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은숙] <2005년 9월 16일 인권하루소식 제2897호> 

 

국가안보가 인권보장과 항시 충돌하면서 사실상 '정부보안', '기득권세력의 자기보호 카드'로 활용될 때마다 되레 인권운동가들은 '당신들이 안전을 책임질 것이냐'는 추궁을 받아왔다. 진짜 안전은 국민의 존엄성과 인권이 효과적으로 보호되는 것이라는 주장은 더 많고 더 성능 좋고 더 비싼 무기와 감시체제가 보장하는 안전이야말로 진짜 안전이라는 공격 앞에서 눈총 받아왔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인간안보'(human security)라는 말이 심심찮게 등장하고 있다. '국가안보'라는 말만 들어왔고, 국가안보에 다른 소중한 가치들을 무릎 꿇리고 도둑맞아왔던지라 많은 사람들이 '인간안보'라는 말에 귀가 솔깃해졌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이미 넘쳐나는 '말잔치'에 또 하나의 단어를 추가하는 것이라는 반응도 있고, 빈곤 등의 중요한 문제들을 '안보'라는 개념으로 다룬다는데 반감이 있기도 하다. 위협으로부터의 안전을 말하는데 그 위협이란 게 정당한 위협인지 아닌지가 모호한 것은 국가안보주의가 갖고 있던 문제와 마찬가지라는 지적도 있다. 가장 많은 비판은 '인간안보'의 개념이 모호하기 때문에 인간생활에 '위협'이라 인식되는 요소가 자의적으로 선택될 수 있고, 그런 모호성과 자의성 때문에 실질적인 변화를 이루는데 별 도움 될 바가 없다는 것이다.

인간안보의 개념을 지지하는 사람들 속에서도 이견은 있다. 그 의미를 좁게 또는 넓게 정하자는 주장간의 대립이다. 좁게 정하자는 것은 인간사에 있을 수 있는 문제란 문제를 다 포괄하다 보면 그 개념이 모호해지고 그 문제의 취사선택이 자의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대표적으로 '폭력'같은 것에만 개념을 한정하자는 것이다. 반면에 '안전'이란 폭력의 위협으로부터의 안전 그 이상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빈곤, 질병, 환경 재해 같은 문제들이 포함돼야 한다는 것이 넓게 정하자는 주장이다. 어느 쪽이건 '안전'의 개념이 국가에 대한 위협, 영토에 대한 위협, 군사적 차원의 안보 개념을 넘어서야 한다고 본다.

인간안보라는 단어는 더 일찍부터 사용됐다고 하나, 그 개념이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된 것은 1994년 유엔개발계획(UNDP)의 '인간발전보고서'를 통해서이다. 이 보고서가 정의하고 있는 인간안보의 개념은 앞에서 말한 '넓은' 정의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정의된 인간안보는 소위 '공포로부터의 자유'와 '결핍으로부터의 자유' 둘 다를 포괄하는 것이고 둘 간의 상호의존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보고서는 인간안보의 본질로서 '보편성, 상호의존성, 사후개입이 아닌 사전 예방, 인민 중심'을 들고 있다. 또한 인간안보에 대한 위협을 '경제적 안전, 식량안전, 건강 안전, 환경 안전, 개인의 안전, 지역사회의 안전, 정치적 안전'이라는 7가지 범주로 분류하고 있다.

여기서 나타나듯 인간안보의 핵심은 안보의 '중심'을 국가로부터 '인민'으로 옮겨서 생각하는 것이다. 전통적인 안보의 관념은 냉전에 의해 크게 형성됐고, 주로 외부의 위협에 대처하는 국가의 능력에 관한 것이었다. 국가는 그 시민을 보호할 권리와 수단을 독점했다. 그러나 국가안보에 대한 이해와 위협의 유형은 확장되고 변화됐다. 국경, 국민, 특정 체제의 가치와 제도를 지키는 것만이 아니라 환경오염, 광대한 인구 이동, 에이즈와 같은 전염성 질병 같은 요소들을 인식하게 됐다. 너무나 많은 위험들이 아주 빨리 오늘날의 상호연관된 세계로 퍼진다. 이에 국제사회도 새로운 안보의 틀을 요구하게 됐다. 국가는 여전히 안보의 기본적인 조달자이자만 때때로 그 안보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오히려 자국민에 대한 위협의 원천이 된다. 이런 이유로 국가 중심의 안보로부터 인민 중심의 인간안보로의 변화에 관심을 갖게 됐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변화는 자기 자신의 안전을 지키는 개인과 집단, 인민의 역할을 중시하게 됐다는 점이다.

인간안보의 주요한 관심은 국가보다는 개인과 집단이다. 인간안보에 대한 위협요소는 국가안보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됐던 것과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 행위자의 범주가 국가만이 아니라 그보다 확대된다. 인간안보를 성취하는 것은 인민을 보호하는 것만이 아니라 자신을 지켜낼 인민의 권한을 강화하는 것이다. 인민의 권한 강화에는 표현의 자유 등 기본적인 인권의 강화가 당연히 포함된다.

이처럼 인권과 인간안보는 그 동기나 관심 영역에서나 긴밀히 연결돼 있다. 또한 둘다 빈곤과 폭력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공포로부터의 자유'와 '결핍으로부터의 자유'는 인권과 인간안보 둘 다의 공통된 목표이다. 국제인권의 초기 역사에서 냉전으로 인해 자유권과 사회권은 인위적으로 분리됐다. 그것에 저항하여 인권운동은 모든 인권의 상호의존성과 불가분성을 강조해왔다. 그리고 파편화된 인권이 총체적으로 보장될 수 있는 구조와 질서를 모색하면서 평화권, 환경권, 발전권이 속속 등장했다. 인간안보의 출현은 이러한 인권의 총체성과 불가분성을 배경으로 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인간안보의 개념을 지지하건 안 하건 간에 또는 수용하건 안 하건 간에, 지배계급 혹은 권력을 쥐고 있는 정부의 보안과 인간안보, 이 두 가지를 혼동해서는 결코 안 된다. 인간안보란 빈곤과 절망으로 극단에 내몰리는 사람들이 없어야 하고, 이로 인해 공포와 강압적 안전을 거래하는 일이 없는 사회를 설계하는 것이다. 공포 때문에 정상적 인간 활동을 줄인다거나 공포 때문에 모든 사람을 감시한다거나 공포 때문에 총과 무기에 더 많은 돈을 쓰는 것은 자유가 아니다. 불행히도 세계적으로 벌어지는 일들은 후자이다. '안보'란 그런 속임수를 쓸 여지가 다분한 개념이기에 조심, 또 조심하고 경계하고 또 경계할 일이다.

거짓말쟁이 소년의 이야기를 어른들은 '거짓말하지 말라'는 교훈으로 사용한다. 이를 '거짓말에 속지 말라'는 얘기로 바꿔보자. 두 번이나 속은 마을 사람들은 늑대에 대한 경보를 신뢰할 수 있는 장치의 마련을 왜 하지 않았을까. 양떼와 소년의 목숨을 잃은 것은 거짓말쟁이에 대한 응징이 아니라 모두의 피해이지 않은가. 더구나 잃은 것은 귀중한 생명이요, 신뢰와 같은 사회의 버팀목이 되는 가치이다. 안보, 대테러를 명분으로 한 가짜 경보에 대피하면서 기본적 인권을 팽개치고 뛰어가 버리면 정작 안전을 위협하는 진짜 경보를 듣지 못할 수 있다.

1994 인간발전보고서-새로운 차원의 인간안보(일부 발췌)

50년 전,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핵 에너지의 발견에 대해 "모든 것이 변했다."고 간결하게 요약했다. 아인슈타인은 계속해서 예견했다. "인류가 살아남으려면 아주 새로운 사고방식이 요구된다." 핵폭발이 나가사키와 히로시마를 철저히 파괴했지만, 인류는 세계적인 핵참화를 방지하려는 최초의 결정적인 시험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50년이 지났고, 우리에게는 핵안보로부터 인간안보라는 새로운 사고의 심오한 전환이 요구된다.

안보 개념은 아주 오랫동안 협소하게 해석돼왔다: 외부의 침입으로부터의 영토의 안보로서, 또는 외교 정책에서 국익의 보호로서, 또는 핵 학살의 위협으로부터의 지구적 안보로서. 안보 개념은 인민 보다는 국민국가들에 보다 결부됐다. 열강은 전 세계적 냉전을 치르면서 이념투쟁에 사로잡혔다. 개발도상국들은 최근에야 독립을 얻었고 자신들의 약한 국가 정체성에 대한 진정한 또는 인지된 위협에 대해 민감했다. 일상생활에서 안전을 추구하는 보통 사람들의 정당한 관심사는 잊혀졌다. 이들 많은 사람들에게 안전은 질병, 굶주림, 실업, 범죄, 사회갈등, 정치적 억압, 환경적 위험의 위협으로부터의 보호로 상징됐다. 물러간 냉전의 어두운 그림자와 더불어 이제 우리는 국가간이 아닌 국가 내부의 많은 분쟁을 볼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불안감은 격변하는 세계적 사건에 대한 두려움에서가 아니라 일상생활에 대한 걱정으로 인한 것이 더 많다. 자신과 가족들이 충분히 먹을 수 있을까? 직업을 잃지 않을까? 거리와 이웃들이 범죄로부터 안전할까? 억압적인 정부에게 고문을 당하지 않을까? 성별 때문에 폭력의 피해자가 되지 않을까? 종교적 또는 인종적 출신 때문에 박해의 표적이 되지는 않을까?

최종분석하면, 인간 안보란 아이가 죽지 않는 것, 질병이 퍼지지 않는 것, 일자리가 삭감되지 않는 것, 인종(민족) 긴장이 폭력적으로 격발되지 않는 것, 반대자가 침묵당하지 않는 것이다. 인간안보는 무기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인간의 삶과 존엄성에 대한 관심이다.

간단하지만, 인간안보의 사상은 21세기의 사회에 급격한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인간안보의 기본 개념을 고려할 때 4가지 본질적 특징에 초점을 둬야 한다.

□ 인간안보는 보편적 관심사다.
인간안보는 부유한 나라이거나 가난하거나 모든 곳의 사람들과 관련된다. 모든 사람에게 공통된 많은 위협들이 있다. 예를 들어 실업, 마약, 범죄, 오염, 인권침해이다. 문제의 강도는 지역마다 다를 수 있으나 인간안보에 대한 이 모든 위협들은 현실이며 증가하고 있다.

□ 인간안보의 구성요소는 상호의존한다.
세계 어디서건 인민의 안전이 위험에 빠지면 모든 국가들이 연루될 수 있다. 기아, 질병, 오염, 마약 거래, 테러리즘, 민족 분쟁, 사회적 해체는 더 이상 고립된 사건이 아니며 국경 내부에 한정되지 않는다. 그 영향은 전 지구를 휩쓴다.

□ 인간안보는 사후 개입이 아닌 사전 예방을 통해 보장하는 것이 더 쉽다.
이들 위협에 대해 막바지보다는 시작단계에서 대처하는 것이 대가를 덜 치른다. 예를 들어 HIV/AIDS의 직간접 비용은 1980년대에 대략 2천4백억 달러였다. 수십 억 달러라도 기초 건강 보호와 가족계획 교육에 투자됐다면 이 치명적인 질병의 확산을 막는데 도움이 됐을 것이다.

□ 인간안보는 인민 중심적이다.
인간안보는 사회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느냐, 얼마나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느냐, 시장과 사회적 기회에 얼마나 접근할 수 있느냐, 분쟁 속에 사느냐 평화롭게 사느냐에 관심을 갖는다.
몇몇 분석가들은 인간안보를 엄격하게 정의하려고 했다. 하지만 '인간의 자유'와 같은 여타의 근본적인 개념들처럼, 인간안보는 그것의 실재보다는 부재를 통해 더 쉽게 규명될 수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안전이 의미하는 바를 이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다 명백한 정의가 있는 것이 유익할 수 있다. 인간안보는 두개의 주요한 측면을 갖는다고 말할 수 있다. 첫째, 인간안보는 기아, 질병, 억압 등의 만성적 위협으로부터의 안전이다. 둘째, 인간안보는 일상생활의 유형-집이건, 직장이건, 지역사회이건- 속에서 갑작스럽고 해로운 붕괴로부터의 보호를 의미한다. 이러한 위협은 모든 수준의 국민 소득과 발전 수준에서 있을 수 있다.

인간안보의 상실은 느리고 조용한 과정일 수도 있고 갑작스럽고 소란한 긴급상황일 수도 있다. 잘못된 정책 선택으로 인한 인재일 수도 있고 자연의 힘에 의한 것일 수도 있다. 또는 환경 파괴가 자연 재해를 초래하고 인간 비극이 뒤따르는 경우에서처럼 두개의 합성일 수도 있다.

안전을 정의하는데 있어서 인간안보가 인간발전과 동등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 인간발전은 보다 광의의 개념이다. 인간발전은 이전 인간발전보고서에서 인민의 선택의 범주를 확장하는 과정으로서 정의됐다. 인간안보는 인민이 이러한 선택을 안전하고 자유롭게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오늘 갖고 있는 기회가 내일 전적으로 상실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상대적으로 확신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인간안보와 인간발전은 연관된다: 한 쪽에서의 진보가 다른 쪽의 진보의 기회를 강화한다. 하지만 한쪽에서의 실패는 다른 쪽의 실패의 위험을 또한 증가시키며 역사는 그 사례들로 가득차 있다.

실패한 또는 제한된 인간발전은 인간박탈-빈곤, 굶주림, 질병, 인종(민족) 집단 또는 지역간의 지속적인 불균형-을 초래한다. 권력과 경제적 기회에 대한 접근에서 이러한 것들이 적체되면 폭력을 초래할 수 있다.

 

[류은숙] <2005년 9월 16일 인권하루소식 제2897호> 

인권오름 제 175 호  [기사입력] 2009년 10월 21일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요즘 뉴스를 접하다보면 한국에 9.11이 터졌나 하는 착각이 든다. 미국의 역사에서 이전 시대에도 정치적 반대자들에 대한 음모적 탄압의 사례가 많지만 9.11이후 그것은 정말 노골적이라 국제인권사회의 지탄을 받았다. 9.11 이후 미국사회에서는 소위 ‘테러와의 전쟁’이란 이름하에 전통적인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의 핵심이 도전받는 일이 많이 벌어졌다.

정부정책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애국심에 의문을 제기함으로써 반대자들을 관용하지 못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한다. 결사에 대한 죄를 부과함으로써 정치적 행동을 무력화시킨다. 정부 정보에 대한 접근을 제한하고 비밀주의를 강화함으로써 언론과 대중, 심지어 의회조차도 정부를 견제하기 위한 노력을 하는 걸 방해받는다. 단지 불순한 견해를 갖고 있다는 비밀 정보만을 이유로 시민들에 대한 수사에 착수하는 일이 다반사가 된다. 비밀사찰, 이메일 등에 대한 도감청, 연설 방해, 집회방해, 시민단체의 후원자 캐기, 비시민권자(국내거주 외국인)에 대한 단속과 구금․추방을 강화하기, 시민불복종 행동에 국내 테러라는 딱지 붙여 처벌하기, 인터넷 시대 정치 활동가들에 대한 전자 개인 기록 구축하기, 노벨평화상 수상경력까지 있는 시민단체에까지 “범죄를 일삼는 극단주의자”라는 딱지 붙이기, 툭하면 언론보도를 제한해 달라고 요구하며 언론 길들이기, 이에 굴하지 않는 비판적 언론인들의 밥줄 자르기, 정부가 허위정보 발표를 남발하고 의회에 대한 답변을 거부하기 등이다.(더 자세한 내용은 낸시 챙 지음, 유강은 옮김, 『정치적 반대세력을 침묵시키기』, 도서출판 모색, 2006 참조)

들여다볼수록 남의 일 같지 않은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국에서는 최근 소위 ‘밥줄공안시대’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뭔가 분명하진 않지만 뭔가 권력층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기 때문에 교단에서 쫓겨나고 마이크를 뺏기고 무식하거나 극단론자라는 식의 인물평에 오르고 검찰과 경찰의 수첩에 오르게 된다고들 느낀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이런 일들이 목표하는 바는 소위 ‘알아서 기게 만들기’라고. ‘알아서 기기’를 좀 더 공식적인 언어로 하면 ‘자기 검열의 강화’이다. 평생을 검열과 씨름한 체코의 한 작가는 ‘자기 검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세 가지 형태로 구분하여 말한 적이 있다.

첫 번째는 검열과의 싸움이다. 쓰고 싶은 것을 쓰고 말하고 싶은 말하면 절대로 출판도 공연도 가능하지 않으리란 걸 알기 때문에 우회적인 표현을 쓰는 것이다. 자기 사회에 대한 진짜 감정을 직접 표현하지 못하고 우화나 터무니없는 얘기나 환상 같은 얘기로 위장하여 표현하는 것이다. 그렇게 말해도 알아들으려 하는 사람들은 찰떡같이 알아들으리라 생각하고 그리 하는 것이다. 이런 식의 검열과의 싸움에 장점이 하나 있다면 검열을 피할 수 있다는 것과 감춰진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사람들이 더 열심히 생각할 수 있다는 점이다. 같은 선상에서 요즘 한국의 네티즌들은 ‘반대한다’고 쓸 말을 ‘찬성한다’는 식으로 씀으로써 검열과 싸우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두 번째는 생존 또는 출세를 위한 검열이다. 이것은 다소 복잡하고 슬픈 형태의 자기검열이다. 생존의 수단으로 사용될 때 뭔가에 반대해 말하는 건 어렵다. “죽거나 감옥에 가라, 또는 너의 지위를 영원히 잃어라”라고 도대체 누가 타인에게 명백하게 말하겠는가? 명백한 금지는 없었지만 용기가 부족하거나 두렵기 때문에 스스로 자기검열을 하게 된다. 정치적으로 수용될 수 없거나 단지 불편하게 느껴지기만 할지라도 직업을 잃을지 모른다는 걸 잘 알기 때문에 자기검열을 하게 된다. 자기검열의 대가로 살아남기는 하지만 자신의 고결성을 잃게 된다. 이런 게 슬픈 종류의 자기 검열이다.

세 번째는 표현하는 사람에게 전적으로 책임을 지우는 단계의 자기 검열이다. 표현한 사람을 내치는 것은 단지 작품에 대한 검열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시민으로서 금지하고 추방해버리는 것이다. 이것은 동시에 심오한 해방이 될 수 있다. 금지당하고 추방당함으로써 더 이상 자기 검열을 생존이나 출세의 방편으로 생각할 필요조차 없다. 더 이상 떨어질래야 떨어질 데가 없는 바닥이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과 자신의 작업에 대해 그리고 자신이 바닥에서 바라보고 있는 사회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이 지점이 해방감을 경험하게 되는 이상한 지점이다. 표현하길 원하는 모든 것, 진짜로 느끼는 모든 것을 갑자기 쓰기 시작한다. 돈을 못 받더라도 어떤 지위를 얻지 못해도 출판조차 하지 못할지라도 해야만 하는 일이기 때문에 해야 하는 방식으로 글을 쓰게 된다.

현재 한국 사회는 지금 어떤 종류의 자기 검열을 겪고 있는 것일까? 입만 열면 ‘좌빨’이 되고 제거돼야할 ‘불순인물’ 또는 ‘불순세력’이 돼버리는 현실은 분명 정상이 아니다. 이런 현상이 더욱 위험한 것은 사람들의 입을 막아서 인간다운 생존을 추구할 노력을 억누르는데 있다. 올 초 용산참사가 벌어졌을 때 철거민을 향해 ‘도심 테러리스트’ 운운했던 게 그 생생한 증거이다. 나아가 우리 사회의 진짜 위험원인이 뭐고, 고쳐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보지 않고 ‘헛된’ 적을 지목해서 불안과 공포를 조성하고 희생양을 만들어낸다. 그 희생양은 두말할 것도 없이 사회경제적 약자들이다. 표면에선 몇 몇 지식인과 유명인들이 유탄을 맞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희생양은 사회경제적 소외에 대해 표현하고 고칠 길이 가로막힌 사람들이다.

오늘 읽어볼 인권문헌은 메리 로빈슨(Mary Robinson)의 글이다. 그녀는 1997년부터 2002년까지 유엔 인권고등판무관을 지냈다. 그 이전에는 아일랜드 대통령을 7년간 지냈는데, 국가원수로서는 최초로 집단학살과 인도주의적 위기를 겪은 르완다와 소말리아를 방문한 인물이다. 9.11이후 그녀는 소위 ‘테러와의 전쟁’을 빌미로 인권을 후퇴시키는 조치를 강하게 비판했다. 이에 대한 강연과 글을 여러 차례 발표했는데 오늘 읽어볼 글은 그 중 하나이다. 현재 한국사회가 벌이고 있는 ‘인권과의 전쟁’ 상황에서 곱씹어봐야 할 지적이라 여겨진다.

인권, 인간 발전, 인간안보를 연결하기

… 남아공 헌법재판소의 재판장 아더 차스칼손이 표현한 대로 “우리는 맨 처음부터 파수꾼이 돼야만 한다. 첫 단계에서 용인한다면 다음에 올 모든 단계는 훨씬 더 법의 지배를 침식하고 인간 존엄성을 무시할 것이다.”

시민의 자유를 급속히 침식하고 이민법을 오용하게 된 9.11의 여파 속에서 미국 의회와 언론은 파수꾼이 되는데 실패했다. 또한 이라크의 아부 그라이브 교도소의 수인 학대에서 명백히 드러났듯이 인간 존엄성을 무시했다.

현재의 안보 문제에 대한 우리의 답은 확고하고 심사숙고하며 일관된 것이어야만 한다. 국제법률가위원회(ICJ)는 좋은 출발을 보여줬다. 2004년 8월 ICJ의 격년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온 160명의 국제 변호사들은 테러리즘과의 전투에서 인권과 법의 지배를 지지할 것에 대한 선언(일명 베를린 선언 Berlin Declaration)을 채택했다.

“테러리즘 억제를 위한 조치를 채택함에 있어, 국가는 형사법과 국제법의 핵심 원칙과 국제인권법, 난민법 및 인도주의 법의 구체적 기준과 의무를 포함한 법의 지배를 엄격히 지켜야 한다. 이들 원칙과 기준과 의무는 테러리즘에 대해 국가가 취할 수 있는 행위의 허용가능성과 정당성의 경계를 정하고 있다. 테러리스트의 행위가 역겨운 성질의 것이라 해도 국가가 국제적 의무, 특히 기본적 인권의 보호라는 국가의 의무를 무시할 수 있는 근거나 구실이 될 수는 없다.” (www.icj.org)

지속적으로 변하는 외교정책 환경 속에서, 소위 테러리즘과의 전쟁이라 부른 것으로 인한 인권의 이익과 비용에 대한 명백한 판단이 곧 분명해질 것이다. 나는 9.11 공격을 위반자를 재판에 회부하기 위해 국제적인 군사, 경찰, 정보의 협력을 요구하는 “반인류적 범죄”라 하지 않고, “테러리즘과의 전쟁”을 요구한 것이 전략적 실수였다고 지속적으로 주장해왔다.

중대한 사건에 대한 우리의 대응을 형성하는데 있어 언어는 결정적이다. 사건을 규정하는 언어가 대응의 성격을 결정한다. 9.11은 “반인류적 범죄”의 관할 하에 있다. … 그런데 “테러와의 전쟁”이란 용어가 사용되었다. 이것은 직접적이고 사악한 함의를 가졌다. 이런 규정은 미묘한 강조점의 변화를 가져왔다. 질서와 안보가 다른 모든 고려사항보다 으뜸이라는 것이고, 이는 민주주의와 인권의 축소와 관련된다.

언제가 돼야 테러와의 전쟁은 승리할 수 있느냐는 질문이 도출된다. 영원한 평화를 위한 영원한 전쟁인가?

미국과 유럽에서 강조점은 국가안보와 테러와의 전쟁 행위에 있다. 그러나 적나라한 현실은 이미 폭력, 질병, 극빈에서 오는 일상적 위험에 시달리고 있는 수백만 사람들에게 9.11이 어떤 영향도 미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들의 불안은 어디서 다음 끼니를 구하나, 어떻게 죽어가는 아이의 약을 구할까, 총을 가진 범죄자를 어떻게 피할까, 10살짜리 AIDS 고아로서 살림을 어떻게 꾸려 갈 것이냐이다.

지난 6년간 전 세계에서 대략 2만5천여 명이 테러리스트의 공격으로 사망했다. 이 숫자를 같은 기간 기아, 말라리아, 그리고 기타 예방 가능한 질병으로 죽은 사람들의 수와 비교해보라. 이런 질병으로 죽는 수는 하루 2만 5천여 명에 가깝다.

진정으로 안전한 세상을 위하여 우리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채택해야 한다. 즉, 우선순위를 옮기는 것, 인간안보의 성취이다. 이것은 인권과 인간발전에 대한 새로운 헌신, 세계의 모든 곳 모든 사람들에 대한 공통의 책임감을 요구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경로의 변경이다. 새로운 접근은 인간과 지구의 안전을 규정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더 넓은 이해 속에서 시작된다. 취약성이 커질수록 인간의 상호의존성이 늘어가며 우리는 이와 균형을 이루는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남반구와 북반구의 정부들 모두 국가안보를 넘어서서 안보를 광의의 의미로 이해하는 생각과 정책을 확대해야만 한다.

내가 아일랜드 대통령으로서 인식하기 시작(예를 들어 소말리아와 르완다 방문으로)했고 유엔에서의 5년 임기동안 확신하게 된 것은 인간의 모든 불안의 실제적 원인이 개인적 또는 집단적 차원에서 변화를 이끌 수 있는 역량의 부족, 즉 투표나 어떤 식으로든 국가적 의사결정에 대한 참여에서 배제되는 것과 경제적․사회적 소외라는 점이다. 변화의 열쇠는 인민들이 스스로의 삶을 확보하도록 자력화하는 데 있다. 이것을 위해 인민은 지역에서나 전국적으로나 자신들의 정부가 책무성을 갖도록 할 수단을 필요로 한다.

인간안보에 대한 광의의 이해를 아마티아 센과 사다코 오가타가 공동의장인 ‘인간안보에 관한 독립위원회(independent Commission on Human Security)’가 검토했다. 이들의 보고서(Human Security Now, 2003)는 국가안보로부터 인민의 안보, 즉 인간안보로 변환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설명한다.

여기서 인간안보의 두 개의 핵심 개념은 ‘보호’와 ‘자력화’이다. 첫 번째 ‘보호’란 국가의 책임(때로는 국제사회의 책임)으로서 … 인권을 증진하고 소수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모든 집단이 대표될 수 있는 정치적 조정을 수립하는 것이다. … 두 번째 ‘자력화’란 자신을 위해 그리고 타인을 위해 행동하는 인민의 능력이다. 자력화된 인민은 자신의 존엄성이 침해받을 때 그에 대한 존중을 요구할 수 있다. 자력화된 인민은 일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들을 창조하고 지역에서 많은 문제들을 다룰 수 있다. 그리고 타인의 안전을 위해 결집할 수 있다.

이 개념은 인권 공동체와 법학자들이 함께 결합할 수 있고 혁명적인 사례를 증진할 수 있는 개념이다. 본질적으로 우리는 풀뿌리 운동을 보다 가시적으로 만들고 풀뿌리 운동에 기반할 필요가 있다. 풀뿌리 운동은 부당한 지구적 거버넌스에 도전하고 자신들의 정부가 식량, 안전한 물, 건강과 교육에 대한 권리를 차별 없이 실현하는데 더욱 더 책무성을 갖도록 인권의 구조를 사용한다.

아마티아 센은 찬사 받은 그의 저작 ‘자유로서의 발전(1999)’에서 말한다.

“때때로 실질적 자유의 결핍은 경제적 빈곤과 직접적 관련이 있다. 경제적 빈곤은 굶주림을 면하고 충분한 영양을 공급받으며, 치유가능한 질병에 대한 치료를 받고, 적절한 옷과 주거를 제공받고, 또한 깨끗한 물과 위생적인 시설을 누릴 자유를 박탈한다. 또 다른 경우 부자유는 공공시설과 사회 보호의 부재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예컨대 생태학적 프로그램, 의료보호나 교육시설을 위해 조직된 기구, 지역 평화와 질서 유지를 위한 효과적인 제도가 없는 경우가 그러한 예이다. 그리고 정치적 권리와 시민적 자유를 부정하고 공동체의 사회․정치․경제적 생활에 참여할 자유에 대해 제한을 가하는 권위주의적 정권 때문에 자유에 대한 침해가 직접적으로 생긴다.”

자유와 인간안보를 이런 식으로 연결 짓는 것은 자원 할당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 … 발전을 위한 지원은 연간 6백억 달러, 선진국의 연간 농업보조금은 3천억 달러, 군사지출은 9천억 달러로서 여전한 불일치가 있다. 2015년까지 새천년발전목표(MDG: 2000년 유엔특별총회가 채택한 것으로 2015년까지 절대빈곤과 기아의 근절, 초등의무교육 실시 등 8개항에 걸쳐 국제사회의 달성목표를 제시했다) 실천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연간 5백-6백억 달러가 더 필요하다. MDG에 대한 추가 지출이 세계를 보다 안전하게 만든다면 좋은 투자가 아니겠는가?

2003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이란의 시린 에바디의 인권 보편성에 대한 강조를 부각시킴으로써 결론을 지으려 한다. … “우리의 인권을 존중하지 않으면 우리의 인간성을 해칠 뿐이다. 이런 근본적 진실을 깨뜨리지 말자. 우리가 그것을 깨뜨린다면 약자들은 기댈 곳이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인권오름 제 175 호  [기사입력] 2009년 10월 21일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인권오름 제 175호 2009년 10월 21일 류은숙(인권연구소'창' 연구활동가)>

 

<역자 주>
나온 지 좀 오래된 보고서지만 [인권문헌읽기]의 메리 로빈슨의 글에서 비중 있게 언급된 보고서라 이해를 돕기 위해 요약본을 싣는다. 이 보고서의 원문은 다음에서 볼 수 있다. http://www.humansecurity-chs.org/finalreport/English/FinalReport.pdf‘인간안보’란 국가안보가 인권보장과 항시 충돌하면서 사실상 '정부보안', '기득권세력의 자기보호 카드'로 활용되는 걸 비판하면서 나온 개념이다. 더 성능 좋고 더 비싼 무기와 감시체제가 보장하는 안전이야말로 진짜 안전이라는 주장에 맞서 진짜 안전은 국민의 존엄성과 인권이 효과적으로 보호되는 것이라 주장한다. 인간안보의 출현에 대한 호의적인 반응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미 넘쳐나는 '말잔치'에 또 하나의 단어를 추가하는 것이라는 반응도 있고, 빈곤 등의 중요한 문제들을 '안보'라는 개념으로 다룬다는데 반감이 있기도 하다. 위협으로부터의 안전을 말하는데 그 위협이란 게 정당한 위협인지 아닌지가 모호한 것은 국가안보주의가 갖고 있던 문제와 마찬가지라는 지적도 있다. 가장 많은 비판은 '인간안보'의 개념이 모호하기 때문에 인간생활에 '위협'이라 인식되는 요소가 자의적으로 선택될 수 있고, 그런 모호성과 자의성 때문에 실질적인 변화를 이루는데 별 도움 될 바가 없다는 것이다.인간안보의 개념을 지지하는 사람들 속에서도 이견은 있다. 그 의미를 좁게 또는 넓게 정하자는 주장간의 대립이다. 좁게 정하자는 것은 인간사에 있을 수 있는 문제란 문제를 다 포괄하다 보면 그 개념이 모호해지고 그 문제의 취사선택이 자의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대표적으로 '폭력'같은 것에만 개념을 한정하자는 것이다. 반면에 '안전'이란 폭력의 위협으로부터의 안전 그 이상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빈곤, 질병, 환경 재해 같은 문제들이 포함돼야 한다는 것이 넓게 정하자는 주장이다. 어느 쪽이건 '안전'의 개념이 국가에 대한 위협, 영토에 대한 위협, 군사적 차원의 안보 개념을 넘어서야 한다고 본다.

인간 안보 - 지금

오늘날 상품, 서비스, 금융, 인간과 이미지의 지구적 유통이 강조되고 있듯이 전 세계적으로 인민의 안전은 상호연관 되어 있다. 정치적 해방과 민주화는 새로운 기회들을 열어젖혔지만 또한 새로운 실패를 보였다. 예를 들어 국가들 내에서의 정치적․경제적 불안과 갈등이다. 한 해에 8십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폭력에 생명을 잃는다. 28억 명 가량의 사람들이 빈곤과 나쁜 건강, 문맹 및 여타의 질병으로 고통 받는다. 분쟁과 궁핍은 상호연관 되어 있다. 면밀히 검토돼야 하기는 하지만, 궁핍에는 폭력과 연결되는 많은 요인이 있다. 거꾸로 전쟁은 사람들을 죽이고, 사람들의 신뢰를 파괴하고, 빈곤과 범죄를 증가시키고 경제를 후퇴시킨다. 이런 불안을 효과적으로 다루기 위해서는 통합적인 접근이 요구된다.

인간 안보에 대한 이 보고서의 요청은 오늘날 세계의 도전에 대한 응답이다. 정책과 제도는 이런 불안에 대해 더 강력하고 더 통합적인 방식으로 대응해야 한다. 국가는 인간 안보에 대해 우선적인 책임을 계속 져야 한다. 하지만 인간 안보의 도전이 더욱 복잡해지고 다양한 새로운 행위자들이 역할을 시도함에 따라 우리는 틀거리의 전환을 필요로 한다. 초점은 국가안보로부터 인민의 안보, 즉 인간 안보로 확대돼야 한다.

인간안보란 중대한 자유를 보호하는 걸 의미한다. 그것은 인민을 중대하고 확산되는 위협과 상황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고 인민의 힘과 열망에 기초하는 것이다. 인간안보란 또한 인민에게 생존, 존엄 및 생계를 지킬 버팀대를 주는 시스템을 창조하는 걸 의미한다. 인간안보는 다양한 유형의 자유, 즉 궁핍으로부터의 자유, 공포로부터의 자유, 자신의 편에서 행동을 취할 자유를 연결한다. 이 일을 하기 위해 인간안보는 두 가지 일반적 전략 -보호와 자력화- 을 제공한다. 보호는 인민을 위험으로부터 방어한다. 보호는 체계적으로 불안을 다룰 수 있는 규범, 과정, 제도를 발전시키기 위한 조응된 노력을 필요로 한다. 자력화는 인민으로 하여금 자신들의 잠재성을 발전시킬 수 있게 하고 의사결정에 완전한 참여자가 될 수 있게 한다. 보호와 자력화는 상호 강화하는 것이며 둘 다가 대부분의 상황에서 요구된다.

인간 안보는 국가안보를 보완하는 것이며 인간 발전을 증진하며 인권을 강화한다. 인간안보는 인민 중심적임으로 인해 그리고 국가안보의 위협으로 간주되지 않았던 불안들을 다룸으로 인해 국가안보를 보완한다. “아래쪽의 위험”을 봄으로써 인간안보는 “형평성 있는 성장”을 넘어서서 인간 발전의 강조점을 확대한다. 인권을 존중하는 것이 인간안보를 보호하는 것의 핵심에 있다.

민주주의 원칙을 증진하는 것이 인간안보와 발전을 얻기 위한 조치이다. 민주적 원칙의 증진으로 인민은 거버넌스에 참여할 수 있고 자신들의 목소리가 들리도록 만들 수 있다. 여기에는 강력한 제도 건설, 법의 지배의 수립, 인민의 자력화가 요구된다.

인민의 안전을 증진시키기 위한 방법

인간안보는 분쟁과 궁핍 등의 문제를 다루기 위해 함께하는 노력을 강화하는 걸 추구한다. 예를 들어 유엔의 새천년선언(Millennium Declaration)과 새천년발전목표(MDGs; Millennium Development Goals)를 실현하기 위한 시도가 되고 있다. 인간안보를 실현하는 데는 인민들이 직면한 중대하고 만연한 위협의 전 범주를 다루기 위해 노력함으로써 MDGs에 기반할 뿐 아니라 MDGs를 넘어서는 노력이 요구된다.

폭력적 분쟁에서 인민을 보호하기: 민간인은 분쟁의 주요 사상자이다. 민간인을 보호하기 위한 규범과 메커니즘 둘 다가 강화돼야 한다. 여기에는 정치적, 군사적, 인도주의적 및 발전의 측면을 연결하는 포괄적이고 통합적인 전략이 요구된다. 인간안보위원회는 모든 수준의 안보 기관의 의제에 인간안보를 공식적으로 둘 것을 제안한다. 시민권과 인도주의 법에 대한 존중 속에서 인권이 어떻게 지지될 것인가에는 중대한 격차가 있다. 이러한 격차가 좁혀져야 할 뿐만 아니라 인권침해의 가해자들에 대한 불처벌을 끝내기 위한 관심이 요구된다. 인민간의 상호공존과 신뢰를 증진하기 위한 지역사회에 기반한 전략들이 이런 노력을 지원할 것이다. 특별한 관심을 쏟아야 할 것은 여성, 아동, 노인 및 여타 취약 집단 보호이다. 군비 축소, 무기 확산 방지와 자원과 인간에 대한 불법적인 거래를 방지하는 것을 통한 범죄와의 싸움이 우선순위가 돼야 한다.

이동하고 있는 인민을 보호하고 자력화하기: 대다수 사람들에게 이주는 생활을 개선하기 위한 기회이다. 또 어떤 사람들에게 이주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유일한 선택이다. 예를 들어 분쟁이나 심각한 인권 침해 때문에 달아날 것을 강요받는 사람들이 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만성적인 궁핍이나 갑작스런 하락을 피해 고향을 떠나야만 한다. 오늘날 난민에 대한 것을 제외하고는 이주에 대한 보호를 제공하거나 규제하기 위한 합의된 국제적 틀은 없다. 국가들의 안전과 발전의 필요성 사이의 세심한 균형과 이동하는 사람들의 인간 안보를 다룰 필요성에서 고위급에 기반한 광범위한 토론과 대화를 함으로써 국제적 이주 틀의 가능성이 탐색돼야만 한다.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은 난민과 국내유민에 대한 보호를 보장하고 이들의 피난을 멈출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다.

분쟁 후 상황에 있는 인민을 보호하고 자력화하기: 휴전 협정과 평화협상은 분쟁의 종식을 표시할 수는 있지만 반드시 평화와 인간안보가 도래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분쟁에서 인민을 보호할 책무는 재건의 책임성으로 보완돼야만 한다. 분쟁으로 파괴된 국가들을 재건하는 데는 새로운 구조와 자금 전략 -인민을 보호하고 자력화하는 데 초점을 둔- 이 필요하다. 보호와 자력화라는 인간안보 틀은 인민에게 영향을 미치는 많은 문제들 간의 연결을 강조한다. 예를 들어 시민 경찰 강화와 전투원 해산을 통한 인민의 안전 보장, 이주민의 급박한 필요 충족, 재건과 발전 착수, 화해와 공존의 증진, 효과적인 거버넌스 진전이다. 성공적이려면 인간 안보의 전달점에 근접한 모든 행위자들에게 통일된 지도력을 수립하는 것이 요구된다. 이런 틀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현장에서 인간안보 관련 활동의 계획, 예산, 실현의 일관성을 보장하기 위하여 분쟁 후 상황에 대한 새로운 자금 전략이 구상돼야만 한다.

경제적 불안 - 기회들 중에서 선택할 힘: 극빈이 만연한 채이다. 비시장 제도의 발전 뿐 아니라 시장의 적절한 기능은 빈곤 퇴치에 핵심이다. 효과적이고 평등한 무역 조정, 극빈자에게 영향을 미치는 경제 성장, 이익의 공정한 분배가 중요하다. 만성적 빈곤과 더불어 인간안보는 갑작스런 경제 침체, 자연 재해 및 위기의 사회적 영향을 강조한다. 위기를 맞았을 때 사람들을 안전하게 지키거나 빈곤에서 벗어나도록 하기 위해 우리에게는 인민의 기본적 필요를 충족시키고 경제적 및 사회적 최저선을 보장할 사회적 조정이 필요하다. 세계 인구의 4분의 3이 사회보장의 보호를 받지 못하거나 안전한 일을 갖고 있지 못하다. 모두를 위한 안전에 기반한 지속가능한 생계와 일을 보장하기 위한 노력이 강화될 필요가 있다. 토지, 금융, 교육 및 주거에 대한 접근이 중요하며 특히 가난한 여성에게 그렇다. 자원의 평등한 분배는 생계의 안전에 핵심이며 인민 자신의 역량과 재간을 강화할 수 있다. 사회적 보호조치와 안전망은 사회적 및 경제적 최저선을 진전할 수 있다. 국가들은 국제 체계의 지원을 받아 자연재해와 경제적 위기 또는 금융위기에 대한 조기 경보와 예방 조치를 수립할 필요가 있다.

인간 안보를 위한 건강: 건강보호의 진전에도 불구하고 2천2백만의 사람들이 2001년 예방 가능한 질병으로 사망했다. HIV/AIDS는 곧 최대의 건강의 파국이 될 것이다. 긴급성, 깊이와 영향, 지구적 전염성 질병, 빈곤과 관련된 위협, 폭력에서 유발되는 건강 박탈이 특히 중요하다. 모든 보건 행위자들은 공공재로서 건강 서비스를 증진해야 한다. 정보에 대한 접근, 나쁜 건강의 근본 원인의 제거, 조기 경보 체계의 제공, 일단 발생한 위기에서 건강 충격을 완화하는 걸 포함하여 사회적 행동을 동원하고 지지적인 사회적 조정에 투자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약품에 대한 접근을 제공하는 것이 가난한 국가들의 사람들에게 중요하다. 지적재산권 체제는 연구개발을 위한 자극과 감당할만한 가격에 생명을 구할 약품에 대한 인민의 접근성을 보장하는 것 간에 균형을 이뤄야 한다. 국제사회는 건강을 위한 지구적 협력 네트워크를 형성해야 한다. 예를 들어 감염성 질병에 대한 지구적 감시와 통제 시스템의 증진이다.

지식, 기술, 가치 - 인간 안보를 위한: 지식, 생애 기술 및 다양성에 대한 존중을 제공하는 기본교육과 공공 정보는 인간안보에 특히 중요하다. 인간안보위원회는 특히 소녀에 대한 교육을 강조하며 보편적 초등 교육의 성취를 적극적으로 도울 것을 국제사회에 촉구한다. 학교는 물리적 불안을 만들어내서는 안되며 성폭력을 포함한 폭력으로부터 학생들을 보호해야 한다. 교육은 다양성에 대한 존중을 배양하고 균형 잡힌 교과과정과 지도 방법을 채택함으로써 우리 정체성의 다양성을 증진해야 한다. 생애 기술과 정치적 문제에 대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고 공적인 토론에서 인민에게 목소리를 부여하기에 공공 매체는 중요하다. 교육과 미디어는 노동기회와 가족 건강을 증진할 정보와 기술을 제공할 뿐 아니라 인민이 능동적으로 자신들의 권리를 행사하고 책임성을 실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앞에 열거한 것에 기초하여 인간안보위원회는 다음과 같은 영역에서 정책적 결론에 도달했다.

1. 폭력 분쟁에서 인민을 보호하기
2. 무기 확산으로부터 인민을 보호하기
3. 이동하는 인민의 안전을 지원하기
4. 분쟁 후 상황을 위한 인간안보 이전 기금 수립하기
5. 극빈자의 이익을 위한 공정 무역과 시장을 장려하기
6. 어디에서나 최소한의 생활수준을 제공하기 위해 활동하기
7. 기본적인 건강보호에 대한 보편적 접근을 보장하는데 우선순위 부여하기
8. 효과적이고 평등한 지구적 특허권 체계 개발하기
9. 보편적 기본 교육으로 모든 인민을 자력화하기
10. 다양한 정체성을 갖고 결연을 맺을 개인들의 자유를 존중하는 동시에 지구적인 인간 정체성을 위한 필요를 명확히 하기

 

<인권오름 제 175호 2009년 10월 21일 류은숙(인권연구소'창' 연구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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