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인권적 언행의 장본인이 인권교육을 책임지게 둘 수 없다

반인권적 언행 일삼는 이충상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에 대한 인권교육 전문위원 의견서 -

우리는 국가인권위원회(아래 국가인권위)의 주요 수임 사항 중 하나인 인권교육 분야의 전문위원들로서 아동·청소년·여성·노년·복지·언론·교육 등 각계에서 인권 인식의 향상과 실천을 도모하는 사람들입니다.

인권에 대한 앎과 실천은 누구나 자기를 지키고 타인을 존중하기 위하여 필수적입니다. 모든 사회 구성원이 자신의 인권을 알고 이를 상호의존적이고 상호호혜적으로 행사할 수 있을 때 인권은 실현될 수 있습니다. “교육은 인격의 완전한 발전과 인권 및 기본적 자유에 대한 존중의 강화를 목적으로 하여야 한다고 천명한 세계인권선언을 비롯한 국제인권규범은 인권교육을 하나의 권리로 규정하고 인류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교육과 학업을 통하여 이를 실천하기 위해 노력할 의무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인권교육은 모든 인권의 실현을 위한 기본적 권리입니다. 한국의 국가인권위가 인권교육을 주요 수임사항으로 삼고 있는 데는 이런 배경이 있습니다.

국가인권위는 사회구조적 제도와 정부의 행태를 인권의 렌즈로 감시하며 침해의 시정과 더 나은 실현을 도모하는 역할을 하는 독립적인 국가 기관입니다. 국내의 헌법이나 법률에 의해 설치될지라도 국가인권위는 국제적으로 승인된 인권규범을 자국에 적용하는 역할을 담당합니다. 국내법만이 아니라 국제인권규범을 활동의 틀로 갖습니다. 또한 인권에는 실정법이 아우르기 힘든 영역이 존재합니다. 기존 질서에 부합되는 법규정만으로는 진전될 수 없는 인권상황이 존재하기에 사법기관의 판단과 다를 수 있는 여지가 충분히 존재합니다.

그런데 최근 인권침해의 당사자가 된 이충상 위원은 앞서 말한 국가인권위 및 인권교육의 의미와 가치를 구현할 수 있는 인물인가요?

국가인권위 상임위원으로서, 특히 인권교육을 책임지는 상임위원으로서 이충상 위원은 그 지위와 역할을 배반하는 혐오 표현과 행태를 일삼아왔습니다. 지난 521일자 경향신문의 보도에 언급된 표현(‘...항문이 파열되어 대변을 자주 흘리기 때문에 기저귀를 차고 살면서도 스스로 좋아서 그렇게 사는 경우에 과연 그 게이는 인권침해를 당하면서도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며...’)은 과연 인권위원이 공론장에서 쓸 수 있는 언어인지 충격적입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에이즈예방법에 대한 국가인권위의 위헌 의견에 반대하면서 이충상 위원이 낸 의견서는 충격적인 표현들(‘에이즈 환자는...사망하지는 않는 경우에도 본인이 커다란 고통을 겪으면서 골골 살고 국민에게 큰 짐임’)로 점철됩니다. 또다른 국가인권위 결정문에서 소위 소수의견으로 표출된 인식을 보면, 헌법과 인권 원리에 대한 접근 태도 자체가 인권위원의 위치에 적합한 것인지가 의심스럽습니다. 일례로 국가인권위원회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에 대한 의견표명 결정문에 나타난 이충상의 소수 의견을 보면, 노동자와 노동조합에 대한 왜곡된 인식과 정치나 사회문제 해결을 사법화하려는 경향이 짙게 드러납니다. 국가인권위 전원회의 산하 아동권리위원회의 책임자이면서 윤석열차그림을 그린 고등학생을 각종 위협으로부터 보호하지 않은 사례, 국가인권위 직원들에 대한 모욕적 언사로 인해 국가인권위 공무원 노조에서 조사관 비하, 무시 등을 자제해달라는 요청을 하기에 이르렀고 직원들이 괴롭힘 피해를 호소하고 있는 등(518일자 퇴임하는 서미화 인권위원의 경향신문 인터뷰 참조) 이충상 위원은 혐오와 차별주의를 노골적으로 드러내온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이충상 위원은 다양성에 대해 단단히 오해하고 있습니다. 반인권적인 언행을 자제해달라는 요청이 있을 때마다 자신의 반인권적 표현을 소수의견이며 다수결의 폭력에서 보호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합니다. 다양성에 대한 존중은 분명 중요한 인권적 가치입니다. 하지만 다양성은 성소수자, 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의 권리를 위한 것이지, 기득권이나 특권의 옹호를 기본적 인권과 병렬적으로 나란히 놓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혐오의견이나 표현도 병렬적으로 놓인다면, 기본적 인권에 대해 인식도 판단도 하지 못하는 극단적 상대주의에 흐를 뿐입니다. 다원성과 다원주의를 논할 수 있는 전제는 인권의 원칙, 즉 모든 구성원의 고유한 존엄성과 평등한 자유에 대한 존중이라는 정당성 판단을 거쳐야 합니다. 극단적 상대주의의 주장으로 자신의 혐오 표현을 옹호하려 드는 것은 이충상 위원의 인권의식 결여와 무적격성을 증명할 뿐입니다.

이에 이충상 위원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열악한 처지의 사회구성원에게 영향을 미치는 정치적 이슈에 대해 제대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 즉 검토·성찰·주장·논쟁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까? 종교·젠더·성적지향·인종·계급 등이 다르더라도 동료 시민을 동등한 권리를 가진 사람으로서 인정하고 존중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까? 자신이 국가인권위 상임위원으로서 내리는 판단과 결정이 타인의 삶, 특히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삶과 권리에 무엇을 의미하는지 파악할 능력이 있습니까? 지배적인 권력과 정치인들을 비판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까?

유감스럽게도, 이충상 위원이 국가인권위의 각종 결정과정에서 보여준 의견과 행태는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소수자에 대한 인지 및 인식 능력 결여, 혐오 표현에 대한 무감수성과 소수자에 대한 증오의 선동, 국가인권위 직원들에 대한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할 만한) 폭력적 언사, 동료 위원들에 대한 무례와 협박 등 지금까지 드러난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당신은 인권위원은 물론 인권교육을 책임질 자격이 없습니다. 더구나 전원회의 산하 아동권리위원회를 맡고 있다니요? 곧 다가올 유엔의 국가별 인권 상황 정기 검토(UPR) 회의에 참가한다고요? 당신 입에서 나올 말들이 인권의 장에 난입한 흉기가 될 것으로 염려됩니다. 혐오 표현을 일삼는 자들이 그 대상에게 해를 입힐 수 있는 여지를 주지 않는 것은 인권의 주인인 우리 모두의 책임입니다.

생태 위기, 돌봄 위기, 골이 깊어가는 불평등의 격차, 곳곳에서 번져가는 혐오와 배제, 폭력의 파고는 인권교육의 실천을 절실하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와 같은 위기 시에 약자와 소수자들에 대한 혐오와 배제는 더욱 심해집니다. 비인간화와 인권침해는 언제나 말과 함께 시작됩니다. 모욕하고 비하하는 말, 선입견과 근거가 미약한 공격적 표현 등입니다. 그런 시작을 막지 못할 때 대규모의 심각한 인권침해가 발생합니다. 특정 개인이나 집단이 비인간적으로 묘사되는 것을 막는 것은 지금 당장 중요한 실천입니다.

인권교육은 사회구조적 불평등에 대하여 비판적으로 사유할 수 있는 역량, 협소한 자기 이해를 넘어 둘레 세계의 문제에 접근할 수 있는 역량, 타자의 고통을 공감하는 태도로 상상할 수 있는 역량 등을 추구합니다.

이런 인권교육을 혐오와 차별주의에 사로잡혀 인권의 언어를 제대로 구사할 줄 모르는 인권위원이 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합니다.

자신의 혐오 표현과 행태에 당장 사과하고 사퇴하십시오. 우리 인권교육 전문위원들은 당신이 주재하는 어떤 회의도 참가 거부할 것이며, 당신이 행사하려는 어떤 권한도 인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의 반인권적 행태에 항의하고 저항하는 움직임은 우리만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는 인권사회의 일원으로서 계속 동참하며 주시할 것입니다.

2023523일 국가인권위원회 인권교육 전문위원

구정화(경인교대 사회과교육과 교수)

김은희(인권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

류은숙(인권연구소 대표)

박영철(울산인권운동연대 대표)

배경내(인권교육센터 들 상임활동가)

윤여진(언론인권센터 상임이사)

이병구(양심과 인권-나무 사무처장)

이상재(대전충남 인권연대 사무국장)

허창영(전라북도교육청 교육인권센터 인권보호팀장

인권연구소 '창' 대표집필 후 연명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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