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자 : 2011. 5. 13

작성자 : 배여진

이글은 격월간 <사람>에도 실렸습니다.


퉁명스러움과 사회적 정의(류은숙, 인권연구소 '창' 활동가)

엄마나 주변 사람들이 나에게 가진 불만이야 한두 가지가 아니겠지만, 그중에 제일은 말버릇이야. 내 말투는 주변에서 다 인정하는 퉁명스러움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지. 엄마는 뭘 물어봐도 뚱한 나의 대꾸에 “막내는 전화하면 이런 일 저런 일 상냥하게 얘기하는데, 넌 도대체 왜 그러냐?”면서 “딸이 너 같이 생겨 먹었으면 무슨 재미로 딸 키우겠냐”고 한숨짓곤 하지. 그럴 때 나는 “엄마 닮아서 그렇지”하곤 또 입에 빗장을 치지. 사실 엄마의 퉁명스런 말투도 장난이 아니어서 “여자가 도무지 애교라곤 없어”가 아빠가 평생 입에 달고 사는 불만사항인 걸.


나는 인권활동하면서 어쩌다 정치인들을 만날 때가 있어. 무슨 법을 만들지 말라거나 만들라는 요구사항을 전달하기 위해서야. 한 번은 어느 정당 정책위원장을 만났는데, 면담 끝나고 참석자들끼리 인사하는데 “제 정치인생 30년에 당신처럼 무서운 분은 처음 만납니다. 여자 분이신데 좀 부드럽게 하시죠”가 그 사람이 내게 건넨 말이었어. 얼마 후 그 사람이 성추행 사건으로 국회의원을 관두게 됐는데, 난 그 기사를 보고 “너나 잘하세요.”라고 읊조렸지.


얼마 전에는 내 말투 때문에 버스에서 ‘패륜녀’가 됐어. 아빠는 늘 내게 상냥하게 전화하는데 난 늘 “왜? 그래서? 끊어!”라는 세 마디 밖에 안하잖아. 어렸을 때부터 난 공주고 아빠는 거의 하인 같은 분위기로 말을 주고받았기에 아빠와 통화할 때 내 말투는 남들이 납득 못할 천하 방자함이지. 게다가 아빠가 돈 문제로 집안을 시끄럽게 만든 직후 걸려온 전화인지라 난 아빠 전화를 이런 식으로 받았어.


“왜 전화했어? 내가 아빠 전화 안 받겠다고 했을 텐데.” 그러자 아빠는 “딸 목소리 듣고 싶어서 전화했지. 왜 집에 안 오냐? 아빠는 딸 보고 싶은데.” 나는 쏘아 붙였지. “아빠 꼴 보기 싫어 안 가”, 아빠는 계속 사정했지. “아빠가 이제 속 안 썩힐 테니까 집에 와라.” “몰라. 끊어!” 이렇게 전화를 끊고 버스에서 내리려는데 뒤통수가 문득 따가운 거야. 둘러보니 버스 안의 사람들 모두, 특히 나보다 훨씬 젊은 애들이 혀를 끌끌 차면서 “무슨 아빠 전화를 저따위로 받냐?”고 수군거리고들 있는 거야. 아차, 하고 버스에서 빨리 뛰어내려 버렸지.


이 일을 후배들한테 얘기 했더니 “배운 녀자에서 패륜녀가 됐네”라고 한바탕 웃어 넘겼어. ‘배운 녀자’는 내가 얼마 전 신문에 쓴 칼럼 제목이야. 평소 내 말버릇을 아는 후배들은 더한 일 생기기 전에 말투 바꾸라고 조언했어. 자기들도 나랑 통화할 때마다 화난 것 같아서 겁난다고 말이야. ‘왜? 알았어. 끊어’ 이상의 말을 들어본 적 없는 그들이니 나도 뭐라 반박할 도리가 없었어.


퉁명스런 말투 뿐 아니라 나는 묻는 말에 대꾸하는 걸 정말 귀찮아해. 그래서 눈만 깜박거리거나 고개만 까닥거린 것으로 내가 대답했다고 혼자 착각하는 경우가 많아. 중고교 시절엔 그 때문에 선생님들한테 머리를 많이 쥐어 박혔어. 게다가 인사 하는 걸 정말 싫어해. 직접 맞닥뜨리는 경우가 아니면 뒷줄에 대충 서 있다가 뒤로 쓱 빠져버리고, 맞닥뜨려 인사해야 할 때는 쭈뼛쭈뼛이야. 이런 나를 걱정하는 사람들은 다들 이런 말을 해. ‘우리들이야 겪어봐서 언니 속이 안 그런 줄 알지만, 처음 본 사람들이 그걸 어떻게 알아? 좀 고쳐봐’라고.


나도 사실 걱정이야. 나와 친한 사람들, 혹은 나보다 잘난 사람들한테는 내 태도가 그냥 ‘저 인간 되게 뚱하네’ 정도로 받아들여져도 상관이 없어. 하지만 나보다 못한(것이 아니라 자칫 그렇게 느낄 수 있는) 처지의 사람들한테 무시하고 모욕한다는 느낌을 줄 수 있다는 게 겁나긴 해. 실제로 그런 일을 많이 겪으면서 반성도 많이 하고 말이야. 해마다 ‘친절해지자’를 새해 목표로 삼지만 ‘상냥함’은 접근불가 체질인지라 자주 속상해할 뿐 잘 고쳐지지는 않아.


애교 덩어리 아빠와 뚱한 엄마, 더 뚱한 딸, 쌀쌀맞은 딸, ‘욱’하는 아들과 상냥한 딸의 조합이 우리 집인 것처럼 이 세상에는 온갖 성격의 사람들이 뒤섞여 살아가고 있어. 저마다의 뚱함과 쾌활함을 토해내면서 말이야. 그리고 그런 성질에 대해 겪으면서 이해하고 때론 부딪치는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제 성질의 장단점을 되새기며 살아가고 있어.


그런데 나처럼 사람마다 제 성질이란 게 있는데 그걸 죽이고 일을 해야 할 땐 사정이 많이 달라져.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보수를 받으며 하는 일은 제 성질을 죽일 걸 요구하잖아. 그냥 묵묵히 참고 일만 하면 되는 수준이 아니라 늘 상냥하고 친절해야 하는 것 자체를 중요한 업무로 취급하는 게 요즘 세상이야.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에 가면 늘 상냥하잖아. 전화로 뭘 문의하면 처음부터 끝까지 전화기 속에서 미소가 튀어나오는 것 같이 응대하는 사람들, 내가 냉정한 거절을 표해도 ‘감사합니다’로 늘 답하는 사람들의 속은 어떨까?


엄마 자식 중 하나가 간호사잖아. 걔가 병원에서 무례하고 포악한 사람을 만났을 때 제 성질대로 쌀쌀맞게 대할 수가 있겠어? 걔는 내가 보내는 문자에 ‘응’이라는 한 단어 말고는 한 마디도 보태본 적이 없는 얘야. 그런데 일을 할 때는 늘 미소를 짓고 늘 갖은 말로 설명을 하고 들어야 하잖아. 대형마트, 백화점, 비행기, 식당, 은행, 전화 등에서 우리는 늘 그런 일하는 사람들과 마주쳐. 그들은 늘 웃어야 해. 아무리 개차반 같은 인간을 겪을지라도 말이야. 설령 부당한 일을 겪을지라도 ‘웃으면서’ 항의해야 해. 아니 항의가 아니라 ‘제가 뭘 몰라서 고객님께 불편을 끼쳤나 봅니다. 뭘 더 도와드릴까요?’라고 다 자신이 덮어써야 해.


내가 가던 단골술집 여주인한테 들은 얘긴데 근처 은행 직원들이 자주 온대. 술 마시면서 주로 하는 얘기가 자신들이 겪은 소위 ‘고객’들 얘기래. 하루는 어느 고객이 와서 뭔 심사가 뒤틀렸는지 동전 주머니를 바닥에 집어던지고 욕을 해댔대. 다들 일하다 말고 그걸 주워서 그 사람한테 되돌려줬는데 욕을 멈추지 않더래. 그런데 그 사람이 뒤돌아나가는데 한 직원이 “고객님, 여기 500원 동전 하나 더 흘리셨습니다. 저희 은행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했다는 거야. 그런 순간에도 ‘감사합니다’라고 해야 하는 게 업무규칙이라며 그 은행원들은 씁쓸하게 술잔을 기울였대.


그런데 내 주변의 사람이 그런 일을 겪었다고 하면 ‘어쩜 그럴 수가 있어.’라고 화를 내지만, 내가 손님인 경우에는 그런 감정이 잘 안 생겨. “불의는 참아도 불이익은 참을 수 없다”는 게 요즘 사람들 사이 유행어야. 이 말을 약간 바꾸면 ‘불의는 참아도 불친절은 참을 수 없다’는 거야. 조금이라도 불쾌한 느낌을 받으면, ‘야, 딴 데 가자. 내가 내 돈 내고 사먹는데 왜 이런 대접을 받아야 돼?’라고 자리를 박차는 경우가 많아. 이미 물도 따라 마셨고 화장실도 한 번 다녀왔어도 말이야. 약간 불친절한 것 같아도 그냥 있자는 의견은 인기가 없고, ‘불친절은 참을 수 없다’는 대세에 따를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아.


늘 친절한 곳은 규격화된 미소와 인사를 제공할 수 있는 규모 있는 곳이고, 규격화되지 않은 응대를 하는 곳은 동네의 고만고만한 곳일 때가 많아. 그런 규격화된 친절을 제공할 수 있는 기업들은 친절에 점수를 매겨서 관리하니까 일하는 내내 노동자의 몸 뿐 아니라 감정도 쥐어짜고 있는 거야.


규격화되는 것은 친절과 공손함만은 아니야. 반대로 고압적이고 위협적인 태도를 늘 유지해야 하는 일도 있어. 내 전화 응대에 불만을 쏟는 사람들에게 애써 변명을 할 때면 “빚쟁이 전화에 하도 시달리며 자라서 전화가 공포스러워 그래.”라고 답할 때가 있어. 그리고 그건 사실이야. “너 몇 살이냐, 니 부모 집에 있냐? 돈 안 갚으면 큰일 날 줄 알라고 전해라”는 전화는 정말 무서웠어. 또 출입국 관리소의 직원들은 늘 턱을 바싹 잡아당기고 있지. 식당에서 알바하다가 불심검문 나온 출입국 관리소 직원들과 맞닥뜨려 봤는데 대한민국 주민증이 있는 나였지만 정말 무섭더라구. 주민증 없는 이주노동자가 그런 일을 겪으면 정말 심장이 오그라들 것 같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어. 또 우리를 집에서 내쫓으려 왔던 집달리 아저씨는 얼마나 무서웠는데. 우릴 길거리로 다 내몰고 난 뒤에야 자기도 엄마 아빠와 같은 교인이라며 어깨를 떨어뜨리고 돌아갔지. 직업상 그 아저씨는 무서움을 유지했지만 업무를 다 한 후에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인간이었어.


이렇게 감정을 쥐어짜며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에겐 많은 고통이 있을 거야. 언론 보도를 보면 위장병, 우울증 등 각종 스트레스성 질환에 시달리고 있대. 소위 화병에 걸리는 거지. 이처럼 한 사람 한 사람이 겪는 고통도 큰 문제지만, 감정을 쥐어 짜이다 보니 편한 상대, 만만한 상대에 대해 함부로 감정을 발산하는 일에 대한 감각이 전 사회적으로 마비되는 것도 큰일이야.


가령 똑같이 일터에서 쥐어 짜이더라도 집에 돌아왔을 때 편안함을 만들어주는 것은 여성이고 엄마여야 한다는 생각들을 하지. 밖에서 시달리고 들어왔으니 집에서는 무조건 편안함을 줘야 한다는 생각도 마찬가지야. 돈을 주고 사는 물건 속에 사람의 친절도 포함돼 있다고 여기기에 그 일에 종사하는 사람이 나와 같은 문제를 겪는 동료라는 감각 스위치는 꺼져버려. 돈을 쓰는 곳에서는 늘 당연하게 친절함을 요구하고 나보다 약한 사람들에게 늘 사근사근하게 굴 것을 요구하게 돼. 나의 노력과 관심이 필요한 관계는 ‘피곤’한 게 돼버리고 만만하게 묻어갈 수 있는 덜 피곤한 관계만 쫓게 돼. 덜 피곤한 관계는 나와 어울릴 만한 사람이거나 만만한 상대와 맺는 관계이고, 피곤한 관계는 나의 편안함을 위협하고 나에게 각성과 노력을 요구하는 그런 상대와 맺는 관계일 거야.


내가 지녀왔던 생각이나 습관을 거스르는 사람들은 불편함을 넘어 불쾌감을 일으킬 때가 많고, 그럴 때 나의 기준이 되는 생각이나 습관이 어떤지를 따져보기 보다는 그 사람들이 위반한 선을 문제 삼게 돼. 그 위반선을 누가 정했는지는 잘 따져보지 않고 말이야. 전 사회적으로 살기가 힘들고 감정 다스리기에 시달릴수록 사람 사이 관계 맺기에 대한 관심과 열정도 지쳐가고 있어.
인권의 기본은 타인과 관계 맺기이기 때문에 이런 현상은 큰 고민이야. 사람 관계를 돈으로 살 수 있는 곳은 늘어가는 반면, 그 관계를 올곧게 만들어갈 수 있는 장은 찾아보기 힘드니까 말이야. 인권에서 말하는 사람 사이 관계 맺기의 기본은 무엇보다도 서로를 평등하게 바라보는 거야. 나는 터뜨리고 요구할 수 있지만 상대는 참고 견딜 뿐 아니라 사근사근해야 한다는 관계는 도무지 평등하다고 할 수가 없어.


식당알바를 하다보면 조선족이나 중국에서 온 분들과 같이 일하게 될 때가 있어. 그럴 때 나는 한국인 직원들과 그 분들 사이를 유심히 살펴보게 돼. 한국인 아줌마들은 먹을 것을 줄 때는 참 인심이 후덕해. 그분들에게 제일 먼저 챙겨주거나 더 많이 주거나 해. 그런데 문제는 지시 관계가 어그러질 때야. 한국인의 명령에 따르지 않거나 약간 다른 의견을 표할라치면 먹을 것 줄 때의 후함이 당장 “지 주제도 모르는 것들”이란 냉대로 바뀌어. 내가 너그럽게 봐줄 수 있는 우월한 위치에 있다는 생각에서 인심이 나오고, 그런 인심은 미덕으로 받아들여지지만, “다 같이 일하는 사람인데 위아래가 어디 있소.” 또는 “이렇게 하는 게 더 나을 것 같은데”라고 하면 포용할 수 없는 방자함이 돼버려.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을 아줌마 한 사람 한 사람의 성격 탓으로 치자면 각자 성격만 뜯어고치면 되겠지만 사정은 그렇지 않아. 똑같이 힘들게 일하는 형편에서 그런 행세를 한국인 아줌마들만 할 수 있는 것은 불평등한 경제관계, 출입국에 따른 신분지위의 불안함, 한국이 이주자를 부릴만한 지위가 됐다는 자만심 등 여러 가지 문제가 작동하고 있어. 그런데 아줌마들 사이의 갈등을 개인의 태도로만 여겨버리고 고칠 것을 설교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앞서 정치인에게 했던 것처럼 ‘너나 잘하세요’라고 말하고 싶어져. 같이 먹는 것은 허용되지만 의견을 제기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 것, 이 둘 사이의 차이는 큰 거야. 의견을 제기할 수 있는 건 우리 한국인이고 너희는 인심 베풂을 받을 뿐 말할 자격은 없다고 하는 건 평등한 관계를 부정하는 것이니까. 사람 사이의 관계를 올곧게 생각한다는 건 우리를 지배하는 불평등과 갈등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따져 묻는 것이야. 내가 베푸는 인심이 아니라 고통 받는 타인에게 필요한 옳은 일이 무엇일까, 우리가 서로 밀어내지 말고 같이 기대어 비빌 수 있는 언덕은 어떤 것일까를 궁리하는 거야. 이런 궁리를 하려면 대충 묶어두는 것이 아니라 찢고 터뜨리는 일이 필요할 때가 있어.


개인이 화내야 할 때 화내지 못하면 화병이 나는 것처럼 불의에 대해 분통 터뜨림이 없는 사회는 문제를 곪게 해. 예를 들어 엄마가 영화에서 많이 본 것처럼 미국에서는 흑인들이 오랫동안 노예로 부림을 당했어. 흑인들은 백인과 평등한 인간으로 살기 위해 무엇보다도 먼저 고개를 치켜들어야 했어. “나는 하느님을 제외하고는 이제 그 누구 앞에서도 머리를 조아리지 않겠다.”라고 한 흑인 청소부가 있었대. 이 흑인은 자신의 삶을 ‘피부색’만으로 판단하는 사회질서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어. 이 흑인 청소부와 같은 사람들 때문에 봉합돼 있던 미국 사회의 문제가 터뜨려졌어. 착한 흑인, 고분고분한 흑인에게는 친절한 백인 주인이 대드는 흑인은 당장 나쁜 흑인으로 여기고 친절을 폭력으로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어.


이런 경우는 백인과 흑인 관계만이 아니라 우리 생활 속에도 많아. ‘여자니까’, ‘아랫사람이니까’, ‘외국인이니까’, ‘장애인이니까’하는 식으로 경계선을 긋고 그 사람의 모든 행동이 그로 인해 제약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게 질서인 양 대접받아. 이런 질서를 깨려면 앞서 말한 흑인 청소부 같은 터뜨림이 필요해. 그러니까 우리에게는 봐주고 보듬는 태도만이 아니라 그 이상의 것이 필요해. 감정의 쥐어짜기를 당하는 사람들에게 ‘우리 서로에게 좀 더 친절해지자’는 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경계선은 손대지 말고 그냥 놔둔 채 잘 살아보자’고 하는 것이야. 왜 유독 어떤 사람들이 친절과 고분고분함을 강요당하는지, 유독 어떤 직종의 어떤 사람들에게 그런 요구가 집중되는지를 따져 물어야 돼.


사회적 약자를 보듬어 안자는 말을 하는 사람들은 주변에 아주 많아. 그런데 사회적 약자를 관상용 식물처럼 저만치 떨어뜨려놓고, 내가 움직여 다가갈 때만 닿을 수 있는 위치에 못박아두고 생각할 때가 많은 것 같아. 사람들이 실제 겪는 고통은 내가 다가가고 싶을 때만 다가가고 피곤하면 다가가지 않으면 되는 문제가 아니야. 사람들의 고통은 일상의 맞닥뜨림 속에서 늘 벌어지고 있는 문제야. 그러니까 가상의 고통 받는 약자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실제현실 속에서 감각의 안테나를 치켜세우는 일, 돈 때문에 강요받고 요구하는 친절이 아닌 우리 스스로 결정하고 우리 식대로 만드는 친절 노력이 필요한 것 같아.


어떻게 하면 모욕을 당하고 곤경에 처한 사람들 속에 더 깊이 끌려들어갈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일은 마음과 몸의 힘든 노동을 요구해. 돌아보고 곱씹고 반성하고 또 공부하고 만나고 어울리는 등 갖은 노력을 요구하는 일이야. 그런 힘든 노동 없이 사람사이 관계가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감나무 아래서 감 떨어지기 바라는 것이겠지. 이게 내 퉁명스런 말투 때문에 고민하게 된 사회적 정의야. 아울러 엄마한테나 주변사람한테나 좀 더 ‘친절한 은숙씨’가 되도록 노력할게. 다시는 버스에서 ‘패륜녀’로 찍히는 일은 없도록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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