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은숙] <2006년 2월 24일 인권하루소식 제2998호>

원칙과 현실 사이
1989년 유엔총회에서 채택한 아동권리협약은 34, 35, 36조에 걸쳐 아동에게 해로운 모든 측면·모든 형태의 착취로부터의 아동 보호를 말하고 있다. 특히 34조는 '성착취'와 '성학대'에 초점을 두고 있다. 그런데 이 말만으로도 담을 수 없을 만큼 아동에게 발생하고 있는 심각한 문제들이 제기됐다. 그만큼 상황이 나쁘다는 것이다. 그래서 등장한 새로운 말이 '상업적 아동 성착취'로서 여기에는 아동 성매매, 아동 포르노그라피, 아동 인신매매, 아동섹스관광 등이 포함된다. 1996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국제회의는 '상업적 아동 성착취' 문제를 전면에 대두시켰다. 이 흐름을 이어받아 2000년 5월 유엔총회는 아동권리협약에 관한 의정서를 채택했는데, 이것이 '아동매매, 아동 성매매 및 아동포르노그라피에 관한 선택의정서'이다. 이 의정서는 아동권리협약 34조를 보다 실질적으로 집행하기 위한 것이다. 한국 정부는 2004년 9월에 이 의정서를 비준하여 가입국이 되었다.
이외에도 많은 원칙들이 있지만 사실상 그 안에 담긴 내용들은 우리들이 갖고 있는 간단한 상식을 되새김질 하는 것일 뿐이다. 아동이 성학대의 위협 없이 안전하게 어디서건 뛰어놀 수 있고, 가족과 이웃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 당연한 권리, 자신의 안전을 위한 정보와 교육을 제공받고 훈련받으며, 합당한 보상과 치료와 회복을 도모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 원칙과는 다른 현실이 잔인하게 펼쳐지고 있다. 아동인권단체들은 다음과 같은 보고를 계속하고 있다:
인권침해는 우선 드러나야 하는데, 아동에 대한 성학대는 감춰지고 보고되지 않는 형태의 폭력이다. 피해자에게 가해지는 낙인과 수치심 때문에 많은 아동은 자기 자신과 또한 자신과 친밀한 가해자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학대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성학대에 대해 말한 아동은 흔히 비난받거나 아이들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는 어른에게 무시되거나 학대자에게 위협받거나 매수당한다. 아동에 대한 성학대는 학교, 가정, 지역사회, 쉼터, 종교 및 기타의 시설, 작업장, 경찰서, 감옥 등을 가리지 않고 평화시에나 전쟁시에나 모든 곳에서 벌어진다. 학대자들은 사회 계층과 집단을 불문하고 나타나며 통계적으로는 남성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그리고 학대자의 대다수는 아동이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또한 18세 미만의 아동이 가해자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피해자인 아동은 심리적, 신체적 상처를 받을 뿐 아니라 자신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 사회나 어른들에 의해서 그리고 적절한 지원이 제공되지 않음으로 인해 또다시 더 깊게 상처받는다.
이에 대해 국제인권기준들이 권고하는 바는 아동 성학대 문제를 뿌리부터 다루라는 것이다. 뿌리라 함은 성폭력을 사회적으로 정당화하고 수용하는 분위기, 가부장적이며 성차별적인 구조, 어른과 아동간의 불평등한 관계, 이윤을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다는 것 등이다. 이런 구조들이 학대자를 대담하게 만들고 그들을 보호한다는 것이다. 또한 중요한 것은 성학대에 대한 개입은 철저하게 아동에게 귀 기울이고 아동에게 맞는 친근한 방법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문제에 대한 책임자가 분명해야 한다. 물론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책임을 져야 할 일이지만 정부가 1차적인 책임을 지고 해야 할 일을 분명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책임져야 할 내용들은 아래와 같이 선택의정서에 상세히 나와 있는 대로이다.
범인은 잡히지 않았다
요즘 뜨겁게 지펴지는 대책과 그에 따른 반응들은 범인을 확실히 잡아놓고 족치는 것 같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만연된 성폭력의 범인을 잡을 능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 그 범인은 성별과 나이로 사람대접을 달리하는 우리 체제 깊숙이 자리 잡고 있고, 피해자에게 오히려 수치심의 돌을 던지는 수많은 공범들과 함께 하고 있으며, 입으론 대책을 마련해도 실현할 인력이나 시설도 갖고 있지 못하고, 피해자들의 치료와 회복을 도모하는데는 거의 자원을 투여하고 있지 않는 인색함 속에 있다. 어떤 법학자는 국민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형벌 보다는 사법제도라고 한 적이 있다. 성폭력의 피해자들이 오히려 두려워하는 사법제도나 기타의 환경 속에서 범인이 제대로 보고 되거나 잡히기 어렵다. 따라서 제대로 처벌하기도 어렵다. 인권침해는 처벌돼야 한다. 그러나 제대로 처벌하는 것과 인권의 보루가 되는 원칙들을 훼손하면서 엄벌과 특단의 조치를 남발하는 것은 다르다. 또한 인권보장은 형벌로 실현되지도 않는다. 아동을 잘 이해하여 대처하는 사람들도 양성하고 시설도 만들고 프로그램도 개발하고 해야 할 일이 정말 많다.
당장 눈길을 끄는 충격요법이나 만병통치약에 대한 선전은 병에 대한 치료노력을 부실하게 할 뿐이다. 정부가 책임져야 할 많은 일들을 그것으로 면피하게 해줄 위험성도 다분하다. 그간 성폭력전문단체 등이 꾸준히 제기해왔으나 외면돼왔던 것들을 다 끄집어 내놓고 총체적으로 모색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단지 무언가 조치를 취하고 있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 따로따로 경쟁적으로 급조한 대책을 내놓지 말고 아동과 관계되는 일을 하는 모든 당국자와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길 바란다.
유엔아동권리협약(1989) 제34조 성적 착취 |
[류은숙] <2006년 2월 24일 인권하루소식 제2998호>
'문헌으로 인권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문헌으로 인권읽기 23] 국가안보와 표현의 자유 및 정보접근에 관한 요하네스버그 원칙 (0) | 2019.06.05 |
---|---|
[문헌으로 인권읽기 22] 국가인권기구의 지위에 관한 원칙 (0) | 2019.06.05 |
[문헌으로 인권읽기 21] 경찰이 지켜야 할 인권 기준과 실천(유엔, 2004) (0) | 2019.06.05 |
[문헌으로 인권읽기 20] 마틴 루터 킹, "베트남 너머: 침묵을 깨야 할 때"(1967.4.4) (0) | 2019.06.05 |
[문헌으로 인권읽기 19] 식량주권: 모두의 권리 식량주권을 지지하는 민간/시민사회단체 포럼 성명(2002.6.14) (0) | 2019.06.05 |