결과여야 한다. 범주는 임시로 만들어진 것이고, 전체의 부분에 불과하며, 관계 속에서만 이해된다. 가령 자유권에 있는 생명권은 사회권에 있는 건강권과 관계 속에서 보면 아주 달라 보인다. 부당해고 당하여 노동조합을 만들려는 노동자의 일할 권리와 결사의 권리는 노동자가 부양하는 아동의 권리와 연관시켜 볼 수 있다.

사회보장권의 의미

선언의 다른 조항들과 마찬가지로 사회보장에 대한 권리 보장의 직접 배경이 된 것은 나치즘의 경험이었다. 물론 그에 앞서 1919년 러시아 사회주의 혁명의 성공, 그리고 대공황의 여파로 체제에 위협을 느낀 자본주의 국가들 내부에서부터 사회보장의 중요성은 점차 강조되는 과정에 놓여있었다.

1940년 여름 정책적으로 “노인, 정신질환자, 불치병자, ‘쓸데없이 밥만 축내는 이들’은 특별기관으로 옮겨졌고 거기서 죽었다”(전쟁범죄에 관한 유엔 보고서 중에서)
“자신의 건강을 위해 싸울 기력이 더 이상 없다면 이 투쟁의 세계에서 생존할 권리는 끝난다”(히틀러의 나의 투쟁 중에서)

대규모 실업과 빈곤으로부터 인간생활을 지켜내지 않으면 나치즘과 같은 악몽이 언제든지 재발해 사회를 지배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컸다. 기본적인 생존을 인권으로 보장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사회보장에 대한 권리는 생존권을 구체화하기 위한 기본적인 권리 가운데 하나이다.
이런 필요성에는 다들 공감했지만, 누가 얼마만큼 의무를 질 것인가에 대해서는 생각이 달랐다. 어떤 국가들은 주거권과 의료권을 헌법에 보장하지만 어떤 국가들은 사회보장의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그것에 대해 국가가 비용을 지불하거나 의무를 져야 하는 것으로 해석되길 꺼려했다. 결국 선언에는 사회보장의 의미가 무엇이며 누가 얼마만큼 책임져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 얘기는 없다. 사회보장이라는 단어는 그것 자체가 의미를 가지거나 목적이 될 수 없는 것이고, 사회보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나타내는 구체적 목록과 함께 있어야 그 의미가 규정된다. 선언에서 우리는 간접적으로 ‘의식주, 의료, 필수적인 사회서비스’를 통해 그 의미를 짐작할 뿐이다.
선언 내에서도 22조에서 말하는 사회보장과 25조에서 말하는 사회보장의 의미는 다르다. 22조의 사회보장은 막연하지만 넓은 의미의 권리, 즉 ‘인간존엄성과 인격의 자유로운 발전을 위한’ 권리를 말한다면, 25조의 사회보장은 ‘최소한의 예시목록’으로서 실업, 질병, 장애, 노령 등의 특정상황에서 인간존엄성을 보장하기 위해 어떤 걸 고려할 수 있는지를 얘기하는 것이다.

“자선이 사회적 제도로서 완전히 무력하다는 것이 증명되고 있는 때에 자선의 방법에 의하지 않고 질병, 불충분한 임금, 실업 등으로 말미암아 대다수 선의의 노동자들을 빠져나올 수 없는 밑바닥에 가두는 것과 같은 부당한 비참을 없애야 하는데도 그를 위한 대책이 마련되고 있지 않다. 우리는 피부조자가 아닌 평등한 자가 되기를 원하며, 시혜를 배척하고 정의를 바라는 것이다…”(프랑스 노동자 60인 선언, 1864)

사회보장에 대한 ‘권리’란 예전 시대의 구빈이나 자선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구빈차원의 사회부조에서는 수급자의 권리를 부인하고, 베풀어준다는 은혜성과 그에 따른 굴욕적 조건을 달았다면 권리로서의 사회보장은 다르다. 개인의 잘잘못이 아니라 이 체제 속에서는 ‘어쩔 수 없는’(세계인권선언에서의 표현은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의”) 생활 곤궁이나 불능상태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구조적 문제를 인정한 속에서 사회보장의 권리가 인권으로 구체화된 것이다. 이 권리는 개인의 기본적 인권이기 때문에 수급자의 기여에 의존하지 않고 공적 부담으로 이뤄지는 게 당연하다. 그리고 권리이기 때문에 구빈의 차원을 벗어나 법적 권리로 인정하는 단계로 발전한 것이고, 사회는 자기 내부에서 발생하는 위험으로부터 구성원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회권의 구체적 내용은 선언 23-27조에 들어있다.

글쓴이 : 류은숙(인권연구소'창' 연구활동가)

세계인권선언 제19조

모든 사람은 의견과 표현의 자유에 관한 권리를 가진다. 이 권리는 간섭받지 않고 의견을 가질 자유와 모든 매체를 통하여 국경에 관계없이 정보와 사상을 추구하고, 접수하고, 전달하는 자유를 포함한다.

‘화씨 451’이란 미래 공상 소설이 있다. 이 소설 속 시대의 사람들 대다수는 자기들 집의 방마다에 있는 커다란 TV 화면으로 지루하고 시시한 드라마를 보면서 상당 시간을 보낸다. 책을 읽는 극소수의 사람들은 처형당한다. 국가가 고용한 소방관의 임무는 모든 책을 추적해서 불태우는 것이다. 온도를 따질 때 섭씨와 화씨가 있는데, ‘화씨 451’이란 이 책의 제목은 바로 종이가 불타는 온도를 말한다. 책을 읽는 사람은 체포되어 투옥되고 처형된다.
소설의 주인공은 소방관인데 자기가 태워버려야 할 책을 읽으면서 운명이 바뀌게 된다. 결국 당국으로부터 도망칠 수밖에 없고, 시골에 숨어사는 지하 집단 속에서 피난처를 구하게 된다. 이 지하집단은 문학 유산을 유지하는 역할을 맡고 있는데, 즉 세계 고전 문학의 일부 또는 전체를 각자 맡아서 외우는 임무를 나눠 갖고 있다. 간단한 줄거리지만, 역사상 실제 벌어졌던 표현의 자유 억압의 성격을 잘 드러내고 있다. 소설이 쓰인 시기가 미국에서 매카시즘이 판친 1950년대였기에 더욱 그렇다.

책이 불타는 온도 화씨 451도

작가 오스카 와일드는 “자유(freedom)의 상실이 자유(liberty)의 대가”라 했다. 각 시대는 그것만의 지배적인 세계관을 갖고 있고, 그 세계관이 표현의 자유의 한계를 정하곤 했다. 의견과 표현을 승인할 때는 ‘의견’이라 불렀지만, 지배적인 세계관이 그것을 싫어할 때는 ‘이교, 이단, 반역’ 등으로 불렀다. 그래서 표현의 자유의 역사는 진정한 자유를 얻기 위해 목이 잘릴 수 있는 위험을 무릅쓴 자유 상실의 역사라 할 수 있다.

표현의 자유를 외치는 사람들은 항상 소수자로 인식되고 소수자 지위가 될 위험을 무릅쓰고 더 큰 목적을 성취하리라 생각되는 것을 위해 기꺼이 희생했다. 그렇기에 표현의 자유는 다른 자유들과 인권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지표가 됐다. 흔히 표현의 자유가 부정될 때는 ‘뭔가 더 큰 폭력과 독재의 위험이 닥치리라’는 전조인 것이다.

인권에서 중시하는 자유가 세상의 모든 자유를 다 긁어모은 것은 전혀 아니다. ‘뭐든지 내 맘대로’식의 자유도 아니다. 인권에서 옹호되는 자유는 모든 사람의 권리 존중과 어울릴 수 있는 자유이다. 그래서 많고 많은 자유들 중에서도 아주 특수한 자유들만이 인권의 목록에 올라있다. 각자의 자유를 일종의 선하고 바람직한 목적을 위해 특정하여 구체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그런 자유가 인권으로서의 자유이다. 의견과 표현의 자유가 바로 그런 자유이다.

세계인권선언은 표현의 자유가 전체주의의 첫 번째 표적이라는 역사적 교훈을 배경으로 시민들이 정부와 국가들을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에 근거한 것이다. 부정적인 측면만 생각한 것은 아니다. 표현의 자유는 단지 억압을 반대하는 것에 관한 것이 아니라 좋은 거버넌스의 기초이며 전 사회의 문화적 풍요를 능동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권리라고 봤다. 그래서 19조는 ‘정보의 자유’로서의 표현의 자유 또한 강조하고 있다.

정보의 자유로서 표현의 자유

정보와 언론의 자유가 유엔헌장에는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았지만 그 중요성은 유엔창립을 위한 샌프란시스코 회의의 토론에서 분명히 드러났다. 유엔은 1946년 제1차 총회 결의안에서 정보의 자유를 기본적 인권으로 선포하고 유엔이 존중하는 기타 모든 자유의 초석이라 했다. 덧붙여 정보의 자유에 관한 유엔회의를 가질 것을 경제사회이사회에 요청했다.

정보의 자유에 관한 유엔회의는 1948년 3월과 4월 사이에 제네바에서 열렸으나 전후 냉전 속에서 회의의 분위기는 아주 정치적이었다. 한쪽은 정보의 ‘자유로운 유통’에 초점을 두고 다른 한쪽은 ‘균형 잡힌’ 정보의 흐름과 정보의 교환을 주장했다. 이후로도 국제사회는 의견과 표현, 정보의 자유 개념을 다듬는데 큰 어려움을 겪었다. 그 후로도 오랫동안 유엔 총회 의제에 정보의 자유에 관한 국제협약의 초고가 등장했지만 어떤 결론에도 이르지 못했다.

세계인권선언 19조에서 부딪친 문제는 표현의 자유 제한에 관한 것이었다. 소련 측은 “미국 언론과 유럽의 모방적인 언론이 침략정책을 옹호해왔으며 심리전을 수행해왔다. 이들 언론은 국내에서는 민주세력을 분쇄하고 다른 국가들을 위협한다”면서 ‘침략의 선전’을 위한 표현의 자유는 허용될 수 없다고 했다. 소련안은 부결됐다. 통제되는 언론을 만들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19조에는 어떠한 권리의 제한요소도 붙지 않았다.

선언 이후 만들어진 시민․정치적 권리규약에는 “전쟁을 위한 어떠한 선전”이나 “차별, 적의 또는 폭력의 선동이 될 민족적, 인종적 또는 종교적 증오의 고취”는 “법률에 의하여 금지된다”는 규정이 들어갔다. 여기서 ‘전쟁’이란 단어의 의미를 정의하지는 않았지만, ‘침략전쟁’의 의미로 해석되고 있다.

그밖에도 규약에는 국가안보, 공공질서, 공중보건, 도덕 등의 제한 요소가 들어갔는데 하나같이 정의하기가 어렵고 권리침해에 오․남용될 소지가 큰 개념들이다. 이에 국제법률가 위원회는 이들 제한 규정을 해석하기 위한 회의를 갖고 1984년 ‘시라쿠사 원칙’(Siracusa-principles)을 채택했다. 또한 1995년에는 국제법 전문가들이 ‘국가안보와 표현의 자유 및 정보접근에 관한 요하네스버그 원칙’을 채택했다. 여기서 기본 원칙은 "누구도 자신의 의견이나 신념으로 인해 어떠한 강제, 불이익이나 제재를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고 "표현의 자유에 대한 권리의 평화적인 행사는 국가안보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되어서는 아니 되며, 어떠한 규제나 형벌도 과해져서는 아니 된다"는 것이다. 흔히들 금기시 여기는 '정부를 바꾸자는 표현, 국가나 국기를 모욕하는 표현, 징병반대, 전쟁반대' 등의 표현도 "국가안보에 대한 위협이 되지 아니하는 표현"이다. 이런 걸 다 제하고도 제약할 의사표현이 있다할 경우라도 정부가 지켜야 할 전제조건과 정부가 져야 할 입증책임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반대자에 침묵 강요는 안 돼

국제사회의 최근 논의와 관련하여 ‘의견과 표현의 자유 권리보호와 증진에 관한 유엔특별보고관(Ambeyi Ligabo)이 올해 초 발표한 보고서 내용을 살펴보자.

보고관은 ‘명예훼손, 중상, 모욕’ 혐의가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는 현상에 대해 크게 우려했다. 명예훼손, 중상과 모욕의 혐의가 공적 인물, 특히 국가 당국으로부터 기인할 때는 어떠한 형태의 사전 검열도 정당화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명예훼손은 개인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지 ‘국가정체성, 종교, 국가 상징, 기관, 국가의 수장’ 등 주관적 가치나 제도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했다. 명예보호를 명목으로 탐사 저널리즘을 억압하고 비판을 침묵시켜서는 안 된다.

특별보고관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제한에 대해 조건을 언급했다. 첫째 제한은 법으로만 수립되며, 둘째 그 법은 정당한 것으로 인정된 목적을 추구해야 하며, 셋째 목적의 성취에 비례하는 것이어야 한다. 어떤 유형의 제한이건 사전 검열을 정당화해서는 안 되며, 비판을 제한하거나 반대자를 침묵시키기 위해 이용돼선 안 된다는 것이 핵심이다.

그런데 예방 구금을 하고, 언론인의 소득에 부합되지 않는 과한 벌금을 부과하고, 언론자격의 유예, 미디어 송출의 유예 또는 폐쇄 등의 조치를 취하는 것은 비례의 원칙에 맞지 않는다. 형사법적 명예훼손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정당한 제한이 아니다. 모든 형사법적 명예훼손은 철폐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특별보고관이 특히 촉구한 것은 인터넷에서의 의견과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는 조치의 확대이다. 특히 웹사이트 투고자와 블로거들에게 다른 유형의 미디어와 같은 수준의 보호가 제공돼야 한다고 했다.
특별보고관의 결론은 간단하다. “지속적인 사상의 대결은 민주사회의 디딤돌이다.”

표현의 자유는 상호교통의 권리이자 의무

(아래 내용은 전규찬 한국예술종합대 영상원 교수의 인권연구소 ‘창’ 강좌 내용 중 일부를 재구성했다. 전교수는 표현의 자유를 ‘교통(communication/intercourses)의 권리’라 표현했다.)

세계인권선언 18-20조는 떼어낼 수 없는 한 덩어리이다. 앞서 살펴본 18조는 생각의 자유(사상․양심의 자유)를, 19조는 표현의 자유를, 20조는 생각과 표현을 타인과 더불어 함으로써 사회를 만들어내는 것(집회와 결사의 자유)을 말한다. ‘생각+표현+행동’의 권리라 할 수 있다.

인간 간의 상호교통 없이 사회가 존속할 수는 없다. 그런 면에서 표현의 자유는 단순히 개인의 자유일 뿐 아니라 타자와 만나고 사회를 만들어낼 수 있는 의무이기도 하다. 따라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은 개인을 억압하는 것일 뿐 아니라 사회의 붕괴와 해체를 획책하는 야만이다.

말하거나 쓰는 표현은 막을 수 있어도 생각하는 자유는 빼앗을 수 없다고들 흔히 말하지만 그렇지가 않다. ‘표현’을 통해 다른 사람과 상호교통하지 않는 생각이 잘될 리도 없고 정확할 리도 없다. 표현을 통해 자유롭고 공개적인 검토가 가능해야 진짜 자유로운 생각이라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자유롭고 공적인 표현의 자유를 박탈하는 권력은 생각할 자유 또한 박탈하는 것이다.

‘생각․표현․행동’의 자유를 합친 것이 언론의 자유다. 언론은 생각을 말로써 논한다는 것이며, 세계인권선언에서 이들 권리를 모든 사람의 권리로 얘기한 건 곧 인간 자체가 언론인이란 뜻이다. 그래서 언론하면 무슨 신문과 방송부터 떠올리는 것은 우리가 언론으로부터 소외됐다는 증거다.

소위 ‘찌라시’라고 불리는 신문들은 언론이 아니다. ‘매체’라고는 할 수 있다. 매체인 건 맞는데 논하는 것, 즉 토론을 방해하기 때문에 선전매체이지 언론이 아니다. 오직 우리가 대화를 할 때에야 선전은 멈춘다.

표현의 자유는 상호대화이고 교통이다. 권력자가 ‘소통의 부재’를 불평하는 것은 그가 말의 의미를 몰라서이다. 교통은 상호적으로 더불어 하는 것인데, 소통은 ‘네가 오해했다. 오해를 풀어라’고 설득하는 것이다. 자유로운 의사교통을 하는 사람들이 의견교환을 통해 공개적으로 잘못을 검증했고 비판을 했다. 공동행동에도 나섰고 대안도 제시했다. 언론의 자유를 제대로 구현한 것이다. 그런데 그걸 받아들이지 않고 ‘소통의 부재’를 탓하고, 의사교통을 방해하기 위해 언론 때려잡기에 나섰다.

언론의 자유는 진실을 향한 용기, 두려움 없는 발언이다. 발생할 수 있는 온갖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권력이 싫어하는 진실에 기초해 권력을 솔직하게 비판할 의무를 수행한다. ‘PD수첩’이 이런 역할을 하지 않았다면 권력과 충돌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 모두가 진실이라 우겨 말할 때 아니라고 말할 사람 누가 있겠소”에 화답하는 것은 생각․표현․행동의 자유를 가진 인간의 권리이자 의무이다.

작성일자 : 2008. 11. 19

글쓴이 : 류은숙(인권연구소'창' 연구활동가)

세계인권선언 제 18조

모든 사람은 사상, 양심 및 종교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 이러한 권리는 자신의 종교 또는 신념을 바꿀 자유와 선교, 행사, 예배, 의식에 있어서 단독으로 또는 다른 사람과 공동으로, 공적으로 또는 사적으로 자신의 종교나 신념을 표명하는 자유를 포함한다.

사상․양심․종교의 자유의 의미

로댕의 유명한 조각 작품, ‘생각하는 사람’을 떠올려보자. 턱을 괴고 생각에 잠긴 모습이다. 그런데 이런 광경은 어떤가? ‘생각하는 사람’에 철창을 두르는 것이다. 철창 안에 갇힌 생각하는 사람을 한국 사회는 ‘사상범’이라 불러왔다. 즉, 생각하는 사람이 범죄자가 되는 것이다. 인권단체에서는 ‘양심수’(prisoner of conscience)란 말을 써왔지만, 생각 때문에 갇혔다는 것에서는 마찬가지다.
사상․양심․종교의 자유는 생각하는 사람에게 철창을 두르는 일체의 간섭과 억압으로부터의 자유를 말한다. 이 간섭과 억압은 국가권력으로부터 올 수도 있고, 돈․광고․인사 등의 불이익을 갖고 협박하는 기업이나 재단으로부터 올 수도 있고 절대․유일의 진리임을 내세우는 종교로부터 올 수도 있다.
그럼, 외부로부터 억압과 강제만 없으면 자유로운 걸까? 그렇게만 생각하면 자유가 너무 작고 초라해 보이지 않는가? 자유는 개인과 사회의 진보를 위한 더 적극적인 의미도 가진다. 생각하는 자유, 옳고 그름을 따져보는 정신활동, 창조적으로 부정하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활동이 있어야 인간은 자신의 존엄과 가치를 지키고 발전시킬 수 있다. 나아가 그런 활동을 동료인간과 더불어 함으로써 더 나은 세상을 추구할 수 있다.

‘사상’, ‘양심’, ‘종교’가 무엇인지에 대해 세계인권선언은 정의내리지 않았지만, 이에 대한 정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사상․양심․종교’란 ‘세계를 향해, 사회를 향해 개인이 가질 수 있는 모든 가능한 태도’를 아우르는 말이다. 그것은 무슨 주의나 신념, 절대자에 대한 믿음 등 ‘자기 자신과 세상의 운명을 결정하기 위해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눈이고 힘’이다. 이것을 인권에서 목록으로 만든 것이 ‘양심의 자유, 종교의 자유, 학문의 자유, 언론․출판의 자유, 교육의 자유’ 등이고 이들을 아우르는 제일 폭넓은 개념이 ‘사상의 자유’라 할 수 있다.

정신활동의 자유는 신체활동의 자유와 마찬가지로 인간생활에 필수적이다. <혹성탈출>이라는 1960년대 영화가 있다. 우주인들이 지구로 귀환해보니 원숭이들이 지배하고 있고, 인간은 노예로 살아가고 있는 곳이었다. 그래서 우주인들은 자신들이 지구가 아닌 다른 혹성에 불시착한 것으로 착각한다. 하지만 알고 보니 그곳은 지구가 맞았고, 인간들이 그런 운명을 맞은 것은 ‘생각하는 능력’이 제거됐기 때문이었다.
우리 현실에서 인간의 ‘생각하는 능력’을 제거하려 드는 것은 검열과 통제, 위협과 폭력, 강요와 주입 등이다. ‘당신 생각이 불순해(삐딱해)!’라는 한마디가 얼마나 큰 파괴력을 지니며 ‘생각하지 말고 시키는 대로만 해!’가 얼마나 큰 무력감을 느끼게 하며, ‘그렇게 하면 재미없을 줄 알아!’가 얼마나 큰 공포를 느끼게 하는가.

공포를 느끼게 하는 한 마디

사상의 자유를 중히 여기는 사람들도 때론 영글지 못한 생각, 변변치 못한 생각, 도덕적으로 칭찬할 만한 게 못되는 생각은 허용해선 안 된다고 여길 때가 있다. 그런데 누가 그런 판단을 내릴 권한을 가질 수 있는가? 누구의 기준에서 변변치 못하고 부도덕하다는 것인지 잣대의 정당성을 확신할 수 없기 때문에 자유가 꼭 필요한 것이다. 자유로운 표출과 충돌과 논증 속에서 생각은 변화․발전하는 것 아닌가. 모자라고 틀린 것으로 여겨졌던 생각이 진주로 드러난 사례는 역사 속에 넘쳐난다. 알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 사실상 무지였고, 옳다고 여긴 것이 오류였음을 깨닫게 하는 자극은 인간 사회에 유익한 것이었다. 토론과 논증을 두려워하는 것은 사상․양심의 자유가 아니다.

사상․양심의 자유란 ‘거참 훌륭하네, 멋있네.’ 할 만한 양심만 갖는 자유는 아니다. ‘민주주의의 투사다, 사회주의자다’ 하는 식의 무슨 주의자만 갖는 것도 아니다. 예를 들어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둘러싼 오해를 살펴보자. 살상무기를 들 의무를 이행할 수 없다는 이유로, 평화와 종교에 대한 신념 때문에 병역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주로 얘기했기에 생긴 오해일 텐데, ‘군대에 가는 것은 비양심이고, 안 가는 건 양심이냐?’는 오해이다. ‘양심의 자유’에 따르면 굳이 군대를 가지 않아도 되는 재외동포가 애국심에서 일부러 자원입대하는 것도 양심이고, 살상무기를 들고 전쟁연습을 할 수 없다는 이유로 군대를 거부하고 감옥을 택하는 것도 양심이다. 또는 ‘나는 군대 같은 조직생활이 너무 무섭다. 나의 몸과 마음으로는 도저히 버틸 수 없을 것 같다. 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다’는 것도 양심이다.

“어떤 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할 때 내가 이렇게 하지 않고서는 내 인격의 존재가치가 허물어지고 말 것이라는 강력하고 진지한 마음의 소리”(대한민국 헌법재판소)에 따라 그리하지 않을 수 없는 게 양심의 자유다. 즉, 병역거부자들은 자신의 양심의 소리에 따라 그런 행동을 취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에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란 표현을 쓰는 것이지, 자신과 다른 의견의 양심은 비양심이라는 뜻이 결코 아니다.

다만 다양한 양심 중에서도 병역거부를 택한 양심은 ‘어떤 세계관, 주의, 신조’라 할 수 있는 것에 도달한 양심이라 할 것이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conscientious objection)란 용어는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 널리 채택하고 있고, 1987년에 유엔은 의무복무제를 택하고 있는 국가들에게 양심의 자유를 존중하여 사회봉사 등 다양한 형태의 대체복무를 도입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양심의 자유에 대해 있을 수 있는 또 다른 오해는 ‘그럼 뭐든지 내 맘대로, 내 식대로 하면 되겠네’이다. 자유가 중요하고 필수적이라는 말이 무조건의 절대적 권리라는 뜻은 아니다. 모든 사람의 권리를 위협하고 파괴할 자유는 인권에서 옹호하는 자유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기식대로 생각하고 자기식의 생활방식을 선택할 자유를 갖지만 인권에서 ‘자유’라 할 때는 그런 각각의 인간의 자유를 일종의 선하고 바람직한 목적을 위해 특별히 사용하는 걸 말한다. 그래서 모든 자유가 아니라 그중에서도 ‘사상․양심․종교의 자유’가 특별히 인권으로 표현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선하고 바람직한 목적’을 특정인(세력)이 정해놓고 강요해서는 안 된다. 자유가 추구해야 할 ‘선하고 바람직한 목적’이 무엇이냐에 대한 토론과 논증은 항상 열려있어야 하기에 사상․양심의 자유가 요구되는 것이다. 옳고 그름을 찾아내고 실현하는 것을 ‘사상․양심의 자유’는 열어놓고 하지만, 그걸 독단적으로 결정하고 강요하는 것은 ‘자유의 폐지’인 것이다.

사상의 자유의 조건

제우스신과 한 시골 사람이 함께 걸어가면서 하늘과 땅을 주제로 자유롭고 다정하게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제우스가 이 사람을 납득시키려고 애쓰는 동안 시골 사람은 묵묵히 귀를 기울였다. 그러다가 이 사람이 한 가지 의문을 내비쳤다. 그러자마자 제우스는 별안간 돌아서서 벼락으로 그 사람을 위협했다. 그러자 시골 사람이 말했다. “아! 제우스신이여, 이제 당신이 틀렸다는 걸 알겠어요. 당신이 벼락에 의지할 때 보면 당신은 언제나 틀립디다.”

사상의 자유는 ‘벼락’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즉 외부의 압력이나 강제를 받지 않고 자유롭게 만들어져야 내 생각이 된다. 불안하고 억압이 따르는 분위기에서 ‘예’라고 토해낸 것이 진정한 ‘예’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감옥에 가두는 식의 박해가 주종을 이뤘다면 요즘은 이윤의 논리를 강요한다. 과거 공안기관에서 전화를 걸어 ‘그런 식으로 글 쓰면 재미없습니다.’라고 하는 것과 요즘 자본가가 전화를 걸어 ‘연구비는 기대하지 마쇼’라고 하는 것 사이에는 억압의 방식이 다르다는 차이밖에 없다. 네티즌들이 인터넷에 올린 글로 수사를 받고, 그런 글을 게재한 사이트 운영자가 세무조사를 받는 것은 시대를 초월한 억압방식의 혼합으로 보인다.

또한 사상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은 힘센 권력기관만이 그런 것은 아니다. 소위 ‘상식’으로 여겨지는 다수의 가치관이 소수자, 이른바 아웃사이더를 억압하기도 한다.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벌떼같이 몰려 들여 초죽음을 만드는 일이 정보통신의 발달과 함께 더욱 흔해졌다. 사상의 옳고 그름은 다수결로 결정지어지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향한 열정과 두려움 없는 헌신을 통해서 증명되는 것 아닐까? 사상의 자유는 뜻이 같은 사람들을 위해서보단 “우리가 증오하는 사상을 위한 자유의 원칙”이라는 말은 의미심장하다. 빈부의 차이는 사회에 해가 되지만 사상의 차이는 해가 되지 않는다. 사상은 다양할수록 오히려 자양분이 된다.

사상을 드러내지 않을 자유도

또한 사상을 드러낼 것이 자유라면 드러내지 않을 자유도 마찬가지로 자유다. 가령 적극적인 집필 활동으로 권력을 비판하는 작가도 있을 수 있고, 권력에 아첨하는 구린 글들이 판칠 때 거기에 끼어 삶을 도모하느니 조용히 펜을 꺾는 작가도 있을 수 있다.
내 생각을 편견 없이 들어줄 사람들 앞에서는 자유롭게 드러낼 사상이지만, 그 사상을 이유로 나를 괴롭히려는 공안기구의 수사관 앞에서는 꼭 그럴 이유가 없다. “너, 그런 생각 하는 것 맞지? 다 알고 있는데, 왜 비겁하게 네 사상을 숨기고 그래?”라고 내 속을 훤히 안다는 식으로 나와도, “네 사상이 떳떳하면 밝혀야 하는 거 아니야? 못 밝히는 건 뭐가 구린 거 아냐”라고 아무리 을러대도 거기에다 내 사상을 고해바칠 이유는 없는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양심수들은 이런 협박을 많이 받았다. 그에 대해 한 양심수는 “내 마음속에 있는 것을 권력 앞에 게워낼 필요는 없다”고 했다. 강제로 사상을 따져 물을 권리는 없으며 대답할 의무도 없다.

사실, 자유롭게 생각할 권리, 내 마음 깊은 곳의 자유 자체가 그리 큰 문제가 될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이불 속에서 나 혼자 야광시계를 들여다보는 것과 커다란 들판의 암흑 속에서 야광시계를 꺼내들고 사람들에게 시간을 알려주는 일은 다르다. 진짜 어려움은 사상이 ‘표현’될 때, 사상이 ‘조직’될 때, 그리고 표현된 신념을 보호하기 위해 ‘행동’할 권리를 주장할 때 생긴다. 여기서 사상의 자유는 다른 인권과 결합된다. 즉, 표현의 자유, 집회․결사의 자유, 정치 활동의 자유, 학문․예술의 자유 등이다. 이들 자유와 사상의 자유를 분리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고, 함께 있어야 실현될 수 있다.

종교의 자유

사상․양심․종교의 자유가 나란히 말해지는 것에 대해 사람들은 처지에 따라 생각이 다르다. 무신론인 사람은 사상과 양심의 자유가 종교의 자유에 선행하는 것으로 보고, 아주 종교적인 사람들은 사상과 양심이 종교에 부수적인 것으로 본다.
어쨌든 인권의 탄생과 논쟁의 무대는 서유럽의 근대였고, 여기서 종교의 자유를 둘러싼 대립은 인권의 전개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근대 유럽의 종교․과학․정치혁명은 인간이 무엇이며 인간이 살아가는 정당한 사회질서는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을 격렬하게 바꾸었다. 그런데 이들 사회에서는 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세례부터 장례까지 인간의 모든 활동을 교회가 이끌었고, 기독교는 영원절대의 보편적 진리를 내세운 종교였다.

그런데 사회전반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가진 교회권력이 순기능만을 한 것은 아니었다. 정통으로 인정하지 않는 신앙은 이단으로 색출됐고, 지옥불의 심판에 앞서 현실에서 고문과 화형 등의 고통을 겪어야 했다. 이단 심문 법정과 종교 재판소는 공포 그 자체였고, 이교도란 이유로 유대인과 인디언에 대한 학살이 벌어졌고, 같은 기독교 내에서도 신앙의 방식을 둘러싸고 참혹한 전쟁이 벌어지고, 수십만 명이 종교 때문에 망명하고, 책이 불태워지는 일 등이 벌어졌다. 가령 1600년대에 ‘지구가 돈다’고 생각한 갈릴레오는 종교 재판소에서 자신의 신념을 철회해야 했고, 그의 책은 오랫동안 금서목록에 올라 있다가 1988년에서야 로마교황청이 갈릴레오의 명예회복을 선언했다. 신교도를 억압하기 위한 법률은 심지어 자녀들에게 부모의 종교에 대해 당국에 고해바칠 것을 요구했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의 전통교의에 도전하지 않고 종교의 자유를 외치지 않으면서 인간이 ‘내면의 자유’를 갖는다는 건 가능하지 않았다. 따라서 근대 서구에서는 종교의 자유가 인간의 모든 정신활동의 자유의 선구자로 나설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은 감히 질문하지 못했던 진리에 대해 새롭게 생각해보길 원했고, 알기 위해 대담해지려 했다. 근대 서구를 풍미했던 ‘계몽’이란 말은 ‘빛’의 은유법이다. 관습, 미신, 편견에 사로잡힌 인간정신의 어두움을 타파할 수 있는 ‘빛’에 대해 갈구하는 사람은 정치로부터 종교까지 모든 것에 대한 대안을 생각할 수 있었다.

종교적 관용과 자유의 차이

그러나 종교에 대한 투쟁이 처음부터 개인의 종교의 자유를 획득한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 확립된 것은 ‘종교적 망명’의 권리였다. 이것의 전제는 ‘국가가 국교를 선택할 권리’를 갖는다는 것이었다. ‘군주가 선택한 종교가 맘에 안 들면 떠나는 것은 봐주겠다. 하지만 떠나지 않을 경우 불이익을 감수하고 살 각오를 하라’는 것이 종교적 관용이라는 것이었다.
이런 종교적 관용은 자유와는 분명 다른 것이다. 주는 사람 맘이기 때문이다. 관용해주는 권력은 관용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에, 관용이나 불관용이나 그게 그거인 것이다. 어떤 의견, 신앙 또는 종교적 행위는 승인해주고, 다른 것은 용인도 승인도 하지 않는 국가정책이 종교적 관용이었다. 관용은 특정 종파에게만 허락되거나, 설령 신앙 행위가 관용되었다 할지라도 특정 종파의 사람은 공직에 취임하거나 특정 직업을 가질 수 없었고 대학에서 학위를 받을 수도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박해가 오히려 조직화된 종교에 대한 회의를 크게 만들어갔다.
‘사람의 영혼이 구원받느냐 아니냐는 국가의 권한이 아니다. 진실한 신앙에 대해서는 신과 나 사이에서만 알 수 있는 것이다. 국가의 임무는 사람들의 사회적 이익을 확보하고 유지하는 데 있는 것이지, 정부의 기능인 형벌의 부과라는 외면적인 힘으로 사람들의 내면적 확신을 없앨 수도 없고 생기게 할 수도 없다. 박해는 많이 해봤지만 무고한 피만 흘리지 않았는가?’
이런 회의는 조직된 교회를 멀리하는 대안 활동들로 옮겨졌고 사람들은 점점 더 종교를 공적이고 집단적인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것으로 여기게 됐다.
이제 비로소 ‘종교적 관용’은 인권이라 할 수 있는 ‘종교적 자유’로 나아가게 된다. 이제 국가와 교회는 분리되고, 국가가 종교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선택할 권리를 갖는다. 따라서 종교의 자유는 국가권력이 왈가왈부할 수 없는 개인의 내면적 자유가 된 것이다.

종교 갈등으로 서로 피를 흘릴 때 사상가들은 이렇게 호소했다.
“신의 이름으로 만행을 자행하지 말고 종교적 관용의 정신을 견지하라.”
“인류애와 종교 자유에 입각하여 폭력을 자제하라.”
“모든 인간은 종교와 상관없이 권세, 존엄, 권위, 위엄에 있어 모두 하나이고 동등하다!”
몇백 년 전의 이런 외침들은 종교 갈등이 세계 곳곳에서 화약고를 이루고 있는 오늘날에 더 가깝게 느껴진다.

특정 종교 강요는 인권침해

그런데 근대 서구에서 확립된 개인의 종교적 자유란 어디까지나 ‘기독교’란 테두리 내에서, 개별 시민과 국가 권력 간의 관계에서 생각된 것이었지, 이교도나 무신자에 대해서까지 너그러웠던 건 아니었다. 따라서 다문화성을 증진시키려는 오늘날, 종교의 자유를 생각할 때는 예전보다 더 단계를 높일 필요가 있다.
가령 많은 비기독교 문화권에서는 기독교의 공격적인 선교활동과 개종 압력을 인권침해로 여긴다. 종교를 갖지 않을 권리도 있으며, ‘공공영역에서의 모든 개종 권유로부터 보호받아야 한다’는 것이 오늘날의 종교의 자유의 의미다.

흔히 자기네 종교에서 개인이 벗어나려 하는 것은 억압하면서 타종교에 대해서는 그런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 타종교 속에서 그 종교의 관행을 거스르거나 벗어나려는 개인의 선택을 향해서는 종교의 자유라고 옹호하면서, 타종교의 신도들이 집단적으로 자신들이 갖는 신앙의 의미를 드러내 보이면 ‘종교 근본주의’라고 비난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일이 국제적인 종교충돌로 비화되곤 한다.

종교의 자유는 국가권력으로부터의 자유라는 면에서는 개인의 권리이지만, 같은 종교로 결연한 사람들이 그 속에서 통합된 느낌을 가진다는 점에서 집단적 권리이기도 하다. 종교인은 개인으로나 집단으로나 자신들의 명예와 이미지를 언론, 공공당국, 타문화로부터 존중받을 권리를 가진다. 따라서 국제인권기준에서는 ‘특정종교에 대해 종교적 증오를 고취시키는 것’은 종교나 신앙의 표명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본다.

사상의 자유를 위하여

사상의 자유의 역사는 불의에 대한 저항 때문에 이어져왔다. 권력자들은 저항의 원천이 되는 자유로운 사상과 자신들의 본질을 파헤치는 논증의 힘을 두려워하기 마련이다. 갖은 수단으로 사상의 자유를 못살게 굴었지만, 박해는 회의를 부르고, 회의는 꿈쩍하지 않을 것 같은 철옹성을 무너뜨려왔다.
그런데 사상의 자유의 적은 박해라는 확실한 얼굴만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강제가 아닌 척, 조용하게 은밀히 다가오기도 한다. ‘사상은 싫어, 이데올로기는 싫어’, ‘너무 이데올로기적이잖아’ 식의 거부도, ‘이데올로기를 벗어나자’는 식의 주장도 그 자체로 하나의 이데올로기이다.
사회공동체의 어떤 요구에 대해서도 ‘난 몰라, 난 싫어’를 외치며, 국가권력의 간섭만이 아니라 공적인 것을 위한 집단과 결사 일체를 거부하는 극단이 나타날 수도 있다. 획일성에 반발하는 것과 공적인 것을 위한 결연을 구분할 줄 모른다. 자유는 개성의 구현을 위한 필수품으로 여기면서 자유를 지키기 위한 집단과 결사 자체를 부당한 간섭이나 귀찮은 것으로 여긴다면 형식적으로는 자유이지만, 선택다운 선택을 할 수 없는 자유롭지 않은 상황을 만들 수 있다.

작성일자 : 2008. 11. 19

글쓴이 : 류은숙(인권연구소'창' 연구활동가)

세계인권선언 제17조

1. 모든 사람은 단독으로는 물론 타인과 공동으로 자신의 재산을 소유할 권리를 가진다.
2. 어느 누구도 자신의 재산을 자의적으로 박탈당하지 아니한다.

재산권은 오해가 많을 수밖에 없는 권리이다. 세계인권선언 17조를 대하는 사람들은 처지에 따라 다른 반응을 보일 것이다. “거봐, 재산권은 세계인권선언도 보증하는 당연한 인권이쟎아. 그런데 왜 우리보고 뭐라고 그러는 거야?”라고 소위 ‘강(남)부자’들이 뛸 듯이 좋아할 수 있다. 반대로 “뭐, 재산을 인권으로 인정한다고? 그럼 재산의 횡포에 시달리는 우린 어쩌란 말이야, 세계인권선언이라구? 뭐 이런 엉터리가 있어?”라고 펄쩍 뛸 수도 있다.
이런 반응이 나오는 것은 ‘재산’에 대한 생각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고, 저마다 ‘재산권’에 대해 뭔가 단단히 착각하거나 오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 소득과 불로 소득의 경쟁?

재산권은 ‘재산’과 ‘권’이라는 말로 이뤄져 있다. 그런데 재산이 뭘까? 재산이 뭔지에 대해서 어떤 합의를 하느냐는 사회에 따라 다르다. 그 합의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구성원들이 넉넉한 삶을 이루기도 하고 ‘모 아니면 도, 네가 아니면 내가 죽는다’ 식의 삶이 펼쳐지기도 한다.
도대체 재산이 뭔가?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사람, 예금 통장이나 적금 통장이나마 유지하는 사람, 주식·증권·배당금·신탁·채권·선물·옵션·스왑·펀드·주식 등을 이해하고 굴릴 수 있는 사람이 갖고 있는 ‘재산’이 같을 수 있나? 일한 시간만큼 임금을 받는 사람이 가진 재산과 누군가의 생사를 갈랐다 붙였다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진 재산이 같을 수 있나? 토지소유를 중심으로 한 농경사회와 고도로 발달한 산업사회에서의 재산이 같을 수 있나?

어쨌든 사람들이 흔히 받아들이기 쉬운 재산은 피땀 흘려 일군 결실일 것이다. 반대로 짜증스러운 재산은 부동산 투기 등으로 만든 불로소득일 것이다. 운동경기도 체급을 맞춰서 하는데, ‘노동 소득’과 ‘불로 소득’이 같이 경쟁한다는 건 정말 이상한 일이고, 두 재산을 같은 기준으로 생각하는 건 좀 이상하다. 한편 재산권은 물(物)에 대한 권리라기보다는 사람간의 관계를 말한다. 인간생존에 필수적인 요소에 대한 타인의 접근을 차단하고 타인의 삶을 휘두를 수 있는 권력이 재산권이다. 아무도 지배하거나 수탈하지 않는 재산권과 지배하는 재산권은 엄청나게 다르다. ‘재산권’을 말할 때 이런 성격을 구분하지 않고 한통속으로 취급하여 ‘인권’이라 할 수는 없다. 재산권을 인권이라 할 때는 ‘조건’이 필요하다.

재산권은 인권의 선배 중에서도 최고참에 해당하는 권리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언제나 그렇다거나 그래야만 한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기에 재산권이 인권의 초기 역사에서 주연 노릇을 할 수 있었다는 말이다.
재산권이 인권의 선두주자가 된 배경은 사람의 권리와 의무란 것이 누구의 침상에서 태어났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신분제 세상이었다. 악역은 제 영토의 모든 것은 제 것이라고 우기는 절대 권력이었다. 신분질서와 절대 권력에다가 유일절대의 진리로서의 종교가 지배하는 사회 속에서 ‘나의 것’, ‘나의 생각’, ‘나의 행동’의 ‘자유’를 주창하는 것은 세상을 바꾸는 일이었다.

인권의 최고참

절대 권력은 걸핏하면 돈을 걷고 거부하면 잡아들여 주리를 틀었다. 생필품 등의 거래를 총애하는 신하에게만 독점시키고 무역도 그렇게 했다. 새로 등장한 신진세력도 처음엔 권력의 비위를 맞추어 그 독점의 대열에 낄 수만 있으면 잘 나갈 수 있었고 그렇게 버티려고 했는데 도무지 앞날을 계획할 수가 없다. 무소불위의 권력은 그만큼 변덕도 심했기 때문이었다. 예측 가능한 정치와 경제구조가 절실했다. 불가침의 절대적 교리 앞에서 합리적 사고는 탄압 받았다. 이런 것이 다 자유롭게 재산을 추구하는데 방해거리였다.

재산에 대한 인정 요구는 인권 사상의 모태가 되고 다른 인권의 성장을 자극했다. 모든 인간은 국가 권력 이전에 생명, 자유, 재산을 가졌다고 외쳤다. 이건 사회나 국가가 준 권리가 아니라 자연적 권리고 인간에게 본래 고유한 것이라 했다. 현실속의 질서가 그렇지 않으니 옛날 말씀도 끌어들이고 종교상의 교의도 끌어들이고 그게 싫으면 과학적으로 논리를 세워 ‘모든 인간은 자유롭고 평등하다’는 주장을 펼쳤다. 자유롭다는 것은 스스로의 삶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소유권이 없이는 이런 자율성을 꿈꿀 수 없다. 내 생명이 담긴 내 몸이 한 노동으로 재산을 일구었다. 그런 재산에 함부로 손대는 것은 곧 내 몸에 손대는 것과 같다. 내 몸과 내 소유, 어느 것도 함부로 손댈 수 없다. 내 몸과 소유에 대해 공격해오면 저항은 정당하다. 저항은 맨 입으로 하는 게 아니다. 자유로운 생각과 표현, 정치적 행동이 필요하다.

종교적 자유를 모태로 한 사상의 자유는 독선적이고 전제적인 정치 체제에 맞서는 힘이 됐을 뿐더러 자신을 유일한 진리로 여기는 종교적 권위를 깨고 인간성의 해방과 과학기술의 발전을 도왔다. ‘생명, 자유, 재산’은 삼위일체가 되어 '인신의 자유, 사상·양심·종교의 자유, 소유의 자유'라는 인권으로 피어났다.
이런 이유로 신분제 사회에서 절대왕권과 특권층에 맞장 뜬 인권의 요구가 ‘재산을 존중하라’고 할 때 그 말은 ‘내 인격을 존중하라’는 말과 같았다. 재산권의 요구는 개인을 국가로부터 해방시켰다. ‘국가는 개인의 재산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역할에 머물러야 하고, 자유로운 시장에 간섭하면 안된다’가 핵심 요구였다. 마찬가지로 ‘사상·언론·종교 등의 자유 시장에도 국가는 일체 끼어들거나 방해해서는 안된다’고 못박은 점에서 근대의 인권을 ‘국가로부터의 자유’라 하는 것이다.

재산권의 변화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 소유는 인간에게 고유한 것이고 노동의 성과이며 개인의 존엄과 자유를 담고 있기에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이 재산권을 정당화한 논리였다. 하지만 근대시민혁명을 통해 불가침의 권리로 자리 잡은 재산권은 배타적이고 독선적인 것으로 변해갔다. 사람들은 예전의 절대군주의 모습보다 더 무서운 게 자본가라고 느꼈고, 대다수 사람들의 처지는 자유와 평등으로부터 멀어졌다.

근대시민혁명의 이론가들은 노동의 결실로서 소유권을 옹호했지만, 사실상 진짜 밑천이 될 만한 재산은 엄청난 폭력을 통해서 모였다. 땅에서 농사짓던 농민을 유랑민으로 내몰았고, 가난한 이들을 가두고 부려먹거나, 3세계를 식민지로 수탈하는 등 부정의의 역사는 넘쳐났다. 가난한 이는 자립할 수 없는 인간이라며 투표권조차 주지 않았다. 식민종주국 백인들의 재산권은 자연적 권리라면서 3세계와 그 주민들을 공격·수탈하면서는 재산권 침해라 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들이 돌봄으로써 재산의 가치가 높아진 것이라 우겼다.

절대왕권에 맞서 개인의 인격과 존엄성을 주창할 때의 재산권이 제도화되자 재산없는 대다수 사람들의 ‘무’권리를 당연시하는 근거가 되어 버렸다. 재산이 법과 제도로 보호된다는 것은 곧 사회가 보호받을 재산의 범위와 한계를 정한다는 뜻인데, 재산을 여전히 사회와 국가이전의 ‘자연적’ 권리로 떠받드는 것은 이상하다. 타인의 인격과 자유를 해치고 대다수 사람들의 기본적인 생활요구를 압박하는 재산권이라면 인권의 범주를 벗어났다고 봐야 한다. 인간존엄성과 자유에 대한 존중이라는 재산권의 본래 의미를 찾아야 할 것이고, 현실에서 재산의 불평등으로 말미암아 폐해가 심각하다면 그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마땅하다.

신성불가침성과 국가 이전의 자연권이라는 레테르는 이제 재산권에 어울리지 않는다. 생존권보장, 인권보장을 위해서 보호받아야 할 재산의 범위를 정하고 재산권자의 내맘대로의 영역에 제한을 가하는 것은 사회가 당연히 취해야 하는 조치이다.

재산권엔 친구가 필요하다

‘프랑켄슈타인’의 아주 옛날 흑백영화판을 보면 “친구가 필요해”라고 애절하게 말하는 장면이 있다. 인간과 생존과 존엄에 대한 고려 없는 재산권은 인권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는 프랑켄슈타인이고, 친구를 필요로 하고 가질 때에만 인권의 속성을 유지할 수 있다. 여기서 친구라 함은 ‘노동기본권, 주거권, 건강권, 교육권’ 등의 인권을 말한다.

선언 17조는 무엇이 재산이고 무엇이 재산에 대한 자의적 박탈인지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는데, 이걸 알 수 있는 방법은 다른 인권과의 관계 속에서 읽는 것이다. 선언은 타인의 노동을 착취하거나 타인의 건강에 위험에 빠뜨리거나 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고, 적절한 휴식의 권리 보장, 적절한 생활수준에 대한 권리 등을 보장하고 있다. 재산권은 이런 인권과의 관계 속에서 내재적 제약을 받는다.

재산권의 실현이 단지 재산을 획득할 유리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입지를 강화하고, 그런 기득권을 보호하는 걸 의미한다면, 그것이 실정법으로 아무리 강력하게 보장돼 있다 할지라도 보편적 인권으로 정당화하긴 어렵다. 재산권은 사회적 권리를 포함하여 여타 권리의 효과적인 향유를 방해하는 것이 아니어야 한다. 이런 재산권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유지하면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조건을 말하는 것이고, 그 권리의 보장 자체만으로는 타인의 자유와 권리에 어떠한 피해자 부담도 주지 않는다는 모든 인권에 보편적인 속성을 가진 재산권이다.

선언 17조의 구상

선언 17조를 구성하고 있는 생각은 크게 세가지이다. 첫째, 재산의 소유는 인간 생활에 기본적인 것이다. 둘째, 재산은 단독으로뿐만 아니라 타인과 공동으로 가질 수 있다. 셋째, 재산을 자의적으로 박탈당하지 않는다.

선언을 만든 사람들의 재산에 대한 생각은 이러했다. 인권으로서 생각한 재산의 의미는 공익을 침해할 수 있는 ‘사적(private) 소유’가 아니라 ‘개인적(personal) 소유’였다. 즉 사는 집, 소지품, 가구, 프라이버시를 보장받는 통신 등에 대한 개인적 소유를 생각한 것이지,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의 소유자가 될 권리를 인권으로서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지금의 선언 문구는 그렇지 않지만, 토론 중에 사용된 문구에는 “존엄한 삶과 인간 존엄성에 필수적인 물질적 재화에 대한 권리”, “모든 사람은 존엄한 삶에 필수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고, 개인과 가정의 존엄성 유지를 돕는 그런 재산을 가질 권리를 가지며”라는 것이었다.

그러다 어느 정도까지의 개인 소유가 기본적 권리인지, 개인 재산 말고 기업의 사적소유권을 왜 언급해서는 안되는지 등의 문제가 자본주의냐 사회주의냐 다른 그 무엇이냐는 체제의 문제 속에서 갈등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선언은 어떤 체제도 배제해서는 안되는 표현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어찌됐든 선언 기초자들이 ‘무제한적’인 재산소유권을 옹호한 것은 분명 아니었다. 재산권에 대한 ‘제한 요건’을 충족시킨다는 조건 하에서 자본주의적 또는 사회주의적 경제 체제간에 중도를 유지하려 했다. 가장 자본주의적인 국가들조차 순수자본주의 체제란 게 설령 존재한다 할지라도 그것이 인권의 관점에서 수용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선언 기초자 중 누구도 시장의 자유로운 흐름이 인간존엄성에 요구되는 재화를 전달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것이 선언 29조에 권리의 제한과 규제(“공동체에 대한 의무”, “민주사회에서의 도덕심, 공공질서, 일반의 복지를 위하여”)를 둔 이유이다. 29조에 덧붙여 더 중요한 제한 요건은 노동권 관련 조항이다. 재산을 만들어내는 노동자의 권리에 의해 기업의 재산권이 제한되어야 한다는 것을 선언 기초자들은 분명히 인식했다. 재산권이 자의적 박탈로부터 보호받아야 한다는 합의 한편에는 재산권의 사회적 기능 때문에 그 범위가 규제돼야 한다는 합의도 있었던 것이다.

선언 이후 유엔의 입장도 크게 다르지 않다. 유엔인권위원회는 재산권을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의 실현’이란 주제 속에서 다뤄왔고, 주된 논의는 재산권을 여타 인권과의 상호연관성 속에서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유엔인권위가 임명한 재산권에 관한 독립전문가는 그 보고서에서 생산수단의 사적소유 문제를 다룬 바 있다. 그는 재산의 다양한 형태와 그것이 갖는 사회적 중요성도 다양하기 때문에 ‘개인의 사적 소유’를 보편적인 인권으로 설정하기는 매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 이유로는 “사적 소유의 이용은 소수의 손에 생산수단이 집중되는 것을 촉진해왔을 뿐 아니라 소수가 무제한적으로 부를 축적하게끔 했다. 이는 엄청난 부의 소유자와 아무것도 갖지 못한 대다수 사람들간의 계급 분화의 근본원인이다. 집단적 재산이 이런 결점들을 어느 정도 완화시켜왔으며 재산의 사적 이용은 국가에 의해 규제되고 있다. 지금껏 알려진 어떤 경제체제에서도 절대적으로 사적인 생산수단의 소유현상은 결코 없으며, 공공의 이용, 안보, 건강 등의 필요성에서 법으로 제한이 부과돼왔다”고 말한다.

하지만 선언 기초 당시의 대립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재산권에 대해 가장 대조적이라 할 쿠바 정부와 미국 정부의 입장이 유엔회의에서 어떤 설전을 펼쳤는지를 예로 살펴보자.

쿠바와 미국의 대립

쿠바 정부는 재산권은 여타의 기본적이고 양도할 수 없는 인권과 더불어 고려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자결권, 자연적 부와 자원에 대한 주권, 신 국제경제질서의 수립, 개발도상국들의 피폐화된 경제에 부과되는 과도한 외채 문제 등과의 관계 속에서 재산권을 검토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인권으로서 재산권 문제를 취급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더욱이 모든 사람의 생명·노동·주거·교육·의료 등에 관계된 필수적인 사회서비스에 대한 권리, 경제운영에 참가할 권리에 반하는 의미를 가진 재산권에 대해서는 그것을 권리로 설정하는 자체가 불가능하다. 빈곤퇴치, 실업, 인종적·사회적 차별, 기타 모든 형태의 불평등을 취급하지 않으면서 재산권을 고립적으로 선언하게 되면 대다수 인류와 국가들에게 재산권이란 공상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반면 미국 정부의 입장 또한 단호하다. “재산권은 사회조직의 기본 장치이며, 시민·정치적 권리의 발전에 핵심적 역할을 해왔다. 시민의 자유는 재산권을 보장하는 사회에서라야 번성할 수 있다. 대부분의 인권논의에서 재산권이 홀대받아 온 것은 불만스런 일이다.”

이런 입장에 대해 당신들이 말하는 자유의 의미는 뭐냐고 물어보게 된다. 다음과 같은 경우에 ‘재산권이 자유를 보장한다’는 의미를 뭐라 설명할 수 있을까?

미국의 어느 노동단체 사이트에서 본 사례이다. 노동조합결성과 활동을 이유로 해고당한 노동자가 있었다. 해고와 동시에 임금은 당연 끊겼고 조합주택에서도 쫓겨날 상태이다. 아이들은 굶주리고 있다. 이 사람은 이동식 식탁과 요리도구를 가지고 동네의 대형 수퍼마켓에 갔다. 그리고 고기가 가득차 있는 정육점 코너 옆에 이동 식탁을 차리고 거기서 고기를 꺼내 굽기 시작했다. 관리인이 달려왔고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지역방송 카메라도 달려왔다. 왜 이런 미친 짓을 하느냐는 질문에 그 노동자는 “아이들이 굶주리는 걸 내버려둘 수 없다. 나는 아이들을 먹여야 한다.”라고 대답했다.

분명 이 사람이 취한 행동은 재산에 대한 탈취라고 일반적으로 말할 것이고 그렇게 처벌될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그 경제·사회 체제 내에서 생존을 추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적어도 자신의 생존을 위한 필수물을 제공받아야 할 권리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작성일자 : 2008. 11. 19

글쓴이 : 류은숙(인권연구소'창' 연구활동가)

세계인권선언 제16조

1. 성년에 이른 남녀는 인종, 국적 또는 종교에 따른 어떠한 제한도 받지 않고 혼인하여 가정을 이룰 권리를 가진다. 이들은 혼인 기간 중 및 그 해소 시 혼인에 관하여 동등한 권리를 가진다.
2. 결혼은 양 당사자의 자유롭고도 완전한 합의에 의하여만 성립된다.
3. 가정은 사회의 자연적이며 기초적인 구성단위이며, 사회와 국가의 보호를 받을 권리를 가진다.

요즘처럼 살기 힘든 때에는 ‘믿을 건 가족밖에 없다’는 식의 생각이 도드라지는 한편 ‘가정의 위기’에 대해 걱정하는 소리도 높다. 둘 다 문제가 되는 생각이다.

‘가족밖에 믿을 수 없다’는 건 ‘사회’가 살만한 곳이 못 된다는 것이고 가족외의 사회적 관계들을 이해타산으로만 여긴다는 것이다. 또한 사회와 국가가 맡아야 할 사회복지의 부담을 가족에게 떠맡기기 딱 좋은 생각이다.

‘가정의 위기’라고 할 때는 소위 ‘정상가정’의 해체를 운운하면서 다양한 가정의 형태와 그 구성원들을 ‘위기의 소산’으로 낙인찍는 수가 있다. 버젓이 구성원의 정서적 유대로 가정을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사회에서 주류로 여기는 가정형태가 아니라는 이유로 ‘당신들의 가정은 가정의 위기 내지 해체의 증거’라고 손가락질 한다면 심각한 차별일 것이다. 또한 사회가 제공하는 가정생활과 관련된 권리로부터 그들 가정을 배제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문제이다.

나아가 특정 사람들을 아예 가정을 구성할 수 없는 사람들로 낙인찍는 문제가 있다. 장애인의 이성교제와 결혼·출산을 바라보는 눈, 해외토픽감 식으로 다뤄온 동성애 혼인과 부모됨의 권리 문제 등이 적극 제기될 필요가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혼인과 가정생활과 관련된 권리를 규정한 선언 16조는 빈 구석이 많은 조항이다. 만들 당시에도 그랬지만 오늘날 많이 변화된 가족관과는 거리가 멀다. 먼저 어떤 생각으로 선언 기초자들이 16조를 만들었는지부터 살펴보자.

여성의 평등한 접근 등이 제외된 기초과정

선언 16조를 기초할 당시 “결혼과 무관하게 평등한 시민권을 누릴 권리가 있다”는 제안은 누락됐다. 이 내용은 최근에 와서야 후속국제조약에서 강조되게 된다.
‘민법상 결혼은 선택의 자유, 아내의 존엄성, 일부일처, 결혼 해소에 대한 동등한 권리, 동등한 양육권, 자신의 국적을 유지할 권리, 계약을 맺을 권리, 재산을 가질 권리를 포함해야 한다’는 것이 선언을 기초할 당시 유엔여성소위원회의 제안이었고 ‘유급출산휴가, 교육에 대한 여성의 평등한 접근’ 등의 사회적 권고들도 있었다. 세계인권선언 16조에는 이 중 일부만이 반영돼 있다.

결혼과 관련하여 주로 논쟁이 된 문제는 타종교를 가진 사람과의 결혼이나 이혼에 관한 종교적 신념에 관한 것이었다. 타종교와의 결혼을 허용하지 않거나 종교적 이유로 이혼을 허용하지 않는 많은 나라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해소될 수 없는 견해차에도 불구하고 정부들이 16조에 찬성표를 던진 배경은 이렇다.

종교와 국가는 분리된다는 원칙에 입각하여 인권 문제가 논의돼야 하고, 인권문제가 종교적 근거로는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이혼이 법적으로 허용되는 국가들에서 관련 입법이 대개 여성에게 불리하다는 점이 지적됐고 그런 여성의 불리함으로부터 여성을 보호하기 위하여 결혼의 성립이나 해소 시에 남녀의 동등한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결론이었다.

1항에서 “성년”을 언급한 것은 아동혼을 방지하기 위한 구상이었다. 신체적 성숙이 됐다 할지라도 조혼은 권할만하지 않은 것이고, 혼인에서는 단지 출산 능력이 아닌 더 중요한 요인들을 고려할 필요성이 있다는 인식에서였다.
2항에서 ‘결혼에 대한 동의’를 언급한 것은 강요나 위협 하에서 계약된 결혼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3항에서 언급한 ‘사회와 국가의 보호를 받을 권리’의 구체적 내용은 끊임없이 논쟁되고 변화해왔다. ‘모성보호’를 예로 들어보자. 선두주자는 ILO이다. ILO는 1919년 창설하자마자 채택한 규범에서 여성노동자에 대한 보호규정을 만들었다. 1919년 모성보호조약(Maternity Protection Convention)과 야간노동(여성) 조약(Night Work(Women) Convention)이 그것이다. 이에 따라 여성 노동자는 모성휴가와 고용안전을 보장받을 권리를 갖는다. 이후로 오랫동안 모성보호는 여성노동자에 대한 보호에 필수적인 것으로 간주됐다. 여성을 어머니 또는 장차 어머니가 될 사람으로 취급했기 때문이다. 여성노동자가 어머니일 수 있듯이 남성 노동자가 아버지일 수 있다는 관점을 ILO가 공식적으로 취하기까진 60여년이 걸렸다. 1981년 ‘가족부양책임이 있는 노동자에 관한 조약’과 ‘가족부양책임이 있는 노동자에 관한 권고’에 와서야 부모의 의무를 남성과 여성 모두가 행사해야 한다는 것을 뒤늦게 인정하게 됐다.

성차별 방지 노력이 처음에는 모성보호에만 초점을 두었다면, 50년대 이후에는 고용에 대한 평등한 접근, 고용에 있어서의 평등한 처우가 우선순위로 떠올랐다. 여성은 어머니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부양해야할 사람이라는 것, 남성이라면 당연히 가지는 자기 부양의 권리를 평등하게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가족부양이 ‘가장’으로 간주돼온 남성의 의무(동시에 권리)인 것이 이전에는 당연시 돼왔다면 한 가정의 부양을 남녀가 공유해야 하는 문제로 다루기까지 또 수십 년이 걸린 것이다.

가정생활과 관련된 차별
유엔은 ‘여성에 대한 폭력에 관한 특별보고관’을 두고 있는데, 그 보고서에서 ‘가정생활과 관련된 차별 문제’를 다룬 바 있다. 보고관은 크게 세가지 유형의 차별을 지적했다.

· 결혼에 근거한 차별
기혼 여성은 여성으로서 차별받을 뿐 아니라 기혼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을 수 있다. 혼인에 근거한 차별은 기혼여성이 남편에게 재정적으로 의존한다는 것을 가정하고 있다. 많은 국가들에서 기혼여성은 가정의 부양자로서의 권리를 청구하기 전에 자신이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는 사람이라는 걸 먼저 증명해야 한다. 그 결과 기혼여성은 사회보장제도에서 공개적으로 차별받을 수 있다. 많은 경우에 기혼여성은 남편이 확보할 수 없었던 권리라는 걸 증명해야만 제 권리를 인정받을 수 있고, 취업을 하게 되면 피부양자로서 보장받을 수 있는 권리를 포기해야 한다.

이에 대해 유엔시민·정치적권리위원회는 비차별에 관한 일반논평 18에서 “혼인 기간 중 및 혼인 해소 시에 혼인에 대한 배우자간의 권리 및 책임의 평등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를 취할 것”을 당사국의 의무로 확인했다. 또한 동 위원회에 통보된 사건에 대한 결정에서는 기혼여성이 실업급여를 받을 자격에서 배제되는 법률은 규약 위반이라고 결정했다. 이 사건을 통보한 여성은 기혼여성이라고 해서 자신이 “생계책임자"였다는 걸 증명해야만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차별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조건은 기혼남성에게는 해당되지 않았다. 해당 정부는 결혼과 사회속에서의 남녀역할에 대한 일반적인 사회통념을 따른 법률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통념에 따르면 기혼 남성은 언제나 생계책임자이고 반면에 기혼여성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었다.

· 모성에 근거한 차별
앞서 말한 것처럼 모성보호는 인권기준이 만들어지기 훨씬 이전부터 ILO에 의해 규정됐다. 문제는 모성보호가 성평등에 반작용을 하는 것으로 드러난다는 것이다. 보호의 목표가 아동이지 여성이 아니기 때문이다. ‘모성보호’로부터 ‘부모보호’로의 개념 진전은 상대적으로 최근의 현상이다. ILO의 관련 조약에 따르면 정부는 “남녀노동자에 대하여 기회 및 처우의 실질적인 균등을 창출하기 위하여, 현재 고용되어 있거나 또는 취업하고자 하는 가족부양책임이 있는 사람이 차별을 받지 아니하고 또한 가능한 한 그들의 고용과 가족부양책임 사이의 갈등 없이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국가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임신한 여성, 어린 아이를 둔 여성, 나아가 자녀를 양육할 연령의 모든 여성을 노동시장이 차별하는 것에 비하여 그에 대한 사회적 보상은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어머니가 되는 것, 부모가 되는 것이 불리한 처지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모성 휴가(양육휴가)에 충분히 보상하는 경우는 드물다.

인권의 관점에서 여성은 어머니가 된다는 이유로 사회적 인정이나 보호를 획득해야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기 때문에 모든 인권을 보장받을 권리가 있다. 여성의 동등한 권리에서 모성보호가 의미하는 것은 여성이 자녀를 낳고 남성은 그렇지 않다는 생물학적 차이를 반영하는 것일 뿐이다. 모성에 대한 사회적·법적 보호는 이러한 생물학적 차이에 대한 보상과 보호를 부여하는 데 있다. 출산과 양육은 사회적 기능이므로, 단지 여성이라는 사실로 여성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행하는 사람들이 보상을 얻는 것이다.

· 부모됨에 근거한 차별
제도적 혼인은 많이 변했다. 서유럽과 북미에서는 결혼과 가정간의 연계가 없어졌다. 결혼과 가정간의 직접 연계를 상정했던 국제인권기준도 그런 변화에 부응해야 할 것이다. 결혼과 부모됨이 직접 연계되지 않게 되면서 출산의 권리는 부부나 한 쌍의 권리라기보다는 개인의 권리로 요구되고 있다. 불임치료술, 대리임신 등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른 문제들도 제기되고, 출산과 관련된 권리에 대한 요구가 생겼다. 여기서도 인권의 원칙은 부모됨이 성별에 근거한 것이 아닌 남성과 여성 둘 다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다만 임신을 할 수 있는 것은 여성이기 때문에 임신했거나 임신가능성이 있는 ‘노동자’를 배제하는 것은 남성이 아닌 여성에 대한 차별이 된다. 따라서 국제규약은 임신과 양육을 이유로 한 차별을 성차별의 형태로서 금지하고 있다. 여성차별철폐조약 11조(2)(a)에 따르면 “임신 또는 출산휴가를 이유로 한 해고 및 혼인 여부를 근거로 한 해고에 있어서의 차별을 금지하고 위반시 제재를 가하도록 하는 것”을 결혼 또는 모성을 이유로 한 여성에 대한 차별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규정은 임신과 출산휴가를 이유로 한 차별만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고용에 대한 접근의 어려움이나 직업상실의 위협으로 인해 여성이 고용이냐 모성이냐간에 선택을 강요당하는 현실은 여전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부모됨에 관련된 인권기준은 어머니가 될 가능성만이 아니라 부모가 될 가능성을 다뤄야 한다.
또한 가족계획과 출생률에 대한 선택에서 대부분 여성이 남편의 의사에 반하거나 변화시킬 힘이 없다는 점이 고려돼야 한다. 여성의 낙태권과 가족계획과 관련된 선택권에 관련된 논쟁은 모든 곳에서 여전히 뜨거운 이슈이다.

혼인과 가족관계에서의 평등

1979년 유엔에서 채택된 여성차별철폐협약은 성역할과 가정생활에 영향을 끼치는 문화와 관습에 초점을 맞춘 유일한 국제인권조약이다. 이 협약에 기초하여 설치된 유엔여성차별철폐위원회는 논평과 권고를 통해 협약의 내용과 그에 따른 국가의 의무에 대한 해석을 내놓고 있다. 가정생활과 관련된 내용에는 1994년 ‘혼인과 가족관계에서의 평등’, 1992년 ‘여성에 대한 폭력’에 관한 일반논평이 있다. 이에 따라 국가가 취해야 할 의무적 조치의 주요내용은 다음 표와 같다.

문제영역 유엔여성차별철폐위원회 논평과 권고
국적 국적은 완전한 사회참여를 위해서 결정적인 것으로 국적은 성인여성에 의하여 변경 가능하여야 하고 혼인이나 혼인 해소 혹은 아버지나 남편의 국적 변경을 이유로 하여 임의적으로 변동되어서는 안된다. 
법 앞의 평등 법률로써 또는 개인이나 기구를 통해 여성의 법적 능력을 제한하는 것은 남녀평등의 권리에 대한 부정이자 여성이 자신과 피부양인을 부양할 능력을 제한하는 것이다.
·국적과 유사한 개념으로서 주소는 여성의 혼인 여부와 상관없이 성인 여성의 의지에 따라서 변경이 가능한 것이어야 한다.
·타국에서 일시적으로 거주하고 일하는 이주 여성은 남성과 마찬가지로 배우자, 파트너, 자녀를 동반할 수 있는 동일한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
혼인과 가족관계 · 가족의 형태와 개념은 국가마다, 심지어 한 국가내의 지역 간에도 다양할 수 있다. 그것이 어떻게 형성되었든, 국가의 법적 체계, 지역, 관습 혹은 전통이 무엇이든 간에 가족내에서 여성에 대한 대우는 법적으로든 사적으로든 모든 사람에 대한 평등과 정의의 원칙에 부합하는 것이어야 한다.
· 일부다처혼은 중지되고 금지되어야 한다.
· 관습, 종교적 믿음, 특정 인종집단의 민족적 기원등에 근거한 강제결혼, 강제재혼, 금전의 지급이나 신분상승을 위한 여성 혼인, 재정적 안정을 위하여 외국인과 결혼하도록 강요하는 것은 여성의 권리에 위배된다.
여성의 혼인 시점, 혼인 여부, 혼인 상대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는 법으로 보호되고 실행되어야 한다.
· 사실혼 관계에 놓인 여성은 가정 생활 및 수입과 자산을 공유함에 있어서 법적으로 남성과 동등한 지위를 가져야 한다. 피부양자녀와 가족 구성원들을 양육하고 돌보는 일에 남성과 동등한 권리와 책임을 가져야 한다.
· 자녀를 양육하고 보호, 부양하는데 있어서 부모는 공동의 책임을 진다. 부모가 혼인하지 않은 경우나 어머니가 이혼하거나 별거중인 경우 많은 아버지가 그 자녀에 대한 책임을 공유하고 있지 않다. 따라서 혼인의 지위 및 자녀와의 동거여부에 상관없이, 양쪽 부모 모두가 자녀에 대하여 동등한 권리와 책임을 지도록 국내법으로 보장하여야 한다.
· 여성은 자녀들의 수와 터울을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여성은 안전하고 믿을만한 피임 수단에 대한 정보를 바탕으로 이를 결정할 수 있도록 피임수단과 그 용법, 성교육에 대한 접근 보장, 가족계획 서비스에 대한 정보를 제공받아야 한다.
· 재산을 소유, 관리, 향유하고 처분할 수 있는 권리는 여성이 재정적 독립을 향유하도록 하는 여성 권리의 핵심이다. 여성의 재산권은 여성의 혼인여부와 상관없이 보장되어야 한다.
· 부부간 평등, 혼인 최소 연령, 중혼과 일부다처혼의 금지 및 아동의 권리 보호수립을 위한 모든 혼인의 등록을 요구해야 한다.
여성에 대한 폭력 · 공적이든 사적이든간에 모든 형태의 성에 근거한 폭력을 근절하기 위한 적절하고 효과적인 조치들을 취해야 한다.
여기에는 공무원에 대한 성인지성 훈련, 폭력의 범위·원인·영향과 폭력을 방지하고 취급하는 조치들의 실효성에 대한 통계와 조사의 편찬, 여성에 대한 존중을 위한 매체들의 효과적 조치, 인신매매와 성적 착취를 근절하기 위한 예방 및 징벌 조치, 효과적인 청원절차와 배상을 포함하는 구제방안 마련, 성희롱 및 기타의 직장폭력으로부터의 보호, 성에 근거한 폭력으로 인한 피해자들을 위한 피난처 제공, 숙련된 보건 인력, 재활 및 상담을 포함하는 서비스의 수립과 지원, 여성할례 등의 관행을 근절하기 위한 조치, 출산과 생식에 관한 강제를 방지하기 위한 조치들, 시골 여성 및 격리된 공동체에 대한 특별 서비스, 가정 내 폭력을 근절하기 위한 조치들.

사람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그 관계의 의미를 찾는 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추구하는 것이다. 가정을 구성하고 유지하는 것은 그중 중요한 것이다. 하지만 ‘자기식대로’의 가정만을 소중한 것으로 여기고 다른 가족을 평가절하하거나 다른 가족과 갈등한다면, 누구에겐 세상에서 제일 편한 곳이라는데 누구에겐 지옥 같은 곳이 가정이라면, 사회적 유대와 연대와는 담쌓은 가족 사랑이라면 인권으로서의 ‘가정생활에 대한 권리’가 작동할 수 있을까? 누구를 가족이라 할 것이며, 가족과 사회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언제나 만들고 보듬어야 하는 문제이다.

‘떠오르는 인권에 대한 바르셀로나 헌장’이라는 것에서는 선언 16조에 해당하는 내용을 다음과 같이 바꿔 쓰고 있다.

“모든 사람은 개인적 유대를 선택할 권리가 있다. 선택한 사람과 정서적으로 결합(결혼한 권리를 포함하여)할 개인의 권리를 인정한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성적 지향성을 행사할 권리가 있으며 모든 유형의 자유롭게 동의한 개인적 유대는 어떠한 장애도 없이 동등한 보호를 받는다.

모든 가족 공동체는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 모든 사람은 가족의 형태와 무관하게 교육과 자녀 양육과 관련하여 공공당국으로부터 가족보호를 받을 권리를 가진다.”

작성일자 : 2008. 11. 19

글쓴이 : 류은숙(인권연구소'창' 연구활동가)

세계인권선언 제15조

1. 모든 사람은 국적을 가질 권리를 가진다.
2. 어느 누구도 자의적으로 자신의 국적을 박탈당하거나 그의 국적을 바꿀 권리를 부인당하지 아니한다.

무국적이라는 것

“나의 조국은 세계이다”, “세상을 무국적자처럼 떠돌고 싶다”는 등의 말을 하거나 들을 때가 있을 것이다. 그 말에 고개가 끄덕여질 때는 자신의 국적에 집착하지 않고 다른 민족, 다른 인종의 사람 누구와나 함께할 자세가 되어 있을 때일 것이다. 그러나 세계를 조국으로 인류를 가족으로 여기는 그런 사람에게도 엄연히 국적과 시민권이 있을 것이다.

좁아진 세계와 타국에서의 취업, 국제결혼 등의 증가로 이중국적을 인정해야 한다는 등의 논의를 심심찮게 접할 수 있는 요즘 세상에서 ‘무국적’의 문제는 주목받지 못하는 인권문제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훨씬 더 지구화된 요즘 세상에서 무국적자가 여행하는 것은 1930년대보다 훨씬 더 어렵다. 무국적으로 태어나는 아동은 평생 무국적이기 쉽다. 무국적 상태에서는 학교에 가거나 합법적으로 일하거나 재산을 소유하거나 결혼하거나 여행을 할 수 없다. 범죄의 피해자가 되어도 고소를 할 수 없다. 법적으로 그 사람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수사를 하기 전에 먼저 그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증거가 필요하다.

“내가 저지른 유일한 범죄는 내가 어떤 국가의 시민도 아니라는 거예요.”
“인간으로서 우리는 우리의 고향을 만들 자격이 없는 겁니까?”
“내가 사는 나라에서도 ‘안된다’고 하고, 내가 태어났던 나라에서도 ‘안된다’고 하고, 내 부모의 출신 국가에서도 ‘안된다’고 한다. 나는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느낀다. 왜 사는지 모르겠다. 무국적이라는 것은 무가치하다는 감정에 언제나 휩싸여 사는 것이다.”
무국적 문제를 다루는 한 인권단체와의 인터뷰에서 무국적자들은 이렇게 호소한다.

아인슈타인도 무국적자였다

무국적자란 어떤 국가의 국내 법률에 의해서건 국민으로 간주되지 않는 사람(1954년 무국적자의 지위에 관한 협약 1조)이다. 각국의 법률에서 국적과 시민권은 반드시 동의어는 아니다. 하지만 둘 다가 의미하는 바는 한 국가와 개인을 한데 묶는 끈으로서 양자 간의 정치·경제·사회적 권리 뿐 아니라 책임을 포괄한다.

무국적의 원인은 다양하지만 서로 중첩되기도 한다. 정치적 급변, 특정 개인이나 집단을 표적 삼은 차별과 배제, 국가들간의 국적법의 차이로 인해 생기는 틈, 영토 변경과 관련된 혼란, 결혼과 출생신고와 관련된 법이 간과한 문제, 다른 국적을 얻기 전에 국적을 포기한 경우, 부계혈통만으로 시민권을 인정하는 경우 등으로 인해 무국적이 발생한다. 여기에 기후변화와 사막화로 인한 물과 자원 분쟁이 평화롭게 공존하던 지역에서 마찰과 추방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다 알만한 유명한 무국적자의 경우를 보자. 한국 부모들이 자기 자식들이 닮기 원하는 천재 물리학자 아인슈타인도 무국적자였다. 그는 독일에서 태어났으나 1896년 국적을 포기했고 그 후 5년간 무국적자였다. 1901년에 스위스 시민이 됐고, 프러시아 과학 아카데미의 회원이 된 1914년에 독일 시민권을 다시 얻었으나 1933년 히틀러가 독일 수상이 된 후 아인슈타인은 아카데미를 사임하고 두 번째로 독일 국적을 포기했다. 이번에는 난민이 됐다. 스위스 시민권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무국적자는 아니었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1940년에 미국시민이 됐다. 평생에 걸쳐 이런 난관을 겪으면서 그는 말했다. “민족주의는 소아기적 질병이다. 민족주의는 인류의 홍역이다.”

무너지는 베를린 장벽 앞에서 연주한 것으로 유명한 세계적인 첼로연주자 로스트로포비치도 무국적자였다. 1978년 그는 프랑스 TV 뉴스를 보다가 자신과 아내가 “소련의 위신에 해로운 행위”로 인해 소련국적을 박탈당했다는 걸 알게 됐다. 훗날 그는 한 인터뷰에서 말하기를 “우리는 제거됐다.…‘가치 없는 시민’이 된다는 게 얼마나 수치스러운 것인지 당신들은 모른다. 그들은 우리를 몰아냈다.”고 말했다. 1990년에야 그의 소련 시민권은 회복됐다.

유명 영화감독, 마가렛 본 트로타도 무국적자였다. 그녀는 베를린에서 태어났다. 1942년 당시 그녀의 어머니는 독일인이 되고 싶지 않아 무국적이었고, 비혼의 무국적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그녀도 자동으로 무국적이었다. 공부를 하러 파리로 갈 때 그녀에게는 비자와 신분증명서가 없었다. 한밤중에 기차에서 끌려 내려진 그녀는 국경 가운데서 오도갈 수 없었다. 훗날 결혼으로 국적을 취득한 그녀는 “나는 국적을 갖고 싶었다. 그게 프랑스던 독일이던 상관없었다. 난 단지 여행의 어려움에서 해방되고 싶었다.”고 했다.

마찬가지로 무국적자가 되어 타향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한 한 작가는 자서전에서 ‘무국적’에 대해 이렇게 썼다. “나 자신이 내 자아에 정말로 속한다는 느낌이 멈췄다. 내 타고난 정체성의 일부가 내 원래의 본질적인 자아와 더불어 영원히 파괴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무국적의 고통은 유명인들의 ‘과거’가 아니라 이름 없는 수많은 사람들의 ‘현재’로 계속되고 있다. 조상 대대로 살아온 땅에 새로운 국가가 세워지면서 국민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소수민족들, 상당수가 난민이면서 무국적이기도 한 수백만의 팔레스타인들은 현재 무국적의 대표적 사례이다. 이주여성과 그 자녀의 문제는 특히 취약한 무국적 사례이다. 가령 다음과 같은 사례는 한국과 관련해서도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는 일이다.

팔레스타인, 그리고 조선적

한 베트남 여성이 고령의 대만인과 국제결혼을 했다. 그러나 남편은 예상보다 경제사정이 열악했고 사업의 실패와 더불어 이 여성이 아들이 아닌 딸을 낳자 아내와 아이를 같이 버렸다. 이 여성은 국적취득과정에 있었다. 새 국적을 얻으려면 원래의 국적을 포기하는 절차가 선행돼야 했다. 남편과 상의하여 베트남 국적을 포기했으나 아직 새 국적을 얻지 못한 상태에서 버림받은 그녀는 고향에 돌아와서야 자기가 태어나고 자란 곳에서 자신이 무국적자이며 따라서 아무런 권리가 없음을 깨닫게 됐다. 아이는 베트남인에게 허용된 무상교육을 받을 수 없고 의료 혜택도 없으며, 자신은 일자리를 얻을 수 없었다. 국적회복을 위한 절차를 알아보자니 변호사는 5천 달러의 수임료를 요구했다. 자신에게는 꿈도 꿀 수 없는 돈이었다.

일본 패망 후 귀환하지 못하고 어떤 국적도 취득하지 않은 채 귀환을 그리며 무국적자로 버틴 동포들, 북한 국적도 남한 국적도 취득하지 않고 사실상 무국적자인 ‘조선적’을 고집한 동포들, 남북한 각각이 국제사회에서 각각의 국가이고 국적법이 있는 상황에서의 북한 출신 이주자의 문제, 국제결혼을 통한 이주여성과 이주노동자와 그 자녀의 국적 문제 등 ‘무국적’은 한국 사회와도 결코 먼 문제가 아니다.

난민 뿐 아니라 무국적자도 수임사항으로 다루고 있는 국제기구는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이다. UNHCR은 2006년 말 현재, 공식적으로 49개국에 걸쳐 5백 8십만 정도의 무국적자가 있다고 보고했다. 하지만 무국적자에 대해 믿을만한 통계를 내는 국가는 거의 없기 때문에 UNHCR은 실제 수치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은 1천 5백만 명에 가까울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무국적 문제를 다루는 UNHCR의 인력과 재원은 형편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양차 대전 간 초기의 국제적 합의들은 난민과 무국적 문제를 한데 다루었고, 무국적 문제를 해결하는데 목표를 두기 보다는 당장 닥친 실질적인 문제 해결에 국한됐다. 가령 무국적자들로 하여금 당장에 필요하니까 여행서류로 소위 ‘난센여권’을 사용하게 하는 식이었다.

2차 대전 이후 무국적자의 법적 지위를 규율하고 무국적 사례를 줄일 필요성에서 채택된 기준이 세계인권선언 15조이다. 선언은 개인의 인권으로서 국적을 가질 권리를 말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 국적을 주거나 말거나 빼앗거나 하는 문제는 국가의 권리이다. 각 국가는 자국의 법에 따라 국적법을 제정할 수 있고, 이 법이 국제법과 타국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한 다른 국가들은 대개 이를 승인한다. 선언 15조는 국적에 대한 권리를 말했지만, 어떤 국가가 어떤 상황에서 국적을 줘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무국적을 방지할 국가들의 의무, 아동을 출생 시에 등록하고 무국적이 될 상황이면 국적을 제공할 의무 등이 명시된 것은 훨씬 나중에 만들어진 국제조약에서다.

가령 1954년 무국적자의 지위에 관한 협약은 무국적자에 대해 난민에 대한 처우와 동일한 내용을 담고 있고, 1961년 무국적자의 감소에 관한 협약은 달리 국적이 없으면서 가입국의 영토에서 출생한 자에게 그 국가의 국적을 인정함으로써 주로 출생 시 무국적을 피할 목적을 가진다. 국가들에게 권고되는 바는 최소한 무국적자에 관한 두 개 협약을 존중하라는 것인데, 양 협약 모두 가입국 수가 아주 적다. 그밖에 1966년의 시민·정치적 권리 규약과 1989년의 아동권리협약 7조는 아동이 출생 시 즉시 등록될 것과 출생 시부터 성명권과 국적 취득권을 가질 것을 규정하고 있다. 적어도 당사국에서 태어나는 아동이 무국적이 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가입국에 촉구하고 있다.

너무도 미약한 국제사회의 대응

무국적과 관련된 활동 단체들이 유엔과 정부들에게 촉구하는 바는 민망할 정도의 기본적 수준이다. 무국적과 관련하여 수임사항을 명확히 하고 구체적인 목표를 정하는 것, 가용할 수 있는 기존 인권 메커니즘을 모두 활용할 뿐 아니라 무국적 문제에 집중하는 단위를 만드는 것, 식량과 의료 등 긴급한 필요에 지원하는 것, 무국적과 관련된 정보의 공유, 무국적과 관련된 국제기준의 당사국이 될 것 등이다.

여러 국가들에서 시민권은 새로운 권리를 추구함으로써 이전의 특권을 권리로 변형시키고, 권리의 주체를 확장해왔다. 새로운 권리는 이전 권리의 이용을 보다 효과적으로 만들고 이전에 법률로나 관습으로 분리됐던 집단들간의 장벽을 제거해왔다. 그런데 무국적자에게는 그런 시민권이 없기에 권리의 변화와 생성도 없다. 어느 국가도 책임지려 하지 않고, 국제적으로는 미약한 협약과 기구가 있을 뿐이다. ‘시민권과 인권이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이고, 시민권에서 벗어난 사람들을 인권이 어떻게 보호할 수 있을까’는 인권의 생명과 뗄 수 없는 문제이다.

작성일자 : 2008. 9. 26

글쓴이 : 류은숙(인권연구소'창' 연구활동가)

 

세계인권선언 13조

1. 모든 사람은 각국의 영역 내에서 이전과 거주의 자유에 관한 권리를 가진다.
2. 모든 사람은 자국을 포함한 어떤 나라로부터도 출국할 권리가 있으며, 또한 자국으로 돌아올 권리를 가진다.

당연한 자유?

80년대 민주화 요구 시위에 참가했을 때의 일이다. 시위에 반대하는 한 아저씨가 시위대를 향해 소리쳤다. “난 이전과 거주의 자유가 있다구. 그러면 민주주의고 자유지, 이전과 거주의 자유 말고 뭔 놈의 민주주의와 자유가 더 필요해?”라고 목청을 높이시던 게 아직도 생생하다. 그 분의 말처럼 ‘이전과 거주의 자유’는 민주사회의 필수적인 권리로 여겨진다. 물론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지만 말이다.

자유로운 이동의 권리가 없으면 다른 권리들이 위협받는다. 직업이나 교육의 기회가 막힐 수 있고, 정치적·경제적 억압으로부터 피난처를 구할 수 없으며, 스스로 선택한 종교를 신봉하지 못하거나 여타의 기본적 권리를 누리지 못할 수도 있다.

“이동을 할 수 있어야 교육을 받을 수 있고, 이동을 할 수 있어야 직장도 구할 수 있으며, 이동을 할 수 있어야 사람도 만나고 결혼도 하고 그럴 수 있지 않습니까? 이동을 할 수 있어야 사람답게 살 수 있지 않습니까?”라는 장애인 이동권의 외침이 공감을 얻은 것은 인간의 자유로운 이동에 담긴 근본적이고 필수적인 성격을 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과연 ‘이전과 거주의 자유’는 모든 사람의 인권으로서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가? 오늘날 심각한 인권문제를 유발하는 주요소 중의 하나는 바로 ‘이전과 거주의 자유’의 제약성이다. 선언 13조는 이어지는 14조(망명의 권리), 15조(국적을 가질 권리)와 밀접한 관계에 있다. 13-15조를 연결하는 요소가 무엇인가하면 소위 ‘비시민’으로 여겨지는 사람들에게 ‘이전과 거주의 자유’가 거대한 장벽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13조의 침묵

그런데 13조를 들여다보면 ‘비시민’들이 간절히 원하는 이전과 거주의 자유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먼저 1항에서는 “각국의 영역 내”에서의 이동을 말하고 있다. 2항에서는 ‘자국민’이 “자국”으로 돌아올 권리를 말할 뿐이다. 즉, 이전과 거주의 자유는 어디까지나 한 국가 영역 내에서의 권리이며, 자국민은 떠났다가 돌아올 수 있으나, 다른 사람은 안된다는 것이다. 오늘날 인권문제로 중요시되는 문제, 즉 누구든지 어떤 나라에든지 들어갈 권리(immigration)에 대해서는 말하고 있지 않다. 들어가는 것이 봉쇄돼 있기 때문에 설령 들어갔다 할지라도 그 국가 영역 내에서의 자유로운 이전과 거주는 실현되기 어렵다.

선언 기초자들이 생각한 13조에서의 이전과 거주의 자유는 자국 정부와 개인 시민과의 관계에 관한 것이다. 현대 세계에서는 옛날에 땅에 속박됐던 농노처럼 이동의 자유를 박탈하는 일이 있을 수 없고, 이전과 거주에 대해 당국의 허가를 강제하는 일은 독재정권이나 하는 짓이라는 것이다. 이런 정도로 이동의 자유를 바라봤기에 13조의 내용은 선언기초자들에게 아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떠날 자유는 약간 논란이 됐다. 당시에 베를린 장벽이 있었기 때문에 반대하는 편의 논거가 됐다. 그러나 대다수 나라에서 떠날 자유는 당연시 됐기에 통과됐다. 떠날 경우에는 여권을 요구하지도 않는 나라들도 있다. 돌아올 자유는 폐위된 왕족, 이전 정부의 수반이나 그들의 측근, 추방됐거나 정치적 이유로 쫓겨난 사람, 외국에서 태어난 국민이 대규모로 돌아오는 것 등이 문제시됐다. 어쨌든 결론은 자국민이 떠나고 돌아오는 것에 대해서는 해당 정부가 이유를 묻지 않고 제약도 가하지 않겠다는 것이 13조의 원칙이다.

누구에게나 ‘떠날 자유’가 있다면, 그리고 그 자유가 의미가 있으려면 ‘떠나서 어디에나 갈 자유’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현실에선 어디에나 갈 수 있는 게 아니다. 각 국가는 국경을 통제할 권리를 갖고 있다. 결국 현실에서 갈 곳을 마련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떠나는 것은 자유가 아니라 어쩔 수 없는 내몰림이고 재난이 될 수 있다. 선언은 앞서 말한대로 자국민이 아닌 사람의 입국의 권리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고, 선언 이후 13조와 관련된 국제기준은 대개 난민과 무국적자에 대한 것이다. 여전히 입국의 권리를 말하는 국제기준은 전혀 없지만, 가장 밀접한 것은 강제송환금지(non-refoulement) 원칙이다. 어느 누구도 박해의 위험이 있는 곳으로 돌려보내서는 안된다는 원칙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14조에서 더 자세히 살펴보기로 한다.

끝없는 수난

이전과 거주의 자유 제약으로 인한 인간 수난을 보기 위해 멀리 타국의 난민촌을 봐야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렇게 하지 않더라도 바로 지금 한국 사회에서 숱한 예를 찾아볼 수 있다.

서울 시내 곳곳에 둘러쳐지는 재개발과 뉴타운의 깃발은 거주의 자유를 보장하는가? 더욱 더 나쁜 거주지로 옮겨갈 자유가 자유라면 그런 자유는 넘쳐나고 있다. 단속에 쫓기던 이주노동자가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 사경을 헤매고, 짐 챙기고 작별 인사를 할 기회도 주지 않을뿐더러 국가인권위의 권고도 무시하고 강제 출국시키는 일이 매일의 뉴스다. 신체적·정신적 장애를 이유로 수많은 인간이 사회 속에서 살 권리를 박탈당하고 반강제적으로 수용생활을 해야 한다. HIV/AIDS 감염인이라는 이유로 앞뒤 따지지 않고 출입국을 봉쇄한다. 『파리의 택시운전사』로 유명한 홍세화씨가 정치적 탄압 때문에 20여년을 망명생활을 해야 했던 것이나, 37년 만에 고국에 돌아온 송두율 교수가 ‘해방 이후 최대간첩’으로 매도됐다가 무죄판결을 받은 것도 최근의 일이다. 외국에 있는 동안 북한을 방문했다는 이유로, 과거 숱한 조작사건의 관련자라는 이유로, 소위 반정부 활동(지금은 민주화운동이라 부른다)을 이유로 자국에 돌아올 권리를 박탈당했던 사람들이 적지 않다. 조선적이란 이유로 자유롭게 한국을 방문할 수 없는 재일동포들이 부지기수고, 북한출신 이주자나 중국에서 온 조선족들의 국내에서의 처지는 13조에 담긴 소극적인 수준의 권리조차 아까워하는 냉대에 가깝다.

인권으로서의 이전과 거주의 자유

‘시민권’속에서 이전과 거주의 자유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인권’으로서의 이전과 거주의 자유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둘의 외관은 비슷하지만, 핵심적인 차이가 있다. 시민권은 특정 사회의 구성원이라는 이유로 권리를 주는 것이고, 인권은 구성원 자격과 권리를 떼어내는 것이다. 즉 특정 사회(국가)에서 갖는 지위 때문이 아니라 사람이니까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사람대접을 하는 것이다.

시민권이나 인권 모두 더 많은 사람들에게로 확장돼온 역사를 갖고 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시민권은 특권이다. 특정 국가의 구성원만 써먹을 수 있는 권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건 고정돼 있는 게 아니다. 누가 국민이고 외국인인가를 정하는 조건은 시대에 따라 변화했다. 국민 중에서도 누구를 권리로 대접하고 누구를 무권리로 팽개치는 지도 달랐다. 그리고 이건 앞으로도 얼마든지 변화할 수 있다.

과거 생계를 잃고 시골을 떠나 도시로 이주할 수 없었던 사람들의 상황이나 오늘날 가난한 나라에서 산업국가로의 이주는 비슷한 상황이다. 맨몸 맨주먹으로 도시로 상경했던 사람들은 소유한 것이 없었기에 시민 대접을 받지 못했다. 지금도 재산은 시민권의 주요한 근거이다. 이들이 시민 대접을 받기 위해 어떤 수난과 싸움을 겪었는지를 기억해 보자.

앞서 살펴본 ‘수난’의 예에서처럼 이전과 거주의 자유는 자국민과 외국민을 구분하지만 자국민 내에서도 끊임없이 구분을 한다. 정치적·영토적·경제적·문화적 배타성에 근거한 시민권으로서의 이전과 거주의 자유는 도대체 누구에게 득이 되는 것일까를 생각해보자. ‘구성원이 될 자격을 꼭 지금 같은 구분선속에서 그어야 할까’ ‘상품과 서비스는 자유롭게 왔다갔다해야한다고 하면서 왜 사람은 안된다고 하는가’는 현재 인권 논의의 주요한 쟁점이다. 자본과 기업만이 아니라 노동자의 자유로운 이동과 거주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 사회보장제도 등에 있어서 차별을 없애는 것, 내외국인 노동자가 같은 지위를 누리는 그런 모습을 그려볼 수는 없는가, ‘이전과 거주의 자유가 민주사회의 기본’이라면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이 기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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