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자 : 2010. 11. 1

작성자 : 류은숙

이 글은 격월간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에 연재하고 있는 겁니다. 글쓴이는 류은숙입니다.

 

엄마! 나이 엇비슷한 선후배들이나 동료들과 이런저런 얘길 나누다 보면 빠지지 않는 게 부모님 이야기야. 다들 하나같이 너무 서러웠던 가난과 부모님의 고생을 한 묶음으로 얘기들 해. 도매금으로 말하면, 집집마다 하나같이 아버지들은 왜 그리 사고를 치셨는지, 어머니들은 왜 그리 지지리 고생들만 하셨는지 몰라. 그래도 잘나가던 때가 잠깐 있었다는, 눈부시게 찬란한 날이 아주 잠깐 있었다는 얘기도 꼭 양념으로 덧붙어. 하나같이 ‘어쩜, 우리집하고 똑같다’라고 맞장구치며 얘길 나누지. 가끔은 누가 더 극적인 추락을 했고, 누가 더 어렵게 살았는지 경쟁하는 얘기 같다는 생각이 들어. 문제는 그 얘기들이 뻥이 아니라 다 사실이란 거고, 다행인건 다들 웃으며 술자리 안주삼아 얘기할 수 있을 만큼 ‘무사히’ 성장했다는 거야. 그리고 그 무사한 성장의 배경은 좋게 말하면 ‘교육’이었고, 나쁘게 말하면 ‘학벌’일 수 있는 그런 거란 걸 같이 느끼곤 해.

 

그런 얘길 나눌 때마다 내가 보태는 얘기도 다른 사람들과 비슷해. 아빠는 허구헌날 전세방까지 잡혀먹고 일 벌리다 홀랑 날리고, 엄마는 파출부다 보따리 장사다 안 해본 것 없이 다하고 말이야. 그런데 정말 놀라운 건 초등학교 밖에 못나와 허드렛일을 전전했던 엄마가 어떻게 자식 넷을 다 대학공부를 시켰느냐는 것이야. 지금 생각해도 그건 기적 같은 일이었던 것 같아.

 

지금도 생각나. 나 어렸을 때, 엄마는 돈을 벌어오면 제일 먼저 누런 봉투에 돈을 넣었어. 그 때는 학비를 학교에서 나눠주던 누런 봉투에 넣어서 서무과에 갖다내고 그 봉투에 도장을 받아왔어. 네 자식의 학비 봉투에 돈을 넣고 난 후에야 엄마는 쌀독을 채웠어. 쌀 대 보리의 비율이 4대 6인 혼합미를 사느냐 6대 4인 것을 사느냐는 남는 돈이 얼마냐에 달려 있었어. 어떤 달에는 쌀사기를 아예 포기하기도 했어. 그런 때는 생활보호대상자에게 동사무소에서 갖다 주던 밀가루 한포대가 한 달 식량이 됐지. 보리가 너무 많아 시커먼 도시락이 창피하다고 동생들은 도시락을 그냥 가져오기도 했고, 한 달 내내 먹는 수제비에 질려서 숟가락을 놓아버리기도 했어. 학비와 최소한의 끼니거리를 제하고 난후 나머지 생활은 그냥 버티는 것이었어. 그래도 우리는 학교를 거르는 일이 없었고, 상급학교로의 진학을 포기한 일도 없었어. 엄마의 돈 쓰는 것 첫번째가 자식 공부시키는 것이었기 때문이지.

 

그러던 어느날 동네 수퍼 아줌마한테 모진 소리를 들었어. 수퍼 계산대에 앉아서 온 동네 살림살이를 꿰뚫고 있던 그 아줌마의 형편은 그 골목에서는 꽤 사는 편에 속했지. 연탄을 사가도 수백 장이 아닌 몇 장씩만 사가고, 가끔 외상까지 지는 우리 집이 제대로 된 고객 대접을 받을 수는 없었어. 맏이라서 살림살이와 심부름을 도맡아야 했던 나는 그 수퍼에 가는 게 정말 싫었어. 그 아줌마가 워낙 사람을 무시해서 말이야. 그 아줌마가 날린 결정타는 이런 거였어. “너희 엄마, 정말 웃긴다. 뭘 믿고 널 인문계에 보낸다니? 형편 더 좋은 집들도 안 그러는데. 우리 딸도 안 보낸다. 넌, 얼른 돈이나 벌어라. 너희 엄마 개꿈 같은 건 따르지 말고.”

 

정말 서러우면서도 그 아줌마 얘기가 맞다고 생각했어. 그리고 나도 고민을 하고 있었거든. ‘형편은 점점 더 나빠져 가는데, 빨리 돈을 벌어야 하지 않을까? 인문계 고교 말고 취업을 준비하는 학교에 가야하지 않을까? 나중에 내가 돈 벌어서 공부하면 차라리 속 편하지 않을까?’ 하지만 엄마 앞에서는 입도 벙긋할 수가 없었어. 엄마의 계획은 ‘계속 공부’말고 다른 것이 없었으니까.

 

결과적으로 엄마의 개꿈은 현실이 됐고, 엄마는 자식 넷의 교육을 완수(?)하여 그래도 가슴 펴고 제 앞가림하고 살 수 있도록 만들었어. 엄마의 고생에 대해서는 어떤 말을 해도 한참 모자라지만, 당시 조건이 받쳐준 면이 적지 않다고 생각해. 누런 봉투에 학비를 넣고, 밥만 챙겨 먹이면 공부시킬 수 있었던 상황이었어. 과외는 전면금지였고, 당시 대입에서 수석을 한 학생들의 인터뷰는 언제나 ‘교과서만 갖고 공부했어요’라는 식이었어. 그 말은 겉치레였던 게 아니라 사실이었어. 단칸방에서 밥상을 책상삼아 공부한 청소부의 아들이 수석을 하기도 하던 시절이었으니까. 나도 돈을 아끼려고 서너 가지 과목만 참고서를 사고, 나머지는 정말 교과서만 갖고 공부했어. 가끔 형편을 아시는 선생님들이 교사용으로 제공받은 참고서를 그냥 주시면 정말 고마웠어. 나뿐 아니라 고생담을 늘어놓는 친구들이 다들 한목소리로 말하는 게 자기들 학교 다닐 때 조건이 ‘그나마 다행이었다’는 거야.

 

물론 그저 세상이 좋아서였던 건 결코 아니었어. 광주의 시민들을 학살하고 집권한 독재자가 그나마 민심을 사려고 취한 조치가 ‘전면과외금지조치’란 거였으니까. 그 독재자는 데모하는 학생들도 많이 길러냈어. 단 하루에 수백 명이 넘는 대학생을 한꺼번에 잡아넣어서 대학이 경찰서로 이전했다는 소리도 들었지.

 

그런데 과외 없이 대학에 갈 수 있었던 혜택을 봤고, 학창시절에 사회 불의와 불평등에 대해서 목소리를 높였던 나의 세대 사람들이 학부모가 되면서 기가 막힌 일들이 많이 벌어졌어. 초등학생 때부터 조기유학 보내고, 어학연수 보내고, 온갖 유형의 사교육에다 귀족학교 만들기에 몰두하여 특정 지역의 아파트값과 학원비를 천정부지로 솟구치게 만들었어. 빈부차이 없고, 부모의 경제력에 상관없이 누구나 원하면 공부할 수 있는 세상을 꿈꿨던 게 믿어지지가 않아. 누런 봉투에 최소학비를 넣고 밥만 먹이면 공부시킬 수 있다고 느꼈던 엄마들이 이제 버틸 수 없는 세상이 돼버렸어. 속상한 일들이 언론에 많이 보도되지만, 그중에서 내가 요즘 가장 가슴 아픈 내용은 가난한 서민들이 자식교육을 포기하고 있다는 것이야. 자식이 공부를 잘하려면 ‘엄마의 정보력과 할아버지의 재력이 필요하다’는 말이 유행하고 있어. 없는 집 자식은 공부할 생각을 말라는 말이야. 엄마는 어려운 형편에서도 학비부터 내고 생활을 설계할 수 있었다면, 요즘 서민들은 생계유지를 위해 자식의 학원비부터 끊을 수밖에 없대. 학교가 아닌 사설기관에 내는 ‘학원비’가 필수적인 교육비가 된 것, 가난한 사람들이 그걸 감당하지 못하면 ‘학교’에 다녀도 의미가 없다는 것, 이게 의미하는 것은 삶의 희망이 될 수 있는 교육의 사다리가 끊어졌다는 거야.

 

내 조카들, 엄마의 손주들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요즘은 정말 많이 달라졌어. 지방에 사는 막내는 돈이 없어 아이들 학원을 못 보낸다고, 지방에 사니까 아이들이 더 처지는 것 같다고 친정에만 오면 속상해하지. 학원에다 인터넷 수강까지 하는 상대적으로 좋은 처지의 서울 사는 조카들은 그런 속에서도 불안해해. 더 좋은 동네 아이들보다 못하다는 것, 그렇게 해도 좋은 대학에 가리란 보장이 없다는 것, 대학을 나와도 자기 앞가림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어렵다는 것 때문에 우울해해. 내가 인권운동을 시작할 때 태어난 첫 조카가 고3을 눈앞에 두고 있쟎아. 그 애와 어느날 얘길 나누었는데 도대체 ‘뭐가 돼야 할지’ 모르겠다는 거야. 선택받지 못하고 쓰임 받지 못하고 낙오될 거란 두려움이 스무 살이 못된 아이의 마음을 꽉 채우고 있다는 게 놀랍고 무서웠어. 요새 아이들 말로 그걸 ‘잉여’라고 해. 쓸모없고 가치 없는 존재, 인간으로서의 자존심이나 의미 있는 인생의 목표 같은 걸 갖기 힘든 자신들의 처지를 ‘잉여’라고 말하며 스스로를 깔보고 비웃어. 일등이 되지 않으면 결코 무엇으로도 존중받을 수 없는 현 세태에서 아이들이 스스로를 ‘잉여’라고 말하는 거야. 교육의 홍수 속에서 또는 가뭄 속에서 아이들은 불행한 것 같아. 불행하다면 과연 그것은 교육일까? 아마, 교육이란 말을 잘못 쓰고 있거나, 교육에 꼭 들어가야 할 요소가 빠졌기 때문에 이상한 맛이 나서일 거야.

 

먼저, 우리에게 교육은 ‘대학가기’와 같은 말처럼 쓰이는 것 같아. 엄마가 나를 위해 헌신했던 교육도 지금 조카들이 매달려 있는 교육도 사실은 ‘대학에 가기위한 수단’의 줄임말인 거지. 대학을 나온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에 대한 사회적 대우, 직장에서의 임금차별이 너무 심해서, 사실 대학을 강요당한 건 아닐까? 지금은 80%가 넘게 대학에 가는 시절이지만 대학 때문에 괴로워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더 늘어났어. 살아남기 위해 ‘필수’로 요구받는 자격의 가짓수가 늘어나면서 ‘부담’도 크게 늘어난 거지. 그리고 그 부담을 크게 느끼는 사람들일 수록 교육의 사다리에서 발판이 부서져나가는 경험을 하고 있는 거야.

 

대학시절, 고등학교 때 한반이었던 친구를 버스정류장에서 마주쳤어. ‘몇 년 만이네’ 하면서 차 한잔 하고 헤어졌는데, 그 얘는 졸업 후 계속 직장을 다녔지만 차별이 너무 심해서 야간 대학 경제학과를 다니기 시작했다고 했어. 그런데 공부가 하나도 재미없다는 거야. 하지만 직장에서 버텨내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했어. 일도 힘든데 야간 대학을 다니는 탓에 몸도 살림도 더 고되다고 했어. 자신에게 경제학이란 건 의미가 없는데, 직장에서의 경력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택한 학과라고 했어. 그 아이가 애써 야간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에 원하는 평등한 대우를 받을 수 있었을까? 씁쓸하지만 내 짐작엔, 대학출신과 그렇지 않은 출신의 차별 다음엔 어느 대학을 나왔느냐의 차별이 기다리고 있었을 거야. 차별로부터의 탈출이 아니라 차별의 연쇄사슬 속에 매이는 거라면 교육에 뭔가 단단히 문제가 생긴거야.

 

‘교육에 대한 권리는 인권 중의 인권’이라는 말을 내가 보는 인권책들 속에서는 반복적으로 말해. 이건 뭘 말하는 걸까? 분명 ‘대학에 가기 위한 교육’을 말하는 건 아니야. 교육이 인권이라고 말하는 건 자기 자신이나 보호자의 사회적 신분, 경제적 능력 등을 따져서 누구에겐 문을 열고 누구에겐 걸어 잠거서는 안된다는 걸 말해. 이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삶’을 위한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거야. ‘삶’을 위한 교육이란, 제 자신이 귀한 줄 알고 자기 속에 담긴 보석을 발견해서 다듬는 과정을 말해. 이 과정 속에서 제 것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품고 있는 보석도 볼 줄 알아야지. 한마디로 모든 사람이 가진 가치와 존엄성을 알고 존중하는 것을 교육의 목적이라고 말해. 무시하고 호령하는 태도 또는 주눅들고 눈치보는 태도가 길러진다면 교육의 목적에 고장이 난거야.

 

청문회에 나오거나 신문방송을 시끄럽게 만드는 성추행, 각종비리 등의 주인공들을 보면 대단한 학력의 소유자들이야. 그런데 무엇보다도 부끄러움이 뭔지 모르쟎아. 게다가 사람 알기를 우습게 여기는 걸 보면 그 거창한 학력이 오히려 꼴 사나와 보이쟎아. 학벌은 쌓았으나 사람과 삶에 대한 공부를 제대로 안했다고 사람들은 혀를 차곤하지. 학력과 교육은 같은 말이 아니란 걸 알 수 있어.

 

또 다른 큰 오해가 있어. 인권이란 말이 유행을 타면서 대학진학을 위해 ‘내 자식 내 맘대로 내 돈 갖고 하고 싶은 대로 공부 시킬 자유’를 권리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거야. ‘내 자식 내 맘대로 내 돈 갖고’를 외치는 사람들은 돈 주고 ‘상품’을 사는 거쟎아. 그런데 인권은 상품이 아니거든. 상품을 살 자유는 소비자가 누리는 자유인 것이고, 교육은 공기처럼 모든 사람이 마셔야 할 것이야. 공기를 탁하게 만들어 놓고 누구에게는 산소마스크를 주고 누구에게는 그러지 않는다면 공기를 마실 자유는 없는 거지. 교육이란 공기를 자유롭게 들여 마시기 위해서는 그걸 누리기위한 자원이 평등하게 제공돼야 하는 거야.

 

교육을 통해 자기 삶을 맘껏 호흡할 수 있는 자유를 누리기 위해선 평등한 조건이 필요해. 그러니까 기초교육은 물론 가능하다면 대학교까지 무상교육, 즉 돈 안내고 공부할 수 있어야 교육권이 인권으로 존중된다고 할 수 있어. 한국에서는 중학교까지 무상교육을 하면서도 학부모들이 가랑이가 찢어진다고 하쟎아. 사교육이란 상품을 사지 않고는 맘 놓고 학교에 다닐 수 없다면, 그건 무상교육일 수가 없는거야. 누구나 누려야 할 권리이기에 ‘무상’으로 하는 건데, 별도의 돈을 요구한다면 그건 사기치는 것과 같아. 원한다면 누구나 대학까지 공짜로 공부할 수 있고, 거기서 고려되는 것은 각 사람의 자질과 취향이 돼야지, 돈 때문에 학교 문턱에서 좌절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교육권의 원칙이야.

 

부모의 소득수준이 높은 만큼 사교육비에 쓰는 돈이 많고, 사교육비에 쓰는 돈만큼 아이들의 학업성적이 높아진다고들 말해.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고칠 수 있는 최고 방법이 교육인데, 오히려 불평등을 대물림하고 있다면 교육이 인권침해의 수단이 되고 있는거야.

 

엄마가 연속극 보다가 ‘마이걸’이란 연속극 제목이 무슨 뜻이냐고 물어본 적 있어. 엄마랑 영화를 보러 갔는데 ‘맹모삼천지교’를 약간 비튼 ‘맹부삼천지교’란 제목이었어. 영화를 다 보고 나서 한참 후에야 엄마는 제목의 뜻을 물어봤어. 생활환경조사서에 국졸이라 쓰지 말고 높여서 중졸이라 쓰라고 했던 엄마였으니까 그런 단어를 들어보지 못했겠구나 짐작했어. 신문읽기를 좋아하는 아빠는 ‘뉴욕 필 하모니’가 뭐냐고 물어본 적 있어. 내 친구들 부모님도 마찬가지일껄. 한글을 모르는 엄마 얘기를 하다 눈시울 적시는 친구도 있어. 하지만 그런 얘기를 나눌 때의 우리는 엄마 아빠의 ‘무식’을 얘기하려는 게 아니라 그런 걸 몰라도 얼마나 사리분별 있고 현명한 분들인가를 얘기하기 위해 그런 사건들을 끄집어내는 것이야. 그런 우리들이 교육의 울타리 속에서 만나 사람의 맘을 헤아리고 불의한 일에 분노하는 법을 배우면서 부모님의 사리분별은 이어받고 학력은 높였던 거야.

 

그런데 요즘은 공부 많이 하고 전문직인 사람의 자식들만 대학에 모여있대. 그러면 그런 대학은 높은 사람들만 모여사는 성채가 되는 것이고, 성문밖 사람들에게는 성안에 들어갈 기회가 없는거야. 이렇게 되면 교육은 인권이 아니라 특권이 되고, 누구는 교육 때문에 많이 자유로와지는 반면 누구는 교육 때문에 숨이 막히게 돼. 교육은 모든 사람이 이용할 수 있고,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개방되어야 한다는 교육권의 대표원칙이 무너지는 거지.

 

교육이 평등해야 한다는 건 꼭 돈 때문만은 아니야. 교육이 평등해야 우리는 농어촌 출신, 나와 다른 형편과 처지의 사람, 서로 다른 인종이나 국가 출신의 사람 등과 골고루 어울릴 수 있어. 그런 어울림 속에서 불평등·편견·차별의식을 버릴 수 있는 법을 배우고 다른 세계와 문화에 대한 공정한 정보를 얻을 수 있어.

 

무엇보다도 교육의 사다리를 절대 걷어치워서는 안되는 이유는 그것이 사람들의 밥그릇과 목소리를 한꺼번에 빼앗는 일이기 때문이야. 임시적이고 언제든 버려지고 쉽게 교체되는 일거리만 늘어나는 세상을 바꿀 힘은 대통령이 외치듯이 어떤 경제기적이나 토목공사에서 나오는 게 아니야. 답은 사람들한테서 나오는 거야. 사람들이 그런 문제에 대해 얼마나 공감하고 관심을 갖느냐, 문제를 바꾸기 위한 일을 어떻게 궁리하고 얼마나 참여하느냐에 달려 있는거야. 교육이 일부 사람들의 특권이 되면 될수록, 나머지 대다수는 더욱 가난해질 수밖에 없어. 가난해진다는 건 경제적으로만 그런 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그렇다는 말이야. 경제적으로 가난하면 정치에도 관심을 잃고 자신들의 삶에 대한 결정을 특권층이 내리게끔 놔두고 손놓게 돼. 교육은 이 사회가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어떻게 돌아가는 지에 관심을 가지고 어떻게 참여해야 할지를 알려주는 열쇠야.

 

그래서 교육은 학교교육에만 매인 것이 아니라 평생에 걸친 삶의 과정이라 할 수 있어. 자식 교육을 다 마친 엄마도 교육과 여전히 관계를 맺고 있고, 나도 그렇고 조카들도 그래. 우리들이 세상 돌아가는 일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느냐가 우리 자신의 끝이 없는 교육과정이야. 엄마는 평생학습을 하고 있는 거지. 엄마가 어렸을 적 교회에서 어깨너머로 배웠다는 풍금연주를 칠순이 다된 지금도 할 수 있다는 걸 알아. 난 엄마가 원하는 걸 공부할 수 있었으면 얼마나 멋진 일이 벌어졌을까 상상해봤어. 교육의 사다리가 무너지는 속에서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 그들 모두 기회만 있다면 자기 나름대로의 풍금연주를 멋지게 해낼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믿음, 그런 믿음 위에서 교육권은 인권인 것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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