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2.7. 국회 앞에서 노동자들이 노조법 개정을 촉구하며 단식 농성을 하고 있었습니다. 인권단체는 이에 연대하여 '노조법 2조 3조 개정촉구 인권단체 기자회견'을 가졌습니다. 이 자리에서 '기업의 경영권과 재산권을 침해한다'에 맞서는 발--언을 요청받아 작성했던 인권연구소 '창' 의 발언문입니다. 

------------------------------------

허은실 시인의 시, <충주휴게소>의 한구절입니다.

...

고속도로엔 안개 자욱하고

달려도 당겨도 거리는 줄지가 않는다.

경로를 벗어났습니다.

경로를 재탐색합니다.

 

추월당한 것 같아 삶으로부터

그냥 절벽으로 핸들을 꺽고 싶었어

...

 

그냥 절벽으로 핸들을 꺽고 싶었어’, 이 구절에서 가슴이 꽉 막혔습니다.

이 시가 표현한 것처럼, 노동 하는 사람이 절벽으로 핸들을 꺽고 싶어지게만드는 체제는 정의롭지 못합니다. 여기 우리는 절벽으로 핸들을 꺽고 싶지 않기에모였습니다. 우리는 도로, 건물, 철도, 교육, 돌봄, 의료 등 우리 삶을 가능케하는 모든 것을 공동의 작업장이자 일터로 공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노동자를 둘러싼 사회환경을 감시하고, 노동자를 보호하는 입법을 요구하며, 권력이 제 할 일을 하지 않는 것을 지적하기 위해서 시민의 책임이자 도리로서 여기 모였습니다.

 

재산을 독점하고 배타적으로 사유하는 세력은 왜 내 맘대로 핸들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느냐고 말합니다. 핸들을 잡았다고 내 맘대로 운전하면 됩니까? 어린이를 비롯한 노약자가 앞에 있는지 주시해야 하지 않습니까? 신호등에 따라야 하지 않습니까? 제한속도 등을 지켜야 하지 않습니까? 재산권은 사회정의, 사회복지, 경제민주주의와 함께 가야한다는 것이 대한민국헌법의 약속 아닙니까?

 

그들은 핸들을 함부로 꺽으면 안된다는 것이 재산권의 형성과 발전의 과정이었다는 것을 애써 무시합니다. 그들은 내 재산만 지켜달라말하지만, 여기 모인 우리는 상호연결과 상호의존과 공유 속에서 재산을 생각합니다.

 

20221207노조법기자회견발언.hwp
0.08MB

재산이란 무엇입니까? 재산은 어디까지나 사회 속에서 가지는 것입니다. 누군가 소유에 대한 권리를 주장한다면, 사회의 공동체의 법에 의해 소유자가 됩니다. 서로간의 재산을 규제하기 위해 국가는 법을 만들 권한이 있습니다. 국가는 어떤 법을 만들어야 합니까? 사회구성원의 정의로운 관계를 보장하는 쪽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특권적인 강자가 다른 쪽을 관계에서 무시하고 지워버릴 수 있는 그런 법을 방치하는 것은 국가의 큰 잘못입니다.

 

그 어떤 재산에 앞서 사회의 구성원은 누구나 사회 안에서 살아갈 권리가 있습니다. 가진 것 하나 없고 생계비를 벌 수 없는 사람에게도 살아갈 권리가 있다는 것은 사회가 그들을 도울 책임을 진다는 것입니다. 재산은 모든 구성원을 부양하기에 기여해야 합니다. 그것이 사람 사이에서 마땅하고 정당한 것입니다. 사람 관계에서 마땅하고 정당하게 행위해야 하는 것을 입법화해온 것이 인권과 국가의 역사입니다. 그렇지 않고 강자의 특권을 보장하는 데 치우친 법은 비판과 저항을 받아 마땅합니다.

역사적으로 재산권은 불의한 권력에 대한 도전이라는 맥락에서 출발했고, 그 뿌리는 인간의 몸에 대한 권리, 생존을 도모할 권리입니다. 같은 뿌리에서 자랐으나, 큰 권력을 업은 재산은 타인과 사회의 생존을 위협하며 배타적으로 이익을 도모하는 것으로 쉽게 변질되곤 했습니다. 재산의 타락에 대한 방부제로 등장한 것이 노동자의 권리입니다. 단속되지 않은 재산권이 엄청난 사회적 위험을 초래하기 때문입니다. 아동노동착취도 불사하고, 노동자가 잠도 못자고 밥도 못먹고 무제한의 과로 경쟁을 벌여야만 생계를 도모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강요하는 기업활동은 자유롭지도 평등하지도 못합니다.

노동자의 권리를 신호탄으로 보편적인 교육권, 건강권, 주거권, 사회보장권 등이 함께 등장했습니다. 우리 삶에 필수적이고 공통적인 권리이자, 공유하는 재산은 노동권과 분리해서는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소유권 절대의 원칙을 모든 구성원의 살아갈 권리로 바꿔온 것이 노동권이고, 불리한 조건만 늘어놓고 도장찍게 만드는 강요를 계약자유의 원칙이라 우기는 체제를 노동자의 단결의 자유와 의사표현의 자유로 바꿔온 것이 입헌주의와 인권의 역사입니다.

 

노동자의 권리가 재산의 배타적인 사유화에 맞선 이유는 재산이란 것의 형성이 인간의 노동에서 기인하기 때문입니다. 노동자가 노동을 멈추면 난리가 납니다. 그것을 재산상의 손해라고 날뛰기 이전에, 왜 그런 노동을 무시하고 관계를 부인하려 했는지를 먼저 인정해야 합니다.

노동자의 권리가 노동자로서의 지위 인정과 노동자의 결사와 단결의 자유에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노동은 개인으로 이뤄질 수 없고, 인간의 협업에 의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노동자는 개별적으로가 아니라 집합적으로 의사를 표시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노동의 관계와 협업을 무시하는 비인간적인 노동시스템에 대해 집단적으로 거부의사를 밝힐 수밖에 없습니다.

노동자의 단체행동, 대표적으로 파업이 손해를 끼친다고 말합니다. 맞습니다. 막대한 손해를 끼칩니다. 그런 손해를 통해 민주주의 없는 시장 권력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티내지 않고 이대로 계속 가다가는 큰 사고가 날 것을 알기에 미리 경고하는 것입니다. 당장 멈춤이 불편하다 해서 큰 사고의 위험을 안고 계속 가는 것이 과연 사회구성원 모두의 권리와 안전을 지킬 수 있을까요?

 

사회속의 관계는 권리에 의해 구성됩니다. 권리란 타자와의 관계에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힘입니다. 재산이 권리라는 것은 재산을 둘러싼 사회적 관계 속에서 무엇을 할 수 있고, 없는가를 정한다는 것입니다. 기업의 재산권은 무한정이 아니라 노동자와의 관계속에서, 전체 사회구성원과의 관계속에서 정해집니다. 노동자에게 절벽으로 핸들을 꺽고 싶게픈 만드는 관계를 조성하는, 잠못자고 허기지고 지친 노동자에게 안전을 맡기는 관계를 강요하는, 그런 재산권은 마땅하고 정의로워야 한다는 기본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합니다.

 

노조법 개정안에 대해 한국경제인연합회 보도자료는 헌법상 평등권, 직업의 자유, 재산권 침해 등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말하는 평등은 사용자와 노동자간의 평등이고, 사업자의 영업활동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직업의 자유 침해이고, 재산권 침해란 사용자의 재산과 이를 지킬 수 있는 권리를 제한하는 것이라 합니다.

 

말이면 다 말이 되고, 권자를 붙이면 죄다 정당한 권리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그들의 권리 주장을 강도권이라 이름붙인 적이 있습니다. 강도권이란 이런 것입니다. 강도가 제 목에 칼을 대고 지갑을 내놓으라 합니다. 저는 제 목숨이 소중하기에 제 지갑을 내놓을 수밖에 없습니다. 강도는 제 지갑을 가져가서 맘대로 할 수 있습니다. 들어있는 현금을 쓸 수 있고, 카드도 제가 정신차리고 신고하여 정지시키기 전까지는 맘대로 쓸 수 있습니다. 강도가 제 지갑을 맘대로 할 수 있는 상황이라 할지라도, 저는 강도에게 내 지갑에 대한 권리가 있다고는 절대 말해줄 수 없습니다. 심지어 강도는 제 지갑을 가져간 후에도 제 목숨을 해할 수도 있습니다. 현실에서는 강도권같은 일이 힘을 발휘하는 일이 많습니다.

 

타인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경제적, 정치적 권력이 있다는 이유로 타인의 삶을 쥐락펴락하는 일이 합법적으로 벌어집니다. 강도에게 저항하는 사람에게는 불법이란 이름을 붙입니다. 저항하다가 강도에게 손해를 입히면 강도권을 침해했다고 사회적으로 큰 마이크를 든 쪽이 편들어줍니다. 강도권이라 할 수 있는 소위 재산권의 주장은 배타적인 사유화입니다. 타자의 삶을 남몰라라, 사회적으로 취약함과 불리함을 강요받는 사람들의 생존을 나몰라라, 전체 구성원의 실질적 안전을 위협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보호될 재산권이 될 수는 없습니다.

 

저는 소위 재산이란 게 없습니다. 집도 없고, 땅도 없고, 타인에게 이래라 저래라 할 명령과 지휘권도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사회 속 구성원들의 노동에 기대어 살아갑니다. 매일 공공교통을 이용하고, 헤아릴 수 없는 노동자의 필수노동에 의지하여 살아갑니다. 이분들의 존재가 저의 재산이고 인권의 역사가 말해주는 진정한 재산입니다.

 

세계노동기구, ILO의 창립선언문인 필라델피아 선언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 표현 및 결사의 자유는 부단한 진보에 필수적이다, 일부의 빈곤은 전체의 번영을 위험하게 한다.

 

이 말을 기억하는 사회 속에서 살아가고 싶습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