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자 : 2008. 3. 20

글쓴이 : 류은숙(인권연구소'창' 연구활동가)

 

<편집자 주>

올해로 세계인권선언은 제정 60주년을 맞았다. [인권연구_창]에서는 세계인권선언의 전문과 30개 조항을 현재적 시각에서 분석해본다

이제 세계인권선언(아래부터 선언) 속으로 본격적으로 들어가 보자. 선언 전문과 1조를 읽어보면 18세기의 근대인권선언과 세계인권선언의 언어는 유사하다고 느낄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고유한 존엄성”, “평등하고 양도할 수 없는 권리”, “태어날 때부터” 등의 표현이다. 1조의 첫 문장은 1789년 ‘프랑스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을 모델로 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의문이 들게 된다. 선언의 기초자들은 계몽주의 철학에 근거한 것인가? 선언에는 하나의 공통된 철학적 기초가 깔린 것인가?

세계인권선언의 철학적 기초

선언의 기초자들은 논쟁 끝에 ‘신’과 ‘자연’에 대한 언급을 삭제했다. 선언의 기초자들은 인간 이성과 양심이 어디로부터 온 것인가에 대한 형이상학적 논쟁을 피하고 어떤 가치도 절대자나 위에서부터 내려온 것으로 보지 않는 세속적인 문서를 만들려 했다.

권리 목록(내용)에 대한 합의가 시급한 과제였기에 선언 자체에 인권에 대한 하나의 공통된 철학적 기초가 명시될 수 없었다. ‘하나’의 공통된 철학적 기초가 없다는 것이지, 아예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자유, 평등, 우애’의 이념, 자유주의적 자연권 사상, 사회주의 사상 등이 선언에는 담겨있다. 선언에 대한 합의가 가능했던 것은 “공통된 관념적 사유에 근거해서가 아니라 공통의 실천적 인식에 근거해서였고, 이 세계에 대한 하나의 동일한 개념에 동의해서가 아니라 행위를 인도할 수 있는 하나의 신념체계에 동의했기 때문”이었다.

선언에 담긴 여러 색깔의 철학 중에서 전문과 1조에서는 계몽주의 사고방식이 유별나게 드러난다. 인권을, 단지 인간임으로서 해서 다른 어떤 이유(가령 사회계약, 정부의 행위, 의회나 법원의 결정 등)도 없이 인간에게 ‘고유’한 것으로 본 것이다. 인간 본성의 원천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으나, 인권이 인간 본성에서 나오는 것이지 국가행위로부터 나오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은 여전했다. 어떤 사람이나 정치적·사회적 기관이 준 것이 아니기에 우리로부터 빼앗아갈 수도 없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서는 사회주의권 대표들도 반대표를 던지지 않았다.

“사람은 이성과 양심을 부여받았으며”

“신과 자연”은 삭제됐지만 1조에서 “이성과 양심”이란 용어는 사용됐다. 이때 “이성과 양심”이 오독될 위험성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었다. 이 의견은 ‘이성과 양심’을 인간 존재를 규정하는 성격 또는 인간의 소유로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억압적인 체제가 사람들이 사회의 구성원이 되는 걸 봉쇄할 위험성이 있다. 그들이 이성을 적절하게 갖고 있지 않거나 그들의 양심이 ‘그래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이유로 말이다.

선언의 기초자들은 이런 문제점을 파악하기는 했지만, “이성과 양심”을 유지하기로 했다. “이성과 양심”이 비판자들이 여기는 것처럼 인권 소유의 존재론적 기초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 대신에 “이성과 양심”을 사람이 인권을 가진다는 걸 알게 될 수 있는 인식장치, 인간의 능력으로 봤다.

또한 이 표현은 전문 두 번째 문단에 있는 “인류의 양심”과 연결된다. 전쟁과 홀로코스트는 인류의 양심에 반하는 것이고, 세계인권선언은 인류 양심의 표현이라고 봤다. 제 1조에서 인권에 대한 천명과 함께 인간의 의무를 포함하는 것이 균형을 이룬다고 봤다. 즉 “이성과 양심”은 “서로를 형제애의 정신으로 대해야만 한다”는 것을 알게 하는 장치다.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1조에서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성과 권리에 있어서 평등하다”고 했다. 이에 어떤 태어남이냐를 둘러싼 논쟁이 있었다. 즉 ‘신체적 출생’이냐 ‘권리와 의무를 가진 인류 가족 속으로의 도덕적 출생’이냐 ‘법적인 평등’을 말하는 것이냐이다.

‘태어날 때부터’를 신체적 출생으로 본 입장에선 인간 생명의 출발점(가령 태아)을 말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 표현을 반대했다. 출생의 ‘법적’ 성격을 강조한 입장에선 이런 질문을 던졌다. 인간은 과연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성과 권리에 있어서 평등”한가? 법 앞의 권리의 평등은 출생에 의해서가 아니라 법적 평등을 보장하는 법을 국가가 공표해야 가능하지 않는가?

이에 대해 선언이 ‘태어날 때부터’를 채택하면서 취한 입장은 이런 것이다. 사람들이 흔히 불평등한 환경에서 태어난다는 것은 사실이다. 선언에서 “자유롭고 평등하게 태어난다”는 것은 결코 도처에 존재해온 엄청난 불평등을 부인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인간에 내재된 고유한 권리를 강조해야 하는 것이다. 선언에서 “태어난다”의 의미는 신체적 의미로 해석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도덕적 평등, 인권을 평등하게 누리는 것, 그에 동반된 의무를 염두에 둔 것이다.

결과적으로 선언 전문과 1조에서 말하는 “태어나다(born)”, “고유한(inherent)”, “양도할 수 없는(inalienable)”은 서로 연관된다. 모든 인간 구성원은 ‘타고난 존엄성’을 가지며, 이것은 우리가 ‘평등하고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갖고 태어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나 기관이 준 것이 아니기에 우리로부터 빼앗아 갈 수도 없다는 논리구성이다.

혁명적 항거의 권리(the right to rebellion)

원래 저항권을 하나의 독립된 권리조항으로 명시하자는 의견과 그럴 수 없다는 의견이 팽팽히 대립했다. 저항권에 반대한 입장은 ‘저항권을 인정하게 되면 정부에 반대하는 봉기를 장려하는 꼴이 된다’, ‘남용될 수 있다’고 걱정했다. ‘압제에 저항할 권리는 오직 기본적 인권과 자유가 체계적으로 박탈될 때인데 그런 일이 언제 일어나는가를 결정하는 건 불가능하다’며 결과적으로 ‘저항권을 규범 속에 둘 수 없다’고 주장했다.

반면에 적극적으로 저항권을 옹호한 입장은 "그 누구도 저항권이 불안정의 기초가 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불합리가 너무 커서 대다수가 그것을 느낄 때까지는, 또한 그것이 수정돼야 할 필요성을 발견할 때까지는 작동하지 않는다"며 저항권에 대한 우려를 반박했다. 나아가 "저항권은 위험한 것이 아니라 정당한 권리를 표현한 것이다. 전제와 폭압에 맞선 저항의 권리를 언급하지 않고서 인권을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바로 최근의 역사(나치로 인한 고통)가 저항의 필요성을 말해주지 않느냐, 파시즘에 대한 반대로서 정부에 반대할 권리가 규정돼야 한다.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민주주의는 존재할 수 없다"고 했다.

적극적 반대의견을 개진한 미국과 영국의 기권 속에 ‘혁명적 저항의 권리’는 결과적으로 별도 조항이 아닌 전문 속에 언급되게 됐다.

세계인권선언과 한반도

1945년 유엔이 창설되고 이후 3년여 선언이 기초되었다. 같은 시기 식민지 조선은 독립을 했다. 그러나 국제적 냉전과 국내의 좌·우익 대립 속에서 분단과 함께 맞은 독립이었다. 선언이 기초되던 3년여 기간 동안 한반도는 소련군과 미군의 군정 아래 놓였고, 선언이 선포된 48년 한반도 남쪽과 북쪽에서 각각 정부가 수립됐다. 각각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라 주장하며 상대방을 적으로 간주한 가운데 1950년부터 3년여 동안 이어진 끔찍한 살육의 전쟁으로 치달았다.

분단과 대립 속의 남과 북에서 국가안보는 정치적으로나 경제사회적으로나 인권탄압을 정당화하는 구호였고, 경제성장도 마찬가지 구호로 악용돼왔다. 선언의 제정은 1948년 12월 10일인데 한국의 국가보안법이 같은 해 12월 1일 제정돼 역시 60년을 맞았다. 경제성장 이데올로기는 정부 정책에 대한 반대와 저항을 여전히 틀어막으려 한다. 북한인권 문제는 오늘날 국제인권의 장에서나 국내정치에서나 뜨겁게 다뤄지고 있다.

선언에 담긴 평화와 인권에 대한 열망, 자유권과 사회권의 긴장이 담긴 권리 목록, 인권의 정치화를 둘러싼 논쟁 등 어느 하나도 우리의 문제를 비껴갈 수 없는 것들이다. 앞으로 30개 조항분석을 통해 이들 문제를 하나씩 생각해보자.

작성일자 : 2008. 3. 20

글쓴이 : 류은숙(인권연구소'창' 연구활동가)

 

 

<편집자 주>올해로 세계인권선언이 제정 60주년을 맞았다. [인권연구_창]에서는 세계인권선언의 전문과 30개 조항을 현재적 시각에서 분석해본다.

세계인권선언이 시작된 자리

모든 사람에겐 누가 어떤 힘으로도 빼앗을 수 없는 고유한 인권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 ‘고유한 인권’에는 도대체 무엇이 속하는 걸까?

세계인권선언(아래부터 선언)은 이 질문에 대답함과 동시에 실천을 약속한 선두적인 국제적 문서이다. 선언은 다른 이유 볼 것 없이 ‘인간’이라는 사실만으로 모든 인간에게 권리가 보장돼야 한다는 생각에 터를 잡았다. 선언을 만들고 합의함으로써 ‘국내법으로 못 박아 있어야만 권리가 될 수 있다’거나 ‘자국민의 인권에 대해 어떻게 하느냐는 그 국가의 맘’이라는 주장은 한물간 것이 돼버렸고, 인권에 대한 존중이 만인과 모든 국가가 지켜야 할 국제규범이 됐다. 2차 대전이라는 참상의 극한을 경험한 인류는 인권을 증진해야만 세계평화가 수립될 수 있다는 교훈을 선언에 새겨 넣었다.

세계인권선언의 구성

선언은 전문과 30조로 구성돼 있다. 맨 앞의 2개 조항은 선언의 대전제가 된다. 모든 인간이 보편적인 평등을 공유한다는 점, 이러한 평등은 인간의 존엄성에 기반을 둔다는 점, 따라서 인권은 어떤 이유로도 누구에게도 부정돼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규정하고 있다.

3조부터 21조까지는 생명권, 공정한 재판, 언론의 자유, 프라이버시 등 시민·정치적 권리를 규정하고 있다. 22조부터 27조까지는 사회보장에 대한 권리, 노동권 등 인간 생활 유지에 필수불가결한 측면을 다룬 경제·사회·문화적 권리를 규정하고 있다.

최종적으로 28조에서 30조까지는 선언에서 열거된 권리의 향유를 위한 사회적 및 국제적 구조, 인권에 부합되는 공동체에 대한 의무를 언급한다.

세계인권선언의 한계

한국에서는 ‘세계’인권선언이라 번역하고 있지만 사실 ‘보편(universal)'인권선언이다. 세계 공통의 보편적인 가치가 있을 수 있느냐는 문제는 선언을 만들기 전에도, 만드는 과정에서도 지금까지도 끝나지 않고 있는 논쟁이다.

이는 아시아와 아프리카가 갖는 정치적·사회경제적·문화적 다양성이 충분히 고려될 수 없었던 한계 때문이다. 나치즘에 대해서는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지만 선언을 기초하는 데 두드러진 역할을 한 국가들은 자신들의 식민지에 대해서는 침묵했다. 선언을 기초하고 채택할 당시 유엔회원국의 수는 58개국에 불과했고, 식민지 상태를 갓 벗어나거나 여전히 식민지로 매여 있었던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대다수 인민은 선언에 의견을 내지 못했다.

또한 선언은 분명 시대의 산물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봐야 한다. 선언은 2차 대전 후의 사회경제적 가치관을 반영하고 있다. 노동조합의 권리, 교육권, 사회보장권 등 ‘새로운’ 권리를 반영하면서는 ‘급진’적으로 해석되지 않도록 극히 신중을 기했고, 여성의 권리나 가족생활에 관련된 내용에서는 보수적 사회기조를 반영하고 있다. 또한 오늘날 떠오르고 있는 인권의 문제들에서 보면 빠진 부분이 많은 것이 당연하다. 따라서 오늘날 선언을 볼 때는 선언 이후의 변화와 함께 읽지 않으면 안 된다.

세계인권선언에 대한 반응

선언에 대한 반응은 대조적이다. 선언의 의의를 깎아 내리거나 실용적인 입장에서 평가하는 시각이 있는 반면 국제인권규범의 정립이라는 면에서 그 의의를 평가하고 발전시키려는 입장이 있다. 이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대별해보면 아래와 같다.

<회의적 입장>
· 기껏해야 정부들에 대한 훈계 내지 권고에 지나지 않는다.
· 개인주의적 자유주의와 집단적 사회주의를 끼워 맞춘 이질적인 소망의 목록이다.
· ‘짖기만 하지 물지 않는’ 종이호랑이에 지나지 않는다고 여겼기에, 즉 ‘이행과 실천’의 문제를 무시했기에 동의된 문서일 뿐이다.
· 인권을 외교정책의 도구 또는 새로운 지배와 개입의 도구로 써먹으려는 의도 아닌가.
· 국제관계에서 인권은 장식용이거나 눈속임 장치고, 국제관계는 냉정한 계산이다. 인권에 변화가 있다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한 국가내의 내부 투쟁과 개혁의 결과이지, 선언 등 국제규범으로 인한 것이 아니다.
· 인권침해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적에 대해 어디까지나 주권의 고유한 문제일 뿐이라는 주장은 여전히 강력하다.

<긍정적·희망적 입장>
· 인권 규범이 정교해졌다. 선언 이후 꾸준한 국제인권규범 만들기가 진행됐고, 규범 만들기에 그친 것이 아니라 이행으로 나아가게 됐다. 이런 국제인권규범은 정부, 국제기구, 시민사회 ‘공통’의 대화기준이 됐다.
· 유엔 속에서 인권의 역할이 강화됐다. 인권기준의 발전 속에서 유엔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됐고, 93년 세계인권대회, 유엔인권고등판무관의 창설 등은 그 대표적 사례다.
· 자발적인 시민 결사, 지구적인 NGOs의 출현, 지구적인 매체의 등장 등은 국가행위에 초점을 두었던 선언 기초자들이 계산하지 못했던 바다.
· (장식용이든 정의로운 목적의 추구에서든) 인권은 정치적으로 강력한 영향력을 갖게 됐다. 인권사상에는 힘이 있다.
· 반식민지투쟁, 민주화투쟁, 반아파르트헤이트 투쟁 등 억압에 맞선 역사적 투쟁이 인권을 통해 상징화됐다.
· 인도주의법과 반인류 범죄에 대한 것으로 인권의 영역이 확대됐다.
· 국가가 자국민을 다루는 방식이 정당한 국제적 관심사일 뿐 아니라 국제기준에 속한다는 새로운 시각을 규범화한 것이 선언이다.
· 국제관계에 ‘인권’을 대입함으로써 지구적 관점 말고는 해답을 찾을 수 없는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국제사회와 관계의 건설에 이바지해왔다.
· 개인주의적 자유주의 인권에서 유일한 영역이었던 시민·정치적 권리뿐만 아니라 사회·경제·문화적 권리도 포섭했다.
· 인권의 개인주의적 속성이 공동체적 속성을 통해 완화·축소됐다. 특히 29조 “모든 사람은 그 안에서만 자신의 인격을 자유롭고 완전하게 발전시킬 수 있는 공동체에 대하여 의무를 부담한다”가 그 예이다.

세계인권선언 이후 국제인권현실의 전개

선언 이후 60년의 세월 동안 국제인권은 쉼 없이 달려왔다. 그 전개 상황을 다소 숨차게 쫓아가보자.

· 50년대 냉전
선언 기초과정에서부터 드러난 냉전이 심화됐다. 선언은 보편적 인권의 개념과 목록을 정의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선언’에 머무른 것이었기에, 인권의 국제적 보호를 위한 법적 구속력과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조약’으로 만들어져야 했다. 그러나 사회권과 자유권이라는 두 범주의 권리를 실현하는 방법에 대해 심각한 입장차이가 있었다. 규약 제정의 초기에는 하나의 조약을 목표로 작업을 벌였으나, 특히 서구 자본주의국가들의 요구로 두 개의 다른 조약을 추진하게 됐다. 선언은 하나인데 그에 근거한 국제규약은 두 개(‘경제·사회·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과 ‘시민·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다. 양 규약의 채택과정은 냉전시대의 이데올로기 대립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60년대
새로 독립한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국가들의 등장으로 유엔인권활동에 새로운 물결이 일었다. 이들은 식민주의의 토대가 된 인종차별주의에 몰두했다. 65년 인종차별철폐협약이 채택됐고, 자기결정권과 반아파르트헤이트 관련 활동(남아공의 인종분리정책에 반대하는 대대적 국제캠페인)이 강화된 것이 대표적 사례다.

· 60년대 말부터 70년대 초까지
논란 끝에 66년 양대 규약이 채택됐으나 그 후 국제인권의 전개는 슬럼프를 맞게 된다. 기준설정에는 동의가 이뤄졌으나 이행으로 강조점이 넘어가는 것에 대한 거부 때문이었다. 국가주의, 주권존중 논리의 완강함 속에 인권은 국제적 토론에는 적합하지만 구체적인 국제행동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라는 견해가 확인되는 시기였다.

· 70년대 중반에서 80년대까지
73년 칠레 아옌데 정권이 무력으로 전복됐다. 그 후 피노체트 군사독재정권이 자행한 인권침해에 대한 혐오감으로 새로운 움직임이 시작됐다. 대규모 인권침해자를 다루는 유엔워킹그룹이 창설됐고, 칠레의 선례에 기초해 특정 국가의 인권상황을 조사하기 위한 특별대표와 특별보고관이 임명됐다. 75년 헬싱키 협약에서 인권이 주요 의제로 다뤄졌다. 76년 유엔시민·정치적 권리규약에 관한 자유권위원회의 새로운 모니터링 제도가 등장했다. 77년 지미카터의 등장으로 ‘인권외교정책’이 화두가 됐다. 여성차별철폐협약, 고문방지협약, 아동권리협약 등 주요국제인권법이 속속 제정됐다. 특정 유형의 인권침해를 지구적으로 다루기 위한 시도가 시작됐다. 80년 강요된 실종에 관한 워킹그룹 창설, 82년 자의적 처형에 관한 특별보고관 임명, 85년 고문에 관한 특별보고관 임명 등이 그것이다. 이시기 NGOs의 국제인권활동이 급증했으며 77년 국제앰네스티의 노벨상 수상은 그 상징적 사례다.

· 90년대
제노사이드(집단학살)를 국제사회가 관용할 수 없는 것으로 간주하게 됐다. 91년과 94년에 구 유고와 르완다에 대한 특별법정이 열렸고, 95년 유엔총회는 국제형사법정을 창설할 것을 결정했다. 포스트 냉전시대를 맞아 냉전 이후 국제질서를 어떻게 짤 것인가를 논의하는 일련의 국제대회가 꼬리를 물었다. 93년의 비엔나세계인권대회, 94년의 북경여성대회 등이 그것이다. 94년 UNDP의 인간발전보고서는 ‘인간안보’의 구체적 내용을 드러냈다.

· 2000년대
반세계화운동이 주목받게 됐다. 물에 대한 권리, 기후 변화 등 생태와 인권 문제를 연결시키려는 시도가 강화됐다. 9·11 이후 테러리즘과 인권 문제가 위기를 불렀고, 93년 이라크침공에 맞선 국제평화운동이 전개됐다. 평화·안보·인도주의적 위기에 대한 인권의 침투와는 달리 경제나 금융기구에 대해서는 인권규범이 침투 못하는 것에 대한 문제제기가 인권의 도전을 기다리고 있다.

■덧붙이는 글

류은숙 님은 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입니다. 

 

작성일자 : 2008. 1. 16

글쓴이 : 류은숙(인권연구소'창' 연구활동가)

 

인권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인권의 파란만장한 역사는 인권에 대한 인식에 어떻게 영향을 끼쳤고 오늘날에도 우리가 인권을 지키도록 만들었는가? 이에 대한 많은 설명이 있지만, 이 책의 저자는 인간 내면의 ‘감성과 공감’을 주요소로 들어 인권의 창조와 발전을 얘기하고 있다. 인권은 인간의 이성만큼이나 감정에 의존한다는 점 때문에 정의하기에 불가능해보이지만, 바로 그것 때문에 인권이 존재한다는 설명이다.
(출처: Lynn Hunt, Inventing Human Rights: A History, W.W.Norton, 2007)

자명성의 역설

노예제에 기초하고, 인간의 타고난 종속 위에 건설된 사회에서 살았던 사람들에게 어떻게 권리의 평등이 ‘자명한’ 진실이 될 수 있었을까? 노예소유주였던 사람, 귀족이었던 사람이 어떻게 “인권은 자명하다”, “모든 사람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말할 수 있었을까? 권리의 평등이 그렇게 자명하다면, 왜 그런 주장이 있어야 했고, 왜 특정 시기와 장소에서만 이뤄졌는가? 인권이 보편적으로 인정되지 않고 있는데 어떻게 보편적일 수 있나? 인권이 ‘자명’하다는 주장은 인권의 역사에 주요한 것이었다. 어떻게 그것이 18세기에 그렇게 확신적이었는지 설명하려는 게 이 책의 목적이다.

인권은 세 가지 서로 맞물린 질을 요구한다. 권리는 ‘자연적’이어야 하고(인간에 내재된), ‘평등’(모두에게 똑같고)해야 하고, ‘보편적’(어디에서나 적용가능)이어야 한다. 인권은 정치적 내용을 획득할 때에만 의미 있다. 따라서 인권은 그것을 가진 사람들의 능동적 참여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18세기에는 ‘인권’(human rights)이란 표현을 흔히 사용하지 않았다. 어쩌다 그렇게 말할 때는 오늘날 우리가 의미하는 것과는 달랐다. 1789년 프랑스 혁명 전에는 대부분 ‘자연권’을 얘기했고, 간혹 ‘인권’이란 말을 쓸 때는 자연권이나 인간의 권리(rights of man)보다 수동적이고 덜 정치적인 뭔가를 의미했다. 예를 들어 미국 독립 혁명의 지도자가 인권이란 단어를 쓸 때는 아프리카인이 자신을 위해 행동하는 걸 가능한 것으로 보지 않았다.

18세기 동안 영어와 프랑스어에서 ‘인권’(human rights, rights of mankind, rights of humanity)은 너무 막연해서 직접적인 정치적 목적으로 사용될 수 없었고, 한편으론 신과 한편으론 동물과 인간을 구분하는 것을 일컬었다. 즉, 언론의 자유나 정치 참여 같은 정치적으로 관련된 권리라기보다는 인간으로서 더 이상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그 의미가 달려있었다.

권리는 어떻게 자명해지나

인권은 이성만큼이나 감정에 의존한다는 바로 그 존재 때문에 명확히 정의하기 어렵다. 여기서 말하는 감정이란 인간으로서 “도무지 더 이상 받아들일 수 없는 것”, “내면의 감정”, “내면의 확신” 등으로 표현된다. 철학자들의 사상, 법률, 혁명 정치는 인권이 진짜 자명해 보이도록 인권에 대한 ‘내적인 정서적 언급’을 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런 것을 쓴 철학자들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런 느낌을 가져야 했다.

그런 느낌의 토대로 필자는 ‘개인의 자율성’을 든다. 시대에 따라 변하는 자아의 의미가 18세기의 경험 속에서 결정적인 방식으로 사람들을 변화시켰다. 타인과 구분된 개인, 스스로 독립적인 도덕적 판단을 행할 수 있는 개인들이 등장하고, 이 개인은 독립적인 도덕적 판단에 기초한 정치사회의 구성원이기 때문에 타인과 공감하고 타인에게 감정이입을 할 수 있어야만 했다. 이런 공감은 새로운 사회적 및 정치적 개념(인권)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필자가 그 예로 든 것이 18세기 유행한 소설 읽기와 고문 폐지 운동이다. 필자는 “감정의 폭포”라는 표현을 쓰며 ‘인권’의 개념 출현 직전에 유행했던 서간체 소설 읽기를 든다. 소설속의 수난받는 주인공과 자신을 동일시하고, 모든 사람은 구속으로부터 벗어나 독립과 자율성을 열망한다는 것을 공감하고, 투쟁에 수반된 심리적 노력을 가상으로 경험한다. 사람들이 자신과 타인을 동격으로 생각하는 걸 배웠을 때, 어떤 근본적인 점에서 자신과 같다고 생각하는 걸 배웠을 때 인권은 번성할 수 있었다.

프랑스 혁명정부는 모든 형태의 사법적 고문을 폐지했는데 범죄자라도 “우리 친구와 친척들과 같은 물질로 구성된 영혼과 육체를 소유한다”라고 했다. 왜 똑같은 고문이 이어져왔는데 그 이전에는 고문받는 사람의 고통에 대해 측은히 여기지 않았는가? 각 사람은 하나뿐이며 타인과 구별된 개인이고 그의 신체가 또한 그런 것으로 여겨지는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전통적 이해 속에서 육체의 고통은 전적으로 개인에게 속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고통은 종교적 및 정치적 목적을 위한 것이었다. 도덕적, 정치적, 종교적 질서를 회복하기 위해 범죄인의 신체를 절단하거나 불태울 수 있었다.

그러나 새롭게 부상한 개인주의에서 그 고통과 고통받는 신체는 그 개인에게만 속한 것이었고, 그 개인은 더 이상 공동체의 선을 위해서나 더 높은 종교적 목적을 위해 희생될 수 없는 존재였다. 고문반대자들은 그 이유로 고문은 개인들의 도덕적 기초가 되는 ‘공감’을 파괴한다고 했다. “공개적 처형은 사회적 감정을 훼손한다. 구경꾼을 점차 냉담하게 만들면서, 구경꾼은 ‘보편적 사상’의 감정을 잃고, 범죄인도 자신들과 같은 신체와 영혼을 가졌다는 의식을 잃는다”라고 했다. 공동체를 위해 더 바람직한 것은 교육과 내적인 좋은 인간자질의 경험을 통한 선의 배양이다. 잔혹한 처벌로부터 동료시민은 아무것도 배울 수 없고 덕의 근본인 공감만 잃게 된다. 따라서 고문은 없어져야 했다. 개인들은 자신의 신체를 소유했고, 자신의 신체의 분리와 신체적 불가침성에 대한 권리를 가졌고, 이것은 타인에게도 똑같은 수난, 감정, 공감이 있다는 것을 인정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오직 모든 사람이 어떤 근본적인 방식에서 똑같은 것으로 보일 수 있어야만 모든 사람은 권리를 가진다. 평등은 단지 추상적 개념이나 정치적 구호가 아니었다. 그것은 내면화돼야 했다. 인권이 창조된 18세기에나 오늘날에나 모든 사람이 진짜 평등하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공감’이라는 새로 발견된 힘이 모든 편견에 맞서 작동할 수 있었다. 이런 인권 혁명은 성격상 진행형일 수밖에 없다.

권리 선언하기

개인의 자율성과 공감, 신체적 보전이라는 새로운 문화적 관행에서 싹이 튼 인권의 언어는 ‘선언’에 명시됐다. 왜 권리는 ‘선언’돼야 했나?

필자는 ‘선언’이라는 단어의 역사를 설명하며, 그것을 ‘주권의 전환’으로 설명한다. 영어 단어 선언(declaration)은 프랑스어 déclaration에서 유래했다. 프랑스어에서 이 단어는 원래 봉건영주에게 충성선서를 한 대가로 주어진 땅의 목록을 일컬었다. 그 뒤 17세기 동안 그것은 왕의 공적인 명령에 속했다. 즉 선언하는 행위는 주권과 연관됐다. 권위가 봉건영주로부터 왕에게로 옮겨졌듯이 선언하는 권력 또한 그랬다.

구체제를 약간 수선하려는 것이었다면, ‘인권’ 선언은 불필요했을 것이다. 근본적으로 체제를 재건설할 필요성에 동의했고, 인권 사상은 대안적인 정부의 원칙을 제공했다. 여기에 더 높은 권력에 대한 요청이나 호소를 의미하는 ‘헌장, 청원’(charter, bill) 등의 표현은 부적절했다. 선언은 진부하고 복종하는 분위기를 떨쳐버리고 주권을 잡으려는 의도를 표명할 수 있었다. 미국 독립 선언은 자신들의 주권을 가진 독립된 국가를 가질 것을 선언했고, 프랑스 인권선언은 인권이 정부의 기초를 구성한다는 것을 천명했다.

선언의 결과는 끝이 없을 것이다

선언은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정치적 논쟁의 장을 열어젖혔다. 인권이 정부의 정당성의 기초라면 무엇이 연령, 성, 인종, 종교, 부의 차이를 가진 사람들에게 제한을 가하는 것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 무산자, 종교적‧인종적 소수자의 권리 등이 꼬리를 물고 문제로 떠올랐다. 누가 그 결과를 통제해야 하고 과연 통제할 수 있었는가?

선언의 추상적 성격은 결국 구체적으로 요구되는 것들에 대한 보다 급진적 해석을 배양했다. 한편으론 ‘배제’를 설명하는 근거도 해명돼야 했다. 왜 남성과 여성, 백인과 흑인, 기독교인과 유대인 중에서 전자가 우월한가를 설명해야 했다. 권리가 보편적이고 평등하고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는 걸 증명해야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인권을 창조한 개념 바로 그것이 치명적인 형태의 성차별주의, 인종주의, 반유대주의의 문도 함께 열었다. 제국주의와 인종과학이 공생관계를 이룬 것이 대표적 예이다.

배제된 이들의 인권투쟁은 선언에 새겨진 추상적 평등을 보다 구체적이고 위협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새로 등장한 권리는 그것이 정치적 권리가 아니었다 할지라도 새로운 기회를 열었고, 그걸 부여잡는 사람들도 늘어갔다. 권리란 결국 개인들의 감정, 확신, 그리고 무수한 행동으로 가장 잘 지켜질 수 있다는 것을 인권의 역사는 보여준다. 이 개인들은 내면의 분노에 부응하는 답을 요구한다.

18세기 신교도에 대한 종교적 관용의 부족함을 비난하는 편지를 프랑스 정부 당국에 보냈던 한 사람은 이렇게 썼다. “때가 왔다. 전 세계에 너무 잘 알려진 인류의 권리를 공공연하게 전복하려는 법을 더 이상 받아들일 수 없는 때가….” 1776년(미국독립선언), 1789년(프랑스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 1948년(세계인권선언)의 선언은 인류의 권리의 초석을 제공했고, 인간으로서 “더 이상 받아들일 수 없는” 것에 대한 인식을 끌어냈고 모든 침해를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도록 돕고 있다. 당신은 인권의 의미를 안다. 왜냐하면 인권이 침해당할 때 당신이 괴롭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인권의 진실은 모순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명하다.

작성일자 : 2007. 11. 15

글쓴이 : 류은숙(인권연구소'창' 연구활동가)

 

차별심사는 엄격한 심사와 관대한 심사로 나뉘는데 당사국에 입증책임을 묻는 엄격 심사가 당연 중요하다. 엄격 심사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에는 ‘차별의 유형’, ‘문제되는 차별의 표식과 유사한 또는 상이한 상황’, ‘문제되는 이익’이다.

엄격 심사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

(1) 차별의 유형

흔히 차별의 유형을 직접차별과 간접차별로 나누는데 필자는 유럽인권재판소에서 다뤘던 사건들을 분석하여 이를 세가지 유형으로 분류했다. 적극적 차별, 소극적 차별, 간접차별이다.
적극적‧소극적 차별은 둘다 직접차별의 형태로서 어떤 차별의 표식에 직접적으로 근거하여 상이한 또는 유사한 처우를 하는 경우이다. 반면에 간접차별의 경우에는 특정한 차별의 표식에 직접적으로 근거하지는 않았지만 그런 조치로 인해 발생하는 효과를 가리킨다.

* 적극적 차별
확인할 수 있는 국가기관의 행위로 인한 차별로서 세가지 유형의 청구가 여기에 포함될 수 있다. 명백하게 다른 처우를 받았다는 청구, 은밀하게 다른 처우를 받았다는 청구 또는 동일한 조치를 다르게 적용받았다는 청구이다. 일단 적극적 차별이라고 주장하는 청구가 목적 정당성 판단의 단계에 도달하면 ‘엄격 심사’가 이뤄진다고 본다.

* 소극적 차별
소극적 차별은 필자가 제기한 새로운 개념이다. 국가가 어떤 행위를 하지 않음으로써 즉 적극적 조치를 취하지 않음으로써 결과된 차별이라 할 수 있다. 법률에서 비차별로 규정하지 않은 경우(법의 공백), 발생한 차별 사례를 구제하지 않은 경우, 관련된 유사 집단에게 유사한 조치를 제공하지 않은 경우, 일반집단과 상당히 다른 집단에게 다른 조치를 제공하지 않은 경우이다. 이 네가지 경우 모두 국가행위만이 아니라 사적 당사자간의 관계도 포함한다.

또한 ‘유럽인권협약이 차별을 방지하고 구제하라고 했지, 평등을 증진하라고 하지 않았다’는 식으로 주장하며 국가의 의무를 소극적으로 해석하려는 것도 소극적 차별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비차별과 평등은 같은 말로 들리지만 ‘차별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과 ‘평등을 증진한다’고 하는 것에는 각기 소극성과 적극성이 숨어있다. 적극적인 평등 증진 노력을 말하지 않고 단지 차별하지 않겠다는 것은 그냥 똑같은 처우를 말하는 것에 그칠 수 있다. 이에 필자의 주장은 비차별과 평등은 같은 동전의 양면으로서 협약에서 말하는 차별방지는 평등의 증진을 포함하는 것으로 적극적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의 적극적 의무와 연관되는 문제이기에 소극적 차별 개념의 객관적 한계를 상세히 규정하는 것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유럽인권재판소에서 다뤄진 소극적 차별 유형의 사건들을 보면 ‘관대한 심사’가 이뤄진다. 국가의 적극적 의무에 대한 인정의 부담을 얼마나 무겁게 당사국에 부과하느냐에 따라 소극적 차별 개념의 객관적 한계가 결정된다.
특정 집단의 상황을 일반적으로 개선하는 것과 관련된 광범위한 정책 변화를 제안하는 청구 그리고 재정 또는 기타 자원 부담을 야기하지 않는 청구보다는 결핍에 대한 직접적인 제공 등 상당한 재정적 부담을 제안하는 청구가 관대한 심사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이다.

* 간접차별
간접차별은 표면적으로는 중립적인 조치가 특정 집단의 사람들에게 불균형하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을 말한다. 유럽 사회에서 간접차별의 개념은 성차별법에서 가장 분명히 발전해왔다. ‘불균형’한 효과는 ‘의도와는 무관’하다. ‘중립적’이라 함은 성, 인종, 언어, 종교 등 ‘민감한’ 기준에 기반하지 않고 기타의 ‘중립적’인 기준에 기반한 구분을 말한다.
유럽인권재판소는 간접차별을 분명하게 분석하는데 진입하지는 못했다. 간접차별의 청구와 관련해서는 민감한 기준에 따른 차별과는 다른 ‘관대한 심사’를 해왔기 때문에 청구자들은 간접차별의 명백한 사례를 수립하는데 성공하지 못했다. 간접차별의 청구는 목적 정당성 심사의 단계에 도달해본 바가 없다. 간접차별의 분명한 개념을 재판소의 법리에 도입해야 협약의 보호체계가 은밀한 형태의 차별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2) 문제되는 차별의 표식과 유사한 또는 상이한 상황

‘같은 상황은 같게 다른 상황은 다르게 취급돼야 한다’는 것이 평등 명제의 핵심이다. 그러나 상황을 비교하는 것, 어떤 상황이 유사한 것인지 또는 다른 것인지를 명확히 구분하는 것은 쉽지 않다. 무엇과 비교돼야 하는가? 평등의 문제로 다뤄지기도 전에 비교대상이 정해져 있는 것의 문제점을 앞서(연재 (1) 참조) 살펴봤다. 비교를 너무 강조하면 평등에 대한 접근은 형식적이 되기 쉽다. 또한 비교를 강조할수록 청구인이 입증책임을 감당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분명한 비교 집단이 있냐 없냐와 무관하게 어떤 처우에 대해서든 이의를 제기할 수 있어야 평등에 대한 내용성 있는 접근이 가능할 것이다. 재판소가 유사한 상황을 넓게 정할수록 목적 정당성 심사의 가능성은 넓어진다. 가장 넓게 유사성을 정한다면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것이고 따라서 어떤 식으로든 구분되는 처우에 대해서는 정당성이 요구된다. 어떻게 기준을 정하고 어떤 특성에 근거를 둘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가치 판단의 문제이다.

재판소가 고려하는 차별의 표식은 세가지의 하위 요소로 나눌 수 있다. 대수롭지 않은 비인격적 표식의 구별(지리적 위치, 연방국가에서 지역에 따라 다른 법률의 적용 등), 대수롭지 않은 인격적 표식의 구별(성인 범죄자와 소년사범의 구분 등), 중대한 인격적 표식의 구별이다.

앞의 두 개, 대수롭지 않은 비인격적 표식의 구별, 대수롭지 않은 인격적 표식의 구별은 ‘관대한 심사’에 해당된다. 하지만 비인격적 표식의 구별이 대부분 관대한 심사에 해당된다면, 인격적 표식의 구별은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차별에 대한 엄격심사가 이뤄지는 경우는 세 번째의 중대한 인격적 표식의 구별이다. 재판소에 따르면 이런 구별에 근거한 처우의 차이를 정당화하기 위해서는 “매우 상당한 이유” 또는 “고도의 정당성 부담”이 요구된다. 그렇기 때문에 재판소의 판례는 극소수의 범주만을 여기에 해당하는 것으로 정의해왔다. 성, 인종, 국적, 혼외출생, 종교에 대해 그렇다. 그러나 유럽의 경우는 미국과 달라서 차별의 표식간에 위계를 도입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중대한 차별의 표식으로 고려되는 기준에 대해서만 형식적으로 그리고 보편적으로 언제나 엄격심사를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몇가지 차별의 표식을 정해놓고 그것들에 대해서만 엄격심사를 적용하는 것으로 형식화되면 다양한 여타의 차별 요인들을 놓칠 위험이 있기 때문에 엄격 심사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요인이 될 수 있는 것의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 있어야 한다.

(3) 문제되는 이익

문제되는 이익은 당사국의 재량의 범위에 주로 영향을 끼친다. 재산권은 예외가 되거나 관대한 심사에 해당되기 쉽다. 문제되는 상황이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취약한 상황이라면 엄격 심사를 지시하는 요인이 되는 반면에 특권적 지위의 상황이라면 좀더 관대한 심사를 지시하게 된다. 차별의 표식이 문제되는 이익과 분명히 연관되는 경우(예를 들어 한 국가에서의 거주와 추방의 문제와 국적 문제는 분명히 연관된다)와 긴급상황(예를 들어 전쟁 또는 국가비상사태)의 경우도 관대한 심사에 해당한다. 차별 심사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에서 앞의 두 개의 요인들에 비해 세 번째의 ‘문제되는 이익’이 가장 약하다고 할 수 있다.

차별심사의 필요성

재판소가 차별조항에 근거하여 심사를 할 필요성은 세가지이다.
협약의 다른 조항에 대한 침해를 발견하지 못한 경우 차별문제로 심사할 수 있다. 또는 협약의 다른 조항에서 심사된 것과는 다른 실상황에서 야기된 다른 문제를 제기하는 경우이다. 세 번째는 지금까지 다룬 엄격심사의 문제와 관련된다. 어떤 사건에서 차별 주장이 엄격심사를 강력하게 지시하는 요인들에 지배된다면 재판소가 보통의 경우라면 하지 않을 차별 심사를 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을 수 있다. 이런 경우에는 협약의 다른 조항들로 사건을 심사하는 것보다 차별조항으로 심사함으로써 차별 문제의 중요성을 훨씬 더 강력히 주장할 수 있다.

비차별 조항에 깔린 가치판단과 재판소의 적용

(1) 상이한 청구 유형에 따른 상이한 접근

‘적극적 차별’에 대한 청구는 단지 차별을 삼갈 국가의 전통적인 소극적 의무에 관한 것으로 능동적으로 비차별을 보장할 적극적 의무와 연결되지 않는다. ‘적극적 차별’에 대한 더 엄격한 심사와 ‘소극적 차별’에 대한 더 관대한 심사는 분명히 비차별 조항에 깔린 기본가치를 보여주고 있다. 소극적 의무와 적극적 의무의 구분은 인권을 시민‧정치적 권리와 경제‧사회‧문화적 권리로 구분하는 것과 연관돼왔다. 소극적 차별 개념의 객관적 한계와 적극적 차별과 소극적 차별에 대한 상이한 심사 유형으로 입증됐듯이 소극적 의무에 대한 분명한 선호는 전통적으로 소극적 국가의무와 시민‧정치적 권리와 연관돼있다. 이러한 가치들은 서구의 자유주의 국가 개념과 개인주의에 대한 강조를 보여준다. 개인주의의 강조는 간접차별을 분명히 인정하기 어려워하는 재판소에 의해 지지받고 있다.

그러나 주목해야 할 점은 적극적 의무, 소극적 차별 및 간접 차별에 대한 적극적인 인정이 협약하에서 아주 최근에 현실적인 가능성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협약 14조에 대한 최근의 판단과 경제‧사회‧문화적 권리를 비차별에 영향을 끼치는 영역으로 포함하고 있는 제12의정서의 출현은 경시되어서는 안된다. 이것은 소극적 또는 간접 차별의 경우에 대해 더 엄격한 심사를 향해 점진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는 장치이다.

(2) 차별 기준의 상이한 유형에 대한 심사 유형의 차이

차별의 근거로서 비인격적 특성과 인격적 특성간에 구분이 있어온 것으로 보인다. 인격적 표식에 대한 더 엄격한 심사가 보여주는 바는 개인 보호의 가치이다. 신분에 기인하고 개인의 특성에 기반한 추정으로부터 자유로울 본질적인 개인의 이익을 높이 평가한다는 것이다. 이런 중대한 인격적 구별의 표식은 모두 불리하고 소외된 사회적 지위의 역사를 가진 집단의 사람들과 연관된다. 대개 이런 가치들은 재판소가 중대한 차별의 표식으로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엄격심사를 하는데 앞서서 국가들의 민주화과정이나 국제기준설정 과정에서 발전되고 일반적으로 수용돼왔다.

(3) 엄격심사에서 문제되는 이익

특권 상황에 대한 보다 관대한 심사와는 대조적으로 취약한 상황의 이익이 더 엄격한 심사를 받는다는 점은 취약하고 소외된 지위에 있는 사회집단을 더 잘 보호하는 형태로 사회정의와 실질적 평등을 성취하려는 관심을 보여준다. 이같은 결론을 뒷받침 하는 것은 취약하고 소외된 집단의 구성원과 연관된 차이에 대해 적극적인 조정을 요구한다는 점을 최근 협약에서 인정한 것이다.

요약하면 유럽인권협약의 비차별조항은 소극적 의무를 우선적으로 강조하고 관련된 유사성에 대한 동등한 처우를 강조하는 접근이었다. 적극적 의무와 차이를 적절하게 조장할 필요성은 예외로 여겨졌다. 그러나 최근에는 소외되고 취약한 집단의 상황에 민감해짐으로써 실체적인 ‘불이익’에 접근하는 경향을 보여준다. [류은숙] <2007년 11월 14일 인권오름 제79호>

“모든 사람은 인종, 피부색, 성, 언어, 종교, 정치적 또는 그밖의 견해, 민족적 또는 사회적 출신, 재산, 출생, 기타 지위 등에 따른 어떠한 종류의 구별도 없이 이 선언에 제시된 모든 권리와 자유를 누릴 자격이 있다”(세계인권선언 제2조)모든 국제인권법이나 헌법에는 ‘평등과 비차별’을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무엇이 평등이고 차별인지를 친절히 얘기해주지는 않는다. 인권에 관심 갖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차별반대와 평등의 진전을 얘기하지만, 그 구체적 범위와 기준과 내용을 정하는 것은 언제나 어려운 문제이다.이에 하나의 사례로서 유럽인권협약에서는 평등과 비차별 문제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를 세 차례에 걸쳐 살펴보려 한다. 1950년 채택된 ‘인권과 기본적 자유의 보호에 관한 유럽 협약’(아래 유럽인권협약)은 지역인권기준 중에서 일찍이 자리 잡았고 상설유럽인권재판소를 설치하고 있기에 실효성으로도 높이 평가받고 있다. (출처: Oddny Mjoll Arnardottir, Equality and Non-Discrimination under the European Convention on Human Rights, Martinus Nijhoff Publishers, 2003)

작성일자 : 2007. 10. 29

글쓴이 : 류은숙(인권연구소'창' 연구활동가)

 

먼저 유럽인권협약의 차별금지 조항을 살펴보면, 1950년 제정된 협약 제14조와 2000년 제정, 2005년 4월 발효된 제12의정서 제1조가 있다.

유럽인권협약 제14조(차별의 금지) 성, 인종, 피부색, 언어, 종교, 정치적 또는 기타의 의견, 민족적 또는 사회적 출신, 소수민족에의 소속, 재산, 출생 또는 기타의 신분 등에 의한 어떠한 차별도 없이 이 협약에 규정된 권리와 자유의 향유가 확보되어야 한다.

제12의정서 제1조(차별의 일반적 금지)
1. 법이 규정한 어떠한 권리의 향유도 성, 인종, 피부색, 언어, 종교, 정치적 또는 기타의 견해, 민족적 또는 사회적 출신, 소수민족에의 소속, 재산, 출생 또는 기타의 신분 등에 의한 차별없이 보장되어야 한다.
2. 어느 누구도 1항에서 언급된 것 등의 어떠한 이유로도 공공당국에 의해 차별받아서는 안된다.

필자는 차별조항에 대한 전통적인 접근법을 살펴보고, 그에 대해 비판적으로 분석한다. 이를 통해 전통적 접근법은 상설유럽인권재판소(아래 재판소)의 판례를 설명하는데 효과적이지 않을뿐더러 새롭게 떠오르는 차별 유형에 대한 보호를 다루는데도 적절하지 않다는 점을 설명한다. 그리고 이를 근거로 차별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을 소개하고 있다.

비차별 조항의 ‘구조’

비차별 조항에는 두가지 구별되는 구조가 있다. ‘열린’ 모델(예시열거)과 ‘닫힌’ 모델(제한열거)이다. 열린 모델은 잠재적 차별요인의 범주를 제한하지 않는다. 또한 무엇이 차별을 구성하는지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정의내리지 않는다. 이와 대조적으로 닫힌 모델은 있을 수 있는 차별의 근거를 제한적으로 예시하며 어떤 상황이 객관적으로 차별로 정당화될 수 있는지를 정교하게 정의하려 한다.

협약의 14조는 ‘열린 모델’의 축약판이라 할 수 있고, 제12의정서 1조도 그렇다. 이같은 모델에서 쟁점이 되는 사항은
첫째, 비차별 조항 그 자체에는 불법적 차별과 정당화할 수 있는 구별간에 구분선이 없고, 차별을 정당화할 수 있는 방법을 제한하지도 못한다. 목적 정당성과 합리적 정당성이라는 전제하에 갖은 유형의 정당화가 발전될 수 있다.

둘째, 차별의 요인, 다른 말로 하면 구별의 표시가 되는 목록에 대한 것이다. ‘열린 모델’은 “어떠한 이유로도” 차별을 금지함으로써 차별의 요인을 남김없이 포괄하는 목록을 규정하려 하지 않는다. 따라서 조항에서 언급된 차별 요인들은 예시에 불과하다. 협약 14조와 제12의정서 1조가 열거한 차별의 근거는 ‘성, 인종, 피부색, 언어, 종교, 정치적 또는 기타의 견해, 민족적 또는 사회적 출신, 소수민족에의 소속, 재산, 출생 또는 기타의 지위’이다.

‘장애, 성적 지향성, 연령’ 등의 새로운 차별 근거들이 협약 14조가 제정된 후에 더 중요하게 떠올랐지만 최근 만들어진 제12의정서 1조는 “목록에 더 추가하는 것이 필요치 않다”며 이를 추가하지 않았다. 그 근거는 목록은 완전한 것이 아니며 재판소는 이미 목록에 명시적으로 열거되지 않은 차별의 근거에도 14조의 규정을 적용해왔다는 것이었다. 새로운 차별 요인을 추가하는 것은 “조항에 포함되지 않은 요인에 근거한 차별을 부당하게 해석할 소지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14조에 대한 심사의 강도는 차별의 요인이 무엇이냐에 따라 다르다. 목록에 예시된 경우의 차별에 대해서는 더 엄격한 심사가 가능하다. 결과적으로 다양한 차별 요인에 따른 보호를 발전시킬 과제는 재판소에 남겨졌다. 재판소는 명시적으로 목록에 포함되지 않은 차별 요인을 강조할 수 있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예를 들어 지금까지의 재판소의 판단으로 볼 때 ‘성적지향성’은 예시된 목록에 없지만 엄격 심사를 받는 비차별의 지위에 도달했다고 말할 수 있다.

비차별 조항의 적용 분야

차별금지조항은 의미에서는 자율적이지만 적용범위에서는 종속적으로 해석된다. 무슨 말이냐 하면, 차별금지조항 그 자체로는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고, 다른 권리와 자유와 연결되어야만 효력을 갖는다는 것이다. 이런 종속성 때문에 14조는 여타 협약의 조항과 결합되어 심사된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이 관계성이 좀더 느슨해졌고, 다른 조항과 결합시키지 않고 독립적으로 14조를 다루는 판단이 최근 잦아졌다. 그렇지만 14조를 판단하는데 있어서 협약의 실체적 권리와 차별 문제간에 관계가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모든 법 분야와 사회적 관계는 차별로부터의 보호와 관계돼 있음에도, 특히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의 향유에 있어서 차별로부터의 보호가 결여돼 있다는 것이 뚜렷하다. 비차별조항의 종속성은 협약의 결점으로 흔히 비판받는다. 14조의 제한적인 종속성은 두 가지 주요한 결과를 낳는다.
첫째, 국제법에서 일반적으로 인정된 것으로 주장되는 평등과 비차별의 일반원칙을 명시적으로 인정하는데 부족하다. 둘째, 협약에서 열거된 권리에 한정되지 않고 적용할 수 있는 독립적인 ‘평등권’ 또는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인정하는데 부족하다.

이같은 이유로 해서 평등권을 ‘독립적’인 권리로 만들려는 시도가 있었고, 그 결실이 제12 의정서 1조이다. 제12의정서를 만든 것은 평등조항을 강화하고, 기존 협약 14조의 적용분야를 보편적으로 확대하려는 의도였다.
제12의정서 1조에 대한 주석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분야로 차별금지의 확대를 의도했다.

i 국내법에서 개인에게 구체적으로 부여된 권리 향유의 차별
ii. 국내법에 따라 공공당국의 분명한 의무로부터 추론할 수 있는 권리 향유의 차별, 즉 공공당국이 국내법의 의무에 따라 특정한 태도로 행동할 의무
iii. 공공당국의 재량권 행사(예를 들어 보조금의 부여)에 의한 차별
iv. 공공당국의 어떠한 작위 또는 부작위(예를 들어, 시위를 통제할 때 법집행공무원의 행동)에 의한 차별

분명히 협약 14조와 마찬가지로 의정서와 그에 대한 주석의 초점은 공적영역에서의 인권문제이지 사적 당사자간의 관계에 대한 것은 아니다. 제12의정서의 적용분야는 “공공당국”의 행위에 한정된다. 주석에 따르면, 공공당국이란 용어는 행정당국, 법원, 입법 기구를 말한다.

그렇지만 제12의정서는 협약 14조를 계승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더 광범위한 차별로부터의 보호를 제공하려 한다. 예를 들어 국가의 적극적 의무와 간접차별에 의한 효과도 건드리려 한다. 의정서와 관련된 논쟁이 정점에 달한 2000년에 나온 재판소의 한 결정은 적극적이고 진보적인 방향으로 비차별조항을 해석하려는 지향을 보여준다. 이 사건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를 반역죄로 유죄를 선고받은 자와 마찬가지로 공인회계사 임명을 거부한 것에 대한 판단이다. 이 판단이 있기 전까지는 ‘같은 것을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라는 평등 명제에서 뒷부분은 별로 고려되지 않았다. 이 판단의 의미는 상황이 중대하게 다른 사람을 다르게 취급하지 않은 것도 평등권 침해이고, 그러한 차이에 대해 적극적으로 조정하는 것이 국가의 의무라는 것이다.

전통적 접근법의 문제

차별받았다는 주장이 있을 때 작동되는 가치 선택에는 기본적으로 세가지 변수가 있다. 먼저 특정 유형의 차별이 존재한다는 주장이 있고, 그런 차별이 특정한 구별의 표식에 근거해야 하고, 특정한 이익에 대한 침해가 있을 것이다. 이 세가지 요건이 충족된 시점에서 입증책임은 해당국가로 이전된다.

먼저 특정 유형의 차별이 존재한다는 주장이 성립하려면, ‘처우의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을 청구인이 입증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처우가 어떤 ‘차이’에 근거한 것이며 비교대상이 되는 연관된 유사 상황이 있음을 밝혀야 한다. 이에 대해 해당국가는 문제되는 조치가 ‘정당한 목적’을 추구(목적정당성)했고, ‘채택된 수단과 추구한 목적간에 합리적인 균형’(비례성)이 있음을 증명해야 한다.

간단해 보이지만, 여기에는 많은 문제점이 있다.

직접적이고 분명한 차별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청구인은 위 세가지 요소를 충족시키는 것이 상대적으로 쉬울 것이다. 문제는 차별의 표식이 뚜렷하지 않고 은밀하며, 간접적으로 은밀한 처우가 이뤄진 경우이다. 이 경우에 청구자는 그런 행위가 ‘고의적’이며 ‘차별의 의도’가 있었다고 주장할 수는 있다. 또한 ‘중립적’인 기준인 것으로 보이지만 문제삼는 처우가 명백한 차별의 표식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관련 집단에게 불균형한 효과를 끼쳤다고 주장할 수 있다. 이 경우에 입증책임이 해당국가로 이전되지 않고 청구인에게 있다면 차별의 의도성과 간접차별을 증명하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다.

필자는 이에 대해 차별처우가 있었다는 입증과 그러한 처우의 목적 정당성의 입증을 두 개로 구분하는 전통적 접근법이 인위적이라고 비판한다. 목적의 정당성을 추론하는데 취해지는 원칙과 가치는 우선적으로 같은 취급 또는 다른 취급이 있었느냐를 언급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 둘에 대한 입증책임은 분리된 것이 아니라 하나이며, 문제는 누가(청구인이냐 해당국가냐) 그 책임을 지느냐이다. 입증책임을 누구에게 할당하느냐는 차별로부터의 보호의 효과성에 직접적 영향을 끼친다. 이에 대한 재판소의 그간 판례는 혼란스럽다. 당사국의 재량의 폭을 얼마나 인정하느냐에 따라 청구인 또는 해당국가 어느 한편의 입증책임을 강조하느냐가 달랐다. 즉, 국가의 재량의 폭을 넓게 인정하면 입증책임을 청구인쪽에 묻고, 재량의 폭을 좁게 인정하면 해당국가에 입증책임을 묻는 경향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문제는 제기된 문제에 대해 얼마나 엄격한 심사를 하느냐 관대한 심사를 하느냐와 연결된다.

목적 정당성, 즉 문제삼는 조치가 ‘정당한 목적’을 추구했느냐도 쟁점이다. 사실상 어떤 조치에 대해서든 결과적으로는 정당한 목적을 추구했다고 주장될 수 있다. 정부들은 항상 좋은 의도와 고상한 목적을 주장할 수 있고, 실제로도 지금껏 재판소에서 다뤄진 사건 중에 목적 정당성을 주장하지 않은 정부의 경우는 단 2개 사건 뿐이었다. 국가들이 거의 언제나 정당한 의도였다고 합리화할 때 청구인이 차별적인 의도를 입증하기는 매우 어렵기 때문에 ‘목적 정당성’만으로는 차별과 싸우는데 무력하다. 그런데 또다른 고민은 각국이 민주적 과정을 통해 결정하고, 재량의 폭을 가진 정책의 정당성을 재판소가 판단하려 들 때 재판소의 역할과 당사국의 자유가 충돌된다는 것이다. 그간 재판소의 판단은 목적 정당성으로부터 문제삼는 조치의 효력과 목적간의 관계를 고려하는 것(비례성)으로 주된 초점이 옮겨져왔다.

다음에는 차별 심사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 비차별 조항의 기본가치와 재판소의 적용이 같아질 수 있는 접근법에 대한 고민을 살펴본다. [류은숙] <2007년 10월 17일 인권오름 제75호>

“모든 사람은 인종, 피부색, 성, 언어, 종교, 정치적 또는 그밖의 견해, 민족적 또는 사회적 출신, 재산, 출생, 기타 지위 등에 따른 어떠한 종류의 구별도 없이 이 선언에 제시된 모든 권리와 자유를 누릴 자격이 있다”(세계인권선언 제2조)모든 국제인권법이나 헌법에는 ‘평등과 비차별’을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무엇이 평등이고 차별인지를 친절히 얘기해주지는 않는다. 인권에 관심 갖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차별반대와 평등의 진전을 얘기하지만, 그 구체적 범위와 기준과 내용을 정하는 것은 언제나 어려운 문제이다.이에 하나의 사례로서 유럽인권협약에서는 평등과 비차별 문제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를 세 차례에 걸쳐 살펴보려 한다. 1950년 채택된 ‘인권과 기본적 자유의 보호에 관한 유럽 협약’(아래 유럽인권협약)은 지역인권기준 중에서 일찍이 자리 잡았고 상설유럽인권재판소를 설치하고 있기에 실효성으로도 높이 평가받고 있다. (출처: Oddny Mjoll Arnardottir, Equality and Non-Discrimination under the European Convention on Human Rights, Martinus Nijhoff Publishers, 2003)

작성일자 : 2007. 9. 17

글쓴이 : 류은숙(인권연구소'창' 연구활동가)

“모든 사람은 인종, 피부색, 성, 언어, 종교, 정치적 또는 그밖의 견해, 민족적 또는 사회적 출신, 재산, 출생, 기타 지위 등에 따른 어떠한 종류의 구별도 없이 이 선언에 제시된 모든 권리와 자유를 누릴 자격이 있다”(세계인권선언 제2조)

모든 국제인권법이나 헌법에는 ‘평등과 비차별’을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무엇이 평등이고 차별인지를 친절히 얘기해주지는 않는다. 인권에 관심 갖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차별반대와 평등의 진전을 얘기하지만, 그 구체적 범위와 기준과 내용을 정하는 것은 언제나 어려운 문제이다.

이에 하나의 사례로서 유럽인권협약에서는 평등과 비차별 문제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를 세 차례에 걸쳐 살펴보려 한다. 1950년 채택된 ‘인권과 기본적 자유의 보호에 관한 유럽 협약’(아래 유럽인권협약)은 지역인권기준 중에서 일찍이 자리 잡았고 상설유럽인권재판소를 설치하고 있기에 실효성으로도 높이 평가받고 있다.

(출처: Oddný Mjöll Arnardóttir, Equality and Non-Discrimination under the European Convention on Human Rights, Martinus Nijhoff Publishers, 2003)

법에서 평등을 논할 때 오랫동안 ‘형식적’ 평등과 ‘실질적’ 평등의 차이에 주목해왔다. 전통적으로 이 둘 간의 차이는 ‘법의 내용에 상관없이 법의 적용만을 문제 삼느냐’ 아니면 ‘혜택과 부담의 정당한 분배 내지 일종의 사회정의의 요구 속에서 법의 내용을 문제 삼느냐’이다.

이런 기본적인 구분에 기초해서 ‘실질적’ 평등에는 또 다른 두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차이에 따른 다른 처우에 대한 인정이다. 여기에는 평등을 증진하고 사회‧경제적으로 불리한 집단들에게 혜택을 주기 위한 목적의 적극적인 조치들이 포함될 수 있다. ‘실질적’ 평등은 차이에 따른 다른 처우를 허용하는 것으로 이것은 차별적인 것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둘째, ‘적극적 의무’를 실질적 평등의 개념과 연결시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국가는 차별을 방지하거나 차별로부터 보호할 것을 적극적으로 요구받을 수 있다.

평등에 관한 법률규정의 정교화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의 차별은 지속적이다. 형식적 평등이건 실질적 평등이건 평등에 관한 법률규정이 법적 절차를 밟을 때는 형식적 요소만 남게 되어 버린다. 이에 대한 비판들은 더 많은 실질적 평등을 주문하지만 평등이라는 용어 자체가 불확정적이기 때문에 인권법에서 평등 문제에 대한 아주 새로운 접근이 요구된다.

크게 3가지 접근 이론에 기초해서 평등의 문제를 살펴보자.

형식적 접근

첫번째로 형식적 접근법이 있다. 이는 “엄격하게 똑같은 처우”, 대칭적 접근 또는 동일성의 접근이라고도 말한다.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취급한다는 격언에 기초한 것으로 성‧인종‧종교 등 특정한 구분을 아주 무의미한 것으로 본다. 성‧인종 등의 특성이 아주 무의미한 것이므로 다른 처우로 귀결될 수 있는 ‘차이’를 구성할 수 없다. 따라서 이 접근법은 동일한 처우에서 파생될 수 있는 불평등한 결과에 상관없이 동일한 처우를 강조한다. 이 접근법이 ‘대칭적’이란 의미는 불리한 집단에게 혜택을 주려는 다른 처우를 이미 특권층인 집단을 이롭게 하려는 다른 처우와 마찬가지로 유해하다고 간주하기 때문이다.

이런 형식적 접근법은 자유주의에 해당하는 것으로, ‘동일한 처우’에 대한 강조는 개인주의에 대한 강조와 직접 연결된다. 차별 분석에서 중요한 것은 개인의 장점이나 결점이지, 어떤 집단의 구성원이기 때문에 지속되는 구조적 불리함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평등에 대한 형식적 접근법으로는 평등을 증진시키기 위해 계획되는 적극적 조치(차별수정조치)를 정당화할 수 없다. 이런 점은 국가의 수동적인 역할에 대한 강조와 연결되기 때문에 국가에 요구되는 것은 적극적인 의무가 아니라 외적으로 명백한 차별을 삼가기만 하면 되는 소극적 의무이다.

이 접근법의 강점은 아주 ‘간단’하고 ‘효과적’이라는 점이다.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취급한다니 간단명료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여기에 이 접근법의 단점이 있다. 누가 똑같고 다른지를 설명해주지 않는다. 또한 처우의 내용에 대해서도 얘기하지 않는다. 또한 ‘누구와 비교되는가’라는 문제점이 있다. 평등의 문제가 다뤄지기도 전에 이미 비교대상이 결정돼있고 분명한 비교대상이 없는 문제 같은 건 아예 제쳐 놓는다. 예를 들어 임신, 파트타임 노동, 장애 같은 문제 영역은 무엇과 비교되는가를 생각해보자.

이런 한계 속에서 발생하는 또 다른 문제가 있다. 불리한 집단의 구성원이 요구할 수 있는 동일한 처우의 내용은 특권 집단이 이미 누리고 있는 처우나 특권집단이 누릴 수 있는 수준에 국한될 뿐이다. 불리한 집단의 요구는 그 내용 자체가 아주 다른 것일 수 있는데 그 점이 고려되지 않는다. 따라서 비교대상자(예를 들어 임신하지 않는 남성, 정규직 노동, 비장애인)와 ‘동일성’을 보임으로써 동등한 권리를 주장하려는 접근은 차이로 인한 배제를 일으키게 된다.

마지막으로 형식적 접근법의 문제점은 지배적인 사회정치적 구조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사회에서 지배적인 집단이 ‘모든 것의 척도’가 된다. 기존의 사회 구조가 특권과 박탈에 어떻게 침투해 있으며 지배적인 집단의 기준이 다른 집단에 속한 사람들에 대한 처우를 어떻게 지배하는 가의 문제를 다루지 않는다.

실질적 “차이”의 접근

두 번째 접근법은 ‘동일한 처우’와 특별한 처우를 결합시키는 것이다. 이 접근법은 차이 모델, 실질적 및 비대칭적 접근이라고도 한다. 형식적 접근법에 기초하고는 있지만 다른 점은 실질적 평등을 성취할 목적으로 어떤 차이들은 인정돼야 한다고 본다는 것이다. 차이모델에서 문제되는 차이는 ‘불변의 바꿀 수 없는’ 차이로서 예를 들어 임신, 출산휴가, 교육에서의 소수자 언어, 장애 등이다.

이 접근법은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라는 격언에 규범적 요소를 도입한 것으로 ‘결과의 평등’에 근접할 수 있는 처우를 요구한다. ‘결과의 평등’을 강조함으로써 간접차별에 도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간접차별이란 의도와 무관하게 집단 간에 다른 결과를 낳게 되는 것으로서 차이 모델은 이에 대한 객관적인 정당화를 요구한다. 차이 모델의 중요한 특징은 차이를 받아들이는 상황을 ‘동일한 처우’의 ‘예외’로서 다룬다는 점이다. 형식적 평등에도 불구하고 지속되는 특정 집단에 대한 차별의 효과에 대응할 필요성을 인정한다. 개인주의적 이상을 거부하지는 않지만, 현실적으로 개인이 누릴 기회를 결정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특정 집단의 성원이라는 지위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고 본다. 따라서 차이 모델은 형식적 접근법의 엄격한 개인주의를 거부하고 평등을 증진하기 위한 적극적 조치를 허용한다.

차이 모델의 강점은 형식적 접근법에서 나타난 규범적 불확정성, 비교대상의 선점, 이미 비교대상에게 인정된 처우만으로 요구를 국한시키는 등의 문제점을 벗어났다는 점이다. 차이 모델의 특질은 특별한 적극적 조치가 정당화될 수 있다는 점을 허용했다는데 있다. 따라서 직접적인 차별을 금지하는 입법적 보호 뿐 아니라 평등을 증진하기 위한 적극적 조치를 규정할 수 있도록 하는 국가의 적극적 의무를 실질적 평등의 개념과 연결시켰다. 적극적 조치는 비차별적일 뿐 아니라 특별한 상황에서는 국가가 적극적 조치를 규정하거나 적용할 것이 요구된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차이 모델은 차이에 대한 적극적 수용을 요구한다는 의미에서 다양성을 인정하고 있다.

차이 모델의 약점은 ‘어떤 차이가 정당화될 수 있고 특별한 처우를 요구하는가’의 문제에 대한 규범적 답이 여전히 불확정적이라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오직 생물학적이거나 불변의 차이만을 다루느냐 아니면 어떤 차이든지 다룰 수 있느냐의 문제가 발생한다. 차이에 따른 다른 처우를 규범적으로 인정한다고 했지만 그 처우의 내용은 여전히 모호하다. 어떤 점에서는 ‘유리한 특별한 처우’를 위한 근거가 될 수 있는 차이가 또 다른 측면에서는 ‘불리한 특별한 처우’의 구실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형식적 접근법에서와 마찬가지로 차이 모델에서도 사회속의 지배적인 집단이 ‘기준’이 된다. 따라서 가장 단순한 형태로 보면 조건부의 내용을 성취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와 관련된 비판은 특별한 처우란 것이 그런 처우를 받는 집단에게 낙인을 부여하는 기능을 할 수 있고, 불평등한 상황속의 현상유지를 영속시키게 된다는 것이다. 이와 연관된 문제로 차이 모델은 ‘다르다’고 하는 집단을 바라보는 판에 박힌 진부한 시각을 영속시킬 잠재성이 있다.

실질적 “불리함”의 접근

세 번째 접근법은 이론적으로나 실천적으로나 최근에 등장한 것이다. ‘사회에서 작동하고 있는 권력, 지배, 불리함의 비대칭적 구조’를 강조하는 ‘맥락에 따른 접근법’이다.

이 접근법은 따져봐야 할 조치가 취약집단의 불리함을 늘리기 위해 작동하는가 아니면 불리함을 줄이기 위해 작동하는가를 분석한다. 불리함을 늘리는 관행과 정책을 없앨 것을 요구하고 사회정치적 구조를 바꿀 것을 요구함으로써 결과의 평등을 지향한다. 구조적 불리함에 도전하는 일에 간접차별이 아주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에 광범위하게 간접 차별을 불법화하는 것이 이 접근법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이 접근법은 앞서 살펴본 두 접근법에서 나타난 동일성과 차이의 접근의 약점에 대응하여 만들어졌다. 본질적인 동일성이나 차이에 초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구조적이거나 체제적인 결과로 강조점을 옮기는 것이다. “X라는 존재나 특성은 사물의 본질에 의해 결정된 것이 아니다. X는 불가피한 것이 아니다. X는 사회적 사건, 세력, 역사에 의해 존재하거나 형성됐다. 이 모든 것들은 달라질 수 있었던 것이다.”라는 입장이다. 평등이라는 맥락에서 'X'는 특정 집단에게 부여된 특질일 수도 있고 차별이나 불리함이라는 사회적 사실일 수도 있다. 이런 접근에서는 어떤 특질이 ‘자연적’이거나 ‘불변’이라는 주장을 거부하며, 그런 특질들에 대해 ‘사회적 구조’이며 사회에서의 권력‧지배‧불리함의 체계적인 유형으로서 관심을 가진다.

무엇보다도 이 접근법은 개인주의와 자유방임국가에 대한 강조를 분명히 거부한다. 이점에 있어 두 번째의 ‘차이 모델’의 접근법과 같지만 ‘불리함의 접근’은 그런 거부를 최대한 밀어붙인다. 특별한 처우를 ‘동일한 처우’의 예외로 보는 것이 아니라 차별적인 사회정치적 구조를 철폐하기위해 단지 때때로 요구되는 것으로 본다.

‘불리함의 접근’의 강점은 앞의 두가지 접근법과 비교할 때 규범적 내용을 좀 더 분명히 한다. 예를 들어 ‘불리한 조건을 경감하고, 위계와 지배의 관계를 없앰으로써’ 결과의 평등을 지향한다는 식으로 정당한 처우에 관해 얘기한다. 또한 기존의 비교대상에 초점을 두고 그들과의 동일성과 차이를 얘기하는 문제점을 벗어났다. 동일성과 차이라는 용어로 분류하는 것은 ‘불리함의 접근’법이 요구하는 분석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이 접근법은 기존의 사회구조적 구조의 현상에 비판적이기 때문에 ‘구조적 불리함’에 대해 보다 비판적이다. 결과적으로 구조적 불리함과 연관된 모든 종류의 문제가 평등 문제로 다뤄질 수 있다.

하지만 이 접근법에서도 규범적 불확정성의 문제는 여전하다. 불리하다고 하는 집단과 그들에 대한 처우를 어떻게 규정할 것이냐의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불리한 집단’으로 분류하는 문제는 ‘다른 집단, 차이를 가진 집단’으로 분류하는 것과 비슷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또 다른 문제는 어떤 집단이 불리하냐를 결정하는 것과 관련된 법원의 능력이다. 이 접근법에서 요구되는 맥락에 따른 분석은 법원이 전통적으로 다뤄왔던 것과는 다른 성격의 것이다. 문제되는 사회에 대한 사회학적 분석, 그런 사회에서의 개인의 지위, 가장 넓은 의미에서의 법률의 정치적 및 사회적 영향에 해당되는 얘기이다. 이런 문제들에 대한 법원의 분석은 관련 당사자의 분석과 아주 다를 것이다. 또한 법원은 그 자체가 사회구조로서 사회정치적 구조 변화를 위한 효과적 장치라기보다는 ‘모든 것의 척도’로 간주되는 사회에서의 지배집단의 견해를 유지하기 쉽다.

마지막으로 골치 아픈 문제는 이 접근법에서 보면 평등으로 인정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는 점이다. 평등원칙을 고수하지만 실제로는 평등으로부터 얻을게 아무것도 없어 보인다.

평등에 대한 법적 접근

지금까지 살펴본 평등에 대한 세가지 접근법이 순수한 형태로 존재하는 곳은 그 어디에도 없다. 가장 형식적인 접근법에서 보다 실질적인 접근으로 미끄럼을 탄다고 할 때 어느 지점에서 순간 포착을 했느냐에 따라 이들 관점이 보일 것이다. 가장 형식적인 접근에서의 평등에 대한 법적 보호는 완전히 무익하며, 가장 비판적인 접근에서 볼 때는 사회 혁명 말고는 충분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

차이가 나기는 하지만 평등에 대한 접근법에는 일정 정도의 규범적 불확정성 내지 모호성이 있다. 이 문제는 하나의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공식으로 결코 표현될 수 없는 가치의 판단 문제이다. 실질적 평등에 대한 법적 접근은 궁극적으로 이런 가치 판단에 달려있다.

다른 국제인권조약과 마찬가지로 유럽인권협약의 평등 규정에는 정해진 답이 없다. 가치 판단의 문제와 규범적 의미는 법원의 절차를 통해 발생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형식적 또는 실질적 접근이 작동하고 있느냐가 드러난다. 이글은 유럽인권재판소에서 차별문제를 어떻게 검토해왔는지를 분석할 것이다. [류은숙] <2007년 9월 11일 인권오름 제71호>

작성일자 : 2007. 8. 16

글쓴이 : 류은숙(인권연구소'창' 연구활동가)

앞에서 유럽 정치에서의 몇 가지 연대 사상을 살펴봤다. 연대 사상은 맑스주의, 수정 사회주의, 가톨릭의 사회적 가르침 및 국가와 인종에 대한 국수주의 사상(파시즘) 등 다양한 역사적·이데올로기적 전통에서 나왔다. 이들 중 수정 사회주의와 가톨릭의 사회적 가르침이 유럽 정치에 특히 영향을 미쳤다. 사민당과 기민당은 연대개념을 당의 핵심가치와 정치 언어로 발전시켰다.

하지만 정치에서 연대 개념이 성공적으로 구사됐다는 점은 그 대가를 지불하기도 했는데 연대는 그 분명한 의미를 잃어버렸다. 연대 개념의 핵심을 규명하기도 어렵거니와 정당의 다른 핵심 가치와 어떻게 연결되느냐에 따라서 연대의 의미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정당정치에서 사용된 연대 개념의 유동성과 느슨함은 지적 불만을 야기했다. 이에 현대 사회학은 연대의 개념을 다시 파고들었다. 개념의 불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연대는 동질성이 아닌 차이의 수용에 기반하며, 정치적 이타주의와 공감에 기초한 개념으로 확장돼왔다. 이런 종류의 연대 개념이 직면한 현재의 도전들은 무엇인가?

연대의 계급적 기초

노동운동의 연대사상은 노동계급의 파편화를 극복하는데 필수적이었다. 하지만 재산이 없는 남성 임금 노동자를 모델로 한 연대개념은 적어도 1970년대부터 그 중요성을 상실했다. 계급구조는 변해왔다. 산업 노동자의 수는 감소하고 있고 사적 및 공적 서비스 종사자가 늘어나고 있다. 서유럽 사회에 사는 사람들 중 아주 소수만이 자신이 노동계급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노동은 더욱 파편화되고 다원화됐다.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가 늘었고 저임금 노동과 공적 부문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주자는 노동시장에서 다른 부문을 차지하며, 이들은 노동시장과 사회를 더 이질적으로 만들었다. 결과적으로 이질성과 다양성의 증대는 계급 구조를 더욱 불분명하게 만들었다. 노동자가 부문과 집단으로 분화되면서 각자의 경제적 이익을 다른 노동자들과 상관없이 추구하게 됐다. 정치의식으로서의 연대는 소비자 사회의 개인주의와 사적이고 개인적인 만족의 추구에 굴복하게 됐다.

하지만 이와 같은 계급 연대의 소멸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논쟁적이다. 계급은 여전히 사회 정체성의 가장 공통적인 원천이며 복지국가에 대한 태도 유형을 가장 잘 설명하는 유일한 근거라는 주장이 있다.

사회구조와 관련된 또 다른 핵심 문제는 중산층의 중요성의 증대이다. 연대사상이 노동운동에서 발전할 때 노동계급이 이질적이었듯이 중산층도 아주 이질적이다. 어떤 중산층은 노동계급에 가깝고 어떤 중산층은 고도의 자율성과 고용주로서의 기능을 갖는다. 또한 계급은 생산과 경제, 착취에만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적 자본(교육), 사회적 자본(사회관계), 상징 자본(위신)과도 관련된다. 이런 고도의 차별성이 섞여서 오늘날 연대 현상의 사회적 기초를 구성할 수 있을까? 계급의 개념을 아무리 확장한다 할지라도 연대사상의 발전에 복무한다고 말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개인주의

개인주의의 증대도 연대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다. 19세기의 어떤 학자는 ‘개인이 일종의 종교가 됐다’며 개인주의의 증대가 사회통합과 연대에 끼치는 악영향을 우려했다. 현대의 개인주의 분석자들의 생각은 약간 다르다.

시장은 개인의 권리와 책임성을 강조했다는 의미에서 그 출발부터 개인주의를 증진시켰다. 근대성은 자아 설계를 열어젖혔지만 상품 자본주의의 획일화 효과에 더 강력한 영향을 받는 조건하에서 그랬다. 자아설계는 욕망하는 재화의 소유와 인위적으로 구성된 삶의 추구로 변환돼간다. 자아실현이 무엇보다도 중요하기에 보편적인 도덕 기준은 그 중요성을 잃게 되고 타인에 대한 관계는 단지 친밀한 관계영역에서만 중요하다. 이런 맥락에서 개인주의의 증대는 개인들로 하여금 공동선을 위해 집단에 자신을 종속시키고 싶어 하지 아니하게 하고, 현대사회의 집단적 연대의 기초에 심각한 도전이 된다. 현대 사회에서 연대는 더 이상 전통이나 물려받은 충성심 또는 계급 정체성에 기초하지 않는다.

하지만 또한 강조돼야 할 점은 개인주의가 반드시 이기주의의 증대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개인주의의 또 다른 측면은 ‘내가 유일한 존재이며 궁극적으로 대체할 수 없는 존재로서 가치를 인정받고 싶다면, 다른 개인들도 마찬가지로 유일하며 대체할 수 없는 존재로 봐야만 한다는 것’이다. 서유럽에서 인간 존엄성과 인권의 보편성의 수용은 개인주의와 근대성과 강력하게 결합돼있다. 보편주의와 개인주의는 동전의 양면이다. 사민주의와 기독민주주의의 이데올로기는 인간 존엄성과 인권에 대한 강조를 연대와 결합시켰다. 증대하는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연대를 부식시킨다는 생각은 개인주의와 보편적 인간 존엄성에 대한 사상이 한데 얽혀있다는 점에 대한 이해로 대체돼야 한다.

현대사회에서는 연대와 개인의 자율성 및 자아실현이 새롭게 혼합돼 있다. 이들 가치간의 균형과 목적은 사회계급 속에서, 개인들 속에서, 그리고 다양한 맥락과 시대에 따라 다르다. 현대의 개인들은 연대에 대한 자신만의 정의를 가질 수도 있고 안가질 수도 있고, 자신의 개인적 삶의 설계에 연대를 통합할 수도 있고 안할 수도 있다.

소비주의

개인주의의 발전의 뿌리는 르네상스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지만, 최근 수십 년간 증대된 개인주의는 중산층의 성장과 분명 결합돼있다. 중산층과 개인주의의 성장에 부가된 것은 소비주의의 증대이고, 이 셋의 결합이 이 시대 연대에 대한 가장 중대한 위협을 구성한다고 할 수 있다.

전통적인 계급 연대는 빈곤과 불안에 대한 공통된 경험에서 성장했다. 상호성실과 서비스의 교환, 협력으로 빈곤과 불안을 막으려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서유럽 국가에서 엄청난 경제 성장은 대량 빈곤을 퇴치했고 복지국가의 확장과 사적 소비의 엄청난 증가를 가능하게 했다. 대다수 사람들에게 삶의 위험성은 매우 축소됐고, 물질적 재화의 소비와 생활양식의 선택에서의 개인적 선택의 기회가 크게 성장했다. 개인의 자율성 증대의 기반이 마련됐고 집단적 연대의 필요성은 대다수에게 가치가 떨어지고 있다.

현대 사회에서 사회적 정체성은 소비자로서의 정체성과 크게 결합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일터에서 시간을 덜 보내고 비용이 드는 여가시간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 생산의 역할과 소비의 역할간의 균형이 무너져왔다. 소득과 구매력의 증가는 시장에서 상품과 서비스를 선택할 가능성을 증대시켰고 개인은 더 강력한 자기 충족감을 발전시킨다. 모든 개인이 타인에게 의존한다는 인식은 줄어들고 집단적 조정에 대한 지지는 부식될 수 있다.

소비자로서의 태도는 공공복지 정책에 대해서도 또한 발전됐다. 집단적인 공공복지는 소비자의 개인적 선호에 맞춰야 하는 소비자 서비스로 보이지 않는다. 개인들은 공공 서비스가 자신의 요구와 선호를 충족시키지 않을 때마다 사적 시장에서 사회적 서비스와 의료 서비스를 구매하는 것을 권리로서 요구하는 경향성을 더 갖게 됐다. 이런 식으로 소비주의는 새로운 의미의 개인적 자유를 자극했다. 이런 자유는 사적 서비스에 지불할 수 없는 사람들의 이해나 사회의 집단적 이해를 고려하지 않고 내 돈을 어떻게 써야 하느냐를 선택할 자유를 주장하게 됐다. 집단적 연대와 개인의 자유간의 딜레마가 지속적으로 현저해지고 있다.

소비주의 이데올로기는 공공 서비스의 지도자들이 선전하는 지배적인 이데올로기가 돼왔다. 이들은 경제적 효율성을 강조하고 소비자를 위한 서비스의 생산을 지향한다. 이런 경향성의 문제는 보건과 복지 서비스의 민영화, 시장 원칙과 경쟁의 수용이다. 그로 인해 이전에 연대에 기반을 두었던 공적 제도가 개인의 구매력에 기반을 둔 것으로 대체되고 있다.

복지국가는 연대를 해치는가?

연대와 복지국가의 관계는 무엇인가? 오늘날 복지국가는 제도화된 연대의 표현으로 간주되고, 많은 이론가들은 개인주의와 소비주의가 연대를 부식시킬 것을 염려한다. 하지만 현재 상당한 증거들을 볼 때 후퇴와 축소에도 불구하고 복지국가는 살아남았고, 복지국가의 위기는 더 이상 유행하는 연구 주제가 아닌 것 같다. 사회조사 결과들은 복지국가에 대한 대중의 지지가 여전히 확고하며 많은 국가의 시민들의 태도가 복지국가의 정당성을 증명한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개인주의의 증대가 제도화된 연대를 부식시킬 것이라는 우려를 불식시키기에 충분치는 못하다.

1970년대 이후 복지국가의 일반적 경향성은 보편성과 평등, 시민권이라는 점에서 약화되고 있다. 선별성, 사적 전달, 개인의 책임성과 노동 참여가 강화돼왔다. 게다가 복지에 대한 여론은 흔히 모순적이며 평등은 지배적인 가치가 아니다.

근본적인 질문은 복지국가가 어느 정도로 연대를 배양하느냐 아니면 연대를 해치느냐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대조적인 답변이 있다. 한 가지 답변은 잘 발전된 보편적인 복지국가가 공동체를 창조한다는 것이다. 반면에 다른 답변은 공동체와 연대의 전제조건인 공통의 책임성을 복지국가가 저해한다는 것이다. 경제적 재분배와 사회적 서비스의 제공에 대한 공적 책임성이 공동체의 궁핍한 구성원을 돌볼 도덕적 책임성을 시민사회로부터 제거한다는 것이다. 즉 원래는 연대에 기반을 두어야 할 제도가 오히려 그런 제도의 기반이 되는 도덕적 기초를 해친다는 것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도덕적인 타인과의 관계맺기와 연대에 기초해야할 행위가 제도화된 유사 연대가 돼버리면서, 타인의 상황에 대한 개인의 관계가 그 도덕적 성격을 잃어버리고 세금을 지불하는 관료적인 행위로 바뀐다는 것이다.

이런 논쟁은 연대와 복지국가의 관계가 복잡한 것임을 보여준다. 현대의 복지국가는 위험과 자원을 공유하려는 시민의 준비됨에 기반을 두고 있다. 시민들은 복지국가를 대규모 보험회사로 간주할 수 있기 때문에 개인주의와 소비주의가 증대되고 개인 저축의 가능성이 강화된다고 해서 반드시 복지국가를 위협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식의 견해가 우세할수록, 복지에서의 보편주의, 재분배, 연대가 손상될 가능성도 높아진다. 노동계급과 중산층의 동맹이 복지국가의 연대를 방어할 수 있을지라도 그런 방어가 3세계와 이주자, 억압받고 차별받는 집단에 대한 연대를 방어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모호한 현상의 지구화

오늘날 연대에 대한 주요 도전에서 지구화의 이중적 성격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1차 대전의 발발은 국제적 노동자 연대의 사상의 패배를 보여줬다. 1차 대전 후에 ‘민족’은 연대를 말하는 틀이 됐고, 2차 대전 후에는 민족적 복지 국가가 수립되고 연대의 언어로 정당화됐다. 그 후 수십 년 동안 연대 담론은 민족국가가 국가 장치와 의사결정을 통해 자기 영토를 통제하고 일종의 재분배와 고용정책을 가진 경제정책을 운용할 수 있다는 생각에 기초했다. 오늘날 중심적인 문제는 어느 정도로 이런 생각들이 지구화시대에도 유효할 수 있느냐이다.

연대 사상은 언제나 시장의 확장과 동반된 사회적 유대의 해체에 대한 대응으로서 시장의 팽창에 대한 우려를 표시해왔다. 지구화는 국경의 제거 내지 축소를 의미하는 것이고, 이것이 국제적인 자본과 투자, 재화와 서비스의 자유로운 유통을 허용한다. 그렇기 때문에 지구화는 시장의 더 큰 확장을 의미하며 연대 사상에 대한 위협이 된다. 초국적 기업은 일국 정부와 국제기구들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는 핵심 행위자가 됐다. 노동조합과 피고용인의 전략적 입지는 약화됐고, 자본소유자와 투자가들의 입지는 강화됐다. 각 서유럽 국가에서 민주적으로 선출된 대표자들은 이런 새로운 경향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높은 임금을 받는 국가의 노동자들은 저임금 국가들의 노동자들과 반대되는 입장에 서게 되고 국경을 초월한 연대는 더욱 어렵게 됐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지구화가 연대의 전통적 형태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는 점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

지구화는 경제적 측면만이 아니다. 또한 사회문제가 지구화된다. 기구온난화와 대기 오염은 국경을 존중하지 않는다. 전쟁과 자연재해는 타국의 안전, 노동시장, 문화와 정체성에 영향을 미친다. 테러는 어디에서나 발생할 수 있다. 유전자 조작된 식품은 세계 어느 곳에나 쉽게 확산될 수 있다. 여행의 증가는 전염병과 질병을 쉽게 확산시킨다. 민족국가의 힘을 과소평가할 수는 없지만 지구화의 영향은 민족국가가 자국 시민의 안전과 복지를 자기 힘만으로는 보장할 수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셋째, 지구화는 국제적 및 초국적 조직과 네트워크의 성장이다. 1976년부터 1995년까지 1천 6백여 개의 국제 조약이 비준됐고, 이중 백여 개가 새로운 국제기구를 탄생시켰다. 21세기가 시작되면서 4천개가 넘는 국제회의가 매년 열리고 있다. 이러한 국제조직과 회의는 이중적 성격을 갖는다. 대다수 중요하고 영향력 있는 국제조직은 부유한 국가들이 지배한다. 이들 기구가 국제 연대를 대표한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국제기구들은 정치투쟁과 공적담론의 장이며 새로운 동맹의 발전을 위한 가능성을 창조한다.

넷째, 지구화는 국제법과 규제의 증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국제법과 조약은 무역, 운송, 통신을 규제하고 보편적 인권에 대한 인정을 요구한다. 민족국가는 더 이상 입법의 주역이 아니다. 국제조직의 수립, 협상, 조약, 지역 및 국제 재판소의 결정에 의해 법이 발전된다. 이런 국제법의 주요 특성은 새롭고 긍정적인 국제 질서를 대표하는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미국의 헤게모니의 표현에 복무한다는 시각이 있다.

다섯째, 지구화의 또 다른 측면은 국제적 자원조직, 네트워크, 협력의 강화이다. 이들의 연대 개념은 시장과 산업 자본주의의 성장에 동반된 문제들에 대한 답을 추구한다. 이들 운동은 기존의 정당이 충족시키지 못했던 도전들에 대한 대응을 발전시켰다. 가장 중요한 문제들은 핵무장 해제, 환경에 대한 위협에 맞서기, 성적 차별과 인종차별주의에 대한 반대이다. 여기서 던져야 하는 중요한 질문은 어느 정도로 사회운동에서 연대가 정착할 수 있느냐이다. 사회운동의 제1의 물결(노동운동과 교회운동), 제2의 물결(60년대와 70년대의 다양한 운동), 그리고 제3의 물결(지구화에 대한 우려와 미국 헤게모니에 대한)에서 연대는 무엇인가?

노동운동은 지구화가 매우 심각한 위협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노동운동은 국제적 및 지역적 차원에서 공동의 대응전략을 수립하기 시작했다. 아직은 사회대중운동의 성격을 갖지는 못했지만 새로운 형태의 국제연대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다양한 정체성 운동은 노동운동보다는 다소 일관된 공통의 이데올로기가 부족하다. 전체 사회의 보편적 이해를 대표한다고 주장하기가 어려운 측면이 있다. 지구화 시대의 지구적 문제들에 대해 새로운 운동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전통적인 노동운동의 국제연대와는 다른 형태의 국경을 초월하는 새로운 연대는 가능한가? 기존 정당과 조직에 대한 활동가들의 회의적 태도가 일관성 있고 광범위한 정치 동맹 수립을 어렵게 하지는 않는가?

지구적 시민자격 - 지구적 윤리?

복잡다기한 현 세계에서 연대가 효과적이기 위해서는 연대가 타인에 대한 태도에 관한 것만이 아니라 모두가 공유하는 권리와 의무로 제도화돼야 한다. 사람들이 자유롭게 논쟁하고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강력한 공적인 장의 형성이 동반돼야 국제법의 성장이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이런 공적인 장의 형성은 지구적 연대의 필수적 구성요소라 할 수 있다. 지금으로선 공적인 논쟁과 의사결정권한이 연결되지 않은 것이 국제영역이다.

연대의 지구화는 지구적 시민자격이라는 맥락에서 개인의 권리와 의무의 완전한 발전을 포함해야 한다. 지구적 시민으로 자신을 간주하는 사람은 자신의 도덕적 선호를 분명히 해야 한다. 지구적 윤리의 핵심은 지구적 공동체에 대한 책임성을 갖는 것이고, 그런 책임성은 모든 인간이 동등한 가치를 갖는다는 신념에 기초해야 한다. 지구적 시민은 자신의 국민국가에 대한 애착과 지구적 공동체에 대한 애착 사이에 의식적이고 세심한 균형을 가져야 한다. 오늘날 연대는 민주적 참여와 법의 지배에 기초한 국제질서를 건설하려는 목표를 포함해야 한다. 이런 체계를 혹자는 세계적 민주주의의 수립이라 했다. 세계적 민주주의란 국제적 차원에서의 공평한 법의 집행, 더 큰 투명성과 책임성, 지구적 거버넌스의 민주성, 지방·일국적·지역적 및 국제적 차원 모두에서의 보다 강력하고 유능한 거버넌스를 의미한다. 이런 체계는 세계적인 가치나 윤리에 기반을 두어야 하는데 여기에 포함될 수 있는 것은 지구적 사회정의, 민주주의, 보편적 인권, 법의 지배, 인간안보 및 초국적 연대이다.

혹자는 이에 대해 심각한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과연 지구적 문제에 관심을 갖는 윤리만으로 될까, 모든 인간의 동등한 가치를 인정하고 그런 원칙과 가치에 기반을 둔 국제관계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것으로 될까?

물론 문제는 있다. 윤리만으로는 지구적 연대의 굳건한 기초를 구성할 수 없을 것이다. 국제법 체계는 서구의 경제력과 협상력의 결과이다. 의사소통의 수단은 불균등하게 분배돼있고 세계의 다수가 배제돼 있다. 경제, 법률, 정치의 지구화는 서유럽 정부들이 자국의 목적을 추구할 의지나 능력을 상실할 지점에 도달하지는 않았다. 개인주의와 이방인에 대한 공포는 이 책에서 연구된 유럽 국가들의 성격이다. 이런 점들은 연대가 당장 발전할 것이라는 낙관을 어렵게 한다. 하지만 우리는 역사의 종말에 와있지 않고, 역사는 놀라움으로 가득 차 있다. 현재에 근거한 미래 예측은 거의 언제나 잘못된 것으로 판명됐다는 점을 기억하자. [류은숙] <2007년 8월 15일 인권오름 제67호>

작성일자 : 2007. 7. 18

글쓴이 : 류은숙(인권연구소'창' 연구활동가)

필자는 북·서유럽의 8개 사민주의 계열 정당의 강령을 중심으로 연대 사상의 변화를 분석한다.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및 영국의 정당들이다. 필자는 영국 노동당을 ‘연대’에 관한 한 유럽 사민주의의 예외로 다루고 있다. 자유주의 전통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에 연대 개념이 자리할 구석이 없었다고 분석하기 때문이다. 나머지 7개 정당들은 초기에는 노동자 계급 중심의 연대 사상을 취했다. 이것은 다양한 계기를 통해 타 계급을 포괄할 뿐 아니라 제3세계의 인민, 미래세대, 이주자와 소수민족을 포괄하는 연대로 확장‧전환되었다. 그리고 ‘연대’는 연설문에서나 가끔 수사어구로 쓰이던 수준에서 당 강령의 핵심적인 사상과 기본 원칙으로 고양되게 된다. 이 과정은 국가에 따라 20년에서 50년의 세월이 걸렸다. 연대 사상을 가장 먼저 반영하고 발전시킨 것은 스칸디나비아의 사민당이었고 가장 늦은 곳은 남유럽이었다.

전개 과정

1차 세계대전이 있기까지, 대부분의 사민당들은 전통적인 노동계급의 연대 개념을 고수했다. 즉, 연대는 노동자들의 공통된 이해에 기반해 다른 노동자와의 동일시와 일체감을 표현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다가오는 전쟁의 그림자는 국제적 노동계급의 단결을 불확실하게 했다. 한 국가의 노동자들이 타국의 노동자들에 맞서 싸울 수 있다는 가능성은 무시무시한 것이었다. 전쟁의 위협이 커질수록 연대의 호소도 늘어갔다. 사민당들은 군비와 전쟁에 반대하는 투쟁과 ‘타국의 노동자와 연대할 의무’를 외쳤지만 노동자가 자국 정부 편에 서서 전쟁에 나서는 것을 막지 못했다. 이로 인해 서로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내부 투쟁이 벌어지게 된다.

2차 세계대전은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와 정신에 심대한 영향을 끼쳤고, 어느 정도 이전의 정치적 및 사회적 갈등을 누그러뜨렸다.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 기독민주주의자, 자유주의자와 보수주의자가 저항(레지스탕스)운동에 함께 결합했기 때문이다. 전후 재건과 경제 성장의 필요성 앞에서 계급투쟁은 대부분의 사회주의 지도자들에게 그리 매력적이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이 전쟁 전에 작동했던 탈급진화 과정을 강화했다. 빠른 재건과 생활수준 향상을 위한 협력이 긴요했다. 계급투쟁과 계급연대 같은 개념은 이전보다 어색하고 부적절하게 여겨졌다. 이 점이 당 강령에 반영되면서 ‘연대’는 이제 획득돼야 할 의미가 됐다.

이와 동시에 사민주의 정당은 선거에서의 지지를 확대했다. 정권을 잡은 사민주의 정당이 당면한 도전은 국가경제 성장과 국가의 재건이었다. 반면 야당에 머무른 사민당들에게 도전은 정치적 고립을 뚫고 선거에서의 지지를 늘리는 것이었다.

사민당들이 1951년 독일에서의 신 인터내셔널 회의에서 만나서 채택한 최종 결의안은 이 두 과제를 아우른 것이었다. 모든 임금 노동자의 연대에 호소했고 파시스트 독재하의 모든 민족들의 연대를 선언했다. 연대는 불명료하기는 하지만 뭔가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됐다. 결의안은 경제성장을 자극하기에 중요한 물질적 인센티브를 언급했을 뿐만 아니라 공동선을 위해 함께 일할 때 생길 수 있는 공동체 정서와 연대, 노동 노력에 대한 개인의 만족을 언급했다. 그러나 제3세계의 피억압 민족들과의 연대를 전혀 언급하지 않았고 영국과 프랑스가 거대한 식민 권력이라는 사실도 언급하지 않았다. 이러한 신 인터내셔널 강령은 당시 사민주의 정당들의 이데올로기적 분위기를 반영했다.

이러한 전개는 이 시기의 사회‧정치적 맥락에서 이해돼야 한다. 1950년대와 1960년대는 자본주의의 ‘황금기’였다. 경제는 급속하게 성장했고, 실업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으며, 인구의 대다수에게 생활수준이 지속적으로 상승하리라는 전망을 안겨주었다. 케인즈주의 경제 이론은 사민주의 정당에 경제적 변동을 조정할 도구를 제공했다. 많은 국가들에서 고용주와 노동조직 간의 암묵적 또는 명시적 합의는 임금 요구가 이윤과 투자를 잠식하지 않는 한도 내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세수의 증대는 사회개혁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정권에 관심을 가진 사민주의 정당들은 뛰어난 경제적 전망을 위태롭게 할 수 없었다. 게다가 그들은 의회의 다수를 모으기 위해 새로운 선거 동맹을 취해야 했다. 사회민주주의는 구조개혁을 포기했고 그 대신 생활수준의 향상과 생활의 위협에 대한 더 많은 예측가능성과 보장을 만드는 사회개혁을 받아들였다.

여당에게 있어서, 이러한 진전과 합의의 분위기에는 계급투쟁과 결합되고 노동계급에만 집중한 연대사상의 여지가 없었다. 정권에 대한 야망을 가진 당들은 산업 노동계급보다 더 큰 부문의 인구를 포용해야 했다. 이전에는 농민이 중요한 잠재적 동맹이었다면, 이제 정치적 이해는 공사 부문의 새로운 화이트칼라 집단으로 전환돼야 했다. 노동계급이 어떻게 정의되느냐와 무관하게, 사회주의 지도자들에게 점차 다급해진 것은 노동계급의 구성원으로 간주되지 않는 사회적 범주에 대한 당의 호소를 확대하는 것이었다. “사민주의의 목적은 선거에서 다수를 획득하는 것이므로, 연대의 정의는 ‘계급’이 아닌 ‘인민’을 다뤄야 한다”, “노동자 연대는 사회적 연대로 확대돼야 한다”는 발언들이 대표적인 지도자들에게서 나왔다.

1945년부터 1968년의 학생봉기까지 사민주의 강령에서 연대의 개념은 더욱 포괄적이 됐다. 연대는 이제 억압받고 권리가 없거나 차별받는 것으로 여겨지는 모든 사람들과의 동일시를 의미하게 됐다. 제제3세계 국가의 노동자들만이 아니라 제3세계 민족들이 연대 개념에 포함됐다. 여성, 장애인, 인종적 및 성적 소수자가 대안의 더 나은 사회를 위해 투쟁하는 사람들과의 연대에 포함돼야 했다. 다른 한편 학생봉기는 ‘일치성’에 저항하는 투쟁과 부모세대로부터 독립된 자신의 개성을 발전시킬 권리 투쟁을 표현했다. 따라서 학생운동의 가치는 한편으론 집단적 연대를 강조하고 다른 한편으론 개인의 자유, 자아실현, 개인의 정체성의 발전을 강조하는 일면 모순돼 보이는 요소를 조합했다. 많은 사민주의 지도자들에게 이것은 시대가 변하고 있다는 신호였다.

1968년의 문화적 변화에다가 석유파동이라는 경제적 위기가 부가됐다. 2차 대전 이후 오랜 호황은 끝났다. 실업이 늘어나고 복지삭감이 논의되고 실행됐다. 1980년대에는 위기가 심화됐다. 시장 이데올로기와 개인주의가 지배적이었고 사민당은 정권에서 물러나야 했다. 1989년 소비에트 연방의 붕괴는 이데올로기와 정치적 불확실성을 심화시켰다.

이 속에서 새롭고 급진적인 언어의 필요성에 부응하여 복지의 보존과 개혁 둘 다에 이용될 수 있는 언어, 사민당의 정치력 확대를 위한 구호로서 ‘연대’가 재발견된다. 예전처럼 연설문에나 가끔 쓰이는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당 강령의 기본원칙으로 ‘연대’가 천명된다.

제3세계와의 연대

필자에 따르면, 사민주의 정당에서 연대의 채택과 확대는 상당 부분 선거 전략이었다. 그런데 선거 전략에 별로 유효할 것 같지 않은 내용도 있다. 제3세계와의 연대가 그런 부분이다.

고전 맑스주의 연대 개념은 국제적이었고 국경을 초월하는 노동자 연대를 언급했다. 초기국면부터 사회주의 정당은 국제 문제에 몰두했고 국제협력, 국제적 계급의식, 지도원칙으로서 외국 문제에서의 반군사주의에 대한 신념을 일찍이 채택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독일사민당은 1905년 서남아프리카에서의 봉기를 상대로 한 독일의 전쟁을 지지하길 거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07년까지 제2 인터내셔널은 식민지 착취를 염려하지 않았고, 유럽의 사회주의자들은 (일부 예외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식민 정책을 비난하지 않았고 심지어 1914년까지 그것을 지지했다.

식민지도 또한 민족 자결권을 누려야 한다는 레닌의 견해는 식민주의에 대한 사회주의자들의 비판을 열었다. 공산당과 제3 인터내셔널은 식민주의에 맞선 투쟁에 일찍이 참여했고 제3세계 국가들의 자치를 지지했다. 이것이 소비에트 연방에 대한 충성의 표현이었는가 아니면 연대의 표현인가가 논쟁 지점이다. 사민주의 진영이 된 사회주의 정당들은 식민 체제를 지지했고 제3세계 민족들의 독립에 저항했다. 비록 그들이 자주 식민지 인민의 생활 조건에 대한 공감을 표시하기는 했지만. 이런 점에도 불구하고, 당 강령은 그 문제를 연대 사상과 결부지어 언급하지 않았다. 제3세계와의 연대 사상은 그 개념이 사민주의 개념으로 변형된 때인 20세기 후반부까지 사민주의 정당들의 강령에 제도화되지 않았다. 이때가 돼서야 연대 개념은 노동계급만이 아닌 계급과 집단을 포함하는 것으로 확대됐고 연대의 기초는 이해(interest)로부터 보편적 연민으로 재표현됐다. 이런 상황에서 제제3세계에서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인민을 포함하려는 조치는 당연했다.

사민주의 정당들이 권력을 잡게 되자, 사회연대주의 이데올로기와 정치적 실천이 이런 점에서 동떨어지게 됐다. 영국과 프랑스에서 사민주의 정당들은 식민지에 국가 자치가 부여돼야 한다는 것을 마지못해 수용했다. 영국 노동당은 2차 대전 이전에는 반식민지 운동과 밀접한 관계를 가졌지만 전후 정권을 잡게 됐을 때는 덜 급진적이었다. 노동당 정부는 인도와 파키스탄에 독립을 부여했지만 아프리카에 대해 그렇게 하는 것은 주저했다. 프랑스 사회당(SFIO)은 인도차이나 전쟁에 일정한 책임이 있고, 알제리 독립에 맞서 싸웠고 1956년 이집트 침공을 지지했다. 다른 사민주의 정당들은 알제리 전쟁에서 프랑스를 지원했고 또한 베트남 전쟁의 처음 몇 년간 미국을 지원했다. 반면 제3세계 인민들을 연민의 눈으로 흔히 바라봤고 생활조건 향상의 필요성이 당 강령에서 강조됐다.

노르웨이 노동당(DNA)은 빈국과의 관계에 대해 연대의 언어를 사용한 선두주자였다. 1951년, 인도 남부에서 개발 프로그램에 착수했을 때, 이것은 세계의 결핍과 빈곤에 대한 진정한 관심의 표현이었다. 동시에 당 지도부는 이것을 재무장에 대한 지출의 증가로부터 ‘인민에게 긍정적인 것을 주는’ 것으로 관심을 돌릴 기회라고 봤다. 1953년 강령은 국가간 경제적 격차를 메울 필요성을 선언했고 유엔이 ‘진정한 국제연대의 중심’이 되길 원했다. 독일에서 고데스베르크(Bad Godesberg) 강령은 독일과 ‘미발전’ 국가간의 관계에서 연대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이어진 기간 동안, 스웨덴과 덴마크의 사민주의 정당들은 강령에 유사한 표현들을 도입했다. 하지만 남유럽의 사회당과 공산당은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까지 이같은 일을 하지 않았다. 1960년 무렵부터 1980년대 초까지 제3세계와의 연대 개념은 당 강령에서 현대 사민주의 연대 이데올로기의 일부가 됐다.

선거의 고려가 이런 발전에 이바지한 것은 거의 없다. 이 측면의 연대의 포함은 자기 이해에 관한 생각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 빈곤한 세상에 사는 사람들의 곤궁에 대한 이타적 연민에 기반한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논의할 수 있는 점은 이런 이데올로기와 정치적 실천 간의 간극이다. 부국으로부터 제3세계 국가로의 지원은 GDP의 1%에도 미치지 않았고, 교역 조건은 제3세계의 이익을 위해 어느 정도라도 바뀌지 않았다.

다음 세대, 자연 및 인종적 소수자

1970년대 초, MIT 보고서 ‘성장의 한계(The Limits to Growth)'가 산업과 경제 성장이 생태와 지구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논쟁을 야기했다. 1980년대, 녹색당이 일부 국가에서 설립되거나 녹색 사상이 기존 정당에서 영향력을 얻었다. 1986년 유엔 환경발전위원회(the Brundtland Commission)는 ‘지속가능한 발전’을 핵심 구호로 해서 경제성장과 그것이 환경과 자연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고려를 결합시킨 발전의 필요성을 규명하기에 착수했다. 환경문제는 사민주의 정당의 강령에서 점차 더 많은 관심을 받게 됐다. 지구 온난화와 재생불가능한 자원의 이용이 미래 세대와의 연대를 요구한다는 사상이 점차 당 강령에 반영됐다.

같은 기간, 실업이 또다시 중요한 문제가 됐다. 1973년 석유 위기 이후, 실업은 치솟았다. 1970년대, 스칸디나비아 사민당들은 ‘연대주의 임금 정책’이라는 것을 만들어냈다. ‘연대주의 임금 정책’이란 안정된 고용의 고용자들이 임금 요구를 억제함으로써 실업자와 연대를 표현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실업, 늘어가는 난민, 조금 후에는 발칸에서의 전쟁으로 인해 인종적 다수자와 소수자간의 관계가 뜨거운 이슈가 됐다. 이런 변화들이 사민주의 정당의 강령에 점차 반영됐고 어느 정도는 연대의 개념에서도 그랬다.

사민주의 정당들이 이런 집단과 양상(미래 세대, 자연, 이주자, 난민 등)을 연대 개념에 포함하기 시작하자 제대로 갖춰진 포괄적인 연대 개념이 발전했다. 일반적으로 당 강령의 연대 개념이 이들 집단 또는 양상을 포함하기 위해 확대된 것은 20세기 막바지 수십년 동안이었다.

덴마크의 사민당이 최초로 환경 문제가 연대의 문제에 포함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1977년 강령에서 강조됐다. 다른 정당들도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에 이를 따랐다. 하지만, 사민주의 정당들은 일반적으로는 주저하거나 신중했다. 일반적으로 생태에 관한 것과 미래세대를 위해 환경을 보호할 필요성을 강령에 포함하는 반면, 이것을 경제성장의 필요성과 늘어나는 실업과 조심스럽게 균형을 맞추려 했고, 아주 가끔씩 환경 문제를 연대의 문제로 강조했다.

당 강령에서 연대에 포함된 마지막 집단은 인종적 소수자, 난민, 이주자로 보인다. 사민주의 정당들은 이주자와 난민의 상황을 강령의 이슈로 삼았지만 1990년대까지는 이것이 연대의 문제로 표현되지 않았다. 덴마크와 스페인의 사민주의자들이 처음으로 1990년대 초 강령에서 그렇게 했고 대부분의 다른 사민당들은 몇 년 내에 선례를 따랐다.

선거의 고려가 아마도 계급으로부터 인민 또는 국가로의 확장을 설명할 수 있다. 연대와 복지국가 개념간의 연결을 마찬가지 관점에서 볼 수 있지만 제3세계와 이주자와의 연대 주장을 선거의 이점으로 보기는 어렵다. 이들 문제는 당 유권자간에 매우 논쟁적이어서 유권자간에 잠재적 득실을 평가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집단과 이슈를 포함한 것은 두가지 다른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하나는 모든 억압받고 차별받고 또는 결핍된 집단과의 연대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보편적 휴머니즘과 이타적인 연대개념의 표현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또하나는 타협의 표현으로 보는 것이다. 한편으론, 좌파의 비판가들을 좀더 만족시키면서 당 강령에서 연대를 선언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론 그런 연대를 실제로는 아주 제한된 정도로 하는 정책을 이행하는 것이다. 제3세계에 대한 원조를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고 이민을 제한함으로써 그렇게 한다. 이런 방식은 우파의 비판을 야기하지 않는다.

현대 사민주의 연대 개념

사민주의 정당들이 자신들의 연대 개념을 지속적으로 보다 포괄적인 것으로 만들어왔다는 것을 살펴봤다. 고전적 연대 개념과 구별되는 현대 사민주의 연대개념을 필자는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첫째 유럽 사민주의 정당들의 연대 개념은 노동자만이 아니라 여타 집단, 그리고 다양한 문제들을 포함하는 것으로 확대돼왔다. 연대의 기초는 ‘(자신 또는 자기 집단의)이해’가 아닌 ‘윤리, 휴머니즘, 공감과 연민’으로 보인다. 연대의 목적은 사회주의의 실현에서 공동체 정서의 창조, 사회통합, 위험의 공유로 변했다.

둘째, 연대는 ‘동질성’에 기반한 것으로부터 ‘차이’의 수용에 기반한 것으로 변했다. 연대는 상이한 계급, 상이한 성, 다양한 연령 집단과 세대와 인종을 포함해야 한다. 사민주의 연대가 노동계급과 중산층만이 아니라 상위 계급을 포함해야 하는가의 정도는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확실한 점은 상위 계급이 특권을 덜 가진 사람들과 연대를 행사할 것이 기대된다는 것이다. 현대 사민주의 개념은 계급 이해보다는 윤리와 도덕에 기반해 있다.

셋째, 현대의 연대 개념은 ‘상호의존성’을 강조한다. 생산과 경제에서의 협력의 필요성이 고용주와 피고용인 간의 상호의존성을 창조한다는 주장이다. 양쪽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 결과는 경제 성장의 축소와 봉급의 더 적은 증가와 복지 국가를 유지 또는 발전시킬 자원이 더 적어지는 것이다. 여기서는 고전 사회학자 뒤르케임의 유산이 분명하며 일부 사민주의 이론가들은 분명히 뒤르케임과 유사하다.

넷째, ‘이해’의 개념이 재정의됐다. 연대는 ‘자기이해’와 ‘통찰'에 기반한다. 이기적인 자기 이해가 아니라 계몽된 자기 이해를 말한다. 이러한 이해와 통찰은 아프고, 실업이고, 장애이거나 노령일 때 모든 사람에게 공통의 준비된 것을 제공하는 것이 모두에게 최상이라는 것을 알고 지지한다. 또한 자기 이해는 사회적 약자와 빈곤한 이들에 대한 공감과 연민, 자원을 공유하고 개인의 추구를 제한하려는 의지와 자기 구속 등을 만들어낸다. 전체로서의 사회와의 동일시와 자기 구속은 개인들이 사회통합을 해치는 방식으로 자기 이해를 추구하지 못하도록 한다. 최종적으로, 공동체와 집단적 합의가 사민주의 연대의 핵심 요소이다. 연대는 공통의 프로젝트를 통해 힘을 갖는 ‘함께함’과 ‘협력’을 의미한다. 개인의 행위로는 충분치 않기 때문에 집단적 프로젝트는 필수적이다.

다섯째, 연대의 목적이 재정의됐다. 고전적 개념의 연대의 목적은 투쟁을 강화하고 개혁을 실현하는 것이었다. 투쟁의 무기로서의 전통적 연대 사상은 일반적으로 20세기 후반부에 사민주의 강령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여전히 일부 당의 강령에서 되풀이되고 있다. 오늘날 이것은 현대적 개념의 성격으로 희미해졌다. 대신해서 보편적인 공동체 정서를 발전시킬 필요성과 사회통합의 필요성이 강조된다.

여섯째, 일부 차이점이 있기는 하지만 현대 사민주의 연대 개념은 고전 개념보다 포괄적이다. 일반적으로 연대의 한계는 표현되지 않는다. 오늘날 연대 개념은 인구의 대다수, 사회적 약자, 주변부화되거나 가난한 사람들(자국에서나 제3세계 빈국에서나)을 포함한다. 강령 작성자들이 남성이 여성과의 연대를 행사해야 한다는 요구를 피하는 것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성(gender) 문제는 이제 연대라는 용어로 흔히 표현된다. 연대는 또한 세대간 관계와 환경 문제를 포함해야 한다. 최근에 일부 강령에서는 인종적 다수자와 소수자간의 관계를 또한 연대에 포함시키고 있다.

마지막으로 고전적 및 현대적 연대 개념에서 집단 지향성은 둘 다 약화됐다. 20세기 후반부에, 집단과 개인 간의 관계에 대한 관심이 당 강령에서 출현하기 시작했다. 오늘날 그들은 개인의 자유와 사회에서의 집단적 연대 간의 딜레마를 수용한다.

따라서 사민주의 연대의 개념은 더 이상 생산수단의 사적소유에 대한 투쟁, 부의 급진적 재분배 또는 사회 상위 부문의 특권에 대한 위협과 결합되지 않는다. 사민주의 연대 개념의 핵심적 구성요소를 꼽아본다면, ‘사회문제에 대한 집단적 해결을 추구하는 것’, ‘사회복지에 대해 국가에 책임을 주는 것’, ‘가장 결핍되고 차별받고 억압받는 이들에 대해 공감하는 태도를 갖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실제 정치에서 의미하는 바는 아주 명확하지 않다. 다음에는 사민주의 연대 개념과 경쟁하는 또다른 연대 개념과 현대 사회에서의 연대의 ‘위기’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류은숙] <2007년 7월 18일 인권오름 제63호>

<편집인 주>


‘연대’는 인권운동의 주요한 실천양식이자 권리로서 주창되고 있다. 누구나 ‘연대’가 중요하다고 부르짖는다. 그런데 그 연대는 무엇을 목적으로 누구와 함께 하는 것이며 어떤 정책과 제도로 구체화되는 것인가는 모호하다. 자유, 평등, 연대는 어떻게 조화되는 것인가에 대한 논의도 마찬가지다. 개인주의의 증대, 연대를 보장할 수 있는 제도의 결여 속에서 심화되는 경제의 지구화, 빈부의 극심한 격차 등으로 연대에 대한 숙고와 실천이 더욱 요구되는 때이다.

이런 숙고와 실천에 참고가 될까 하여 유럽에서의 연대사상의 역사를 다룬 책의 내용을 3차례에 걸쳐 요약 소개한다. 필자는 연대의 기초가 되는 것은 무엇이며, 무엇을 목적으로 하고, 어디까지를 연대의 대상으로 포괄하며, 개인의 자유와 연대와의 충돌을 어느 정도 고려하는지에 따라 다양한 연대 사상을 분석하고 있다.

(출처: Steinar Stjernø, Solidarity in Europe: The History of an Idea, Cambridge, 2004)


< 글 싣는 차례>

(1) '연대'의 세 가지 전통

(2) 서유럽 정치에서의 연대 사상

(3) '연대'의 현재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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