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비상시국회의/기자회견 발언문(류은숙, 인권연구소 연구활동가)

코로나19의 복판에서 막대한 희생과 고통을 겪으신 분들, 또 지금도 겪고 있는 분들, 산불과 가습기살균제 등 각종 재난과 참사를 겪었으나 제도의 잘못으로 여전히 고통받고 있는 분들, 노동재해 및 각종 불평등과 차별의 고통을 겪고 있는 모든 분들을 기억합니다. 모든 분들의 몸이 여기에 있지는 않지만, 저마다의 사연을 가진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의 무게가 이 자리에 함께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취약한 인간입니다. 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우리를 불안하게 하고 괴롭히는 것은 헤아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은 취약한 서로를 지켜내기 위해 인권이란 걸 만들어냈습니다. 우리가 어떤 상태에 있는 사람이든지, 서로를 동등한 가치를 지닌 사람으로서, 사회 속 구성원으로서 인정하고 존중하자는 약속이 인권입니다. 이 약속을 잘 지키는 사회는 상호인정과 상호의존을 바탕에 깔고 움직입니다. 반면 그렇지 않은 사회는 서로에게서 탐탁치 않은 요소만 콕 집어서 면박주고 무시하고 내쫓으려 합니다. 서로 인정도 존중도 하지 않는 사회에서 불안과 괴로움은 커질 뿐이고, 인권은 이름뿐일 것입니다. 잔인함과 폭력이 법과 질서의 탈을 쓰고 설쳐댑니다. 그런 사회의 구성원일수록 더더욱 취약해지고 위험해질 뿐입니다.

우리는 어떤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고 싶은 것일까요?

차별금지법은 우리가 어떤 사회에서 살고 싶은가를 표현하는 말에 운을 떼는 것입니다. 토대가 있어야 저마다 창의적으로 더 나은 사회 만들기에 기여할 수 있습니다. 차별금지법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은 인권으로써 서로를 의지하고 지원하고자 합니다. 상호인정과 상호의존과 연대의 가치를 토대로 인권은 새로운 변화와 위기에 걸맞게 법과 제도를 만들고 위기를 헤쳐나갈 것을 추구합니다.

차별금지법을 조롱하고 저주를 퍼붓는 분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용기를 한 번 내 보십시오. 어떤 용기냐 하면, 나와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아볼 용기입니다. 자기 삶의 방식과 타인에 대한 태도를 바꾸려는 용기를 발휘해 보십시오. 서로 기대고 돌볼 수 있는 관계의 경험, 시민적 덕성을 체험하는 경험을 만들어 보십시오. 차별금지법과 함께 하려는 시민들의 합주에 당신이라는 악기로 참여해주시기를 초대합니다.

누군가 작디작은 조약돌을 모아 애써 쌓은 탑을 무너뜨리거나 시린 손으로 애써 만든 눈사람을 걷어차 버리는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정작 자기를 인정해주지도 존중해주지도 않는 권력자들을 향해서는, 자기의 삶을 위태롭게 만드는 나쁜 제도를 향해서는, 눈 한번 흘기지도 큰소리 한번 내지 못하면서, 우연히 자기 옆을 지나가는 만만해 보이는 약자를 골라 괴롭히고 고통을 주는 일이 즐겁고 행복할 리 없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사람의 존엄과 동등한 가치를 존중하는 관계의 기쁨에 초대합니다.

국회를 비롯한 정치권에 묻습니다.

저와 같은 인권활동가들은 각자도생의 반대말을 정치라 여깁니다. 정치는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함께 살기 위한 삶의 양식과 제도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그 출발점이자 토대가 되는 기본법조차 만들지 못하는 정치는 시민들에게 정치의 죽음을 고하고 있습니다. 시민사이에 위계를 나누고 인권의 가치와 명분마저 걷어치우는 이익추구와 당파적 경합은 정치의 죽음으로 가는 길일 뿐입니다. 정치의 죽음으로 가는 길에서 제각기 노잣돈을 아무리 챙긴다 한들, 그 노잣돈 어디에 쓰겠습니까? 정치의 소생을 위한 길로 노정을 바꾸십시오. 그 이정표가 되는 인권의 가치는 아무리 나눠 써도 채워지고 넘쳐나는 정치의 자산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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