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6회 세계인권선언의 날 기념 인권운동 공동 기자회견
윤석열이 참칭한 주권을 회수하여 새롭게 재구성하는 힘이야말로 인권 중의 인권이다.
- 류은숙(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오늘은 세계 인권의 날로 불리는 세계인권선언 제정 76주년을 맞는 날입니다. 오늘 우리는 역사 앞에서 흐느낍니다. 흐느끼다 못해 꺼이꺼이 통곡하게 되는 우리의 인권 감수성은 역사를 이해하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4.3항쟁과 5.18 민주화운동의 영령들, 세월호와 이태원 참사를 비롯한 각종 재난 참사의 피해자들, 파렴치한 전쟁 범죄의 희생자가 된 팔레스타인 사람들···. 역사적으로 누적된 국가 범죄와 이어진 많은 것들이 지금도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평화와 인권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세계인권선언에는 물론 한계가 있고 당대 주요 정치 세력간 절충의 산물로서 갱신돼야 할 여지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긴 세월 동안 기본적 인권과 평화에 대한 존중이라는 국제질서의 최소기준으로 작동해온 것은 세계 시민들의 지속적인 투쟁에 힘입어서입니다. 그런데 그 최소 가치에 부응해온 국제질서가 흔들리고 위협받고 있습니다. 극단적 증오와 혐오폭력, 불의한 전쟁과 학살이 세계 곳곳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고 이를 제어해야 할 정치마저 이에 편승하여 각종 위기를 증폭시켜 왔습니다.
이런 위기의 연장선이자 극단적 모습이 한국에서 드러난 것이 지난 12월 3일, 윤석열의 친위쿠데타입니다. 민주주의 국가의 최고 정치지도자마저 극우 이념에 사로잡혀 반민주적인 폭거를 저질렀고 여전히 그를 옹호하는 특권 세력의 모습은 세계인권선언의 최소한의 기준과 원칙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되새겨줍니다. 또한 윤석열의 즉각 퇴진과 구속처벌이 최소한의 필수 조치라고 말해줍니다.
인류의 보편가치에 대한 위협과 각종 위기 앞에서 대한민국이란 정치공동체가 져야 할 책임은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런 엄중한 시절에 계엄이라니요? 시민에게 총을 들이대다니요? 헌법기관을 군홧발로 짓밟다니요?
우리가 역사에서 배운 것은 ‘폭압을 일삼는 정권을 방치하는 것은 평화와 인권이라는 인류의 가치를 위협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세계인권선언을 비롯한 인권의 약속이 맺어진 배경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인류 역사의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인권을 전 지구적인 관점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그러하기에 국내적으로는 폭압을 대외적으로는 적대적인 국제질서와 전쟁 책동을 일삼고 기후 위기 대응에 무책임한 윤석열 정권을 해체하는 것은 한 국가공동체의 시민으로서의 의무일 뿐 아니라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지켜야 하는 마땅한 의무임을 상기합니다.
‘오죽하면 그렇겠느냐’며 여전히 반란 패거리를 감싸는 세력이 있습니다. ‘어느 정권이라고 온전히 인권을 보장한 적 있느냐?’고 아직도 상황 파악을 못하고 이죽거리는 세력이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윤석열에게 묻는 책임은 상대평가가 아닌 절대평가입니다. 윤석열과 ‘국민의 힘’은 절대 넘어서는 안되는 문턱을 짓밟고 넘어섰습니다. ‘문턱’이란 ‘지켜야 할 최소기준’을 말합니다. 시민의 머리에 총을 겨누라는 모의와 지시를 ‘결단’이라 부른다면, 이 세상에 남아날 문턱은 없을 것입니다. ‘처단’이라는 흉폭한 단어는 저들을 겨냥해야 할 뿐입니다. 여러 가치들이 경합할 때 인권은 가장 우선순위를 차지하며 기본적 인권이라는 문턱에 동의해야만 그 다음 논의가 가능하다는 것이 세계인권선언이 말하는 ‘질서’입니다.
윤석열의 인권유린은 세부적이고 구체적인 정책의 실책을 헤아리는 것을 넘어서는 문제입니다. 하나하나의 개별적 인권침해를 합하는 것을 넘어 총체적으로 인권을 짓밟은 것입니다. 인권은 규범, 제도, 다양한 실천 양식 등이 서로 영향을 끼치는 관계 속에서 변화 발전하는 사회적 구성물입니다. 세계인권선언 28조가 말하고 있듯이 ‘권리가 실현될 수 있는 사회적 및 국제적 질서’ 속에서야 개별적 권리의 실현이 가능합니다. 또한 29조에 따르면, 어떠한 조항도 이 선언에 규정된 권리와 자유를 파괴할 목적의 활동에 종사하거나 그와 같은 행위를 할 어떠한 권리도 가지는 것으로 해석될 수 없습니다. 윤석열은 이 두 가지 전제를 모두 훼손했습니다.
적대적 상황을 부추기고 재난 참사를 방치하고 책임을 회피하고 세금을 걷거나 쓰는 데서 공동의 금고를 사유화하며 불평등과 격차를 강화했고 저항의 목소리를 틀어막고 극우 이념과 폭력의 선동에 앞장섰습니다. 정부에게 제한된 행위는 무제한으로 자행하면서 정부가 지원하고 보장해야 하는 시민의 최소한의 삶에 대한 권리들은 모른척했습니다. 증거 목록은 길고 중하기만 합니다. 이태원 참사, 채상병과 박정훈 대령, 대우조선하청노동자, 전세 사기 피해자, 의료 참사···. 다 열거하지 못할 인권침해를 증언하고 저항하는 숱한 몸들이 현존합니다. 윤석열 세력은 ‘바이든 날리면’으로 뭉갤 수 있다고 착각했겠지만 사상과 표현의 자유는 그렇게 날릴 수 있는 게 아님을 광장을 채우고도 넘치는 우리의 목소리가 증언합니다.
이런 일들이 왜 발생했는지를 따져 묻는 게 인권에 대한 총체적 접근입니다. 그리고 이런 일을 얄팍한 술수로 대충 메꿀 수 없다는 것을 명확히 하는 것이 총체적 접근이기도 합니다. 원인은 윤석열 세력이 주권자를 총체적으로 무시하는 틀에서 권력이라는 것을 휘둘러왔기 때문입니다. 그 권력 자체를 당장 뺏지 않고서는 우리 중 누구도 기본적 인권을 보장받을 수 없습니다. 당장 그의 권력을 회수해야 합니다.
주권자인 우리는 ‘동등한 사람들’로서 정치적 공동체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이 동등성을 무시하고 편 가르고 ‘반국가세력’이라 싸잡는 말로 적대시한 윤석열은 정치의 기본 토대를 무너뜨렸습니다. 윤석열은 시민들이 상호작용할 수 있는 정당한 조건을 파괴했습니다. 정당한 선거에 의해 선택됐더라도 시민에 대한 책임을 계속 져야 하며 헌정 가치를 무시함으로써 그 책임을 저버리면 시민에 의해 축출될 수 있어야 한다는 기본 계약을 그에게 명확히 상기시켜줘야 합니다. 또한 기득권 유지를 위해 무슨 일이든 서슴지 않는 정치인과 정당은 그 추한 모습 그대로 역사에 박제되어 두고두고 역사적 인권 감수성의 사례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제1의 권리를 행사하고자 합니다. 주권자로서 정치적 권리를 행사해야 여타의 권리들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윤석열 세력이 분수에 맞지 않게 참칭한 주권을 회수하여 새롭게 재구성하는 힘이야말로 주권이며 인권 중의 인권입니다. 그리고 새롭게 헌정을 세우는 주권은 광장에서 탄핵을 외치는 시민들에게 있을 뿐임을 확인합니다.
반란 세력으로 인한 ‘공포, 불안, 고립’은 더 이상 우리의 것이 아니라 윤석열과 ‘국민의 힘’이 맞이할 모든 낮과 밤을 지배할 것입니다. 저항과 연대가 우리의 것이며 꼬리 자르기와 배신이 저들의 것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회수하려는 윤석열의 권력은 불평등과 차별, 부패와 음모의 부대에 담겨 곯아 터졌습니다. 우리가 새로 박음질하는 권력은 헌정 가치인 기본적 인권을 엄호하는 새로운 부대에 담길 것입니다. 세부적인 사안 간에 당연히 이견이 존재할 것이고 우리는 서로 다른 사람들로서 논쟁할 것이나 동등한 사람들로서 항쟁하며 공공선을 만들어가는 것이지 배제와 차별로 누군가의 존재 자격이나 동등성을 침해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동등한 존중을 받아 마땅한 사람들로서 정치의 광장에 나왔습니다. 윤석열 탄핵의 광장에 나온 우리의 목적은 정당하며 과정도 정당할 것이며 그로 인해 더 성숙할,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민주주의에 대한 희망을 품습니다.
광장에 모인 우리는 서로를 동등한 존재로 바라보는 상황에서만 힘을 발휘할 수 있고, 그 힘이야말로 정당한 주권의 행사가 될 것입니다.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며 아무도 뒤에 남기지 않고 함께 움직이는 저항 정치를 펼치면서 우리는 동등한 주권자로 서로를 부축하고 서로를 이끌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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