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오름 제 79 호  [기사입력] 2007년 11월 14일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서구 기독교 문명에서 탄생한 근대의 인권개념은 모든 인간의 평등을 핵심으로 한다. 흔히 알려진 사회계약 사상과 달리 신학적 인권개념은 절대자인 조물주로부터 인권개념을 끌어낸다. 절대자 앞에서 모든 인간은 그 피조물이다. 피조물인 인간은 조물주의 눈에는 똑같은 존재니 평등할 수밖에 없다. 인간은 조물주의 형상에 따라 창조되었기에 그 형상을 지키고 본받기 위해 모든 인간은 존엄성을 유지해야 한다. 따라서 인권에 대한 침해는 조물주의 권능에 대한 침해이다. 그래서 인권은 절대불가침이고 양도불가능한 것이다. 기독교적 세계관에 동의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많은 사람들이 ‘천부인권’이란 말을 즐겨 쓰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인권이 지구화되고 문화와 국경을 초월하는 것으로 간주되는 오늘날에는 이런 방식으로 인권을 얘기하지 않을 뿐더러 다양한 인권론과 인권비판론이 존재하지만 모든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존중이 인권의 핵심이라는 것에는 이의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선 많은 사람들이 존엄하다고 여겨지지 못하고 온갖 모욕과 배제와 괴롭힘을 당한다. 그래서 가장 초보적인 조치를 취하는 것이 그런 행위들을 금지하는 법을 만드는 것이다. 법을 만든다고 해도 사람들은 뒤편에서 얼마든지 차별적 행위를 할 수 있고, 사람들 속에 깊이 뿌리박힌 편견과 혐오 같은 것을 일소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법을 만드는 것은 그야말로 초보 중의 초보적 조치에 해당한다. 법 말고도 해야 할 일들은 엄청 많다.

그런데 이런 법을 만드는 것 자체가 차별적 공격을 받고 있다. 차별금지법 제정 과정에서 ‘성적지향, 학력 및 병력, 출신국가, 언어, 범죄전력, 가족형태 및 가족상황’이 차별금지의 근거규정에서 무더기로 잘려나간 것이다. 어떤 사람은 “--등을 이유로 개인이나 집단을 분리·구별·제한·배제하거나 불리하게 대우하는 행위”란 문구를 들어 “--등”이 있으니까 이번에 빠진 차별의 근거들도 얼마든지 차별금지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한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예시되는 근거 목록에 들어가느냐 안들어가느냐에 따른 사회적 인식과 사법적 대응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등을 이유로”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상황과 처지를 드러내고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것 자체가 아주 어렵기 때문이다. 하물며 이들을 노골적으로 배제하고 법이 만들어지는 상황에서 “--등”에 만족하라는 건 존엄성을 가진 인간에 대한 모욕이다.

오늘 읽어볼 인권문헌은 전세계의 내로라하는 국제인권법 전문가들이 2006년 인도네시아 요그야카르타에 모여 채택한 원칙이다. 초대 유엔인권고등판무관을 지낸 전 아일랜드 대통령 메리 로빈슨을 비롯하여 유엔인권조약기구들의 위원, 유엔독립전문가, 판사, 민간단체 등이 참여했다. 이들은 2007년 3월 26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이 원칙을 발표하면서 유엔인권이사회와 유엔인권고등판무관 등에게 이 원칙을 보증하고 유엔 인권 활동의 모든 영역에 흡수할 것을 촉구했다.

이 원칙을 만들 필요성은 전세계에서 목격되고 보고돼온 성적 소수자들에 대한 심각한 인권침해에서 제기됐다. 예를 들어 성적지향과 성정체성을 이유로 한 비사법적 살인, 고문과 학대, 성폭력 강간, 프라이버시 침해, 자의적인 구금, 고용과 교육 기회의 부정 등이 전세계 어디서나 벌어지고 있다. 이에 현재 존재하는 국제인권법의 내용을 망라하여 성적 지향과 성 정체성과 관련된 문제에 적용하기 위한 목적으로 작성됐고, 각 원칙마다 국가들에 대한 상세한 권고사항이 첨부돼 있다. 35쪽에 달하는 분량이기 때문에 일부 내용만 요약해 소개한다. [류은숙] <2007년 11월 14일 인권오름 제79호>

요그야카르타 원칙(요약)

우리, 국제인권법과 성적 지향과 성 정체성에 관한 국제적 전문가들은

전문

모든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나 존엄성과 권리에 있어 평등하며, 모든 사람은 인종‧피부색‧성‧언어‧종교‧정치적 또는 기타의 의견‧민족적 또는 사회적 출신‧재산‧출생 또는 기타의 지위 등 어떤 종류의 구별도 없이 인권을 향유할 권리가 있다는 점을 상기하며,

폭력, 괴롭힘, 차별, 배제, 낙인, 편견이 성적 지향 또는 성정체성 때문에 세계의 모든 지역에서 사람들을 겨냥하며, 이러한 경험이 성, 인종, 종교, 장애, 건강상태 및 경제적 지위를 포함한 근거들에 의한 차별로 악화되며, 그러한 폭력, 괴롭힘, 차별, 배제, 낙인과 편견이 그런 침해를 받는 사람들의 존엄성을 손상하여 자존감과 사회에 대한 소속감을 약화시킬 수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거나 억압하며 공포스럽고 눈에 보이지 않는 삶을 살게 한다는 점에 우려하며,

역사적으로 사람들은 자신들이 레즈비언, 게이 또는 양성애자이거나 그렇게 인식되기 때문에, 같은 성의 사람과의 동의한 성적 행위 때문에, 또는 트랜스색슈얼, 트랜스젠더, 인터섹스이거나 그렇게 인식되기 때문에, 또는 성적 지향이나 성 정체성에 의해 특정 사회에서 식별되는 사회집단에 속하기 때문에 이러한 인권침해를 경험해왔다는 것을 인식하며,

‘성적 지향’은 심오한 감정, 애정 및 성적 매력에 대한 각 사람의 능력 그리고 다른 성 또는 같은 성 또는 하나의 성 이상의 개인과의 친밀한 성적인 관계를 언급하는 것으로 이해하며,

‘성 정체성’은 내적으로 개인적으로 각 사람이 깊이 느끼는 성(gender)경험으로, 신체에 대한 개인의 인식(자유롭게 선택된다면 의료적, 외과적 또는 기타 수단에 의해 신체적 외양이나 기능을 변경하는 것과 관련될 수 있다)과 옷, 말하기, 독특한 특징을 비롯하여 기타의 성(gender) 표현이 출생에서 부여된 성(sex)과 일치하거나 일치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을 언급하는 것으로 이해하며,

국제인권법은 성적 지향이나 성정체성과 무관하게 모든 사람이 모든 인권을 완전히 향유할 권한이 있다는 점을 확인하며, 기존 인권들의 적용은 다양한 성적 지향과 성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의 특수한 상황과 경험을 고려해야만 하며, 아동과 관련한 모든 행동은 아동 최상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점에서 개인적 견해를 형성할 수 있는 아동은 그러한 견해를 자유롭게 표현할 권리를 가지며 그러한 견해에 대해서는 아동의 연령과 성숙도에 따라 정당한 중요성이 부여돼야 한다는 점에 주의하며,

국제인권법은 시민적‧문화적‧경제적‧정치적 및 사회적인 모든 인권의 완전한 향유에 관하여 차별에 대한 절대적 금지를 규정하며, 성적 권리‧성적 지향 및 성 정체성에 대한 존중은 남녀간의 평등 실현에 필수요소이며, 국가들은 하나의 성의 열등성이나 우월성 또는 남녀의 정형화된 역할에 대한 편견과 관습을 철폐하려는 조치를 취해야만 하며, 국제사회는 강제, 차별, 폭력이 없는 상태에서 성적 및 생식기의 건강을 포함하여 자신의 성(sexuality)과 관련된 문제를 자유롭게 책임지는 결정을 할 개인의 권리를 인정해왔다는 점에 주목하며,

다양한 성적 지향과 성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의 삶과 경험에 적용할 수 있는 것으로 국제인권법을 체계적으로 명료화하는 것에 중요한 가치가 있다는 점을 인정하며,

이런 명료화가 국제인권법의 현 상태에 기반한 것이어야 하며, 국제법의 발전을 고려하고 언제나 다양한 지역과 국가들에서 다양한 성적 지향과 성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의 특수한 삶과 경험에 대한 국제법의 적용을 고려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수정을 요할 것이라는 점을 인정하며 이 선언을 채택한다.

원칙 1. 인권의 보편적 향유에 대한 권리
모든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나 존엄성과 권리에 있어 평등하다. 모든 성적 지향과 성정체성의 인간은 모든 인간의 완전한 향유에 대한 권리를 갖는다.

원칙 2. 평등과 비차별에 대한 권리
모든 사람은 성적 지향 또는 성 정체성에 근거한 차별 없이 모든 인권을 향유할 권리가 있다. …차별은 성적 지향 또는 성정체성에 근거한 모든 구별, 배제, 제한 또는 선호를 포함하며, 이는 법앞에 평등 또는 법의 평등한 보호, 또는 모든 인권과 기본적 자유를 동등한 기반위에서 향유 또는 행사하는 것을 무효화하거나 손상하는 목적이나 효력을 갖는 것이다. 성적 지향 또는 성정체성에 근거한 차별은 성, 인종, 연령, 종교, 장애, 건강 및 경제적 지위를 비롯한 여타의 차별과 흔히 혼합될 수 있다.

국가는 다음을 해야 한다:
A. 아직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개정과 해석을 수단으로 하는 것을 포함하여, 성적지향과 성정체성에 근거한 평등과 비차별의 원칙을 국내 헌법 또는 기타 적절한 법률에 구체적으로 표현하라. 그리고 이들 원칙의 효과적인 실현을 보장하라.
B. 동의 연령 이상의 같은 성별의 사람들간의 동의된 성적 활동을 금지하거나 사실상 금지하기 위해 사용되는 형법 및 기타 법률 규정을 개폐하고 동일한 성과 다른 성 둘 다의 성적 활동에 적용하는 동등한 동의 연령을 보장하라.
C. 공적 및 사적 영역에서 성적 지향과 성정체성에 근거한 차별을 금지하고 근절하기 위한 적절한 입법 및 기타의 조치를 채택하라.

원칙 3. 법 앞에 인정받을 권리
모든 사람은 어디에서나 법앞에 인격으로 인정될 권리를 갖는다. …어느 누구도 성적 지향 또는 성정체성을 숨기거나 억압하거나 부인하도록 압력을 받아서는 안된다.

원칙 4. 생명에 대한 권리
원칙 5. 인격의 안전에 대한 권리
원칙 6. 프라이버시에 대한 권리
…프라이버시권은 자신의 성적 지향 또는 성정체성과 관련된 정보 뿐만 아니라 자신의 신체 및 동의에 의한 타인과의 성적 및 기타 관계 둘다에 관한 결정과 선택에 관한 정보를 드러내거나 드러내지 않을 선택을 포함한다.

원칙 7. 자유에 대한 자의적 박탈로부터 자유로울 권리
원칙 8. 공정한 재판에 대한 권리
원칙 9. 구금된 동안 인간적인 처우에 대한 권리
원칙 10. 고문, 잔인하고 비인간적이거나 모욕적인 처우 또는 처벌로부터 자유로울 권리
원칙 11. 모든 형태의 착취, 매매, 인신매매로부터 보호받을 권리
원칙 12. 노동에 대한 권리
원칙 13. 사회보장 및 기타의 사회적 보호 조치에 대한 권리
원칙 14. 적절한 생활 수준에 대한 권리
원칙 15. 적절한 주거에 대한 권리
원칙 16. 교육에 대한 권리
모든 사람은 자신의 성적 지향과 성정체성을 근거로 차별하지 않으며 자신의 성적 지향과 성정체성을 고려하는 교육에 대한 권리를 갖는다.
원칙 17. 도달가능한 최상의 건강수준에 대한 권리
원칙 18. 의료적 침해로부터 보호
…개인의 성적 지향과 성정체성은 본질적으로 의료적 병이 아니며 의료적 병으로 다뤄지거나 치료되거나 억제돼서는 안된다.…
원칙 19. 의견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권리
원칙 20. 평화로운 집회와 결사의 자유에 대한 권리
원칙 21. 사상, 양심, 종교의 자유에 대한 권리
원칙 22. 이동의 자유에 대한 권리
원칙 23. 망명처를 구할 권리
원칙 24. 가정을 구성할 권리
…가정에는 다양한 형태가 존재한다. 어떤 가정도 그 가족 구성원 누구의 성적 지향이나 성정체성에 근거해서 차별받아서는 안된다. …
원칙 25. 공적 생활에 참여할 권리
원칙 26. 문화생활에 참여할 권리
원칙 27. 인권을 증진할 권리
원칙 28. 효과적 구제와 보상에 대한 권리
원칙 29. 책임성
추가 권고 A-P.

(원문은 yogyakartaprinciples.org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인권오름 제 79 호  [기사입력] 2007년 11월 14일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인권오름 제 75 호  [기사입력] 2007년 10월 17일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어지러운 대권경쟁의 불꽃놀이 속에서 사회양극화와 비정규직의 신음소리가 불쏘시개로 동원되고 인용되는 틈새로 희미한 촛불 하나가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버마’, 공식적으로는 ‘미얀마’로 불리는 나라에서 오랜 폭력과 억압에 대한 저항이 터져나왔고 앞날에 대한 희망과 절망이 교차하고 있다.

버마는 1948년부터 내전 상태이고, 1962년부터 죽 군사통치하에 있다. 1988년 대규모 항쟁이 있었으나 군부는 수천명의 시위자를 학살하고 진압했다. 이후 체제를 정비하면서 1989년 군사정부는 국가의 공식이름을 버마에서 미얀마로 바꿨다. 유혈 진압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판에 대응하여 1990년 민주화세력과의 타협책으로 총선을 치뤘다. 군부는 대참패했고, 아웅산 수지가 이끄는 민족민주동맹(NLD)가 압승했으나 군부는 정권을 이양하지 않았다. 그리고 폭압은 계속됐다. 군부는 비사법적 처형, 약식처형, 고문, 강간, 강제이주, 강제노동, 토지와 재산의 몰수, 아동군인의 이용 등 광범위하고 체계적인 인권침해를 저질렀다. 즉 함부로 죽이고 뺏고 노예처럼 부리고 아이들까지 총알받이와 지뢰탐지기로 활용했다는 말이다. 최근의 시위는 그렇게 오래 강요된 고통과 침묵을 뚫고 터져 나온 것이다.

여기까지는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정작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이 건조한 사실 묘사에 담긴 정황을 살아있는 인간이 겪는 구체적 현실로 그려보는 일이다. 오늘 읽어볼 인권문헌은 이런 상황 속에서 아이들이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나를 보여준다. 이 글들은 강제로 고향을 등지고 살아가는 난민아동이 쓴 것이다. 타이-버마 국경지대에서 활동하는 타이의 인권단체 ‘국경없는 친구들’(Friends Without Borders)이 소개한 것으로, 국경지대의 카렌족 난민 마을 러퍼허 아이들이 그 주인공이다(버마에는 130여개에 이르는 소수민족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버마족이 다수족이고 카렌, 카레니, 샨, 몽족 등이 많이 알려져 있다).

전쟁과 자원 부족으로 난민 아동 중 열에 한 명 정도밖에 교육을 접할 기회가 없다고 한다. 움막에 불과한 초라한 학교지만 아이들은 이런 것을 배운다 한다.

아침에 선생님이 사회수학(social math) 수업을 시작하셨다.
“모래 한 더미에 또 모래 한 더미를 더하면 얼마가 되지?” “둘이요”
“맞아요. 그런데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요. 만약에 두 더미의 모래가 하나로 섞이면 어떻게 되죠? 마치 우리들이 하나로 뭉칠 수 있는 것처럼 말이죠.”

인권은 사람과 사람의 연대를 토대로 할 때만 추구될 가치가 있고 성취할 수 있는 가치라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 한 모퉁이에서 밝혀지는 작은 촛불 하나를 돌아보고, 민주화된 한국에 와서 난민 인정도 받지 못한 채 노동과 민주화투쟁을 병행하는 버마인들을 지지하고, 돈벌이를 위해 군부에 무기를 팔고 ‘건설적 개입’이라는 명분하에 자원착취에 나선 한국 및 아시아 주변 국가들에 대한 압력을 넣는 것이야말로 인권을 성취할 수 있는 유일하진 않더라도 필수적인 방도일 것이다. [류은숙] <2007년 10월 17일 인권오름 제75호>

쏘 투 루(Saw Tu Lu, 14살, 3학년)


나는 커리루키 마을에서 태어났다. 부모님은 농부셨다. 내겐 누나 한명과 형 세명이 있다. 난 막내다.


내가 어렸을 때, 버마 군부가 강제로 마을사람들을 짐꾼으로 데려갔다. 내 아버지는 너무 나이가 많으셔서 무거운 것을 감당할 수 없었고, 그래서 매를 맞으셨다. 아버지와 다른 마을 사람들은 도망치고 싶었지만, 고향과 땅을 떠날 수 없으셨다. 그때 우리는 견뎌야만 했다. 하지만 결국 버마 군인들은 우리에게 고향을 떠나도록 떠밀었다.


우리는 쏘코 마을로 도망쳤다. 그 마을에는 학교와 병원이 있었다. 나는 거기서 학교에 다녔다. 그후 얼마되지 않아, 아버지는 병이 드셨고 결국 우리를 남겨둔 채 돌아가셨다. 가끔씩 버마 군인들과 무장세력이 와서 우리 마을을 또다시 부쉈다. 우리는 강을 건너서 타이로 도망쳤다. 거기에는 타이 군인들이 있었고, 그 군인들은 우리를 난민 캠프로 데려갈 것이라고 했다. 어머니는 무서워서 그들의 자동차를 타지 않으려 했다. 어머니는 난민 캠프에서 사는 것을 무서워하셨다. 많은 마을 사람들도 그랬다. 그래서 우리는 강을 다시 되돌아 건너가기로 했고, 해방구에 있는 러퍼허 마을에 모였다.


러퍼허 마을에서는 학교와 병원을 다시 갖게 돼서 행복했다. 하지만 평화로운 시간은 너무 짧았다. 군인들이 쫓아왔고 우릴 공격했다. 또 한번 나는 마을 사람들과 함께 타이로 도망쳤다. 군인들이 가버리고 나서 우리는 돌아갔다. 하지만 거기서 나는 우리 집과 학교를 다시 볼 수 없었다. 그들이 모두 불태워버렸다.


우리는 남쪽으로 좀더 내려갔다. 나는 마을 사람들이 집과 학교와 병원을 다시 세울 때까지 나무 아래서 공부해야 했다. 우리는 그곳을 ‘새 러퍼허’라고 불렀다. 형들과 누나는 결혼해서 나갔다. 그래서 집에는 어머니와 나만 남았다. 어머니는 아주 나이가 많으셔서 나는 어머니가 음식 구하는 일을 도와야 했다.


어느날 나는 친구들과 함께 새와 쥐를 잡으러 갔다. 어둑해질 때, 우리는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내 친구들이 앞장섰고 나는 뒤따랐는데 나는 지뢰를 밟았다. 친구들이 마을로 달려가 도움을 청했다. 마을 사람들은 타이에 있는 병원으로 나를 보냈다. 내가 회복되자 학교에 다시 보냈다. 하지만 내 다리는 더 이상 똑같지 않았다.


모든 선생님들이 나를 도와주신다. 난 더 이상 부끄럽거나 나 자신을 초라하게 느끼지 않는다. 매일 밤, 숙제를 하고 나서 잠자기 전에, 나는 기도한다. 우리를 모든 해악에서 보호해달라고, 공포로부터 자유롭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나는 다른 아이들이 나처럼 피난 다니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나 무 재(Naw Mu Jae, 11살, 1학년)


나는 여기서 태어나지 않았다. 우리 고향은 평화롭지 않았다. 우리 마을은 불태워졌고 우리는 쫓겨났다. 그래서 여기 와있다. 내가 여기 왔을 때, 사람들이 쌀과 소금과 어묵과 옷을 가져다줬다. 나는 너무 좋았다.


여기 있으면서 나는 아주 행복하지만, 가끔은 아주 비참하기도 하다. 우리 학교와 마을은 연거푸 불태워 무너졌다. 나는 너무 무서웠고 정글에 숨었다. 나무 아래 땅바닥에서 모기와 벌레들에게 물리면서 자야했다. 공포와 걱정이 내 인생의 친구가 됐다.


이제 나는 학생이다. 아침에, 나는 학교친구들과 놀러간다. 학교가 문 닫으면 전혀 재밌는 일이 없을 거다. 집에만 있어야 하고 동생들을 돌봐야 한다. 나는 학교에 가고 싶다. 선생님은 친절하시고 나를 사랑해주신다. 나도 언젠가는 선생님이 돼서 우리 선생님이 아이들을 교육하는 일을 돕고 싶다.


쏘 무(Saw Mu, 13살, 3학년)


우리 학교는 버마 쪽 강둑에 있다. 나는 학생이다. 매일 나는 빨간색으로 된 카렌족 전통 셔츠를 입고 학교에 걸어간다.


때때로, 나는 학교 근처에 서서 타이 쪽을 바라본다. 타이 쪽에 있는 학교는 근사하게 서있다. 아름답다. 거기 학생들은 교복을 입고 있다. 때때로 나도 그 학교에 가고 싶다.


우리 학교건물은 대나무로 만들어졌고, 지붕은 마른 잎으로 돼있다. 땅바닥 말고는 우리가 공부하는데 쓸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때때로 버마 군인들을 피해 숨어야 하고, 그럴 때는 학교 대신에 나무 밑에서 공부한다.


나는 이따금 이런 일 때문에 부모님에게 불평했다. 그랬더니 어머니는 작고 볼품 없는 학교지만, 좋은 선생님이 계시고 좋은 교육을 받고 있다고 하셨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여기서 학교를 졸업하겠다고. 언젠가 나는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의사가 되고 싶다.


쏘 수 래 (Saw Su Le, 11살, 1학년)


빨간색 카렌족 셔츠를 입고, 미래를 향해 걸어간다. 선생님이 안 계시면 학생들은 배울 수 없다. 선생님이 안 계시면 우리는 읽는 것을 배울 수 없다. 하지만 지금은 학교 때문에 셈을 할 수 있고, 많은 것을 읽고 쓸 수 있다. 선생님은 우리를 밤낮으로 도와주신다. 전혀 불평하거나 소리를 치지 않으시고, 너무나 친절하게 너무나 인내심을 갖고 우리에게 많은 것을 주신다. 우리 카렌족 아이들은 부끄럽지 않다. 우리가 노력하면 언젠가는 우리도 우리 친구들을 선생님과 똑같은 방식으로 도울 것이다.

인권오름 제 75 호  [기사입력] 2007년 10월 17일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인권오름 제 71 호  [기사입력] 2007년 09월 11일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아주 오래전 영화 속의 한 대사가 떠오른다. “이루지 못할 꿈은 악몽이래요.” 몹쓸 꿈이 악몽이 아니라 이루지 못할 꿈이 악몽이라는 이 대사는 인생을 좀 안다고 하는 사람이 아닌 어린아이의 대사였다. 그런데 요즘 한국 사회에는 ‘악몽’을 꾸는 사람이 너무나 많은 것 같다.

어떤 악몽을 꾸고 있는가? 잘리지 않고 일하는 것, 일은 할대로 다하면서 반쪽 노동자로 취급받지 않는 것, 학교도 마치고 성인이 됐으니 취직해서 제 몸 건사하는 것, 장애를 가졌어도 학교 문턱 밟아보는 것, 미등록 이주노동자 합동단속의 사냥감이 될 것을 겁내지 않고 맘 놓고 일하는 것 등이다. 이런 기본적인 생존에 관계된 것들이 ‘이루지 못할 악몽’인 사회에서 어린아이가 꿈을 꿀 수 있을까?

인간답게 일하고, 인간답게 먹고 살고, 인간다운 교육을 받는 것에 해당하는 권리가 이루지 못할 꿈이라고 윽박지르는 사회에서 더 많이 파헤치고 더 많이 경쟁해서 더 잘살게 해주겠다는 미래의 청사진들만 언론을 장식하고 있다. 그런 청사진을 내놓으며 살림을 책임져보겠다는 분들이 꼭 알아야할 의무의 목록이 있다. 오늘 읽어볼 인권문헌은 인간답게 살 권리에 대해 국가가 어떤 의무를 지는가를 알려주는 지침이다.

인간답게 일하고, 일하지 못할 상황에서도 인간답게 살 수 있고, 인간다운 교육과 문화생활을 누릴 수 있는 권리를 담은 국제인권조약이 있는데, 그 이름이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사회권 규약)이다. 세계적으로 156개국이 이 규약을 지키겠다고 약속했고, 한국도 1990년에 이 규약을 비준하여 그런 약속에 동참했다.

그런데 많은 정부들이 그런 약속과 달리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의무를 피하려 했다. 먹고사는 문제에는 돈이 드니 어렵지 않느냐, 법원에서 재판을 통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인권 침해로 인정하기는 어렵다, 지금 노력하고 있으니 언젠가는 잘되지 않겠느냐 그러니 기다려보라는 식이다.

이렇게 사회권에 관련된 인권이 정부들로부터 외면받는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국제인권법에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이 모였다. 이들은 국가의 어떤 행위가 사회권 침해이며, 사회권 보장을 위해 국가가 어떤 의무를 이행해야 하고, 침해 시에 어떤 구제를 제공해야 하는지 등을 상세히 정리했다. 그 결과가 1986년 ‘림버그 원칙’이고, 10년 후에 다시 점검한 결과가 오늘 읽어볼 ‘마스트리히트 가이드라인’이다. 두 원칙의 이름은 모인 곳의 이름을 땄다. 유엔은 이들 원칙을 수용하여 유엔 공식 문서로 채택했다.

마스트리히트 가이드라인은 모두 32개 지침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중 핵심이 6번째 지침으로 사회권에 대한 국가의 의무를 ‘존중, 보호, 실현’의 의무로 제시했다. 이를 간략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 존중의 의무(obligation to respect)
국가는 인권을 침해하지 않아야 하고, 인권을 누리는데 방해요소를 만들어서는 안된다. 예를 들어 비정규직의 확대를 꾀하는 법안을 만들고 통과시키는 일은 노동권과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침해하며 고의적으로 사회권을 후퇴시키는 조치에 해당한다. 국가소유시설이 환경오염물질을 함부로 배출하거나, 국가기관이 장애인 의무 고용을 지키지 않는다든가, 대안적 주거시설 없이 강제철거를 강행하는 일 등이 존중의 의무 위반에 해당한다.

· 보호의 의무(obligation to protect)
국가는 국민 개개인의 인권을 존중할 뿐 아니라 제3자(예를 들어 기업)에 의해서도 인권침해가 일어나지 않도록 보호할 의무가 있다. 예를 들어 가정에서 벌어지는 아동학대에 대해서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 일, 고리대금업자가 폭력과 위협을 행사하도록 내버려두는 일, 기업이 산업안전조치를 취하지 않거나 노동자를 함부로 해고하게 내버려두는 일 등은 보호의 의무 위반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 실현할 의무(obligation to fulfil)
국가가 어떤 의무를 갖는지 그 내용을 구체화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의미 없는 의무라는 말만 남게 될 것이다. 따라서 국가는 인권의 충분한 실현과 향상을 위한 목표를 설정해야 하고, 그것의 실현을 위해 합리적으로 계획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여기에는 법률·행정·예산·사법조치가 모두 포함된다. 그리고 그 성취의 결과에 대해서도 따져봐야 한다. 의무가 이행되지 않았을 경우에는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경우인지를 증명할 책임도 있다. 예를 들어 태풍 때문에 교육기관이 일시적으로 문을 닫았다면 그것은 국가의 통제를 벗어난 경우인 반면, 적절한 대책 없이 가장 취약한 사람들에 대한 의료급여 체계를 축소했다면 의무이행의 의지가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와 관련된 내용이 지침 7의 ‘행위와 결과의 의무’이다. 행위의 의무는 권리실현을 위해 합리적으로 계획된 조치를 취할 의무이고, 결과의 의무는 국가가 세운 목표를 성취하는 것을 포함한다.

사회권만이 아니라 모든 인권이 당장 완전한 형태로 실현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실상 완전한 실현이란 목표를 향해 항상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이유로 ‘즉각’ 이뤄져야 할 조치를 외면해서도 안되고, 점진적으로 실현한다고 해서 마냥 기다려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측정 가능한 진보’를 보여줘야 한다. 그리고 어떤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상관없이 이행돼야 할 ‘최소핵심의무’란 것이 있다. 여기에는 필수적인 식량, 기초의료, 기본적인 쉼터와 살집, 초등교육 등이 해당한다.

이러한 국가의 의무가 실천되기 위해서는 민간단체, 언론, 전문기구 등 모든 관련 당사자들이 사회권의 침해에 대해 촉각을 세우는 것이 요구된다. 사회권의 침해를 기록하고 감시해야 한다. 이런 일의 기본중의 기본은 사회권 침해의 피해자들의 외침에 귀를 기울이는 일일 것이다. 지침 21에서는 “어느 누구도 그들이 경제‧사회‧문화적 권리를 주장한다는 것 때문에 처벌받아선 안된다”고 했다. 그런데 사회권의 피해자들은 물리적 폭력과 벌금을 때려 맞고 있는데 침해자들은 사회봉사를 권고 받고 명예훼손에 대한 고발을 남발하고 있으니 사회권의 의무를 고의적으로 어기고 있는 증거가 되고도 남음이 있을 것 같다. [류은숙] <2007년 9월 11일 인권오름 제71호>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의 침해에 관한 마스트리히트 가이드라인(The Maastricht Guideline on Violations of Economic, Social and Cultural Rights, 1997)


존중, 보호, 실현의 의무
6. 시민‧정치적 권리와 마찬가지로 경제‧사회‧문화적 권리도 국가에 세가지 형태의 이행의무를 부과한다. 그것은 존중, 보호, 실현의 의무이다. 세가지 이행의무 중 어느 것이라도 이행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이들 권리의 침해를 구성한다. 존중의 의무는 국가가 경제‧사회‧문화적 권리를 향유하는데 저해하는 행위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보호의 의무는 제3자가 인권침해를 하지 않도록 국가가 막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기업이 노동자의 기본적인 일할 권리와 공정하고 유리한 노동조건을 만드는데 실패한다면 노동권에 대한 인권침해이다. 실현의 의무는 국가가 경제‧사회‧문화적 권리를 완전히 실현하기 위해 적절한 법률‧행정‧예산‧사법 조치를 취하도록 요구한다. …

행위와 결과의 의무
7. 존중, 보호, 실현의 이행의무 각각은 행위의 의무와 결과의 의무의 요소를 포함한다. 행위의 의무는 개개의 권리향유를 실현할 수 있도록 합리적으로 계획된 조치를 필요로 한다. 예를 들어 건강권의 경우, 행위의 의무는 모성사망률을 줄이기 위한 행동강령의 채택과 이행을 수반한다. 결과의 의무는 국가가 세부적인 실체기준을 충족시키기 위해 목표를 성취할 것을 요구한다. …

재량의 여지
8.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의 완전한 실현은 오직 점진적으로만 실현될 수 있다는 사실은 대부분의 시민‧정치적 권리에서도 마찬가지인 것처럼, 특정 조치는 즉각 이뤄져야 하고 다른 조치들은 가능한 한 발리 이뤄지도록 해야 하는 국가의 법적 의무의 성격을 바꾸지 않는다. 그러므로 해당 권리의 완전한 실현을 향해 측정 가능한 진보를 보여줘야 할 의무가 국가에 있다. 국가는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핑계로 “점진적인 실현”(사회권규약 2조)을 이용해서는 안된다. …

최소핵심의무
9. 각 권리들의 최소한의 필수적인 수준을 충족시키기 위해 경제‧사회‧문화적 권리 위원회가 규정한 ‘최소 핵심 의무’를 국가가 충족시키지 못할 때 규약상의 권리는 침해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상당한 숫자의 개인들이 필수적인 식량‧기초의료‧기본적인 쉼터와 살 집 혹은 초등교육을 받지 못한 채 살아간다면 그 당사국은 규약상의 권리를 침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최소 핵심의무는 해당국의 이용가능한 자원의 양 혹은 어떤 다른 요소와 어려움에 상관없이 적용돼야 한다.


이행불능
13. 국가의 작위 혹은 부작위가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의 침해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할 때, 국가의 무능력과 규약의무를 이행할 의지가 없는 것을 구별해야 한다. 통제 밖의 이유로 그 의무를 수행할 수 없었다고 주장하는 국가는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경우인지를 증명해야할 책임이 있다. …

작위에 의한 침해
14.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의 침해는 국가의 직접적인 행동 혹은 국가의 불충분한 개입에 의해 일어난다. 침해의 예는 다음과 같은 것이다.
a. 사람들이 현재 향유하고 있는 경제‧사회‧문화적 권리를 지속적으로 보장하는데 필요한 법률의 공식적인 폐지 내지는 효력 정지.
b. 법률에 의한 차별 혹은 강제적 차별을 통해, 특정 개인이나 집단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부정하는 것.
c. 제3자가 취한 조치가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에 부합할 수 없는 것임에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것.
d. 평등을 추구하고 소외집단의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의 실현을 더욱 증진할 목적 없이,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와 관련된 현행 법적 의무에 부합하지 않는 제도나 정책을 채택하는 것.
e. 경제‧사회‧문화적 권리가 보장되는 수준을 감소시키려는 의도를 갖고 퇴행적 조치를 채택하는 것.
f. 규약에 의해 보장되는 권리의 점진적 실현을 방해하거나 중단시키는 계산적 행위….
g. 공공재정의 축소 혹은 유용…

부작위를 통한 침해
15.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의 침해는 국가가 법적 의무로부터 비롯된 필수적 조치를 하지 않을 때도 일어난다. 다음의 것이 그 예다.

b. 규약상의 의무에 명백히 모순되는 법률을 개정하거나 폐지하지 않는 것.

f.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실현을 감독하지 않는 것. 이를테면 경제‧사회‧문화적 권리 실현 여부를 평가하기 위한 기준과 지표를 개발하고 적용하지 않는 것.
g. 규약이 보장하는 권리의 즉각적인 실현을 방해하는 요소들을 없애는 것이 의무임에도 불구하고 신속히 그 일을 하지 않는 것.


형사처벌
21. 경제‧사회‧문화적 권리를 침해당한 피해자들은 순전히 피해자로서의 그들의 지위 때문에 형사적인 처벌을 받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홈리스가 되는 사람을 처벌하는 법과 같은 것이 그 중 한예가 될 수 있다. 어느 누구도 그들이 경제‧사회‧문화적 권리를 주장한다는 것 때문에 처벌받아선 안된다.

구제가 가능케 하는 것
22. 어떤 개인이든 집단이든 경제‧사회‧문화적 권리를 침해당한 피해자들은 국내 및 국제적 차원 모두에서 효과적인 사법적 혹은 기타의 적절한 구제조치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권리침해를 공식적으로 용인해서는 안된다.
24. 자신들의 판결이 해당 국가가 국제적 의무를 위반하는 것을 공식적으로 용인하는 결과를 낳지 않도록 국내 사법부 및 기타 기구들은 주의해야 한다. 최소한 국내 사법부는 경제‧사회‧문화적 권리 침해와 관련된 판결을 내릴 때 국제인권법이나 지역인권법의 관련 규정들을 해석의 길잡이로 고려해야 한다.

인권오름 제 71 호  [기사입력] 2007년 09월 11일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인권오름 제 67 호  [기사입력] 2007년 08월 16일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지금은 21세기다. 그런데 아직도 웬 노예제를 얘기 하냐고 할지 모르겠다. ‘톰 아저씨의 오두막집’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가자는 얘기는 아니다. ‘노예제’ 내지 ‘현대판 노예 노동’, ‘강제노동’, ‘유사 노예제’는 오늘의 현실이다.

오늘날 ‘노예제’라는 단어는 광범위한 인권침해를 포괄한다. 아동 매매, 아동 성매매, 아동 포르노그라피, 아동노동착취, 무력 분쟁에서 아동을 이용하는 행위, 부채에 의한 감금노동, 인신매매, 인간 장기 매매, 성매매에 대한 착취, 노예 형태의 결혼, 인종분리정책 관행 등이다.

‘현대판 노예 노동’ 또는 ‘유사 노예제’라 불리는 이런 행위들이 세계적으로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다는 우울한 증거들은 넘쳐난다. 단적인 예로 7세에서 10세의 아동이 하루 12시간에서 14시간의 노동을 성인의 1/3보다 못한 보수를 받으며 하고 있고, 이런 노동에 착취되는 아동이 1억에 달한다. 이런 아동의 수를 절반으로 줄이도록 노력하자는 것이 21세기를 맞이하며 국제사회가 벌인 운동이었으니, 인류는 아직도 ‘노예제’를 극복하고 있지 못한 것이다.

거슬러 올라가 볼 때, 노예제는 최초로 국제적 관심을 일으킨 인권 문제라 할 수 있다. 1815년 노예무역폐지에 관한 선언이 비엔나 평화회의 중에 채택됐다. 이 선언은 ‘노예제’ 폐지가 아닌 ‘노예무역’ 폐지에 머물렀고 미국에서는 남북전쟁(1861-1865) 때까지 노예제가 계속됐다. 하지만 국제인권체제를 향한 의미 있는 최초의 조치였다고 할 수 있다. 그 후 인간 존엄성과 심각하게 충돌되는 관행을 금지시키는 최초의 국제법을 구성한 것이 노예제 폐지에 관한 것들 이었다. 1926년 국제연맹이 채택한 노예제 조약이 대표적 보기이다.

유엔은 이 조약을 계승하면서 1953년 이를 개정했다. 또한 유엔과 국제노동기구(ILO)는 ‘노예제, 노예무역, 노예제와 유사한 제도와 관행 철폐에 관한 보충협약’, ‘강제노동철폐협약’, ‘인신매매와 성매매 착취 근절을 위한 협약’, ‘인신매매, 특히 여성과 아동에 대한 인신매매의 방지·근절 및 처벌을 위한 의정서’ 등을 채택했다. 유엔의 ‘현대판 노예제에 대한 실무 그룹’이나 주요국제인권조약 기구들은 현대판 노예노동과 강제노동, 유사 노예제 관행을 없애기 위한 각국의 조치들을 점검하고 있다.

‘노예제’는 인류사에 계속 있어왔다고 한다. 그러나 아프리카 노예 무역과 노예제가 다른 점은 소위 ‘모든 사람의 자유와 인권을 선포한 땅’에서 노예제를 유지한 것이었다. 유럽과 미국이 한 것처럼 강제로 수백만명을 고향과 가족으로부터 끌어내 대를 이어 노예를 만드는 일은 없었다. 수백만명의 노예노동이 요구되는 플랜테이션이나 공장도 이전에는 없었다. 그래서 아프리카 노예무역은 자본주의의 발명품이라 얘기된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인간 이동을 필요하게 했던 것은 유럽에서의 산업혁명이었다. 이전의 노예는 결혼을 하고 가족을 가질 자유, 자기 언어를 말하고 신을 경배할 권리 같은 걸 갖고 있었으나 아프리카 노예는 모든 인격과 인간성을 빼앗겼고, 심지어 이름조차 간직할 수 없었다. 이런 노예제와 인종주의의 성장은 직접 연관되었다. 수백만의 흑인을 노예화시키는 것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전 지구적인 유럽의 힘의 확장은 백인의 우월성의 증명이며, 흑인의 노예화는 그들의 열등성의 상징으로 설명됐다.

이 같은 아프리카 노예제는 물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법적으로 허용된 노동 체계로서의 전통적 노예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노예제는 세계 어디에서나 철폐됐다. 하지만 그 자취는 여전히 남아있고 은밀하게 피해자들을 양산하고 있다. 그 은밀성으로 인해 현대판 노예노동은 그 규모를 분명히 짐작할 수 없으며 처벌이나 철폐를 어렵게 한다. 물론 그 피해자들은 가장 가난하고 가장 취약한 사회집단들에서 나온다. 그렇기 때문에 노예제에 던져졌던 문제제기들은 계속돼야 한다. 현대판 노예노동과 강제노동은 누구의 우월성을 증명하려 하며, 누구를 열등한 존재로 만드는가? 이런 관행을 유지하는데 동원되는 합리화는 무엇인가? 한국 사회는 오늘날 어떤 피해자를 만들어내고 있는가?

“어느 누구도 노예나 예속상태에 놓여지지 아니한다. 모든 형태의 노예제도 및 노예매매는 금지된다”(세계인권선언 제4조)나 “어느 누구도 예속상태에 놓여지지 아니한다. 어느 누구도 강제노동을 하도록 요구되지 아니한다”(유엔시민·정치적 권리규약 제8조 2항, 3항)는 과거의 관행을 지적하는 사문화된 조항이 아니라 끊임없이 현재적 의미와 현재의 피해자를 찾아야 할 내용이다. [류은숙] <2007년 8월 15일 인권오름 제67호>

노예제 조약(Slavery Convention, 1926)
1926년 9월 25일 제네바에서 서명되고 1927년 3월 9일 발효

1889-90년 브뤼셀 회의의 결의서 서명자들은 아프리카 노예무역을 종식하겠다는 강한 의지에 똑같이 고무되었다고 선언했으므로,

1919년의 Saint-Germain-en-Laye 조약의 서명자들은, 1885년의 베를린 결의와 1890년 브뤼셀 결의와 선언을 수정하고, 노예제의 모든 형태와 육로와 해상에 의한 노예무역을 완전하게 억제하겠다는 의도를 재확인했으므로,

1924년 6월 12일 국제연맹이 임명한 노예제에 관한 임시위원회의 보고를 고려하면서,

브뤼셀 결의하에 성취된 작업을 완수하고 확대하며, Saint-Germain-en-Laye조약의 서명자들이 노예무역과 노예제에 관해 표현한 의도대로 세계적으로 실천적인 효력 수단을 발견하기를 열망하며, 이 목적을 성취하려면 그 조약에 담겼던 것보다 더 자세한 조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며,

더욱이, 강제노동이 노예제와 유사한 상황으로 발전되는 것을 방지할 필요성을 고려하면서 조약을 체결하기로 결정했고, 그에 따라 전권위원들을 임명했다. (이름 생략)... 다음과 같이 동의한다.


1조
(1) 노예제란 소유권 행사에 부속되는 권한의 일부 또는 전부의 지배를 받는 사람의 지위 또는 상황이다.
(2) 노예무역은 강제로 노예로 만들 의도를 가지고 사람을 포획, 취득 또는 처분하는 것과 관련된 모든 행위, 사람을 팔거나 교환할 목적으로 노예를 취득하는 것과 관련된 모든 행위, 구입 또는 교환을 목적으로 획득한 노예를 판매 또는 교환에 의해 처분하는 모든 행위, 일반적으로 노예를 거래하거나 운송하는 모든 행위를 포함한다.

2조
고귀한 동맹 체결국들은 자국의 주권, 관할권, 보호, 종주권 또는 감독이 미치는 영토에 대하여, 벌써 취해야 했을 필수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면,
(a) 노예무역을 방지하고 억제하며
(b) 점진적으로 가능한 빨리 노예제의 모든 형태를 완전히 철폐할 것을 약속한다.

3조
당사국들은 자국 영해와 자국 국기를 달고 항해하는 모든 선박에서 노예의 승선, 하차와 이송을 방지하고 억제하기 위한 모든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약속한다.


4조
당사국들은 노예제와 노예무역의 폐지를 보장할 목적의 모든 지원을 서로에게 해야 한다.

5조
당사국들은 강제 또는 강요된 노동에 대한 의존이 심각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각국의 주권, 관할권, 보호, 종주권 또는 감독하의 영토에 관하여, 강제 또는 강요된 노동이 노예제와 유사한 상황으로 발전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을 약속한다.
다음과 같이 동의한다.
(1) 공공의 목적을 위해서만 강제노동이 부득이 하게 강요될 수 있다는 아래 (2)항에 명시된 과도기 조항에 따른다.
(2) 공공의 목적이 아닌 다른 목적으로 강제노동이 여전히 잔존한 지역에서, 당사국들은 점진적으로 그리고 가능한한 빨리 그러한 관행을 없애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런 강제노동이 존재한다면, 반드시 예외적인 성격의 것이어야 하며, 항상 충분한 보상을 받아야 하며, 노동자들을 일상적인 거주지로부터 이동시키는 것과 관련돼서는 안된다.
(3) 모든 경우에 있어, 강제노동을 수단으로 삼은 책임은 관련 지역의 합법적인 중앙 정부에 있다.

6조
현 조약의 목적을 달성할 목적으로 제정된 법과 규제에 대한 위반을 처벌할 충분한 조항을 현재 국내법에 갖고 있지 않은 당사국들은 그러한 위반에 강한 형벌이 부과될 수 있도록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을 약속한다.

7조
당사국들은 서로간에 그리고 국제연맹 사무총장에게 현 조약의 규정을 적용할 목적으로 제정하는 법과 규칙들에 대해 통보할 것을 약속한다.

인권오름 제 67 호  [기사입력] 2007년 08월 16일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인권오름 제 63 호  [기사입력] 2007년 07월 18일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평소에도 그랬지만 신문을 보는 일이 더욱 싫어졌다. 셔터가 내려지고 쇠파이프로 용접질까지 했다는데, 비정규직을 보호한다는 그놈의 법 때문에 그렇게 됐다는데, 밖에서 어린 자식들이 울먹인다는데, 그런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의 소식 대신 대선 주자들의 구정물 싸움이 1면에 오르는 신문에 구역질이 난다. 그녀들의 고생 바구니에 물건을 가득 싣고 ‘빨리 빨리’만 외쳐댔던 이 사회에 염증이 난다.

이름 대신 나를 ‘비정규’라 불러달라는 노동자인 그녀, ‘제발 자르지 말라고, 화장실도 못가고 내내 서서 일했다고, 그 형편없는 임금에 온 식구 목숨이 달려있다고’ 고립된 매장 안에서 타전을 보내는 그녀들,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존중’과 ‘연대’로 대답해 달라고 한다.

‘빵과 장미’를 위한 투쟁, 이랜드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을 보며 떠올린 말이다. 오늘 읽어볼 인권문헌은 그녀들에게 바치는 시이다.

‘빵과 장미’라는 단어는 국내에도 여러 차례 소개된 적 있는 켄 로치 감독의 영화 제목으로 유명하다. 한국에서 제일 좋다고 하는 복합 영화관 CGV를 같은 건물에 두고 있지만, 거기서 일해 온 홈에버 노동자들은 영화구경을 못했을 것 같다. 나도 켄 로치 감독의 영화 <빵과 장미>를 보지는 못했다. ‘남미 출신 미국 대도시 청소원들의 투쟁을 그린 영화’라고만 알고 있다. ‘빵’은 생존을 위한 투쟁을, ‘장미’는 존엄성을 찾고 싶다는 의미로 얘기된다. ‘빵’은 육체를 위한 양식을, ‘장미’는 정신을 위한 양식을 뜻한다고도 한다. 그런데 ‘빵과 장미’는 이 영화보다 더 오랜 이야기를 갖고 있다.

‘빵과 장미’는 미국의 시인 제임스 오펜하임의 시 제목이다. 이 시는 1900년대 일련의 여성 노동자 투쟁의 구호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09년에는 “일하는 중에도 우리는 굶주리고 있다. 파업을 해서 굶어도 마찬가지다”는 구호를 내건 뉴욕 의류 여성 노동자의 파업이 있었고, 1910-11년에는 하루 8시간 노동을 요구하는 시카고 의류 여성 노동자들의 파업이 있었다. 이 시의 제목에서 “서부 여성들의 슬로건”이라 했을 때 ‘서부’는 시카고 여성 노동자 파업을 지칭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시와 연결되는 대표적인 사건은 1912년 로렌스 파업이다. 1912년 미국 메사추세츠 주의 로렌스 지방, 가혹한 조건 속에서 노동하는 여성들이 있었다. 섬유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었는데, 여성과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공장주들은 생산에 사용되는 실과 바늘, 심지어 노동자들이 앉는 의자의 비용까지 노동자에게 값을 물렸다. 형편없는 임금, 장시간 노동, 위험한 공장 환경 그리고 그와 다를 바 없는 비좁고 지저분한 주거 속에서 그곳 노동자들의 평균 수명은 전국 최하위에 속했다. 참다못한 여성노동자들이 동일노동 동일임금, 임금상승, 노동시간 단축 등을 요구하며 실을 끊고 유리창을 깨뜨리며 파업에 나섰다. 그녀들이 손에 쥔 펼침막 속에 ‘빵 뿐만 아니라 장미를 원한다’는 구호가 있었고, 이 투쟁은 ‘빵과 장미의 파업’으로 알려졌다.

‘빵과 장미를 위한 투쟁’은 고난으로 점철됐다. 처음에 주류 남성 노동자를 주축으로 한 노동조합은 비숙련 여성 노동자와 이주노동자들은 조직화될 수 없다며 외면했다. 당시 여성 노동자들은 또한 출신과 언어가 아주 다양한 이주노동자이기도 했다. 이 시의 두 번째 절에서 “남자를 위해서도 싸운다네”는 이를 꼬집은 말이며, 마지막 절의 “여성이 떨쳐 일어서면 인류가 떨쳐 일어서는 것” 또한 그렇다. 한 여성 노동자는 이렇게 맞받아쳤다. “그들이 우릴 보고 여성들은 조직화될 수 없다. 여성들은 노동조합 회의에 나오지 않을 거다. 그리고 우리더러 ‘임시 노동자’라고 했죠. 글쎄, 두고 보라지요.”

공장주와 주지사는 민병대를 조직하고 인근도시들에서 경찰력을 꿔왔다. 그로 인해 수백명이 체포당하고 다쳤다. 그러나 처음 수백명으로 시작한 파업은 10주가 되자 1만명이 넘어섰다. 전국적인 관심이 집중되고 지지자가 늘어갔다. 노동조건에 대한 의회의 진상조사가 이뤄지고, 노동자의 요구가 받아들여졌다. 이 투쟁은 미국 노동운동 역사상 가장 위대한 승리 중 하나로 기록된다.

영화 <빵과 장미>의 등장인물 중 한사람이 바로 이 투쟁을 이야기하며 “그녀들은 이겼어, 그녀들은 이겼어”란 대사를 읊는다 한다. 그처럼 이랜드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의 ‘빵과 장미의 파업’ 역시 ‘이겼다’라고 얘기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아니, 우리에게 ‘빵과 장미’의 소중함을 일깨워 준 당신들은 이미 이겼다.

‘빵과 장미의 파업’에도 한국 사회의 냉장고는 계속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빵과 장미’를 찾아 나설 것인가. 장미를 원하신다면 홈에버와 뉴코아, 킴스클럽에서의 쇼핑카트부터 멈추시라. “민주주의는 표를 헤아리는 것이 아니라 행동을 헤아린다”고 했다. [류은숙] <2007년 7월 18일 인권오름 제63호>

빵과 장미(Bread and Roses, James Oppenheim)
“모든 이에게 빵을, 그리고 장미도” - 서부 여성들의 슬로건(제임스 오펜하임)
(“Bread for all, and Roses, too"-a slogan of the women of the west)


우리가 환한 아름다운 대낮에 행진, 행진을 하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컴컴한 부엌과 쟂빛 공장 다락이
갑작스런 태양이 드러낸 광채를 받았네.
사람들이 우리가 노래하는 “빵과 장미를, 빵과 장미를”을 들었기 때문에.


우리들이 행진하고 또 행진할 땐 남자를 위해서도 싸우네,
왜냐하면 남자는 여성의 자식이고, 우린 그들을 다시 돌보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우린 착취당하지 말아야만 하는데,
마음과 몸이 모두 굶주리네: 빵을 달라, 장미를 달라.


우리가 행진하고 행진할 때 수많은 여성이 죽어갔네,
그 옛날 빵을 달라던 여성들의 노래로 울부짖으며,
고된 노동을 하는 여성의 영혼은 예술과 사랑과 아름다움을 잘 알지 못하지만,
그래, 우리가 싸우는 것은 빵을 위한 것 - 또 장미를 위해 싸우기도 하지.


우리들이 행진을 계속하기에 위대한 날들이 온다네--
여성이 떨쳐 일어서면 인류가 떨쳐 일어서는 것--
한 사람의 안락을 위해 열 사람이 혹사당하는 고된 노동과 게으름이 더 이상 없네.
그러나 삶의 영광을 함께 나누네: 빵과 장미를 빵과 장미를 함께 나누네.
(시 번역: 진영종 성공회대 교수)

인권오름 제 63 호  [기사입력] 2007년 07월 18일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인권오름 제 55 호  [기사입력] 2007년 05월 22일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2004년 평택 평화대축제에서 문정현 신부가 했던 ‘평화란 무엇이냐’는 연설이 있다. 이 연설에 곡을 붙인 노래도 있는데, 그 내용의 일부는 이렇다.

공장에서 쫓겨난 노동자가 원직복직하는 것이 평화
두꺼비 맹꽁이 도롱뇽이 서식처 잃지 않는 것이 평화
가고 싶은 곳을 장애인도 갈 수 있게 하는 것이 평화
이 땅을 일궈 온 농민들이 더 이상 빼앗기지 않는 것이 평화

성매매 성폭력 성차별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세상
군대와 전쟁이 없는 세상 신나게 노래 부르는 것이 평화……

여기서 ‘평화’라는 단어를 ‘경제·사회적 권리의 실현’으로 바꿔 생각하면 오늘 읽어볼 선언문을 다 읽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요즘에는 인권을 얘기할 때 경제·사회적 권리들을 당연히 포함해 생각하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인권’이라 하면 ‘정권에 반대하는 목소리 내다가 감옥 간 사람들의 권리’ 정도로 생각하던 시절이었다.(물론 지금도 국가보안법으로 감옥에 갇히는 일은 계속 벌어지고 있다)

인권의 역사에서 오랫동안 경제·사회적 권리는 시민·정치적 권리의 부산물로 여겨졌다. 억눌렸던 경제·사회적 인권에 대한 요구는 20세기 초에야 ‘멕시코 헌법’, ‘노동피착취 인민의 권리선언’, ‘바이마르 헌법’ 등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받기 시작한다. 그리고 2차 대전 이후부터는 세계인권선언의 영향으로 시민·정치적 권리와 경제·사회적 권리를 함께 생각하는 것이 관행이 됐다.

시민·정치적 권리가 ‘법적 권리’라는 탄탄대로를, 경제·사회적 권리는 ‘국가정책의 목표’일 뿐이라는 자갈길을 걷는 식이 현실이라 할지라도, 인권의 불가분성과 상호의존성이란 원칙 속에서 경제·사회적 권리는 인권 속에 자리 잡았다. 특히 1966년에는 노동권, 교육권, 사회보장권 등이 국제인권조약으로 규범화된다.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이 제정된 것이다.(하지만 이 규약이 발효되기까진 10년이 더 걸렸다) 그러나 이 규약에 담긴 경제·사회적 권리들은 아주 일반적인 용어로 씌어졌기 때문에 그 구체적 기준과 실현 방법은 물음표로 남았다.

유엔과 여러 전문기구들은 경제·사회적 권리의 구체화와 그 실현을 위한 조건들을 정하기 위한 논의를 활발하게 전개한다. 오늘 읽어볼 선언은 규약 채택 직후의 그런 문제의식을 담은 것으로 경제·사회적 권리의 실현을 위한 원칙·목적·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이 선언은 경제·사회적 권리의 아주 포괄적인 영역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그때나 지금이나 국제 규범화되지 못한 권리들을 주창할 수 있는 단초로 활용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이 선언이 다양한 영역에서 다양한 주체들에 의해 자주 불려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모든 형태의 차별·불평등·인종차별주의 등의 철폐, 토지소유제도 및 임차제도를 사회정의에 최대한 적합하도록 하는 토지개혁의 이행, 모든 사람의 노동의 권리 보장, 국부 및 국민소득의 공정하고 공평한 분배, 적절한 주거의 보장, 무상 의료서비스의 달성, 환경보호, 전면적이고 완전한 군축의 달성 등이 이 선언의 주 내용이다. 바로 앞에서 살펴본 ‘평화란 무엇이냐’가 담고 있는 바 그대로라 할 수 있다.

5월 이맘때엔 ‘성년의 날’이 있다. 인권의 성년은 선언이 아닌 실현에 있을 것이다. 이 선언을 필두로 경제·사회적 권리에 관한 선언들은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고, 이제 좀 성년을 맞으라고 우리를 채근한다. [류은숙] <2007년 5월 23일 인권오름 제55호>

사회진보와 발전에 관한 선언(유엔 총회결의안 2542[XXIV], 1969)

…[전문 생략]
1부 - 원칙

2조 사회진보와 발전은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에 대한 존중에 기반해야 하며 인권과 사회정의의 증진을 보장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것은 다음을 필요로 한다.
(a) 모든 형태의 불평등, 인민과 개인에 대한 착취, 식민주의, 인종주의, 유엔의 목적과 원칙에 반하는 여타의 정책과 이데올로기의 즉각적이고 궁극적인 철폐

4조
(d) 효과적으로 통합된 사회를 성취하기 위하여 사회경제적 진보에 대한 동등한 기회를 불리하거나 소외된 사람들에게 보장할 것

6조
사회발전은 모든 사람에게 노동권과 자유로운 직업선택의 보장을 필요로 한다. 사회진보와 발전은 사회 모든 구성원이 생산적이고 사회적으로 유용한 노동에 참여할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인권과 기본적 자유, 정의의 원칙, 재산의 사회적 기능에 부합하는 토지 소유형태와 인간에 대한 어떤 종류의 착취도 배제하고 모든 사람에게 동등한 재산권을 보장하고, 인간 사이에 진정한 평등을 낳는 조건을 창조하는 생산방식의 수립을 요구한다.

2부 - 목적
10조
(a) 노동에 대한 권리, 모든 사람의 노동조합결성, 노동자의 결사, 단체협약의 권리의 모든 수준에서의 보장
(b) 기아와 영양실조의 근절, 적절한 영양에 대한 권리의 보장
(c) 빈곤 철폐, 생활수준의 꾸준한 향상과 정당하고 평등한 소득 분배의 보장
(d) 최상의 건강 수준의 성취와 가능하다면 무상으로 전체 인구에 대한 건강 보호의 제공
(f) 모든 사람, 특히 저소득 집단과 대가족에게 적절한 주거와 지역사회 서비스의 제공

11조
(a) 포괄적인 사회보장제도와 사회복지 서비스의 제공, 질병·장애 또는 노령 때문에 일시적으로나 영구적으로 생계비를 벌 수 없는 모든 사람을 위해, 이들과 그 가족과 피부양자들에게 적절한 생활수준을 보장할 목적의 사회보장과 보험 제도의 증진

(c) 아동, 노인, 장애인의 권리 보호와 복지의 보장, 신체적·정신적 취약자에 대한 보호의 제공
(d) 정의와 평화의 이상, 인류의 상호 존중과 이해속에서의 청소년 교육과 이러한 가치들의 증진, 국가 발전과정에 청소년의 완전한 참여의 증진

12조
(c) 모든 국가의 인민이 자국의 자원의 혜택을 완전히 누릴 수 있도록 모든 형태의 외국의 경제적 착취, 특히 국제적 독점에 의해 자행되는 착취의 근절

13조
(a)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이 이룬 과학 및 기술 진보의 평등한 공유, 사회의 사회적 발전 혜택을 위한 과학과 기술 이용의 꾸준한 증가
(b) 과학, 기술, 물적 진보와 인류의 지적, 정신적, 문화적, 도덕적 진전 간의 조화로운 균형의 수립
(c) 인간 환경의 보호와 증진

3부 - 수단과 방법
14조
(a) 균형 잡힌 전반적 발전계획에 통합된 사회진보와 발전을 위한 계획

16조
(d) 경제·사회적 발전에 해로울 개발도상국으로부터 자본 유출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의 채택

17조
(d) 사회의 이익 속에서 토지 이용에 대한 적절한 감시 조치

18조
(d) 정부의 참여 속에서 농촌과 도시 지역 모두에서 저비용의 주거 프로그램을 도입하기 위한 조치의 채택

19조
(a) 전체 인구에 대한 무상의료서비스의 제공 및 모두에게 접근가능한 예방과 치료시설 및 의료복지서비스의 제공
(c) ILO 97호 조약과 여타의 이주노동자 관련 국제규범에 부합되도록 이주노동자와 그 가족에 대한 사회복지서비스 조치의 채택과 제공
(d) 정신지체 또는 지체장애인, 특히 아동과 청소년의 재활을 위한 적절한 조치의 제도화, 이러한 조치는 치료와 장비의 제공, 교육, 직업지도와 사회적 지도, 훈련, 선택적 거소, 기타 요구되는 지원을 포함해야 한다. 장애를 이유로 차별받지 않는 사회 환경의 창조

20조
(a) 노동조합의 완전한 민주적 자유, 단체협약의 권리와 파업권을 포함하여 모든 노동자의 결사의 자유 규정, 노동인민이 여타의 조직을 결성한 권리에 대한 인정, 경제·사회적 발전에서 노동조합의 참여 증대를 위한 제공, 자신들의 이익에 영향을 미치는 경제·사회적 문제를 결정하는데 있어서 노동조합의 모든 구성원의 효과적인 참여

22조
(c) 아동과 일하는 부모의 이익을 위한 적절한 아동 돌봄 시설의 수립

23조
(e) 평등과 비차별의 원칙에 기반한 국제 무역의 확장, 공평한 무역 조건, 개발도상국의 선진국으로의 수출에 대한 보편적인 비보복적·비차별적 특혜시스템에 의한 개발도상국의 상황 개선, 보편적이고 포괄적인 필수 상품 협약의 수립과 이행, 국제기구의 합리적인 완충 제고에 대한 융자

25조 일국적·국제적 차원 모두에서 인간 환경의 보호와 증진을 위한 법적·행정적 조치의 수립

26조
침략자에 의한 침략과 불법적인 영토 점령으로 야기된 피해(성격상 사회적이건 경제적이건)에 대한 보상(원상복구와 배상을 포함하여)

27조
(a) 보편적이고 완전한 군축을 실현하고 그로 인해 생긴 자원을 세계 인민의 복지를 위해, 특히 개발도상국에 유익하도록 경제·사회적 진보를 위해 사용
(b) 특히 핵무기 실험의 전면적 금지, 화학 및 생물학 무기의 개발·생산·비축의 금지, 핵폐기물로 인한 대양과 내수 오염방지를 포함하는 군축을 위한 조치의 채택

인권오름 제 55 호  [기사입력] 2007년 05월 22일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인권오름 제 51 호  [기사입력] 2007년 04월 25일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1918년에 제정된 ‘노동 피착취 인민의 권리선언’은 러시아혁명의 목적과 사회주의적 권리구상을 담고 있는 문서이다. 레닌이 기초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후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 헌법에 그대로 수록된다. 사회주의혁명의 영향으로 사회주의적 권리들이 인권에 침투되고, 1919년 바이마르 헌법이나 국제노동기구(ILO) 헌장 등을 통해 경제·사회적 안전망을 도모하게 되었다는 것은 널리 얘기되는 바다.

‘권리선언’이란 제목이 붙어있지만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선포됐던 수많은 ‘권리선언’의 양식과는 아주 다르다는 걸 볼 수 있다. 흔히 권리선언이라 하면 ‘모든 사람’에게는 ‘무슨 무슨 권리가 있다’는 식이다. 그런데 이 선언에는 그런 표현이 전혀 없다. 대신에 ‘토지의 사적 소유 폐지’, ‘생산·운송수단의 국유화’, ‘모든 은행의 국유화’, ‘보편적 노동의무’ 등이 언급돼 있다. 여기에 사회주의적 권리의 특징이 집약돼 있다고 할 수 있다.

사회주의적 권리 시각에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인권을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 내지 자유로운 소유권으로 본다. 그렇기 때문에 소유권 말고 다른 인권들은 ‘선언’될 뿐 실제로 보장받을 수 없다고 비판한다. 권리와 의무의 토대가 되는 경제적 기초가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인간이 진정으로 권리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가 아닌 사회적 소유야말로 모든 권리와 의무의 토대이다. 생산수단을 사회가 소유하는 것은 사회의 기본구조이기에 이것은 ‘인’권일 수가 없다. 생산수단의 사회적 소유는 시민의 시민·정치적 권리, 경제·사회·문화적 권리 전체의 기초를 구성하는 것이다. 그래서 노동 피착취 인민의 권리선언에서 제일 강조하고 있는 바는 바로 권리의 토대가 되는 ‘생산수단의 사회화’이다.

이런 기초 위에서 권리는 더 이상 국가와 대립되는 개인이 갖는 권리이거나 또는 국가가 부여하는 권리도 아니고 국가가 만들어지기 이전에 갖는 천부의 권리도 아니다. 권리는 사회성원이 공동으로 형성하는 것이다. 생산수단의 사회화를 기초로 해서 노동의 주체가 동시에 소유 주체이며, 또 이 주체는 집단과 공동체에 속한 존재이기 때문에 이들 시민간의 경제적 관계와 정치적 관계는 따로 분리되지 않는다. 공동소유자로서의 생산과정 참여는 곧 정치권력을 행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치적으로는 평등한 시민이라 하면서 경제적으로는 전혀 그렇지 못한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정치와 경제의 이원성은 사라지고, 기존의 인권 개념은 근본적으로 바뀐다. 대표적인 예가 노동권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노동권은 시민이 고용을 요구하고 국가가 이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정도의 의미라면, 사회주의에서의 노동은 사회적 소유권과 마찬가지로 사회의 기초이기 때문에 “보편적 의무”이다.

사회주의 시각에서 자유란 자본의 구속으로부터 노동을 해방하는 것이고, 평등이란 계급을 철폐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실상 인권문제를 특별히 다룰 필요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선언에서 사용되는 ‘권리’라는 말의 의미는 기존의 인권에서 사용되는 의미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 선언을 시작으로 전개된 사회주의 권리사상이 기존의 인권사상과 계속해서 충돌한 것은 당연하다. 물론 사회주의적 권리시각에 대한 비판도 거셌다. 직접 생산자로부터 분리된 관리자 집단과 시민을 억압하는 특수한 무장집단이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은 인권의 논리를 부정함에도 불구하고 인권을 요구하지 않는가,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가 폐지되고 적대적인 계급이 존재하지 않으면, 국가와 시민사이에 그리고 사회와 개인 사이에 아무런 모순도 없다는 성급한 결론은 인권에 치명적이지 않은가 등과 같은 비판이 그 중 일부다.

인권은 특정한 역사적 범주에 속하는 권리들의 부정을 통해 성장해왔다. 사회주의적 권리 시각은 그러한 부정과 인권의 발전에 분명 기여했다. 이 선언에서 부정하고 있는 권리들이 지금 우리의 인권과 어떤 관계에 있는가를 살펴보는 것의 의미는 적지 않다. [류은숙] <2007년 4월 25일 인권오름 제51호>

노동 피착취 인민의 권리선언, 1918

제 1조
1. 러시아는 노동자·병사·농민 소비에트들의 공화국임을 선포한다. 중앙과 지방의 모든 권력은 소비에트들에 속한다.
2. 러시아소비에트공화국은 각 민족 소비에트공화국들의 연방으로서, 자유로운 인민들의 자유로운 연합에 의거하여 창립된다.

제 2조
제헌의회는 인간에 의한 인간의 모든 형태의 착취를 억제하고, 사회 속의 계급 차이를 완전히 철폐하는 것을 공화국의 목적으로 한다. 공화국은 착취자를 무자비하게 분쇄하고, 사회주의적 토대 위에 사회를 재조직하며, 전세계에서 사회주의의 승리를 달성할 목표를 가진다. 또한 공화국은 다음과 같은 사항을 결의한다.
1. 토지의 사회화를 달성하기 위하여 토지의 사적 소유는 폐지된다. 전국토는 국민의 재산이며, 토지의 평등한 사용 권리에 근거하여 경작자에게 무상으로 증여된다. 국가적으로 중요한 모든 산림, 부존자원, 해수면, 그리고 가축, 기계설비, 시범농장, 농업 생산활동 등은 국가의 재산임을 선포한다.
2. 공장, 상점, 광산, 철도 및 기타 생산과 교통수단을 공화국으로 완전히 이양할 첫 단계로서, 그리고 착취자에 대한 노동대중의 우월성을 보장하기 위하여, 제헌의회는 제2차 노동자·병사 소비에트 및 농민 소비에트 통합대회가 제정한 노동자의 [생산] 통제에 관한 법률 및 인민경제 최고소비에트에 관한 법률을 인준한다.
3. 제헌의회는 자본주의의 굴레에서 노동대중을 해방시킬 조건으로서 모든 은행의 소유권을 노동자·농민 정부로 이양할 것을 인준한다.
4. 사회의 기생적 계급들을 제거하고 국가의 경제활동을 조직하기 위하여 노동의 보편적 의무가 도입된다.
(아래 생략)

인권오름 제 51 호  [기사입력] 2007년 04월 25일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인권오름 제 47 호  [기사입력] 2007년 03월 28일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경제·사회적 권리, 즉 사회권이 국내적·국제적 인권목록으로 진입하게 된 배경을 단순하게 얘기하기는 어렵다. 인간이 인간의 존엄성에 걸맞는 생활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다양한 종교적·철학적 배경 속에 자리하며, 그를 위한 길고 수많은 투쟁 속에 뿌리박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위 ‘2세대 권리’라고 얘기되는 사회권이 국제적 인권의 의제로 등장하게 된 것은 대공황과 사회주의 혁명, 세계대전의 소용돌이 속에서였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논의되는 바다.

사회권 옹호자들이 그것의 정치적 동기와 무관하게 즐겨 인용하는 표현이 있다면 “결핍으로부터의 자유”다. 이 표현이 들어있는 문서가 바로 뉴딜정책으로 유명한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이 1941년 1월 미국의회에서 행한 “네 가지 자유” 연설이다. 이어 “결핍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표현이 1941년 8월 루스벨트와 처칠의 공동선언인 대서양 선언(the Atlantic Charter)에도 담기게 되며, 1944년 루스벨트의 연두교서에서 반복 천명된다. 1944년 연두교서에서는 “결핍된 인간은 자유로운 인간이 아니다”란 표현이 나오며, 노동의 권리, 적절한 식량과 주거에 대한 권리, 의료보호에 대한 권리, 교육에 대한 권리 등을 “제2의 권리장전”으로 받아들일 것을 촉구한다. 이런 견해가 국제인권장전을 예비한 중요한 초고 중의 하나인 미국법률연구소(ALI)의 제안에도 반영되게 된다.

대공황과 그 후 이어진 전쟁으로 초래된 고통이 워낙 컸으므로 국가의 시장 불간섭 내지 국가역할의 축소 같은 전통적 인권개념에서의 국가 역할은 수정될 수밖에 없었다. 경제위기와 대규모 실업문제가 파시즘의 기세를 북돋았으니 정당한 권력이라면 정치적 자유와 복지를 결합시킨 속에서 공공부문의 지출을 늘리고 빈곤의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사회주의 혁명과 그를 강력한 대안으로 여기는 세계 곳곳의 여론도 의식해야 했다. 이를 압축하여 표현한 것이 의사표현의 자유, 신앙의 자유, 결핍으로부터의 자유, 공포로부터의 자유라는 ‘네 가지 자유’인 것이다.

그런데 이런 목표를 안정적으로 추구하려면 평화가 보장돼야 한다. 총력전으로 표현되는 거대 규모의 국가 간 폭력행위를 방지하려면, 유명무실한 국제연맹보다 더 강력한 국제기구의 건설이 요구됐다. 그 국제기구가 터 잡아야 할 핵심목적이 평화유지와 인권의 존중과 보장이어야 하는 것이다. ‘네 가지 자유’ 연설은 그 같은 원칙에 기반한 국제기구의 건설을 주창하는 것으로 이어지게 된다.

한편, 이 연설은 어디까지나 ‘현실’ 정치인, 그것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의 정치인의 표현이라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이 연설에 비판적인 시각에는 미국의 2차 대전 참전에 대한 국내의 동의를 얻기 위해 그리고 대외정책 수정에 대한 지지를 얻기 위해 인권을 앞세웠다는 의견이 있다.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인권을 동원한 초기 사례이며, ‘결핍으로부터의 자유’를 내세우고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유방임형 경제에 복지정책을 버무린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이다. 자유에 대한 호소는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뭔가 더 심오한 것을 위해 싸우고 있다는 인상을 국민에게 준 것이라 보는 것이다. 과거나 지금이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유’에 대해 반대하기는 어렵다. ‘어떤’ 자유를 위해 싸우느냐를 가리지 않고 ‘자유를 위한 성전’을 무조건 지지하는 것의 폐해를 오늘날 우리는 이라크를 통해 분명히 보고 있다.

또다른 비판에는 사회불안에 대응하는 복지의 주창이 시민의 기본적 자유를 침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담겨있다. 뉴딜정책의 루스벨트는 대공황시기에 사회주의적 시각의 의사표현을 철저히 탄압했고, “네 가지 자유” 연설을 한 바로 그해인 1941년 말,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하자 11만명에 달하는 무고한 미국시민들을 단지 일본계라는 이유만으로 집단수용했다. 시장의 변덕을 다스리기 위한 복지 관련 정책과 사회권의 제도화가 대중의 인기를 끄는 속에서 기본적 자유의 토대를 훼손할 수도 있다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네 가지 자유의 주창 이후 반세기 이상의 시간이 흘렀다. 결핍으로부터도 공포로부터도 어느 것 하나로부터도 자유롭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기에 누구의 입으로 표현됐든 ‘결핍과 공포로부터의 자유’는 우리가 같이 꾸는 꿈이고, 함께 일구는 현실이어야 함을 잊을 수는 없다. [류은숙] <2007년 3월 28일 인권오름 제47호>

프랭클린 루스벨트 “네 가지 자유”(미국의회 연설, 1941년 1월 6일)

…우리가 안전하게 유지하려고 애쓰고 있는 가까운 장래에 있어 우리는 네 가지 기본적인 인간 자유 위에 세워진 세계를 대망하고 있습니다.
첫째, 세계 모든 곳에서 언론과 의사 표현의 자유입니다.
둘째, 세계 모든 곳에서 모든 사람이 자기 방식대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자유입니다.
셋째, 세계 모든 곳에서 결핍으로부터의 자유입니다. 이것은 알기 쉽게 말하면 세계 각국이 그 주민에게 건강하고 평화로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경제적 조치를 의미합니다.
넷째, 세계 모든 곳에서 공포로부터의 자유입니다. 이것을 알기 쉽게 말하면 어떤 나라도 다른 나라에 대해 물리적인 공격행위를 취할 수 없도록 할 수 있는 정도로 철두철미한 전세계적 군비축소를 의미합니다. …(조효제 역, 『세계인권사상사』, 도서출판 길, 2005에서 일부 옮김)

프랭클린 루스벨트 11번째 연두교서(Eleventh Annual Message to Congress, 1944년 1월 11일)

우리는 진정한 개인의 자유란 경제적 안정과 독립 없이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결핍된 인간은 자유로운 인간이 아닙니다.’ 직업을 잃은 사람은 독재가 자랄 수 있는 재료가 됩니다.
오늘날 이러한 경제적 진실은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소위 제2의 권리장전을 받아들이게 됐습니다. 이 권리장전에 의거하여 신분, 인종 또는 신념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을 위한 안보와 번영의 새로운 기초가 수립될 수 있습니다.
이들 권리는
산업, 또는 상점, 또는 농장, 또는 광산에서 유익하고 유리한 직업을 가질 권리,
적절한 식량과 의복과 여가를 제공하기에 충분한 소득에 대한 권리,
자신과 가족에게 존엄한 삶을 보답하는 가격에 농작물을 가꾸고 팔 수 있는 농부의 권리,
국내외에서의 부당한 경쟁과 독점으로부터 자유로운 환경에서 거래할 수 있는 크거나 작거나 모든 사업가의 권리,
존엄한 가정에 대한 모든 가족의 권리,
적절한 의료 보호에 대한 권리와 좋은 건강을 성취하고 향유할 기회,
노령, 질병, 사고, 실업이라는 경제적 공포로부터 적절한 보호를 받을 권리,
좋은 교육에 대한 권리입니다.
이 모든 권리들은 안보를 의미합니다. 이 전쟁에 승리하고 나면 우리는 이들 권리가 이행되는 속에서 인간의 행복과 복지라는 새로운 목표를 향해 나아가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

인권오름 제 47 호  [기사입력] 2007년 03월 28일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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