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오름 제 11 호 [기사입력] 2006년 07월 05일 0:18:31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활동가)

인권을 분석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은 꺼려한다. 일체의 반론 없이 그저 존중하고 아껴야 할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인권’이라는 단어를 같이 쓰더라도 사람과 사회에 따라 아주 다른 뜻으로나 다른 목적으로 쓰고 있고, 따라서 그 기능도 다를 때가 많은 것이 현실이다. 인권은 그저 좋은 것이니까 이론을 따지지 말고 그저 실천하자는 심정으로 매달리다가도 현실에서 튕겨져 나오는 인권에 대한 거부를 맞닥뜨리게 되면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인권은 좋은 것이요, 불가침의 것이요, 영원한 것이요, 불가양의 것이요…. 인권을 옹호하는 문서의 바다에 언제나 띄워져 있는 이런 표현들에 채워지지 않는 갈증을 느낀다면 한번쯤 눈을 돌려볼 필요가 있다. 오늘 읽어볼 인권문헌은 가장 신랄하다 할 수 있는 인권비판론이다.

마르크스가 근대적 인권론과 시민사회론을 비판하는 입장에 서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구체적으로 이 글은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을 대표로 하는 프랑스 혁명의 인권선언들과 인권담론의 이중성을 비판한 것으로 유명하다.

근대인권론의 정수로 알려진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1789)은 그 제목에서 나타나듯 ‘인간’과 ‘시민’을 구분하고 있다. 여기에 담긴 기만성과 소유권의 불가침성에 대한 비판은 ‘평등주의자들의 음모’로 잘 알려진 바뵈프 등이 먼저 제기했다. 바뵈프는 “재산과 노동의 불평등한 분배가 예속과 공공의 불행의 끝없는 원천”이라고 지적하면서 “프랑스의 전 재산의 소유권은 유일하게 그 배분을 결정하고 변경할 수 있는 프랑스 인민에게 본래적으로 귀속된다”고 했다. 마르크스는 바뵈프의 비판을 이어받아 <유태인 문제에 대하여>에서 이렇게 말한다.

“무엇보다 먼저 우리는 공민(시민)권과 구별되는 이른바 인권이란 시민사회 구성원의 권리, 다시 말해서 인간들과 공동체로부터 분리된 이기적 인간들의 권리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한다.”

인권과 시민권은 왜 구별되는가? 마르크스는 시민사회와 정치사회(국가)를 구별하여 말한다. 시민사회에 속한 인간은 생산활동의 주체로서의 인간, 즉 “지상에서의” 자본주의 생산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개인이다. 이 개인은 이기적이다. 왜냐하면 타인을 자신의 도구로 간주하면서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나홀로’ 개인이며, 인간의 결속이 아닌 분열에 기초한 개인이며, 비사회적이고 비정치적인 개인이기 때문이다. 비사회적인 ‘자연적’ 인간의 권리를 얘기하기에 여기서는 자연권이 인권이다. 자연권이기에 무조건적이다. ‘인’권이라 말하지만 사실은 자본을 소유하고 사적 소유의 자유를 추구하는 부르주아의 권리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사적 소유의 권리를 자연권으로 인정함으로써 그것은 불가침의 권리가 된다.

반면에 정치사회에 속한 인간은 어떠한가? 국가는 공민들의 영역이다. 즉 정치적으로 해방된 국가에서는 시민들이 모두 평등하고 법 앞에서 같은 권리를 지니고 서로가 서로에게 자유로운 환경이 보장된다는 것이다. 여기서의 인간은 정치적으로 조직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인간이고, 정치권력을 공유하는 인간이고, 인류의 구성원으로서의 인간이다. “지상에서의” 자본주의 관계 속에서는 서로가 서로의 경쟁자이자 적대자이며 더 많은 이익을 차지하기 위해 분열하지만 “천상에서의” 삶에서는 공동존재이다.

둘 간의 관계에서 현실을 지배하는 것은 이기적인 시민사회이다. 여기서는 시민의 권리와 구별된 사람의 권리가 “이기적 인간의 권리”에 지나지 않으며, “결국은 사적소유라는 인권”으로 수렴된다는 것이 지적됐다. 나아가 “시민은 이기적인 인간의 하인이라고 선언되고, …결국 공민인 인간이 아니라, 부르주아(시민사회의 일원)인 인간이 본래적인 진정한 인간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래서 ‘보편적’이라고 한 인간의 자유는 사실상 자본가의 자유이고, 기본적 인권은 재산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에 정치적 권리의 향유가 궁극적으로 물질적 조건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된다. 결국 시민의 권리가 부르주아지 손에 내맡겨지고, 실제로는 사람의 권리까지도 그들이 제한할 수 있는 구조가 된다. 그래서 프랑스 혁명기의 인권선언과 헌법에 표현된 인권은 ‘모든 사람’의 인권을 보편적으로 선언하고 있지만 진실은 일부 계급의 권리의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다른 글에서 마르크스는 “본문에는 자유를, 각주에서는 그것의 폐지를”이라고 비판했다. 마르크스가 비판한 것은 인권 자체가 아니라 사실상은 인권의 폐지를 가능케 하는 인권담론과 그 모순이라고들 말한다. 오늘날 마르크스 식으로 인권과 시민사회를 파악하는 일은 드물다. 하지만 인권의 보편성과 인간해방의 실현이 지울 수 없는 꿈이기에 우리의 인권 분석과 비판은 어떤 식으로든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류은숙] <2006년 07월 05일 인권오름 제11호>

칼 마르크스, “유태인 문제에 대하여”(1844)

[…]
완성된 정치적 국가는 그 본질상 인간의 물질적 삶과 대립해 있는 인간의 유적 삶이다. 이 이기적 삶의 모든 전제는 국가영역 바깥에 있는 시민사회 속에 머물면서 시민사회의 본성으로서 존재한다. 정치적 국가가 자신의 진정한 발전형태에 도달한 곳에서는 인간이 사상과 의식 속에서뿐만 아니라 현실과 생활 속에서도 천상의 삶과 지상의 삶이라는 이중의 삶을 살아간다. 그 하나는 정치적 공동체 속에서의 삶인 바, 여기에서는 인간이 자신을 공동존재라고 간주한다. 다른 하나는 시민사회 속에서의 삶인 바, 여기에서는 인간이 사적 인간으로서 활동하며 타인을 수단으로 간주하고 자기 자신까지 한낱 수단으로 격하시켜 낯선 힘의 노리갯감으로 전락시킨다.
[…]
인권은 그 자체로서는 공민권과 구별된다. 공민과 구별되는 인간은 누구인가? 시민사회의 구성원 이외의 어느 누구도 아니다.
[…]
무엇보다 먼저 우리는 공민권과 구별되는 이른바 인권이란 시민사회 구성원의 권리, 다시 말해서 인간들과 공동체로부터 분리된 이기적 인간들의 권리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한다.
[…]
그러나 자유라는 인권은 인간과 인간의 결속에 기초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과 인간의 구별에 기초한다. 자유는 이 구별의 권리이며, 제약된, 자기 자신에게 한정되어 있는 개인의 권리이다.
자유라는 인권의 실천적 유용화가 곧 사적 소유라는 인권이다.
사적 소유라는 인권의 근간은 무엇인가?

(1793년 프랑스 헌법)제 16조: “사적 소유의 권리는 각자의 재화와 수입, 각자의 노동과 근면의 과실을 자기 의지대로 향유하고 처분할 수 있는 모든 시민의 권리이다.”

사적 소유라는 인권은 타인과의 관계는 일체 단절한 가운데 사회와도 무관하게 자신이 재산을 마음대로 향유하고 처분할 수 있는 권리, 즉 자기만의 이용의 권리이다. 앞서의 개인적 자유와 함께 그 자유의 이러한 유용이 시민사회의 기반을 형성한다. 시민사회에서 만인은 타인에게서 자신의 자유의 실현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자유의 제약을 발견한다. 그러나 시민사회는 무엇보다 먼저

각자의 재화와 수입, 각자의 노동과 근면의 과실을 자기 의지대로 향유하고 처분할 수 있는

인권을 선언한다.
[…]
그러므로 이른바 인권 중에서 그 어느 것도 이기적 인간, 시민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인간, 즉 자기에 매몰되고 자신의 사적 이익과 사적 의지에 매몰되어 공동체로부터 분리된 개인을 초극하지 못한다. 인권 속에서는 인간이 유적존재로 파악되기는커녕 오히려 유적 삶 그 자체 곧 사회가 개인의 외부에 있는 영역, 개인의 본원적 자립성에 대한 제약으로 나타난다. 자연적 필연성, 욕구와 사적 이익, 각자의 재산의 보존과 각자의 이기적 인격만이 개인들을 하나로 묶는 유일한 끈이다.
[…]
현실적이고 개별적인 인간이 추상적 공민을 자신 속으로 환수하고, 개별적 인간으로서 자신의 경험적 삶, 개별적 노동, 개별적 관계 속에서 유적 존재가 되어 있을 때, 그리고 인간이 자기 ‘고유의 힘’(forces propres)을 사회적 힘으로 승인하고 조직하며, 따라서 그 사회적 힘이 더 이상 정치적 힘의 형태로 자기 자신으로부터 분리되지 않을 때, 이때 비로소 인간해방이 완성된다.

인권오름 제 11 호 [기사입력] 2006년 07월 05일 0:18:31 류은숙

인권오름 제 7 호 [기사입력] 2006년 06월 08일 2:41:15

글쓴이 :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활동가)

잘 알려진 프랑스 혁명의 1789년 인권선언(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은 신체제의 국가형성과 헌법제정의 원리를 밝힌 1791년 헌법 서문에 해당한다. 이 선언이 지향한 세상은 ‘구체제’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했는데, 무엇이 다른 것일까? 이전 세상을 지배했던 특권계급의 타도와 귀족제의 폐지가 정당하다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그 중심이 되는 봉건적 소유관계와 경제활동에 대한 봉건적 규제를 폐지하는 각종 ‘자유’가 선포된다. 재산권은 이들 자유 중 하나로서 국가와 헌법에 선행하는 자연적 기본권으로 선언된다. 이러한 사람의 자연권 보전을 도모하는 것이 정치적 결합의 유일한 목적이며, 사회 속에서 갖게 되는 유일한 제한은 권리의 평등을 정한 법률에 복종한다는 것뿐이다. 법률상 평등하기만 하면 경제적 활동의 자유를 통해 불평등이 확대되는 것은 하등 문제될 것이 없다. 그 결과 평등한 것은 ‘사람’이 아니라 ‘권리’가 돼버린다. 


이로써 신체제는 재산의 자유를 토대로 한 체제이고, 재산의 자유는 여러 자유 중 하나가 아닌 사실상 다른 모든 자유들의 토대가 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오직 일정한 수준의 재산을 가진 자들만이 참정권 등 권리를 갖게 되는 체제였다. 그것은 새로운 사회 세력인 부르주아의 우위권을 보장하는 것이었지, 농민과 도시민중을 동반자로 받아들인 것은 결코 아니었다. 국왕과 특권세력의 끈질긴 도발 속에서 위험을 느낄 때마다 민중에게 손을 내미는 일은 계속됐지만 말이다.

부의 축적을 제한하고 모든 사람에게 투표권을 보장하자는 소수의 제안은 묵살된다. 그런 목소리 중의 하나가 로베스피에르의 제안이다. 왕국에서 공화제로 이행하면서 새로운 공화국 헌법의 제정사업이 시작됐다. 1793년 국민의회는 새로운 헌법에 대해 논의했고, 로베스피에르는 새 헌법의 정신에 대해 먼저 논의하여 그것을 새로운 인권선언으로 정리할 것을 요구했다. 그리고 로베스피에르는 자신이 작성한 38개항의 인권선언 초안(아래 인용구는 모두 로베스피에르 초안에서 따옴)을 제안했다. 오늘 읽어볼 “재산권에 대하여”는 인권선언 초안의 재산권 조항에 대해 로베스피에르가 덧붙인 해설이다.


소유는 자연권 아닌 사회적 제도

재산권에 대한 로베스피에르의 생각은 1789년 선언이나 여타의 헌법구상과 달랐다. 사람의 ‘생존’과 ‘자유’만을 기본적 인권으로 하고, ‘소유’를 자연권에서 추방해버린 것이다. “권리가 공허한 것이 되지 않고 평등이 환상에 그치지 않으려면” 소유를 자연권에서 추방하여 사회적 관계 속에서 그 힘의 남용을 금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소유가 단순한 사회적 제도인 이상 그 모든 것은 인민의 의사를 자유롭고 엄숙하게 표명한 법률에 의해 그 한계가 정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사회적 존재로서의 소유와 그것을 규제하는 법률을 적극적으로 사고한 것이 자연적 기본권으로서의 소유와 그것을 뒷받침하는 법률관념과는 다른 점이다. “압제에 대한 저항을 법적 형식에 맞추는 것은 폭정에 최후의 미화를 부여하는 것”이라며 비합법의 저항을 정당화한 것이나, “재산권은 우리 동료 인간의 안전, 자유, 생존, 재산을 해칠 수 없다”는 주장은 탐욕스런 계급에게는 너무 간 큰 소리였을 것이다. 그의 제안은 동료 정치집단의 권리선언에도 거의 영향을 주지 못했다.

민중의 인권구상과의 차이

로베스피에르와 그 동료들과의 격차가 컸다면, 또 다른 격차는 민중의 인권구상과의 관계에서이다. 당시 입법자들이 염두에 둔 재산권의 현실적 대상은 토지소유로서, 그들은 토지소유권에 대해 특별히 언급하지 않고 재산 소유권 일반을 ‘자유’로서 규정했다. 토지나 생산수단의 소유를 다른 소유와 구분하지 않고 동일한 원리에 따르게 할 때 아무리 법률상의 제한을 가하더라도 자본의 소유자와 몸뚱이 하나밖에 가진 것 없는 이들에게 서로 다르게 작용할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민중의 인권구상에서는 생산수단을 사유화한 조건에서는 아무리 균등하게 분배된다 하더라도 불가피하게 불평등이 야기될 것임을 지적하고 있다. 반면, 로베스피에르는 1789 선언이 말한 소유의 신성불가침성을 신랄하게 공격했지만, 생산수단을 사적으로 소유한 이들과 노동하는 이들의 자유를 동일한 원칙에 따르게 한 점에서는 동료들과 같았다. 그런 이유로 “재산이라는 단어로 인해 누구든 놀라게 하지는 않겠다.”고 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의 포효대로 “지상의 주권자”들은 “자유의 진보를 방해하고 인간의 권리를 소멸시키기 위해” “전쟁을 일으키는 자들”에게 저항하는 정신과 “한 국가의 시민들처럼” “힘이 닿는 대로 서로 도와야 한다”는 해결방법을 계속 찾아왔다.

우리 주변엔 그런 예들이 수없이 많다. 이라크에서의 학살에 아파하고 눈을 부릅뜬 사람들, 서울역 로비에서 밥 굶어가며 싸우고 있는 KTX 승무원들, 평화적 생존권을 염원하는 평택 대추리의 주민들과 광화문에서 촛불을 맞든 사람들, ‘자유’로운 ‘생존’을 위해 ‘부자유’한 한미 FTA 협상에 맞서는 사람들…. 여기서 “살인자와 약탈자를 기소”하며 “사회 성원의 단 한사람이 억압된 경우라도 그것을 사회전체에 대한 압제”로 여기고, “한 국가의 국민을 억압하는 자를 모든 국가의 국민들의 적으로 선포”하는 힘을 발견하자. [류은숙] <2006년 06월 08일 인권오름 제7호>

로베스피에르, “재산권에 대하여”(On Property Rights)(1793)

먼저 재산권에 대한 여러분의 이론을 완성하는 데 필요한 몇 가지 조항들을 제안하겠고 이 “재산”이라는 단어로 인해 누구든 놀라게 하지는 않겠다. 비열한 인간들, 가치를 재는 척도라곤 황금밖엔 없는 자들아, 그 재산들의 원천이 아무리 더럽다 할지라도 나는 당신들의 재산에 손대고 싶은 맘은 추호도 없다.
… 선의로서 재산권을 지배하는 원칙을 세우자. 인간의 편견과 악이 그렇게 간고하게 비밀로 감추려 한 것이 재산권 말고는 없기에 그렇게 하는 것이 더욱 필수적이다.

이 인육상인에게 무엇이 재산인지 물어보라. 그는 아직 살아있는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을 넣어 보관하는 선박이라고 부르는 이 긴 관을 보여주면서 여러분에게 말할 것이다. “이것이 나의 재산이다. 나는 일인당 얼마씩을 주고 이것들을 샀다.” 토지와 가신들을 가지고 있거나 또는 이것들을 더 이상 소유하지 못하면 곧 세상이 뒤집어진다고 믿는 이 귀족에게 물어보라. 그는 재산에 대해 비슷한 생각을 보여줄 것이다.

카페 왕조의 위엄 있는 성원들에게 물어보라. 그들은 모든 재산권 중에서 가장 신성한 것은, 의심의 여지없이, 프랑스 영토에 살고 있는 2천5백만의 사람들을 자신의 뜻에 따라, 합법적으로, 군주로서 억압하고, 타락시키고, 쥐어짤 수 있는, 그들이 예로부터 누려온 대대로 내려오는 권리라고 말할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에게는 전혀 재산에 어떠한 도덕적 원칙이 있어본 적이 없다. 우리의 인권선언이 “인간의 제일 가치있는 재산이며 자연으로부터 받은 가장 신성한 권리”인 자유를 정의하면서 같은 오류를 저지르는 것으로 보이는 것은 왜인가? 우리는 자유의 한계가 타인의 권리라는 것을 타당하게 이야기했다. 왜 우리는 이 원칙을 하나의 사회적 제도인 재산권에는 적용하지 않았는가? 마치 자연의 영원한 법이 인간의 관습들보다 덜 신성하기나 한 것처럼! 여러분은 재산의 행사를 위한 가장 큰 자유를 확고히 하기 위한 수많은 조항들을 만들면서, 재산의 성격과 정당성을 결정하기 위한 말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 결과 여러분의 선언은 보통 사람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본가들, 부당이익자들, 투기꾼들, 전제군주들을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나는 다음과 같은 진리를 진지하게 확립함으로써 이러한 결점들을 수정할 것을 제안한다:

1. 재산이란 각 시민이 법으로 그에게 보장된 몫의 재산을 향유하고 마음대로 처분하는 권리이다.
2. 재산권은 다른 모든 권리와 마찬가지로 타인의 권리를 존중할 의무에 의해 제한된다.
3. 재산권은 우리 동료 인간의 안전이나 자유나 생존이나 재산을 해칠 수 없다.
4. 이 원칙을 침해하는 모든 재산 소유, 모든 상업적 거래는 불법적이고 비도덕적인 것이다.

또한 여러분은 세금에 대한 반박할 수 없는 원칙으로서, 세금은 오직 인민 혹은 인민의 대표자들의 의지의 표현일 뿐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여러분은 전체의 이해에 필수불가결한 한 조항을 누락시켰다. 즉, 누진세 원칙 세우기에 소홀했다. 이제, 공공 재정의 문제에는 자신들의 소득에 따라-즉, 자신들이 사회체제로부터 끌어낸 물질적 이익에 따라서- 국가 지출에 대해 누진적으로 기여하는 의무를 시민에게 부과하는 것보다도 더 사물의 본성과 궁극적인 평화에 굳건히 기초한 원칙이 있다.

나는 이 원칙을 다음과 같은 조항으로 표현할 것을 제안한다.
“생존에 필수적인 만큼을 넘지 못하는 소득을 가진 시민은 국가 지출에 기여할 의무를 면제받는다. 그 외 다른 시민들은 자신의 부에 따라 누진적으로 국가지출을 책임져야 한다.”

위원회(국민의회의 제헌위원회)는 또한 모든 국가의 모든 사람들을 결속시키는 우애의 의무와 그들의 상호원조의 권리를 확고히 하는 것을 완전히 무시했다. 전제군주들에 대항하는 국민들의 영원한 동맹의 토대를 무시한 것으로 보인다. 여러분의 선언은 소유하고 거주하도록 자연으로부터 땅을 부여받은 거대한 민족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지구의 고립된 한구석에 몰아넣어진 한 무리의 인간들을 위해 만들어진 것 같다.

나는 다음의 조항들을 부가함으로서 이 큰 격차를 메울 것을 제안한다. 이 조항들은 여러분이 끊임없이 왕들과 불화를 겪게 만드는 단점을 지니고 있을지 모르지만, 모든 민족들의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고백하건대, 이 단점은 결코 나를 두렵게 하지 않는다. 그들과 화해하기를 원치 않는 사람들 역시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이 네 개의 조항이다:

Ⅰ. 모든 나라의 사람들은 형제이고, 여러 민족들은 한 국가의 시민들처럼 힘이 닿는 대로 서로 도와야 한다.
Ⅰ. 한 국가의 국민을 억압하는 자는 모든 국가의 국민들의 적으로 선언된다.
Ⅰ. 자유의 진보를 방해하고 인간의 권리를 소멸시키기 위해 한 민족에게 전쟁을 일으키는 자들은 예사로운 적이 아니라 살인자이자 반도, 약탈자로 기소되어야 한다.
Ⅰ. 왕들, 귀족들, 폭군들은 누구든 지상의 주권자인 인류와 우주의 입법자인 자연에 대해 반란을 일으킨 노예들이다.[…]

인권오름 제 7 호 [기사입력] 2006년 06월 08일 2:41:15 류은숙

인권오름 제 3 호 [기사입력] 2006년 05월 10일 3:09:06

글쓴이 :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활동가)

2006년 5월 4일, 판교 ‘로또’가 발표돼 들썩거리던 날, 평택 대추리에서는 평생 살아온 자기 땅에서 늙은 농민들을 내쫓으려는 군경 합동 작전이 벌어졌다. 법률도 정치가도 군인도 경찰도 이 늙은 농민들에게 땅을 파서 먹고 산 것이 죄라고 윽박지르며 폭력으로 짓밟았다. 현장에서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한 국가인권위의 직원들이나 기자들은 ‘인권은 없다’라는 탄식을 주워 담기라도 했을까? 땅 파서 먹고 사는 사람들의 피눈물을 우려내며 경찰과 군대, 용역깡패들로 중무장한 국가권력이 인권을 패대기친 5월, “왜 쏘았니 왜 찔렀니 트럭에 싣고 어딜 갔니”라던 광주의 노래가 소스라치게 기억되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오늘 읽어볼 인권문헌은 노래 가사이다. “디거스의 노래”를 통해 17세기의 땅 파는 사람들과 21세기의 땅 파는 사람들을 생각해보게 된다. 이 노래의 원작자는 17세기의 디거스가 아니지만 사실상 그렇다고도 할 수 있다. 17세기에 있었던 디거스의 주장을 녹여내어 20세기의 영국 민요가수 레옹 로젤슨이 만든 노래가사이다. 로젤슨은 디거스의 지도자였던 윈스턴리가 팜플렛에 남긴 말들을 녹이고 전해 내려오는 구절들을 모아서 이 노래를 만들었다. 디거스의 주장이 담긴 팜플렛을 모두 읽지 않더라도 이 노래 가사에 함축된 그들의 주장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여성과 아이들까지 내몬 지주들

디거스(Diggers)는 직역하면 ‘땅 파는 사람들’이란 뜻인데, 1649년에서 1650년, 잉글랜드의 성조지라 불리는 작은 언덕에 농사를 지으러 모인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들의 수는 수십 명에 불과했고 분명 행색은 초라했겠지만 그들이 품은 이상은 결코 그렇지 않았다.

땅을 갈고 씨 뿌릴 준비를 하며 디거스는 대토지소유에 반대하고 재산공유제를 요구했다. 1649년은 영국 국왕 찰스 1세가 처형된 해였다. 이때 디거스는 영국의 시민전쟁이란 왕과 대토지소유자들에 맞서 싸웠던 것이니 왕이 처형된 마당인 지금, 토지는 마땅히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경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던 것이다. 디거스의 활동은 공화정 정부를 놀라게 했고 지역 지주들의 반감을 북돋았다. 법적인 탄압은 물론이고 고용된 패거리(요즘말로 용역이라 할 것이다)와 군대까지 나서 아이나 어른에게나 폭력을 행사하고 집을 불사르고 경작물을 파괴했다. 모욕당하고, 체포되고, 감금당하는 속에서 디거스는 결국 1650년 3월 말경 폭력으로 해산됐다. 디거스가 황무지를 일구어 만든 땅에 자기 가축을 몰아넣고 폭도들을 동원해 집을 부수고 여성과 아이들까지 내몬 사람은 지주이자 성직자였다. 1650년 4월 1일, 윈스턴리와 14명의 디거스는 불법 집회, 침입, 공안방해를 이유로 기소됐다. 기소의 결과는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고 한다. 이것이 디거스의 작은 실험의 끝이었다. 그러나 과연 끝이었을까?


땅을 갖는 사람들, 땅 밖으로 내몰리는 사람들

공산주의적 농경사회를 꿈꾸었던 디거스의 이상은 그 지도자였던 제라드 윈스턴리가 썼던 팜플렛에 남아있다. 대표적으로 ‘잉글랜드의 가난하고 억압받는 민중선언’(1649년)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땅의 모든 소산은 적과 동지 할 것 없이 모든 사람의 공통 생계를 위해 창조되었다.”
“애초 토지 소유는 전쟁으로 얻어진 것이고 토지의 소유로 말미암아 인류의 한편이 다른 한편에 대해 살인과 절도를 하게 되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살인하고 훔치는 무력의 힘이 정부를 세웠고 그 정부를 지탱하고 있다.”

디거스와 윈스턴리의 주장을 계속 들어보자.

“함께 일하라, 함께 빵을 먹어라.”
“내 것이고 네 것이라 하는 이 특별한 재산은 인민에게 모든 고통을 가져다주었다. 첫째 재산은 사람들로 하여금 서로 훔치게 만들었고, 둘째 훔친 사람들을 처형하는 법을 만들었다. 재산은 사람들에게 악마의 행동을 하도록 유혹하고 나서는 그런 일을 했다고 사람들을 죽인다.” - [새로운 정의의 법, 1648년]

“진정한 종교와 순수함은 이것이다. 정복자들의 힘으로 보통 사람들에게서 빼앗아간 땅을 되돌려놓는 것이고 그럼으로써 억압받는 자들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다.”
“왕권이 법을 세우고 정부의 통치가 이를 지킨다. 정의인 척 하고 있지만 법이란 억압하는 무력을 온 힘으로 지탱하는 것이고 그 자식인 재산을 지키고자 하는 것이다. …법은 누구에게는 울타리를 쳐서 토지를 갖게 하고 누구는 토지 밖으로 내몬다. 일부 사람에게는 토지를 주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토지를 부인한다. 이는 정의의 법에 반하는 것이다. …진정으로 대개의 법률은 빈민을 부자의 노예로 만드는 것에 지나지 않으며 그럼으로써 억압을 유지하는 것이고 재산의 엄중한 수호자인 것이다.” - [의회와 군대를 위한 새해선물, 1650년]

“그 누구도 부자일 수 없다. 하지만 자신의 노동에 의해서나 또는 그를 돕는 다른 사람의 노동으로 인해서 부유한 것임에 틀림없다. 사람이 이웃에게서 어떤 도움도 얻지 못한다면 결코 일 년에 수백 수천의 재산을 모을 수 없다. 타인이 그가 일하도록 도왔다면 그 재산은 그 사람의 것일 뿐 아니라 그 이웃의 것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신의 노동뿐만이 아닌 타인들의 노동의 소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부자들은 편하게 살고, 타인의 노동으로 먹고 입는다. 이는 그들의 수치이지 고결함이 아니다. 받는 것 보다는 주는 것이 더 축복받은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자들은 노동한 사람들의 수고로부터 자신들이 가진 모든 것을 받기만 하는 것이고, 부자들이 주는 것이란 자기의 노동이 아닌 타인의 노동을 양보하는 것이다.” - [자유의 법, 1652년]

“경험이 보여주는 것처럼 일단 지주인 자는 출세하여 판사, 지배자, 장관이 된다.” - [진정한 수평파의 진보된 기준, 1649년]

이렇듯 디거스는 사유재산, 특히 모든 부의 원천인 토지 소유를 “모든 전쟁, 유혈, 도둑질과 인민을 비참하게 만들고 노예화시키는 법률의 원인”으로 보았다. ‘재산권의 신성불가침’을 초석으로 만들어진 승리자(부자)들의 인권선언들과는 궤도를 달리하는 민중의 인권선언들에서는 한결같이 발견되는 점이다. 부자들의 인권선언이 입으로만 만인의 평등을 외치며 재산권에 따른 권리의 불평등을 법의 이름으로 합리화한 것과는 다르다.


‘땅의 사유’ 부정, 평화주의로 연결돼

사유재산의 부정은 평화주의로 직결된다. 윈스턴리는 “전쟁이 부자를 더 부자로, 가난한 사람을 더 가난하게 만들며 권력의 동맹을 더 강하게 만든다”고 꿰뚫어 보았다.

디거스의 사유재산 없애기 실험이 진행되는 동안 자신들이 받는 숱한 폭력에도 불구하고 디거스 자신들은 폭력 사용을 거부했다. 디거스는 공유지와 황무지를 경작하는 것이 허용되기만 한다면, 영국의 모든 빈민들이 자신들의 실험을 따를 것이라 믿었다. 자신들이 사랑의 공동체를 세우면 전 영국 사회에 스며들 것이고 전 유럽도 그러할 것이고, 결국에는 부자들과 권력자들도 자신들에게 합류하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폭력이 아닌 자신들의 ‘실험’과 ‘보기’로서 그렇게 될 것이라 믿었다.

너무 순진하다고, 경제사회적 조건이 그런 요구에 귀 기울일 단계가 아니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디거스의 이상과 실험은 오랜 세월 겉만 번지르르한 인권선언에 도전해온 사람들의 가슴과 머리에 면면히 이어져온 생각이며 팔과 다리로 옮겨졌던 실천이지 않았던가.

17세기의 디거스가 받았던 수난을 21세기의 ‘땅 파는 사람들’이 여전히 당하고 있다. 부동산 투기와 자유 무역으로 수탈하는 것으로도 모자라서 세계 최고의 전쟁광 미국의 전초기지를 마련해주려고 땅 파는 사람들을 땅에서 내모는 폭력이 오늘 평택에서 계속되고 있다. 17세기의 디거스가 품었던 믿음대로 우리가 ‘합류’해주는 일이 21세기의 땅 파는 사람들을 살릴 길일 것이다. [류은숙] <2006년 5월 10일 인권오름 제3호>

디거스의 노래 : 뒤엎어진 세상

1649년
성 조지 언덕에
디거스(the Diggers)라 하는 남루한 집단이
인민의 의지를 보이려 등장했다
디거스는 지주에게 도전했다
디거스는 법에 도전했다
디거스는 토지를 빼앗긴 사람들
자신들의 것이었던 땅의 반환을 요구하는

우리는 평화로 왔다, 말하기를
땅을 파고 씨앗을 뿌리려고
우리는 공동의 땅에 일하러 왔다
또 황무지를 경작하려 왔다
이 나뉘어진 땅을
우리는 완전한 전체로 만들 것이다
그래서 땅이 모든 사람을 위한 공통의 보물 창고가 될 수 있도록

재산이라는 죄악을
우리는 경멸한다
사적으로 갖기 위해 땅을
사고 팔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다
도둑질과 살인으로
그들은 땅을 취했다
그들의 명령에 이제 사방에서 장벽이 세워지고 있다

그들은 법을 만든다
우리를 꽁꽁 묶어두려고
성직자들은 천국으로 우리를 현혹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옥에 떨어지라고 저주한다
우리는 경배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섬기는 신에게는
부자들을 배불리는 탐욕의 신에게는
반면에 가난한 이들은 굶주리고 있다

우리는 일한다, 우리는 함께 먹는다
우리에겐 어떤 무기도 필요없다
우리는 주인들에게 절하지 않겠다
지주들에게 지대를 지불하지도 않겠다
우리는 자유인이다
우리는 비록 가난하지만
디거스는 영광을 위해 모두 일어섰다

이제 일어서라
재산가들로부터
명령이 떨어졌다
그들이 용역과 군대를 보냈다
디거스의 요구를 묵살하기 위하여
디거스의 오두막을 무너뜨리려고
디거스의 곡식을 파괴하려고
그들은 흩어졌고 오직 비전만이 남아있다

너희 가난한 이들은 용기를 가져라
너희 부자들은 조심해라
땅은 공통의 보고로 만들어졌다.
모든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도록
만물은 공유이며
모든 사람은 하나이다
우리는 평화로 왔다
그들을 해치우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인권오름 제 3 호 [기사입력] 2006년 05월 10일 3:09:06  류은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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