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자 : 2010. 10. 3

작성자 : 류은숙

이 글은 격월간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에 연재하고 있는 겁니다. 글쓴이는 류은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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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지금 이 시간 쯤, 엄마가 뭘 하고 있는 줄 뻔히 알아. 방송 3사의 아침 연속극을 채널 돌려가며 다 보고난 후 또 유선방송 채널로 돌려서 주말연속극 재방송을 보고 있을 거야. 그러면서 “아이구, 김치도 담그고 해야 하는데, 내가 왜 이러냐? 연속극에 미쳐서”라고 푸념하고 있을 거야. “연속극에 미쳐서”를 젊은 사람들은 ‘드라마 마니아’라고 해. 엄마를 방바닥에 붙잡아매고 있는 그것을 ‘드라마’라 부르기보단 ‘연속극’이라 하는 게 더 어울리는 것 같아. 다음 회를 고대하게 만드는 간질간질함으로 끝맺고 또 이어지고 이어지는 이야기니까.


난 엄마가 연속극에 미쳐 사는 요즘이 좋아. 엄마가 새벽 찬바람에 일 나가지 않고 아침에 뒹굴거리며 연속극을 볼 수 있다는 게 너무나 좋아. 파출부, 보따리 장사, 화장품 외판으로 점철된 엄마의 사투에서 마지막 일은 청소 일이었지. 장사는 지긋지긋하고 나이가 너무 많아 어디서도 써주지 않는다며 한숨짓던 어느 날, 엄마는 어떤 용역회사를 통해 지하철 화장실 청소를 하게 됐다고 했어. 1주일 청소하고 15만원을 받아왔다는 말에 난 너무 속상했어. 엄마에게 월급봉투를 갖다 줄 능력이 없기에 당장 그만두라고 할 수 없는 자식이라 너무 미안할 뿐이었어.


그리고 얼마 후 엄마는 아는 사람을 통해 호텔 청소원이 됐어. 공교롭게도 내가 일 때문에 자주 가던 국가인권위원회 옆에 있던 호텔이었어.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강의를 하거나 회의를 하다가 창문 밖의 호텔을 바라봤지. 청소를 하고 있을 엄마를 생각하며 가슴을 쓸어내렸어. 어느 날 엄마를 만나려고 호텔 앞에서 기다렸는데 엄마는 호텔 정문이 아닌 엉뚱한 출입구에서 나왔어. “호텔은 여긴데 왜 거기서 나와?”라고 물었을 때 엄마는 청소하는 사람들은 정문으로 다니면 안 된다고 했어. 그 한마디에 나는 그 나머지에 대해선 묻고 싶지도 않았어. 첫 버스가 다니기도 전 새벽 칼바람에 일 나간 엄마가 어디서 어떻게 밥을 먹는지, 일하면서 얼마나 어떻게 쉬는지 말이야.


꼬박 1년을 채운 뒤에야 엄마는 청소일을 관둘 수 있었지. 나와 동생들이 분담하여 매달 얼마씩을 엄마에게 드리기로 약속을 하고 ‘제발 관두라’고 해서 말이야. 그런데 가슴 한쪽이 켕기는 질문이 있어. 우리들이 엄마에게 일을 관두게 한 이유 중 제일 큰 이유는 과연 뭐였을까? 엄마에 대한 걱정이 과연 1순위였을까? 그게 아니라 장성한 자식들에게 청소일 하는 엄마가 ‘창피’한 것이 더 큰 이유는 아니었을까?


몇 년 전, 내가 활동하는 단체의 후배가 모 대학 청소노동자들과 관련된 일을 한 적이 있어. 대부분 엄마 나이대의 분들이었어. 가족 생계의 책임자들이었지만, 60만 원 정도밖에 못 받는 조건에서 일하고 계셨지. 학생과 교직원들이 등교하기 이전인 새벽녘에 강의실과 화장실 청소를 다해놓고 유령처럼 사라져 지하 모퉁이에서 식은 밥을 먹어야 하는 상황이었어. 그런데 대학에서 나이가 많다고 한꺼번에 자른(해고) 거야. 그래서 그분들이 난생 처음 데모란 걸 하게 됐지. 계속 일하게 해달라고 말이야. 후배가 그분들을 오랫동안 만나러 다녔는데, 정말 적은 임금에도 불구하고 그분들이 거기서 계속 일하고 싶어 하는 중요한 이유가 있었어. 같은 청소일을 하더라도 대학에 가서 일한다고 하면, 자식들에게 낯이 선다는 거였어. 생계를 책임지는 노동임에도, 저임금에 형편없는 처우도 모자라 수치심까지 끼어들어 괴롭히고 있었던 거야.


엄마가 일을 관둔 뒤 내 기억에서 지웠던 가슴 아팠던 일들을 다시 떠올리게 됐어. 많은 엄마들에게 계속되고 있는 사건 때문이야. 등장인물은 계속 바뀌지만 뻔한 줄거리의 연속극처럼 말이야. 요즘 인터넷에서 ‘OO대 패륜녀’, ‘OO대 패륜남’이란 게 큰 뉴스가 됐어. 학생들이 청소일하는 분들에게 폭언과 폭행을 했다 해서 붙인 이름이 패륜녀, 패륜남이란 거야. 하지만 따지고 보면, 우리사회 전체가 패륜이라는 비난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싶어. 사람을 사람이 아니라 ‘유령’으로 취급하고 있다면 말이야. 이것과 관련해 나도 창피한 기억밖에는 떠올릴 게 없어.


병원에서 일했던 한 후배는 이런 얘기를 들려줬어. 보통 같은 층에서 오랫동안 근무를 하기 때문에 의사랑 간호사들은 부딪칠 때마다 서로 인사를 한다는 거야. 하지만 청소일하는 분들도 보통 한 층을 담당하는데, 그분들과는 인사를 하는 경우가 없었단 거지. 먹을 거를 나눠먹더라도 그분들과는 나눠본 적이 없대. 그리고 신기한 건 아무리 오랫동안 봤어도 그분들의 얼굴은 하나도 기억이 안 난다는 거야.


나도 그 말을 듣고 생각해봤지. 학교 다닐 때, 1년에 한 번 정도밖에 안 들렀던 교무과 직원 얼굴은 아직도 기억나는데, 4년 내내 봤던 청소하시던 분들의 얼굴은 한 명도 안 떠오르는 거야. 분명, 화장실에서 복도에서 수도 없이 부딪쳤는데 말이야. 게다가 우리 학과가 있던 건물은 아주 작았거든. 단지 떠오르는 건 그분들이 밥 먹던 광경이야. 학교식당에서 밥 먹는 걸 본 적은 없어. 지하의 작은 쪽방 같은 곳, 정말 성냥갑 같은 수준으로, 천정이 낮아서 몸을 숙이고 들어가야 하는 곳에서 전기밥솥이랑 도시락에 싸온 찬을 바닥에 늘어놓은 모습이었어. 소위 정규직이었던 수위 아저씨들은 청소하시는 아주머니들에게 자주 호통을 쳤어. 나와 친구들은 그 아저씨들을 ‘게슈타포’(옛날 독일에 아주 나쁜 정권이 있을 때 비밀경찰의 이름이야)란 별명으로 부를 뿐, 아주머니들을 위해 아무 일도 하지 않았어.


또 기억나는 건 남학생들은 아주머니들이 화장실 청소를 하고 있을 때 그 옆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볼일을 봤다는 거야. 나도 요즘 경험하는 건데, 주말에 식당에서 알바를 할 때면, 앞치마와 위생모가 내가 누구인지를 말해 주잖아. 그런 차림으로 화장실에 들어가면, 남자 손님들이 전혀 개의치 않고 문을 열어놓은 채 볼일을 보는 거야. 난 당황스러운데 상대는 전혀 그렇지가 않아. 그 쪽에선 내가 전혀 보이는 존재가 아니라는 느낌이 들 때가 많아. 남학생들이 청소하는 아줌마 옆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자기 성기를 꺼낼 수 있었던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거야.


이런 식의 ‘패륜’을 청소일, 식당일 같은 직업에 대한 차가운 시선을 바꾸면 된다는 식으로 해결할 수는 없어. 험하고 지저분한 일 하는 사람에 대해 ‘고마운 마음을 가지라’는 식의 설교로 해결할 일이 아니란 말이야. 정작 중요한 것은 줄 것을 제대로 주는 거고, 원래 당연히 가지고 있던 권리를 되돌려주는 거야.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시선은 차갑건 따뜻하건 마찬가지인 거고, 옆에서 마주보는 시선이 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을 보장해야 한다는 거지. 이게 인권운동, 노동운동 하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이야.


엄마! 앞에서 내가 말했던 모 대학 청소노동자들은 그 후 노동조합을 만들게 됐어. 그리고 학생들과 같이 학교당국을 상대로 싸워서 계속 고용됐고, 임금도 조금 올려서 법으로 정해진 최저임금 수준을 받게 됐어. 최저임금이란 게 워낙 적기 때문에 거기에 턱걸이한 것을 기뻐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원래부터 됐어야 했던 당연한 것을 어렵게 받아낸 것이었어.
그 청소노동자들이 한창 학교당국과 싸우고 있을 때, 내가 하는 교육에 집단으로 참석한 적이 있었어. 난 그때 이런 얘기를 했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사회에선 누구나 ‘일’을 해서 먹고 살아야 하죠. 물려받은 땅덩어리나 빌딩이 없는 이상엔 아무리 고소득 전문직이 됐든 그렇지 않든 간에 누군가에게 일을 해준 대가로 먹고 살죠. 그런 ‘일’과 관계된 인권을 ‘경제적 권리’라고 해요. ‘경제적 권리’의 으뜸은 일할 권리예요. 일을 해서 먹고 살 것을 요구받는 사회니까, 당연히 사회에서 일을 마련해 줘야죠. 눈높이 낮추고 아무 일이나 해라, 그런 식 말고 제대로 된 일을 마련하는 게 사회의 의무죠. 그러니까 아무 일이나 주면 안 되죠. 사람답게 살 만큼의 임금을 줄 뿐 아니라 건강을 해치거나 위험한 일로부터 보호하고, 함부로 자르면 안 되고… 등등을 보장하는 성격의 일을 줘야 해요. 그런데 고용주들이 이런 걸 알아서 해주는 게 아니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자기 일을 제대로 지키기 위해서 항상 긴장해야 해요. 우선 노동자들은 뭉칠 권리가 있어요. 뭉쳐서는 뭘 하나요? 고용주와 노동조건에 대해 얘기를 해야죠. 그런데 고용주가 얘기를 피하려 하고, 약속했던 것도 지키지 않으면 어떡해요? 고용주가 말을 듣게끔 뭔가 행동을 해야 하지요. 하던 일을 안 하겠다고 거부하거나, 적당히 하는 등으로 고용주한테 압박을 가해야 해요. 이런 것들, 즉 노동자들이 뭉치고 협상하고 행동할 권리를 통틀어서 노동권이라고 해요.


그런데 자기 자신이 원치 않는 어찌할 수 없는 상황 때문에, 일을 해서 생존을 유지할 수 없는 경우가 있잖아요. 가령 장애를 갖고 태어났거나 불의의 사고로 장애가 생겼거나, 나이가 들고 건강이 나빠져서 하던 일을 계속할 수 없거나 원치 않는 실직을 했거나 이런 상황에서는 일을 해서 생계를 유지할 수가 없잖아요. 그러면 삶을 중단해버려야 하나요? 그럴 수는 없는 거죠. 그래서 필요한 것이 ‘사회적 권리’란 인권이에요. ‘사회’란 말은 우리 사람들끼리 결연을 맺었다는 뜻이에요. 우리들 누구나 사회의 구성원이잖아요. 내가 원치 않는 피치 못할 상황에서 생존을 유지할 수 없다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사회로부터 부양을 받을 권리가 있어요. 사회보장제도를 누릴 권리, 아플 때 치료받을 권리, 사회구성원으로서 살아갈 만한 교육을 받을 권리, 이런 것들이 사회적 권리에 해당해요. 그 어떤 별도의 자격이나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사회의 구성원인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사회로부터 부양받을 권리니까 떳떳하게 받을 수 있어야 해요. 눈치 보거나 업신여김을 받거나 하지 않고 말이에요.”


그런데 현실은 내가 말한 인권의 원칙과는 반대로 흘러갈 때가 많아. 지금은 6월인데 한국에서는 매년 이때쯤 ‘최저임금’이란 걸 정해. 올해 사용자 측에서는 겨우 시간 당 10원 인상을 얘기하고 있대. 원래 최저임금이란 걸 법으로 정할 때는, 노동자들이 안정된 생활을 하며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수준의 임금을 줘야 한다는 취지로 만든 거야. 그런데 그런 취지와는 반대로 ‘목구멍에 풀칠만 하는 수준’의 최저가 돼버렸어. 많은 고용주들은 최저임금도 안 줄뿐더러 최저임금만큼만 주는 걸 당연하게 여겨서, 최저임금 이상을 주지 않으려는 핑계거리로 사용하고 있어.


대표적인 경우가 청소노동자인데, 엄마가 몇 년 전 받았던 게 바로 그 최저임금이야. 몇 년이 지났어도 최저임금은 제자리 수준이고, 청소노동자들 대부분은 거기에도 못 미치는 80만 원이 되지 못하는 돈을 받고 있어. 문제는 그렇게 버는 ‘용돈’ 수준의 돈에 온 식구의 생계가 달려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거야. 일하는 사람들에게 그런 대우를 하면서 철마다 ‘불우이웃돕기’를 하는 건 정말 이상한 일이야. 그 사람들이 일한 값을 제대로 준다 할지라도, 사회보장제도가 빈약하기 때문에 허덕이고 살아갈 판에, 대가는 제대로 안 치른 채 ‘불우이웃’ 만들기에 나서는 거니까.


임금만이 문제가 아니라 노동자라면 당연히 갖는 ‘뭉칠 권리’가 없어. 엄마도 호텔에서 일을 했지만 그 호텔 직원이 아니었잖아. 파견용역회사와 계약한 것뿐이었으니까. 대부분의 저임금 노동자들은 자기가 진짜 일하고 있는 곳에 고용돼 있는 것이 아니라 용역회사가 중간에 끼어 있어. 언제 잘릴지 모르는 불안한 조건이기 때문에, 큰 소리 내기도 힘들거니와 간혹 뭉쳐서 소리를 내더라도, 정작 일하는 곳에서는 ‘나는 당신들의 고용주가 아니라’고 발뺌 하거든. 그래서 안 그래도 불안한 고용조건을 더 컴컴한 사각지대로 내몰아온 게 정부와 기업이 계속해온 정책이야. ‘효율성’이란 이름으로 말이야. 일하는 사람을 쓰고 버리면 되는 일회용품 취급하는 게 효율성이라면 이거야말로 패륜 중의 패륜인 거야.


이건 청소노동자에게만 해당되는 문제가 아니라 젊은이들의 아르바이트에도 아주 중요해. 예전에 막내가 학비 벌겠다고 방학 동안 분식점에서 서빙 아르바이트를 했었잖아. 언니는 그래도 좋은 대학 다닌다고, 몇 시간의 과외로 버는 돈의 몇 분의 일도 안 되는 돈을 막내는 지방대생이란 이유로 방학 내내 고역을 치르고 벌어야 했어. 하루 12시간씩 쟁반을 나르다 오면 다리 아파 죽겠다고 했던 동생에게 정말 미안했어.


요즘도 과외를 할 수 있는 소위 일류대 학생들 말고는 많은 학생들이 비싼 학비와 생활비를 대기 위해 수업시간보다 많은 시간을 아르바이트에 바쳐야 해. 대학생들 뿐 아니라 제대로 된 일자리가 부족한 현실에서 많은 젊은이들이 입에 풀칠하기 위한 아르바이트에 매달려 있어. 많은 경우가 시간당 2천8백 원, 혹은 3천 원을 받는다고 해. 법으로 정해진 최저임금은 시간당 4천 원 수준이야. 길거리에서 사람들이 손에 들고 다니는 폼 나는 커피 한 잔 값도 안 되는 돈이야. 문제는 용돈벌이가 아니라 대부분이 생계를 위해서 그런 조건을 감수하며 일하고 있다는 거야. 이들 젊은이들은 적어도 시간당 천 원의 인상을 원해. 그래봤자, 시간당 5천 원이 되는 거야. 그런데 저쪽에서는 시간당 10원 인상을 얘기하고 있으니 납량특집 연속극 같아. 이보다 끔찍하고 무서울 수는 없어.


이것 때문에 요즘 시위가 벌어지고 있어. 시간당 10원 인상으로 최저임금을 마무리 짓게 할 수는 없으니까. 이건 10원 대 1000원의 싸움이 아니라, 유령이 아닌 인간이 되고 싶은 사람들의 외침이야. 엄마, 혹시 뉴스에서 그런 게 나오거든(월드컵 때문에 기대할 수는 없지만), 또 데모한다고 욕하지 말고, 뉴스에서 얘기 안 해주더라도 내가 말한 이런 이유들 때문에 그 사람들이 데모를 한다는 걸 알아줘.


내가 데모하다 처음 잡혀갔다 나왔을 때, 엄마한테 혼날까봐 잔뜩 쫄아 있었지. 그때 엄마는 혼내기는커녕 나랑 같은 대학 다니던 교회 집사님 아들 이름을 대면서, “걔는 이런 것도 안 한다니?”라고 물었어. 엄마의 물음에는 ‘당연히 할 일을 했다’는 지지가 담겨 있었어. 엄마가 떠난 그 자리에서 똑같은 노동을 되풀이 하고 있을 수많은 아주머니들, 인권활동가인 엄마 딸이 주말에는 식당노동자가 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엄마는 분명 지지를 보낼 수 있을 거야. 인권에서는 엄마의 그런 지지를 ‘연대’라고 표현해.


힘없는 사람들이라 무시하지만, 정작 그 힘없는 사람들의 노동이 없으면 밥도 못 먹고 쓰레기 더미 속에서 어쩔 줄 모를 사람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건 힘없는 사람들의 ‘연대’야. 고로 엄마의 힘을 제일 무서워한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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